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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이든 2019. 3. 5. 15:45
피아니스트

감독 미카엘 하네케
영화 피아니스트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드는 이 불쾌함은 뭐지?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드는 안쓰러움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세심히 생각했다. 에리카(이자벨 위페르)가 내 놓은 대사와 표정과 행동을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세상을 억압하는 엄마에게 생각이 머물렀을 때 참 싫었다. 
엄마가 그녀에게 가혹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엄마로 인해 그녀의 세상이 닫혀있는 것이다. 
음악교수가 자신을 좋아하는 학생에게 쏟아내는 말과 행동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40살이 넘었음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일일히 구속하고 간섭한다.
수업시간 마치고 3시간을 어디서 무얼 했느냐? 라며 그녀의 방문을 막아서며 말할 때까지 못 들어간다고 밀쳐내는 장면이며, 그녀의 가방을 강제로 뺏어 소지품을 뒤지고, 원피스를 사 온 그녀를 나무라고, 사 온 원피스 스타일을 트집잡으며 그녀를 몰아 세운다. 그걸 가져가려는 손길을 움켜 쥐고 실랑이하다 원피스는 찢어지고 딸은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으며 분노를 드러낸다.
결국 첫 장면으로 그녀의 문제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설명하려고 운을 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리카는 유명 음악학교의 피아노 교수이다. 표정이 없는 그녀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눈동자로 그녀의 심리를 표면화한다.
눈치를 보는 듯한 눈과 고여드는 눈물, 촛점을 잃거나 냉정함을 가지는 눈이다. 
그녀는 표정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못하는 것이다. 아니 표현을 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마치 아이가 말을 못 배워 자신의 의사전달을 못하는 것처럼 그녀도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는 지를 모르는 것이고, 제대로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그게 말이 돼?라고 묻겠지만 그런 환경에서 그런 틀 안에서 억압되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라면 다르지 않겠는가?

욕망은 자신의 몸을 뚫고 나오는데 그걸 어떻게 해소하는지 모르는 그녀는 남자들만 가는 비디오방에 가서 포르노를 보고,  휴지통에 있는 뭇 남자의 정액이 묻은 휴지를 코에 갖다대고 숨을 들이쉬며 눈을 감는 행위를 하고, 자동차 극장에 가 카섹스를 하는 연인들을 훔쳐보며 차 옆에 앉아 소변을 보는 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모습은 지성적인 그녀의 행동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히 충격적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눈에 안 보이는 순간까지 그녀의 스케줄과 동선을 확인하며  마치 어린 애를 대하듯 간섭하며 그녀의 삶을 빈틈없이 구속한다.
숨막히는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녀가 유일하게 엄마의 억압으로 벗어나는 시간은 피아노 수업시간이다. 
그런데 그녀는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모욕적이고 거침없는 말들로 상처를 준다. 마치 엄마에게 억압당한 숨막힘을 학생들에게 풀려고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피아니시트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완벽해야 된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딸을 예술을 시키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그녀에게 희생하며 그녀를 이 자리에 우뚝서게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건 자신이 희생이 만든 것으로 자신이 딸이 자신의  자존감이고, 자신의 인생이고, 자신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릴때부터 정신병원에 들어가고,혼자 된 어머니 밑에서 그녀가 어떻게 지금의 피아니스트로 만들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의 어머니가 부모들이 그 아이를 위해 희생하며 피아노를 치게 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녀는 희생은 학생이 하는 거라고 반박한다.  그건 곧 자신이 피아니스트가 된 것은 어머니가 희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희생으로 만들어진 예술이고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라 반박한 것이다.
음악교수인 에리카
영화 피아니스트
간혹 예술을 하는 사람들 곁에는 어머니가 항시 붙어 코치가 되어, 세상의 눈이 되어 그들을 가혹하게 만들어간다.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 행동을 다 차단하며 오직 꿈을 위해 자고 먹는 순간 빼고 연습 연습 연습하라고 강행군 교관처럼 하는 어머니를 보게 된다.
내가 너 하나 피아니스트 만들겠다고 내시간을 너에게 쏟아붓고 있잖아. 내가 널 위해 희생하잖아 하면서 말이다. 
넌 내꺼야 내가 만든 것이고,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야 돼. 내가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니 날 책임져야 돼 하는 그녀의 어머니같다. 
 
40이 넘도록 혼자의 의지로 남자를 사랑하는 법도 모르고, 자신이 원하는 옷 하나 떳떳하게 사들고 오지 못하고, 엄마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그녀의 딸이 아닌 그녀의 남자로 그녀가 채우지 못한 대리 인생을 살아주고, 그 집의 가장으로 돈을 벌어오고,누굴 만나는지 어디 가는지 일일히 알려야 하는 숨막히는 삶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자식은 부모의 장난감도, 자신의 결핍을 자식으로 채우는 대타도 아닌 것이다.
사랑한다면 그녀를 위한 희생을 가장한 자기만족이나 자기 충족이 아닌 정작 딸이 원하는 삶을 고려해주었어야 한다.
 
