posted by 해이든 2019. 4. 18. 23:18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 스포 주의 *

1958년 서독 노이슈타트에 15살이었던 마이클은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 버스에서 내렸다.

골목 어귀에서 토를 하고 앉아 있자 30대 중반의 여성 한나가 다가왔고, 토한 것을 물로 다 씻겨내고 마이클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마이클은 성홍열로 몇 달 침대 신세를 져야 했다.

 

마이클은 몸이 나아질 무렵 한나를 찾아가 고마움을 전하러 갔다.

석탄을 양동이에 담아가지고 올라오던 한나는 문 앞에 서 있는 마이클을 발견하고 밑에서 석탄 양동이를 두 개 가지고 올라오라고 한다.

석탄을 가지고 올라온 마이클의 얼굴이 석탄가루로 까맣자 한나는 씻으라고 목욕물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이내 한나도 알몸으로 마이클을 뒤에서 안았다.

"이러고 싶어서 온 거지?"

이게 두 사람의 시작이었다.

솔직히 이 시작이 싫었다. 35살이면 엄마뻘 되는 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마이클이 이제 15살이라는 나이 때문이었다.

한창 호기심이 있을 나이였다. 그 호기심을 그렇게 받아주는 것도 싫었다.

무엇보다 마이클은 그녀에게 반해 있었다.

수업시간에 읽은 희곡에 대해 이야기하다 한나가 관심을 보이자 책을 건넸고 한나는 "네가 읽어줘"라고 말한다.

'너 책 있는 거 잘하더라'란 칭찬에 좋았던 마이클은 한나에게 매일같이 책을 읽어주고 사랑도 나누었다.

'호머의 에딧 세이'를 읽어주자 슬퍼서인지 그녀는 울기까지 했다.

 

우표수집을 하던 마이클은 우표를 팔아 그녀와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된다.

난생처음 교회에서 가스펠을 들으며 감동스러워 우는 한나를 바라보던 마이클은 그녀에게 더 깊숙이 빠져든다.

식당에서 나란히 식사를 하고 마이클이 계산을 하러 가자 식당 여주인이 "엄마도 맛있게 먹었는지 모르겠구나?"묻는다.

돌아서 나온 마이클은 식당 여자가 보란 듯이 그녀의 입술에 키스한다.

엄마가 아니라 연인이라 말하고 싶은 마이클의 당당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버스 차장이었던 한나는 성실히 일을 잘해 사무직으로 승진한다.

그리고 그날은 마이클의 생일이었다. 친구들과의 파티를 뒤로 하고 그녀에게 왔지만 그녀는 신경질적이었다.

항상 이유도 없이 당하고 사과하는 것도 마이클이었다. 마이클은 그래도 그녀가 좋았다.

목욕시켜주고 이젠 친구들한테 가서 생일파티를 하라고 보내주었다.

돌아와 보니 그녀는 떠나고 없었다.

15살의 어린아이에게 사회의 편견은 두렵지 않았다.

'난 두렵지 않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고통이 커질수록 사랑은 깊어진다. 두려움은 사랑을 증폭시킬 뿐

사회적 편견도 망각하게 한다. 당신이 천사가 되어 행복한 일생을 살도록 하리라. 인간을 완벽하게 만드는 건 바로 사랑이니라."

첫사랑에 대한 상처는 너무 컸고 마이클은 그 상처로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녀는 꼬마를 사랑하긴 했을까?

책읽어주는 마이클

 8년 후 1966년 하이델베르크 법대에 다니고 있던 마이클은 실습차 법원 견학을 간 재판에서 가해자 신분으로 앉아 있는 한나 슈미츠를 만나게 된다. 그녀 나이 43살이었다.

1943년에 친위대에 자원하여 아우슈비츠 감시원으로 일했다는 것이다.

1944년 수감자들을 이동시키는 '죽음의 행군'을 맡아 다른 수용소로 이동하는 중 300명을 살해한 혐의로 피해자 유대인의 고소로 이루어진 재판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좁아서 사람들을 선별해 가스실로 보냈다는 겁니까?라고 묻는 판사에게

당당하게 "감시원에 지원한 게 잘못입니까? 되묻는다.

그녀는 수감자들을 감시하는 게 자신의 임무이고 그 의무에 충실했다고 판사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폭격을 맞고 마을 전체가 불이 났고 수감자를 가둔 교회에 불이 났다. 문을 열면 아수라장이 될 것이고 도망치게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문을 열지 않았고 수감자를 감시해야 하는 자신의 임무만을 강조하며 어떻게 질서를 유지하냐고 판사에게 조목조목 따졌다.

판사는 그녀에게 "불이 난 걸 알면서도 선택을 내린 거군요. 도망치게 놔두느니 죽도록 방치한 겁니다."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판이었다. 최소한 변명하고 반성하는 척이라도 해야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할 터인데 그녀는 그렇지 아니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자신의 죄를 줄이려고 형량을 줄이기 위해 모른다고 하는데도 한나만은 그저 감시원으로서 책임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살아남은 유대인 피해자의 진술이 시작되고 피해자는 한나가 처음엔 가장 인간적이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녔다고 말한다.

