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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5.23 숨결이 바람될때  /폴 칼라니티
posted by 해이든 2019. 5. 23. 18:07
서른 여섯살에 그는 정상에 올랐다. 

대학원학생에서 신경외과 교수로 가는 여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열다섯달만 더 버티면 레지던트 생활도 끝나고  화려하게 신경외과교수로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36살의 나이에 폐암에 걸려 그동안 삶을 치열하게 살며 쌓아올린 것들이 다 부서져버린다. 

잠재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암이란 것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환자들이 견디고 버틴 삶을 따라가야 한다. 

죽음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고 그렇게 되뇌였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불안한 요소이다. 

설사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전까지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었기에 그는 항암치료를 받아가며 6년차 레지던트 수련의 생활을 이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7년차 생활을 수행하던 중 암이 폐에서 뇌까지 전이되어 호흡조차 힘들어지고 목에 삽관을 해야만 연명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자 그는 연명을 거부하고 자발적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소생치료거부의사를 하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참 힘들었다. 

"난 준비됐어" 라고 폴이 말하고 이제 생과 사로 갈라져 버릴 순간앞에서 그 어떤 말이 가장 적절한지 꺼낼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모르핀을 맞으며 생을 마무리할 남편을 자식을, 아버지를 보낼 준비는 이 가족들에게 되어있을까,

떠날 준비는 되었는데 과연 가족들은 보낼 준비가 된 것일까,

그의 주변으로 가족이 모여 들었고, 아직 죽음이 뭔지 모를 아이의 볼에 아빠의 볼에 갖다주는 아내, 그녀는 가슴이 미어져 그의 침대에 올라가 같이 함께 누웠다. 

마스크가 제거되고, 모니터가 치워지고 모르핀이 정맥주사를 통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어린 딸의 밤을 폴의 빰에 가져다 대준다. 그리고 그녀는 잠이 오는 아이와 숨이 지는 남편을 위해 딸이 잠들때 불러주는 노래를 조용히 불러주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너무 절절했다.

그는 의사로서, 또는 환자로서 죽음과 대면했고, 또 씨름하다가 죽음을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가족들에게서 육체를 거두어 갔다. 

이 책은 폴 칼라니티의 회고록이다.

그의 인생은 미완성일지라도, 또 그의 육체는 36살에서 멈추었지만 저 세상에서 그는 못다한 일들을 해 나갈 것만 같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의사였다. 환자를 살리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살아났다고 해도 결코 예전같지 않을 환자와 가족이 일상으로 적응할 수 있게 배려하고 마음까지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