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8. 10. 20. 09:22

이제는 슬프지 않아.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사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절감해서 그런 거 같아. 까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말한 삶의 의미 같다고 할까?

20살에 죽든 80살에 죽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물론 네가 살지 못한 여분의 삶이 아프긴 해. 누구나 새벽이 밝아오기를 바라고 스며드는 햇살이 따뜻하게 다가오기를 바라겠지만 내일에 대한 불투명한 희망때문에 오늘의 슬픔을 다 감당하라고 강요할 수만은 없겠지.  오늘의 고통때문에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다고 해서 꼭 모든 걸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인생이잖아.

목련이 피면 항상 네 생각이 났어. 미움으로 얼룩져 갈갈이 찢어버린 편지를 창문밖으로 뿌렸던 그 날,  뿌려졌던 종이가루가 공중에서 벚꽃처럼 날리는 모습을 보며 내가  널 얼마나 미워했는지 몰라. 난 지금도 그때 가진 감정까지 고스란히 놓지 못하고 살았어. 그래서 너의 죽음이후 난 너를 더 많이 미워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미웠던 것 같다. 너는 내게 그저 따뜻한 동생의 손길을 원했을 뿐인데, 너와 같은 아픔을 가졌다 생각해서 너와 같은 선택을 하게 했던 것인데 그게 널 미워하게 만든 동기가 되어버렸고 난 그것으로 널 마음껏 미워해버렸지. 그게 아마 네가 상상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흉터처럼 남아버렸어.

우리같은 자매가 세상 천지에 또 있을까?  너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더라. 너와 마주앉아 서로 주고받은 말이 너무 없더라. 그래서 보낸 너의 마지막 편지가 너로서는 내게 보낸 애정이었는데 나는 그걸 잔인한 서사시로 묶어버렸던 거지. 서로를 너무 몰라서, 서로의 방향이 너무 달라서 우린 그렇게 어긋나기만 했나보다.

이제 와 누굴 탓할까, 다 부질 없는 것을.

너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하고 엄마도 불쌍했을 뿐.....우리 모두 가엾은 인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