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20. 2. 5. 22:20

1001번가의 스토리보드

<해는 다 당도하여 벌써 이불자리를 펴는데 너는 이제야 당도하면 어쩌자는거야?>
<내가 좀 느리지 않소>

<느린 걸 알고 있으면 좀 일찍 출발했으면 되는 거 아니냐. 너도 참 쯔쯧>  혀를 찼다.

<좀 늦었다고 어찌 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한심한 표정이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자가 있지. 자신이 느리다는 걸 모르는 이와 자신이 느리다는 걸 아는 자, 자신이 느리다는 걸 모르는 자는 남의 속은 태워도 제 속은 편하지, 근데 자신이 느리다는 걸 아는 자는 제 속도 타고 남의 속도 태우지. 바로 너같은 자, 느리다는 걸 알았으면 좀 일찍 출발했으면 지금처럼 땀 흘리지 않았을 걸..>

<그럼 이제 제가 한마디 하죠. 저도 두 종류로 나누어 보죠. 나누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니..다른 사람이 느리다는 걸 알고도 힘들게 온 사람을 배려하여 수고했다고 하는 이가 있는 반면 남의 약점을 들추어 타박하고 맥 빠지게 하는 이가 있지요. 당신은 앞인 것 같소, 뒤인 것 같소?>

<뭐야? 네가 잘했다는거야?>

<잘잘못을 떠나 당신이 행복하다면 내가 잘못했소, 됐소.>

<진심 빠진 사과 사양하지>

<배려없는 조언도 사양합죠!>

말이란 건 이렇다.

말이 가진 효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자들이 참 많다. 말로 상대를 깍아내리는가하면 말로 상대를 치켜줌에 따라 다른 마음의 방에 들어가게 된다. 말이란 하늘에 닿기도 하고 바닥에 붙기도 한다. 천지차이다. 말 한마디 말끝에 따라 꽃이 피기도 하고 벌처럼 쏘기도 한다.

말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이다. 그 무기를 잘 사용하지 않으면 독이 될 것이다. 약이나 독을 구분하지 못하는 말버릇은 주위에 빛을 잃게 한다.

또 변명이나 해명을 자주 하고 있다면 당신의 말버릇을 둘러봐야 한다. 좋은 말과 나쁜 말은 누구나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버릇이 되어버렸다면 무의식적으로 행해져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그저 수고했다 한마디면 꽃 피웠을 일이었다. 무의식적으로 혀를 차는 모습에 반감이 생겨 서로를 벌처럼 쏘는 꼴이 되었다.

아무리 좋은 충고나 조언도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다. 말을 함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진심을 전달하는 도구가 얼마나 잘 정제되어 있느냐에 따라 마음이 움직인다.

 

 

posted by 해이든 2019. 1. 1. 15:10

2019년 기해년 황금돼지해가 떠올랐다.

첫 날은 누구에게나  처음에 대한 설레임과 경건함을 갖게 해준다.

60년만에 찾아온  기해년 '황금 돼지해'라니 뭔가 특별한 행운이 올 것 같다.

마치 첫 날 밤, 새색시의 마음처럼 설레인다.

많은 이들의 기도가 새벽 잠을 포기하고 한 해의 출발점에 서 있다.

해는 내일도 떠오른다. 1년 365일 떠오른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첫번째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만큼 첫날에 갖는 감정은 자신을 향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미부여는 자신만의 만들어낼 수 있는 기억점이다.

첫 탄생, 첫 생일, 첫 사랑, 첫 입학식, 그리고 20살의 첫 날, 결혼 첫 날, 첫 입사 등

그 첫 날에 우린 숫처녀의 순결같은 걸 내 주었다. 처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설레인다.

그리고 내일을 담을 기대감으로 긴장하거나 설레어한다.

새로 산 일기장의 첫 장에 부풀려 있는 내 감정과 버킷리스트를 적어내린 흔적은 원대하다.

 그러나 첫 마음 그대로 끝맺음으로까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인생이 내 의지에만 매달려서도 가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의지를 벗어난 능력밖의 일들에 대해 운명에 맡길 수 밖에 없다.