"약하고 어린 소녀들을 불러다 잘 돌봐주고 책을 읽게 하고 그러다 아우슈비츠로 보냈어요. 그게 친절인가요."

마이클은 객석에서 지켜보며 한나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 진술로 자신도 한나에게 책을 읽어 준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마이클은 괴로워한다.

그녀가 버스 차장에서 사무직으로 승진했는데 왜 기뻐하지 않았는지, 마이클에게 왜 책을 읽어 달라고 했는지, 왜 떠났는지, 그리고 감시원으로 지원했는지.. 거기에는 까막눈이었다는 한나의 자존심이 숨겨 있었다.

그래도 감시원으로서의 임무보다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문맹과는 상관이 없다. 글을 모른다고 대학살인 상황을 이해 못하거나 선과 악을 구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했다고 유죄는 아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한 8천 명 중에 19명만이 유죄판결을 받았고, 6명이 살인죄로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살인을 입증하려면 동기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법이다. 문제는 잘못의 유무가 아니라 적법성이다. 현재의 법이 아닌 당시의 법을 따라야 하고 그 법은 편협한 것이다.

마이클은 법대 교수에게 피고한테 유리한 중요한 정보이고,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해 그녀가 글을 모른다고 말하게 된다.

그런데 당사자 한나가 창피해서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사회는 우리 생각처럼 도덕심에 의해 돌아가지 않아. 법이 모든 걸 좌우하지. 법정에 진실을 밝힐 도덕적 의무가 있어. 중요한 건 우리의 감정이 아니야. 우리의 행동이지. 진실을 알면서도 나서질 않았다는 죄책감을 평생 지고 살아갈 텐가."

법대생이 되어 견학차 간 재판에서 8년 만에 자신의 삶을 가두어버린 첫사랑을 보게 되고 재판 과정에서 그녀가 글을 몰랐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 사실만 재판부에 알리면 되는데 한나도 마이클도 그걸 하지 못했다.

막상 한나를 만나려고 교도소 면회를 갔지만 그냥 만나지 않고 돌아서 나와 버린다.

마이클은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걸 선택한 것일까? 한나가 글을 모르고 있다는 걸 자신이 아는 걸 숨기려는 걸까?

 

문맹보다 그녀는 세상에 까막눈 같았다.

그녀를 제외한 5명은 그녀가 시켜서 했다고 그녀가 사인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필체가 맞는지 필체 확인을 하겠다고 펜과 종이를 갖다 주다 그렇게 당당했던 그녀가 초조하게 흔들렸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썼어요'라고 저항도 없이 자신이 사인했다고 말한다.

글을 모르는 게 답답한 것이 아니다. 글을 못 읽어 창피한 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법정에서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판단 못했을 리 없건만 그걸 숨기는 그녀의 행동 때문이다.

꺼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그게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줄 알면서도 글을 모르는 걸 말하지 않고 하지도 않은 죄를 시인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300명 살해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며 5명은 4년 3개월의 유죄를 받고, 그녀만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녀가 문맹이라는 걸 유일하게 알고 있는 마이클은 그대로 침묵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 죄책감으로 마이클은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했다.

아버지 장례식마저 그녀에 대한 기억으로 서독에 돌아올 수 없었을 만큼 그는 상처가 컸다.

책 읽어 녹음하는 마이클 

결혼생활은 순조롭지 못했다.

아내와 이혼 후 딸아이와 돌아온 마이클은 여기 오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로 인해 세상에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예전 방에서 오디세이 책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와 카세트를 보낸다.

 

한나는 교도소 내에서 책을 빌려 마이클이 녹음해 보낸 테이프로 차곡차곡 글을 배운다. 그리고 처음으로 꼬마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다.

'꼬마야 지난번 책 좋았어.'

글을 배워 매일같이 꼬마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마이클은 편지로 답장 한통을 보내지 않는다. 계속 테이프로 녹음해서 보낸다

책을 읽어주는 15살의 첫사랑 마이클이고 싶은 건지, 떠나간 상처에 대한 미움인지 알 길이 없다

글을 몰라 무지한 것보다 편견에 갇혀 있는 그녀였다. 그 정도로 창피했다면 창피함이 이 정도였다면 왜? 글을 배울 생각을 못한 걸까?

이 영화를 보며 여자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한나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직 책 읽어주는 남자 마이클로 아프고 화내고 있었다.

 

1988년 한나 슈미츠는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가석방을 남겨놓고 마이클과 대면하게 된다.

"내 생각은 중요치 않아, 내 기분은 중요치 않아, 죽은 사람은 죽은 거니까"

뭐 변한게 있냐는 마이클의 말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리고 글을 배운 게 달라진 것이라고 했다.

문맹은 한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문맹이 아니라 그걸 가두고 있는 그녀의 무지가 다른 사람의 인생엔 더 큰 영향을 미치게 했다.  그녀는 글을 깨우치고야 알게 된 것일까!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 많은 유대인 학살의 죄를 모두 안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과 마이클이 평생 마음을 닫게 한 세월을 안겨준 것이 말이다.

" 잘 가 꼬마야"

이게 마지막이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다. 한나로 인해 무겁고 답답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