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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08 블랙 스완 1인2역 '백조의 호수'
posted by 해이든 2019. 3. 8. 16:24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인간은 완벽한 조형물이 아니다.

완벽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파괴하는 발레리나를 통해 이 영화는 자신을 통제하지 말고 흘러가게 두라고 말을 한다.

주인공인 니나(나탈리 포트만)는 뉴욕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이다. 그녀는 순수하고 연약한 백조 로는 완벽할 만큼 최고이다.

발레단의 감독 토마스는 '백조의 호수'공연을 앞두고 기존의 베스를 제끼고 니나를 주연으로 발탁한다.

이번 새롭게 각색된 '백조의 호수'는 1인 2역으로 백조와 흑조의 연기를 펼쳐야 한다. 그러기에 니나는 완벽한 백조 연기와는 달리 도발적인 흑조 연기는 부족함이 많았다. 토마스 단장은 말한다.

"너는 아름답고 순수한데 하얀 백조 밖에 생각이 안나,하얀 백조는 완벽해. 하지만 검은 백조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완벽해지고 싶은 니나는 점점 압박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릴리(밀라 쿠니스)로 인해 점점 자신의 역할을 빼앗길 것 같은 초조함으로 힘들어한다.

릴리는 자신처럼 테크닉은 부족하지만 흑조에 어울리는 존재로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관능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니나는 등에 붉은 상처가 생기고, 그것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부담감에 자면서 긁는 것이다.

토마스는 니나에게 말한다 "넌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만 하지. 너 자신을 내맡기지 않아. 놓을 줄도 알아야 해"

그녀에게 성적 발언을 하고 키스를 하고, 자위를 해보라고 숙제도 낸다. 아마도 토마스는 그녀 안에 들어있는 금지된 욕망을 끄집어 내려는 듯 싶다. 흑조는 백조의 순결이나 순수함과는 다른 쾌락, 욕망, 탐닉 등을 표현해 내야 하는 연기다. 그러기엔 니나는 성적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는 어린애와 같았다.

 

 

이 영화에서 백조와 흑조라는 서로 다른 두 백조를 한 사람이 연기를 해야 한다.

니나 곁에는 조력자이며 통제자, 또는 매개체 역할을 해주는 두 사람이 있다.

백조이기만을 바라는 엄마와 흑조를 만들어 주려는 토마스가 있다.

니나의 어머니는 28살에 임신을 하고, 니나를 낳는 바람에 발레를 포기하고, 자신의 딸 니나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는 존재이다. 자신의 통제와 억압 속에 니나를 순수하고 완벽한 백조로 만들기 위해 희생하고 지지하며 때 묻지 않는 순결함의 결정체로 만드는데 공을 들인 사람이다.

반면 토마스는 그런 엄마와는 달리 쾌락과 욕망, 탐욕 등 그녀의 내면 안에 엄마로 인해 깨어 나오지 못하는 어두운 면을 자극하며 밖으로 표출되게 하려고 한다.

"네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너야. 이제 보내야 할 때야. 너를 편안하게 해줘 봐."

백조인 니나는 점점 흑조 같은 릴리를 경계하면서도 그녀를 꿈꾼다.

자신을 통제하려는 엄마를 막기 위해 방문을 잠그고, 소녀같이 꾸며진 방의 인형들을 집어던지고, 릴리와 술을 마시고, 그녀가 주는 약을 먹고, 그녀와 관계를 가지는 점점 깊은 환각에 빠진다.

공연이 시작되고 니나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릴리를 찔러 살해한다. 그리고 그녀는 어머니와 관객 모두를 감동시켰다.

 

 

공연을 마친 그녀는 쓰러진다. 그녀가 릴리를 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릴리가 아닌 자신을 찌른 것이었다.

그녀가 만든 자신의 내면의 흑조였고, 그토록 완벽해지고 싶다는 강박관념이 그녀를 옭아맸던 것이다.

그녀의 등에 난 상처는 완벽한 흑조로 무대에 서고 싶었던 처절한 몸부림의 흔적이었다. 

그녀는 "난 완벽했어요."라고 말한다.

완벽해지려는 불안감이 환상과 환각으로 백조의 호수를 피로 물들이게 했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릴리를 죽이고 백조로 완벽해지려고 날아오른 니나는 결국 자신의 꿈꾸던 무대에서 피흘리며 쓰러졌다.

니나는 현실과 환상 속에서 혼돈하며 보이는 자신과 보이지 않는 자신을 치열하게 비교하고 대립시키며 고통스러워했다.

"너가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네 자신뿐이다."

니나가 두려워할 사람은 릴리가 아니었다.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싸워야 했다. 그 부담감이 너무 커 통제하지 못하고 자신을 파괴하고 만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갈라져 있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통스럽게 자신을 학대하지 않아도 된다. 이 길이 아니면 또 다른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블랙 스완>은 각각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영화 같다. 물론 반전이 있는 영화이고, 스릴러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데 스릴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