그 운명에 기운을 받고 싶다.

기도를 하듯 마음을 다해 내게 올 수 있는 행운과 운명에 나름대로의 염원을 소망을 기도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나는

 

2019년 첫 해를 바라보며

첫 장을 대하던 간절한 마음이 마지막 장의 마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게 내게 끈기와 용기를 주고,

나와 내 가족이 세상속에서 관계속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내 기도가 조그마한 발판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화수 떠 놓고 '비나이나 비나이다 ' 간절한 숨을 토해냈던 어머니가 그랬듯이

나 역시 자식이 우선일 수 밖에 없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8년 마지막 날 그 해 첫 날에 그렸던  마음보다 작아진 것에 후회를 하며  보내 보렸다.

이미 지나버림에 그저 '수고했다' 한마디를 건네고 다시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똑같은 주머니를 벌리고 있다.

'어제는 내가 잘못했어.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 정말 잘 해 볼게.

그러니 제발 너도 나에게 기회를 줘' 라고  바램같은 욕심을  쏟아낸다.

 

자신의 어제가 오늘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어제보다 좀 좋은 나은 내일을 바라는 희망이 존재할 뿐이다.

사람들의 염원이 모든 에너지를 다 뿜고 나오는 저 해의 기운을 받고 싶어서다.

저 차가운 바다가 하늘과 만난다. 해는 그들을 뜨거운 열정으로 품는다.

깊고 차가운 바다에서 토해놓은 듯한 붉은 해,  저 불같은 해를 바다는 끄지 못했다.

저 차거운 바다가 뜨거워지는 것 같은 온도로 저 해가 맞이하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지운다.

그 열정앞에 모여드는 사람들만큼 그들이 희망하는 기도의 크기만큼 해는 불타오르고 있다.

내 꿈도 올 해는 불타 올랐으면 하고, 내게 저 차가운 바다같던 사랑도 불타올랐으면 하고,

바다를 품듯 세상을 품었으면 하고,

하늘과 바다를 다 물들이는 열정만큼 나의 해도 꼭 너와 같기를 빌고 빌어본다.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너처럼 얘기하고 싶다.

너처럼 뜨겁지 않아도 너만큼은 스스로를 뜨겁다고 말하고 싶다.

너만한 포용력은 없더라고 나름 안아보려 했다고 말하는 한해가 되고 싶다.

어제의 나는 망설임이 많았다.

어제의 나는 자괴감도 많았다. 어제의 나는 나약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어제와 같은 나를 오늘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널 보러왔다. 네가 품은 열정을 네가 안은 바다를

네가 물들인 바다를 네가 품은 하늘을 나도 좀 안아보고 싶다.

올 해 나는 정말 내 안의 나와 대면하고자 한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과 타협해 왔다면 올해는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

즐기고 싶다. 나의 인생을,

하루하루를 살아 낸다고 생각했지만,

어제 그 마지막 날 드는 생각은 난 그저 흘려보내는 하루들이었다.

 실패를 숨기기 위해 척하며 사느라 많이 아펐던 것 같다.

무얼 채운다기 보다 날 비우며 상대를 대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를 잃어간 것이고, 그들은 내게 진실하지 않았다.

그들도 친한 척하며 옆에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관계를 내려놓고 왔다. 그리고 나를 채우는 일에 집중할까 한다.

생각안에 갇히지 않고 관계속에 묻히지 않고 꿈속으로 네가 품은 세상을 나도 품을까 한다.

나만의 색으로 하늘과 바다를 물들일까 한다.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고

살아내지 않고, 살아갈것이고 채워갈 것이다.

인생은 그래도 아름답다고 너처럼 저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황금 돼지해 2019년도 나도  붉게 떠오를 생각이다. 지금의 너처펌

2019년 나를 위한 기도문을 쓴다.

posted by 해이든 2018. 12. 29. 01:15

칼국수가 먹고 싶다는 딸아이의 강한 집념은 하루 전날부터 시작되었다.

"정말 예술이야. 같이 먹으러 가자고!!"

"칼국수가 칼국수지, 뭔 예술까지 들먹거리냐? "

그러나 어짜피 내가 질 싸움이었다. 자식이 먹고 싶다는데 도리가 없다.

