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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이든 2019. 3. 4. 17:19

 장고 : 분노의 추적자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

(스포 주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이미 폭스, 크리스토프 왈츠,사무엘 L 잭슨, 이 네 명의 연기한 캐릭터는 환상적이었다. 정말 연기 끝내주게 잘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흑인 집사 스티븐(사무엘 잭슨)은 분노 유발자로, 장고(제이미 폭스)는 로맨스 유발자로, 농장주였던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대농장주로 머리가 텅텅 빈 주제에 잘난 척 하는 자로,  정의의 사도 닥터 킹 슐츠(크리스토프 왈츠)은 현상금수배자 사냥꾼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빛을 발한 존재이다.유일하게 착한 백인이다. 유일하게 인간다운 백인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을 제작한 감독이다. 그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번 영화를 보고 나서 역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답다'라고 말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서부액션영화를 많이 봤었다. 서부의 무법자들, 감독은 이 서부액션영화에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을 가미시킨다. 나치의 만행에  유대인들이 복수하듯 여기에서는 노예였던 장고가 백인 농장주들을 향해 제대로 갚아준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흑인들의 삶은 처참했다. 계란을 깼다고 나무에 묶어놓고 채찍질을 하고, 서로 싸우다 누구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경기를 하게 하고,도망가다 잡힌 노예를 개한테 물어 뜯겨 죽게 만든다. 농장주들에게 흑인노예는 그저 말하는 가축에 불과했다. 어쩜 그보다 더 했다고 본다.

감독은 여기서도 피부색으로 차별이 만들어 낸 그 밑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흑인들이 당하는 고통의 밑바닥, 흑인노예들을 다루는 백인들의 사악한 그 밑바닥을 드러내 신랄하게 까고 비판하고 있다. 

 

닥터 킹 슐츠와 장고

노예였던 장고는 흑인여성 브룸 힐다와 결혼하고 도망가려다 주인에게 잡혀 아내인 브룸 힐다에게는 가혹한 채찍질을 하고 다른 곳으로 팔아버리고 장고마저 헐값에 따로따로 팔아버리게 한다. 노예로 팔려가던 중 우연히 현상금 사냥꾼 닥터 킹 슐츠에게 장고는 구해지게 된다.

노예제도를 혐오하는 슐츠는 독일인으로 전직 치과의사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현상금수배자 사냥꾼이다. 닥터 킹 슐츠는 장고에게 말에 타게 하고 식당에 들어가 맥주도 함께 한다. 백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란 눈으로 그들을 경계한다.

흑인이 말을 타는 건 있을 수 없는 시대이고 식당에 들어와서도 안되는 세상이었다. 슐츠는 장고를 자유인으로 만들어주고, 자신과 함께 현상금 사냥꾼을 같이 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녀의 아내를 구하러 같이 가 준다고 한다. 흑인으로 위험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겨울을 수배자 사냥꾼으로 동행하는 동안 장고는 타고난 솜씨로 뛰어난 총잡이로 성장한다. 그리고 아내 브룸힐다가 팔려간 곳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무자비하기로 악명 높은 농장주 캔디의 노예로 팔려간 것이다. 그는 흑인들을 마치 투견처럼 흑인 노예 둘 중에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하는 경기를 위해 흑인 노예들을 사고파는 사업을 하는 위인이었다.

장고와 닥터 킹 슐츠는 캔디로부터 브룸 힐다를 빼오기 위해서 마치 사업을 제안하는 노예상으로 위장해야 했다.

힘쓰는 남자 흑인 노예를 사는 척하면서 덤으로 브룸 힐다를 사려는 것이었다. 멍청한 캔디가 점점 넘어왔고, 이제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캔디 옆에 있는 늙은 흑인 집사 스티븐(사무엘 L. 잭슨)이 장고와 브룸 힐다가 아는 사이란 걸 눈치채게 된다. 아주 눈치가 빠르고 뱀 같은 위인이다.

그는 캔디에게 사기당하고 있다고 고자질하는 바람에 일이 다 들통난다.

 

장고와 캔디
전세가 역전되어 캔디는 닥터킹을 협박해서 브룸힐다를 12,000달러에 계약을 하게 한다. 닥터 킹 슐츠는 돈을 넘겨주고 캔디는 의기양양 승리감에 도취되어 계약서를 작성해서 그에게 넘긴다. 

 

닥터킹은 눈앞에서 도망가던 노예를 잡아다 개에게 밥으로 던져  물어뜯기는 장면을 목격했고, 지금 그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이 정도면 노예가 가축보다 낫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서재에서 뒤마가 쓴 <삼총사>를 보고 캔디에게 말한다. 그가 개에게 던져 준 노예 이름도 달타냥이었다.
"뒤마가 이 사실을 알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거야."이라고 말하자 캔디는 그를 감상적인 프랑스인이라고 조롱한다.

