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1. 1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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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이든 2019. 1. 3. 18:32

대구 마비정 벽화마을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 위치한 마비정마을

농촌마을 가정집에 그려진 벽화가  마을 어귀어귀에 그려져 아스팔트에 놓여진 우리를 불러들인다.


토속적인 풍경이 점점 가슴속에 들어오고, 흙을 밟고 싶은 건 내게 변화가 오는 걸까?

정말 한달에 몇번 흙을 밟아보고 있는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걸어다닌지 얼마인 줄도 모른다.

가끔 신발 벗고 양말 벗고 맨발에 닿는 흙의 촉감이 그립다. 

점점 각진 상자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원 안에 갇혀도 마찬가지다.

둥그런 지구안에서 숨 쉬고는 있지만 나무와 바람과 흙이 없는 세상에서 난 네모난 건물에 날 집어넣고

네모난 상자를 쳐다보고 웃고 울고, 네모난 휴대폰으로 세상을 보고는 한다.


잠시 고개를 들면 하늘과

잠시 고개를 내리면 땅과

잠시 멈추면 맞이하는 바람을 느끼는데 난 여유를 제대로 즐길 줄을 모른다.

인간에게 주어진 강력한 무기인 감정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다.

그저 쉼표, 그거 하나 들고 맞이하는 그림은 휴식이거늘

살아가는 거 말고, 숨쉬는 거 말고 내 안의 흐름을 외면하고 살았던 것 같다.

접어든 길목은 토속적이고 정감어린 풍경이 가득하다.



언제나 좋은 곳은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고 온다. 쉼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머무름이 느껴진다.

찌그러진 양은냄비, 주전자, 세수대야를 가져다 엿 바꿔 먹던 시절, 그 시절의 나는 아이였다.

고물인 줄 알고 가져다 주었는데, 멀쩡한 걸 엿 바꿔 먹었다고 엄마에게 혼난 그날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 시절 엿장수가 끊어주던 엿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내 입은 기억하고 있다.



울퉁불퉁한 돌맹이에 흙발라 쌓아올린 담도,  소쿠리에 나물 담아 쪼그려 앉아 파는 할머니의 모습도 그저 낯잊은 풍경이다.

누군가의 마음이,누군가의 사연이 예쁘게 적힌 단어 몇줄도 그저 내 품에 안긴 고양이처럼 사랑스럽다.



- 웃는 罪 -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유

물 한모금 달래서 샘물 퍼주구

그리구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았지유

마비정에 해 안 뜬대두 난 모르오  웃는 罪밖에

<마비정 마을에 적힌 시귀>


여기 저기 적힌 글귀들이 마음을 적신다.

참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정겹게 툭툭 감정을 긁는다.



마당에 있는 수돗물로 등목하던 어린 시절이 거기 있고,

농사를 취미처럼 하는 엄마의 그 긴 밭도, 

고구마. 감자 소쿠리에 담아 오던 거기에 나는  아이였다.

커피솦 이름이 또 그러하네...'그녀의 부엌에는'

왠지 그녀의 부엌에는 엄마의 청국장이 나올 것 같은데 '아메리카노'라 적혀 있음에 또 웃음짓는다.

마비정 통나무에 적힌 흔적들,

그들도 나처럼 감정을 마구 끄집어내고도 모잘라 적어 놓은 글씨들이 또 그리 미소를 담는다.


동네 어귀에서 숨바꼭질 하던 동무들도 이제 어른이 되어 나처럼 아스팔트위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겠지.

예전에 모두 불편한 살림살이였던 도구들이 어린시절의 나를 소환한다.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방안에 이불 덮고 오손도손 둘러앉은 정경이 내 시절 어디쯤 자리했었다.

'다 옛날 이야기다' 속삭이는 것 같다.


이제 나는 늙었다. 아니 늙었다는 말이 슬퍼 나이 들어간다고 표현해 보려한다.

참 열심히 살았다.

난 오늘 쉼을 담고 추억을 담고 미소를 담고 여유를 채웠다.

바람따라 움직이는 세월에 시간을 너무 급히 담느라 놓친 것들이 너무 많은 인생이었다.

남겨놓을 것을 생각하기 보다 담아갈 것을 생각하는 내일이 내 앞에 펼쳐지기를 바라며 끝맺음을 하려한다.



posted by 해이든 2018. 11. 4. 12:00

낙안읍성

대중교통만을 이용해 떠난 여행이었다.