낼 날도 춥다는데 굳이 장산까지 가서 먹어야 되나 ,싶은 맘이 크기도 했고 칼국수 한 그릇 먹자고 외출준비를 하는 것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약속 콜을 외치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다음 날 다들 쉬는 날들이라 전부 늦잠을  잤다. 거기다 칼국수 먹자고 했던 딸은 밤새 영화를 본다고 새벽 5시가 넘어서 잠이 든 모양이다.

속으로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아침 베란다에 나갔더니 바람이 무지 차다.

나가기 싫었는데, 늦게 잔 딸을 깨워도 안 일어날 것이다. 아니 절대 못 일어날 것이다.

먹는 것보다 잠을 택할 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늘 칼국수 먹으러 못 갈 듯하다.

그래서 나는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책을 봤다. 그런데 11시에 알람이 울린다.

딸아이의 휴대폰에서 울리는 알람소리다. 무의식적으로 알람을 끈다.  미동도 안하고 자는 듯 싶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리는 딸아이의 목소리! "몇시야! 엄마 가자."

작은 애와 나는 눈을 마주치며 '이게 현실이야?'라는 표정이었다. 지금 우리가 제대로 들은 거 맞나 싶었다. 외출할때면 항상 화장하고 나가는 큰 애가 세수만 하고, 모자를 눌러 쓰고, 패딩만 걸치고 나가자고 하는 것이다.

도대체 잠을 포기하고, 화장을 포기하고, 큰 애를 움직이는 그 칼국수가 얼마나 맛있길래 이런 천재지변이 있단 말인가? 결국 우리는 11시 30분에 집을 나서면서  지금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다.

쉬는 날이면 하루종일 잘 정도로 잠에 취하면 밥이고 뭐고 없는 아이라서 더 놀랬다.

잠결에도 수없이 망설였다고 한다.

자느냐, 먹으러 가느냐...수천번 갈등했는데, 결국엔 칼국수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먹고 바로 집와서 잘거라고 했다.

대신 자기 다 먹을때까지 숟가락 내려놓지 말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워낙 빨리 먹는 아빠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에 반해 딸아이는 먹는 속도가 느렸다. 서너번 먹을 때 쯤이면 다 먹고 숟가락 놓는 아빠때문에 식욕이 다 떨어진다고 속도 맞추어 달라는 말이었다. 12시 되면 손님이 너무 많아 줄을 서야 된다고 빨리 가자고 재촉도 했다.

다행히도 12시 안에 도착했고, 12시가 안 된 시간에도 손님들이 제법 앉아 있었다. 그러나 빈 곳도 몇 군데 보였다. 우리 가족 넷은 자리에 앉자마자 두가지 메뉴를 다 먹고 싶은 욕구로 실랑이중이다.

비빔도 먹고 싶고, 국물칼국수도 먹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말이다.  결국 물 셋에 비빔 둘을 시켰다.

아니 양이 많으면 어쩔려고 걱정이 앞섰지만 대세를 따랐다.

이미  먹어본 남편과 큰 애는 충분히 흥분 상태였다. 해운대 장산에서 칼국수는 이 집이 젤 유명하다고 한다. 손님들이 계속 들어와 자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채워졌다.

김치와 단무지 밑반찬이 나오고, 칼국수 넣어 칼칼한 맛을 내라고 잘게 자른 땡초가 나왔다. 칼국수 세그릇과 비빔 칼국수 두그릇도 이어 나왔다. 입맛을 다시던 딸아이가 열심히 비빔칼국수를 비벼낸다. 양배추가 듬뿍 들어가서 양이 많아보이지 다 먹을 수 있다고 미리 선제공격을 해온다.

음식 남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먹을만큼만 시키는 걸 좋아한다. 근데 사람 인원수보다 하나를 더 시켜서 걱정이 되는 날 의식해서 하는 말이다.

해운대 장산에 위치한 이 집은 꽤 이름이 알려진 곳이고, 가게 이름도 '소문난 칼국수'로 자체 홍보를 하는 듯 하다. 그러나 이름 따라 가는 지 소문난 것은 맞나보다.