그러나 그가 좋아 읽고 있는 삼총사의 저자가 "뒤마는 흑인이야"라고 한 방 날린다. 그때 멍청한 캔디의 표정을 감상하는 재미를 느껴보길... 가관이었다. 캔디는 그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깝다고 슐츠가 시무룩한 줄 알고 우쭐했지만 닥터 킹 슐츠는 노예들이 당하는 처참한 현실에 침울했던 것이다.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장고와 나가려고 하는데 뜬끔없이 악수를 하자고 한다. 슐츠는 볼일 없다는 듯 거절하자  악수를 하지 않으면 브룸힐다를 집안에서 한발짝도 내보내지 말라는 캔디의 협박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슐츠는 그에게 다가가 가슴을 총으로  쏘아버린다. 그리고 그의 부하에 의해 슐츠 또한 맥없이 죽고 만다. 그를 이렇게 맥없이 보내버리다니...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와 악수하는 것은 노예를 개에게 던져주는 그런 인간과 악수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게 낫다는 그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죽으면 죽었지 저런 악랄한 놈하고 악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에게 총을 발사한 것이라 본다.

 

스티븐과 브룸힐다
장고는 그녀를 데리고 도망가려고 했지만 스티븐이 그녀의 목숨을 담보로 그를 항복하라고 한다. 결국 체포되어 창고에 거꾸로 매달린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악랄하고 제일 잔인한 자는 스티븐이라고 생각한다. 
흑인이면서 백인보다 더 흑인에게 악랄하게 했던 자. 자신도 껌둥이면서 "껌둥이를 안으로 들인다고요."라고 말하던 자, 
껌둥이를 가장 잔인하게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을 아주 곰곰히 생각하는 자, 겉만 껌둥이이죠. 사악하고 악마같은 노인네로 그는 농장과 저택을 총괄하고 백인 감독관들마저 옴싹달싹 못하게 하는 백인위에 군림하던 자로 장고를 처참한 죽음을 맞게 하려고 광산노예로 팔게 된다.
정말 악랄한 것은 캔디인줄 알았는데 피부색이 같은 흑인 집사 스티븐이었다. 
흑인에게 더 못되고 악랄하게 캔디를 뒤에서 조종하여 권력을 행사한 자이다.
닥터 킹 슐츠와 다니더니 장고가 많이 배웠다. 
뛰어난 언변과 술책으로 팔려가던 중 탈출하여 다시 돌아와 그 무늬만 깜둥이인 스티븐에게 통쾌하게 복수하고 통째로 그곳을 날려버리고 브룸힐다를 구해낸다. 

 

감독은 서부영화에 나올법한 복수극과 총잡이의 액션을 보여주는 것에 그쳤다면 이 영화는 이리 흥행을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를 가미하여 노예였던 장고가 흑인노예와 결혼할 수 없음에도 몰래 결혼하여 도망가려다 잡히는 장면으로 흑인노예들의 로맨스를 눈물나게 그려냈다는 것과 악랄한 농장주와 그들이 노에들에게 행하는 잔인하고 처참한 모습을 영화에 담아내 우리를 힘들게 끌고 갔다는 것과 그 악랄한 노예상들과 백인 농장주들을 통쾌하게 죽이고 복수하는 장면으로 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그리고 마지막 저런 백인과는 다르게 닥터 킹 슐츠같은 좋은 백인이 노예제도에 반감을 느끼며 흑인인 그를 도와주는 것으로 약간의 위로를 주기도 한다. 
백인이면서 흑인 노예들을 돕는 진정 강한 자 슐츠를 통해 감독이 그동안 보여주던 가치관을 담아낸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백인보다 더 악랄하게 흑인을 괴롭히는 스티븐을 보고 분개했다. 첨에 그가 브룸힐다에게 장고랑 아는 사이 냐고 물었을때 난 그가 흑인의 브룸힐다를 도와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이 아는 사이라고 캔디에게 고자질해서 일을 다 틀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체포된 장고를 어떻게 하면 더 고통스럽게 죽일지를 고심한 끝에 탄광캐는 곳에 가서 평생 돌만 캐다 고통스럽게 죽게 그를 광산으로 팔아버리는 것을 보고 머리에서 불나는 줄 알았다. 
 
이 영화로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을 가미시켜 스토리를 감동있게 담아 단지 복수극이나 총잡이가 등장하는 단순한 서부극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 한 번 그의 작품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이번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네명의 캐릭터는 작품 이상의 에너지를 연출해 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