전철을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 순천을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그렇게 달려간 곳이었다.

낭만을 잡은 채 건져올린 추억이었다.

가끔 내게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고, 불편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계단으로 오르는 여정끝에 나를 맡길 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고된 노동 속에 맛보게 되는 새참 같은 거랄까, 고추 하나 된장에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그 얼마나 맛나고 풍요하던지,

그런 맛을 느낀 여행이었다.

낙안읍성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과거로의 여행을 산책하듯 걸어 걸어 들어갔다.

낙안읍성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서내리, 남내리 일대의 낙안분지에 위치하는 조선시대 평지성의 하나로 조선시대에는 행정상 읍소재지였기 때문에 '읍성'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방계획도시로 대한민국 3대 읍성 중의 하나로 사적 302호 지정되었다 한다.

기록에 의하면 백제시대부터 이곳에 성곽을 쌓아 파지성(波知城)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시대 후기와 조선초기에 왜구가 자주 이곳을 침입했기 때문에 태조 6년 이곳 출신의 절제사 김빈길이 흙으로 다시 성곽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인조때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있으면서 개축하였고, 평지에 직사각형으로 세워졌다 한다.

낙안 민속마을 성곽

낙안읍성의 민속마을은 다른 전시용 민속마을과 다르게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성내에는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는 국내 유일한 곳이다.

물론 생활방식마저 옛 전통 그대로를 보존하면서 말이다.

밥짓는 냄새도 나고, 농사도 지어 수확하고, 감도 열려 있고, 빨래도 널어져 있다.

간혹 마당에 건조빨래대가 있는 것을 보고 웃었다. 생활의 불편함이 많겠다 생각은 했다.

왜?난 현대문명이 만들어놓은 편리성에 길들여진 사람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마치 조선시대가 현재와 공존하는 듯 느껴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난 조선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초가지붕 민속마을 , 성내 민박 집도 있고, 식당도 있다.

옥사체험도 할 수 있고 사당패들이 민속놀이 공연도 하고 있었다.

옥사체험

대장금 촬영지로 이미 유명세를 탄 듯하다. 여기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문 쌍청루의 넓은 마루에서 신발 벗고 잠시 앉아 쉬기도 했다.

마치 조선시대 낭인으로 온 느낌이랄까.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어떤 신분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았으려나?

풍경도 좋고, 자연도 좋고, 바람마저 좋았던 지라 힐링의 맛을 제대로 느껴본 가을이다.

계단에 올라가니 낙안읍성 민속마을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여기를 다 둘러본 것이다.

초가지붕이 낯선 나는 아니다.

어릴 때부터 많이 보아와서 마치 엄마 품으로 돌아온 것 같은 정겨움이 날 이끌었다.

낙안읍성 민속마을

옛모습 그대로를 유지한 가옥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정겨운 풍경이 따스하게 안기고 아이들이 뛰어나올 것 같은  골목 어귀마다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 그럼 여기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자격조건이 있을 것이다. 아무나 받아들이지는 않겠지?

혹시 이사 가고 오는 사람들은 또 어떤 절차가 있겠지?

아는 이는 없는 듯 하다. 주위엔 관광객들이 더 많다.

다들 경치를 즐기고, 힐링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다. 그런 이들에게 일일이 물어보기 싫다.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는 이상, 지자체에서 주민들에 대한 관리도 이루어지겠지' 하고 생각을 더는 담지 않았다. 

 담에는 여기서 민박을 하면서 주인장에게 물어봐야겠다.

오늘은 풍경과 내 감정에만 충실해보자. 힐링을 하러 온 것이 아닌가

순천 민속마을

성곽벽을 따라 걸으며 현대 삶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어릴 적 가진 게 별로 없어도 우리는 참 행복했다.

집집마다 웃음소리가 밖으로 나오고, 뒷 집에서 뭐 했으니 먹으라 오라고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오고,

'전설의 고향'을 하는 날이면 한 집에 모여 보면서 이웃사촌들의 정을 담는다.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같이 데려다 달라는 동무의 부탁으로 서로의 집을 여러 번 오갔던 추억마저 우리는 무엇에 빼앗기고 있는 걸까?

해가 넘어가면서 우리는 이런 풍경을 이렇게 관광지로 찾아 다녀야 하는 것에 많이 씁쓸했다.

오늘 저녁에 짓는 밥에는 정서를 듬뿍 담아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