칼국수를 한 입 먹고,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국물 육수가 너무 진했고, 무엇보다 면발이 수타면이라 쫄깃 쫄깃, 쫀득 쫀득 했다.

면도 기계로 뽑은 면은 일정한데 여기는 제각각의  면 길이와 두께로 사람이 직접 손으로 밀고 잘라 만든 칼국수였다. 거기다 올라간 쑥갓향이 젤 먼저 코끝을 치고 들어왔다.

이제 알 것 같았다. 딸아이가 잠을 포기한 이유를....

"봐봐. 엄마 맛있지? 예술이지!,후회 안하지?"라고 내게 자꾸 답을 재촉한다.

내가 먹어본 칼국수 중에 제일로 맛깔난 칼국수였다. 추운 날이면 또 생각날 맛이었다.

앞접시를 이용해 칼국수와 비빔칼국수를 번갈아가며 열심히 먹었다. 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내 입맛을 사로 잡느라 양 조절에 실패하고 빵빵한 배를 감당할 수 없었다. 

딸아이도 양이 찼는지 일어서자고 재촉했다. 배가 부르면서도 남은 국물까지 싹 비우려 했다.

대기자가 있으니까 빨리 일어서주자고 했다. 이젠 이 아이는 배가 부른 것 같다. 배려를 해주는 것 보면, 작은 애가 시험이 있어서 지금쯤 일어서야 했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꽤 차다. 그래도 든든하게 뜨근하고 얼큰한 칼국수를 먹어서 그런지 그리 추운 걸 못 느꼈다.  여름에는 밀면과 비빔밀면도 맛나니까 다음에 우리 저것도 먹으러 오자고 했다. 여름은 여름이고 겨울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다음에 또  오자고 하고 나왔다.

작은 아이로 인해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나왔지만 딸아이가 잠을 포기하고 올만큼의 맛이었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먹느라 메뉴판을 찍지 못했다. 나오고 나서야 간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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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이든 2018. 10. 27. 15:57

사람냄새 나는 곳에 머물고 싶다.

너무 흔한 풍경이라 몰랐던 것이 요즘은 이 모습이 얼마나 힐링이 되는 줄 모른다.

도시생활 속에서 너무 찌들어 버린 삶이라 그런가  저기 한 그루의 나무에게도

하천에 흐르는 물소리에도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돈이 되는 곳에는 정서가 없다.

돈이 되는 것에는 의리가 없다.

밥 짓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밥이 타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고기 굽는 냄새가 나지 않고

김에 참기름 바르고, 소금 뿌려 굽는 그 잘잘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돈이 있는 곳엔 줄만 길게 늘어져

자극적인 냄새로 자극적인 가격으로 사람들을 유인한다.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꼬인다.

이 소리가 그리웠다.

이 냄새가 그리웠다.

신발 벗어두고 바지단 돌돌 말아 올려 첨벙 첨벙 담그던 그 장난꾸러기 시절이 그리웠다.

맑은 물줄기 사이로 유유히 빠져 나가던 물고기를

쫓아다니던 그 시간이 그리웠다.

잘도 도망다니던 그 작은 물고기로 인해 얼마나 약 올라 했던가.

잡은 물고기 가지고 얼마나 괴롭혔던가.

움직이지 않는 물고기가 죽은 줄 알고 미안해하며 톡톡 건들면

움직이는 것에 죽은척 했다고 또 얼마나 쪼물닥쪼물닥 괴롭혔던가.

재미없어 물가에 다시 놓아주면

잽싸게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내 착함에 감사하라 하지 않았던가.

빨간 고추 몇 개 따 오라는 엄마 말에

짜증나서 파란 고추 마구 따서 얼마나 혼났던가.

'청개구리같은 녀석'이라고 말이다.

이제 보니 저 빨간 고추가 저리 탐스럽고 아름다웠던 것일까.

고추 대롱대롱 열려있는 고추밭 보며 행복해 하던 엄마의 미소가 안개처럼 번진다.

그래 이런 마음이셨구나.

어릴 적 저 노란 꽃심 잘라 소꿉장난한다고

노란계란자로 둔갑시키고

돌로 만든 상에 조개껍데기로 접시 만들어

코질질이 서방앞에 갖다 주고

"여보, 식사하세요" 했던 그 넘이 이렇게 피어있다.

 

미세먼지 가득한 도시에서

창문 틈 사이사이 테이프 다 발라가며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겠다' 무장하고 산 지 좀 됐다.

아침 일어나 보이는 저 광경은 수묵화가 따로 없었다.

왜 이런 풍경을 우린 잊고 살아갈까,

어릴 적 '저기에는 산신령이 살고 있다'는 엄마 말을 찰떡같이 믿고 살았다.

왜냐하면 정말 살고 있을 것 같은 풍경이 아니던가.

돈이 있는 곳에는 감정의 풍요가 없다.

삶의 풍요가 없다. 인간미가 없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오로지 이웃의 방해를 원치 않는다.

자신의 영역만을 지키려는 개인적인 사심만 가득하다. 

여기는 모두가 한공간이다. 한 집이다. 한 이웃이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빌딩사이로 사람이 모인다. 아바타들이다.

다들 캐릭터가 우리의 표정을 대신하고 있다.

점점 감정표현에 무뎌지고 있다.

나중에 소리내는 법을 잃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posted by 해이든 2018. 10. 27. 15:50

끝 없는  감정들에 치여서 숨을 곳이 필요했다.

지칠때면 나를 숨겨 놓을 곳이 필요했다.

집착같은 감정들이 나를 묶어 두려하고, 한번도 여유란 옷을 걸쳐보지 못했다.

현실의 옷을 벗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들 그러겠지. 유난 떨지 말자' 했다.

홀로 서보니 알겠다. 내가 죽어라 살아온 곳을 멀리서 들여다 보니 알겠다.

'다들 그러겠지'가 아니었다. 유난 떤게 아니었다. 미련 그 자체였다.

삶은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 아니라, 마주해야 하는 것임을

들여다 봐야 했다. 한번쯤 들여다 봤어야 했다.

검고 어두운 것이라, 그저 아무렇지 않게 지나 버리지 말아야 했던 것을

세상의 아무리 높아도 내 마음의 담보다는 낮았다. 자신의 담은 어디까지 쌓아놓은 줄도 모른채,

'그저 그런 세상이겠거니, 나와 상관없는 높은 세상이겠거니' 무심했었다.

이제 작별인사를 해야 할 듯 하다. 나의 무지한 청춘에게, 나의 어리석은 구속에게

자유로워지리라.  마음의 담을 허물어 버리리라. 그리고 여유와 마주하리라.

posted by 해이든 2018. 10. 20. 13:37

택배기사의 폭행이 누군가의 sns를 타고 이슈화가 되고 있었다.
30살인 이 택배기사는 초등학교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적장애인 어머니와 1살 위인 형을 돌보는 가장이었다.
폭행을 가한 당사자는 맞은 사람은 친형이고, 자신은 친동생이라고  해명에 나섰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지적장애, 형은 환각. 환청 장애란다. 형이 휴지를 모아 불을 지피는 위험한 행동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형을 집에 놔두고 나올 수 없어 택배일을 하는 동생이 형을 데리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화를 참지 못하고 형에게 폭행을 가했다고 했다.
형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자신보다 형임에도 데리고 다닐 수 밖에 없는, 그의 고된 삶이 그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으리라는 건  안보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친형을 폭행한 것에 대한 시민들의 공분은 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의 삶의 무게가 너무 안쓰러워 안타까워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어찌 이 한사람의 어깨에 다 올려놓을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매번 사회제도와 연결지지 않고는 인간다운 삶을보장할 수 없다.
장애인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사는 이들이 스스로의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채,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야 한다는 것은 '살기위한', '살아내기 위한' 이 아닌 견디어 내지 않으면 다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벼랑끝에 매달린 버팀 그 자체이다. 어쩜 버티고 있는 손을 놔버리는 게 더 편안한 일일 수도 있을 만큼 그들은 사회속에서 철저히 외면된 죽음보다 더한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안은 칙칙하고 썩은 내장같은 냄새로 얼룩져있을 것이다. 피가 나야 오히려 빨리 낫는 법이다. 안으로 곪는 것이 더 위험한 일임을 인지할 것이다. 그러나 피흘리는 삶보다 눈물 흘리는 삶보다 소리내는 힘마저 잃어버린 그들의 삶에 우리는 너무 둔해있다. 왜? 내일이 아니니까.
비난이나 위로할 입만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장애인 가족의 답답한 현실앞에 안타깝고 무거운 절망이 내려앉는다.

 

폭행이 정당화 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사람이 장애인을 둔 가족은 백조처럼 얼굴을 물 밖에 두고 그 밑에서는 수없이 발버둥치고 있다. 종이한장만 어깨에 내려앉으면 그 무게에 내려앉고 마는 삶을 겨우 버티고 있을뿐이라는 말에 겪고 보지 않고는 그들에게 우리는 마냥 인륜이 어떻고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같은 입장의 장애인을 둔 가족들은 하나같이 택배기사 동생의 어깨에 얹힌 무게의 고통에  같이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사회제도는 장애인에게도 제대로 촛점이 맞추어져 있지않다. 하물며 그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에게는 한톨의 동전만큼의 약도 없다. 나눠가져야 할 몫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같이 죽는 걸 택하고 싶을 만큼 삶이 곪고 피폐해져 있다.
장애인을 둔 엄마의 소원이 장애인인 자식보다 하루 더 사는 거라는 말을 들었을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에 울 수도 없었다.

30살, 자신을 위해 꿈꾸고 사랑하며 살아야 그가, 지적장애인 엄마와 환청장애인 형을 다 감당하고 살아가는 건 더 어려운 일이리라.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은 숙명처럼 내 운명처럼 가슴으로 끌어안을 수 있지만, 자식이 부모를, 그리고 형을 안고 가장으로 사는 건 더 감당키 어려운 일인 것은 분명하다. 왜 이렇게 사회가 아프고 아픈 걸까?

 

 

posted by 해이든 2018. 10. 20. 09:22

이제는 슬프지 않아.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사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절감해서 그런 거 같아. 까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말한 삶의 의미 같다고 할까?

20살에 죽든 80살에 죽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물론 네가 살지 못한 여분의 삶이 아프긴 해. 누구나 새벽이 밝아오기를 바라고 스며드는 햇살이 따뜻하게 다가오기를 바라겠지만 내일에 대한 불투명한 희망때문에 오늘의 슬픔을 다 감당하라고 강요할 수만은 없겠지.  오늘의 고통때문에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다고 해서 꼭 모든 걸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인생이잖아.

목련이 피면 항상 네 생각이 났어. 미움으로 얼룩져 갈갈이 찢어버린 편지를 창문밖으로 뿌렸던 그 날,  뿌려졌던 종이가루가 공중에서 벚꽃처럼 날리는 모습을 보며 내가  널 얼마나 미워했는지 몰라. 난 지금도 그때 가진 감정까지 고스란히 놓지 못하고 살았어. 그래서 너의 죽음이후 난 너를 더 많이 미워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미웠던 것 같다. 너는 내게 그저 따뜻한 동생의 손길을 원했을 뿐인데, 너와 같은 아픔을 가졌다 생각해서 너와 같은 선택을 하게 했던 것인데 그게 널 미워하게 만든 동기가 되어버렸고 난 그것으로 널 마음껏 미워해버렸지. 그게 아마 네가 상상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흉터처럼 남아버렸어.

우리같은 자매가 세상 천지에 또 있을까?  너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더라. 너와 마주앉아 서로 주고받은 말이 너무 없더라. 그래서 보낸 너의 마지막 편지가 너로서는 내게 보낸 애정이었는데 나는 그걸 잔인한 서사시로 묶어버렸던 거지. 서로를 너무 몰라서, 서로의 방향이 너무 달라서 우린 그렇게 어긋나기만 했나보다.

이제 와 누굴 탓할까, 다 부질 없는 것을.

너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하고 엄마도 불쌍했을 뿐.....우리 모두 가엾은 인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