가정집에서 예술가들의 작은 연주회에서 에리카의 피아노치는 모습에 반한 젊은 공대생 월터(브느와 마지멜)가 그녀에게 다가온다. 그녀는 항상 그랬듯이 냉정하고 차갑게 무표정으로 닫고 있지만 월터가 피아노를 칠때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입술이 엷게 미소짓는 모습이 나왔다.
 
월터는 공대 학업을 포기하고 에리카의 수업을 듣기위해 지원오디션을 보러오게 된다. 
우아하고 지적인 그녀가 맘에 든 월터는 피아노수업보다는 그녀를 사랑해서 곁에 있고 싶은 것이었다.
너무나 훌륭한 연주에 다른 교수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는데, 에리카는 월터가 너무 기교적이라고 거부의사를 내 놓는다.
그녀의 진심이 아니다. 월터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그녀의 눈은 촉촉히 젖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월터는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연주회 리허설이 있는 날, 피아노 연주하는 여학생이 초조해하자 월터는 그녀의 옆에 가 앉으며 다정하게 그녀를 달래주고 위로를 건넨다. 
그 모습을 본 에리카는 강한 질투로 교수로서의 이성적인 판단을 잃는다. 그리고 그 여학생의 코트주머니의 깨진 유리조각을 담아두게 된다. 
 
리허설이 끝나고 여학생이 손에 피를 흘리자 그녀는 피를 보는 게 두렵다고 월터에게 가보라고 하고 화장실로 급히 뛰어간다.
그 모습에 월터는 확신한다. 에리카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녀가 뛰어 들어간 화장실로 들어가 그녀에게 키스하고 안으려고 하는데 에리카는 그를 밀어내고 그의 지퍼를 내리고 월터의 성기를 손과 입으로 해준다. 자신의 몸에 손대지 못하게 하면서 말이다. 
월터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미 그녀의 손과 입으로 달아오른 욕정을 멈추지 못하는데 그녀가 사정도 하기 전에 멈추어 버린다.
그러자 자신이 스스로 사정하려고 하는 것도 못하게 멈추라고 한다. 이 무슨 ...
그리고 "사랑한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고 말한다.

 

사랑에서 주도권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한다면 서로가 원하는 섹스를 하고, 키스를 하고, 애무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에리카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자신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편지로 적어준다고 한다. 
뭔지 불쾌하고 남자로서 상처도 받고 모욕도 당했지만 그녀를 사랑하니깐 따라가보려고 한다.
여교수로서 학생하고 그러는게 양심이나 사람들의 시선때문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편지를 자신에게 주는 에리카를 따라 그녀의 방까지 간다. 그녀의 어머니는 호시탐탐 그녀의 방에 들어오려는 시도를 하고, 에리카는 서랍장으로 방문을 막아버린다. 그리고 그에게 편지부터 읽어 보라고 한다.
편지의 내용은 정말 입에 담을 수 없는 가학적인 내용으로 가득찼다. 포르노로 성을 배운 그대로를 그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때려주고 학대해 달라는 내용에 월터는 그녀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도 모잘라 그녀는 침대밑에서 밧줄과 쇳줄을 꺼내는 모습에 월터는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역겨워져 나가 버리고 만다.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그녀의 성적 취향은 그리고 때려달라고 하는 것은 엄마로부터 지시받고 강요당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비툴어진 표현이었다.
그가 떠난 후 그를 사랑하고 있고, 잃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를 찾아간다. 월터는 좀 변해 있었다. 에리카는 그가 원하는 방식의 관계를 하자고 그의 물건을 입에 넣고는 그만 구토를 하고 만다.
 
이들은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그녀에게 실망한 월터는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남자로서 당한 모욕감으로 치밀어오른 분노를 참지못하고 밤중에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를 방에 가두어 버리고 그녀에게 폭행을 가한다. 얼굴을 때려 코피가 흐른다. 
그녀는 그토록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맞고 아픔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며 그에게 때리지 말라고 사정한다.
원하는 것 아니었냐는 말에 아무 말도 못한다.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어."
인정하면서도 막상 이게 아니라는 걸 그녀는 알았던 것이다. 자신이 포르노를 보고 익힌 성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욕적이고 상처가 된다는 것을. 
그녀를 거실바닥에 눕혀놓고 월터는 그녀와 섹스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바닥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의 섹스는 둘이 공유한 적이 없다.  처음 화장실에서는 윌터가 일방적으로 에리카에게 농락당했고, 두 번째는 월터가 원하는 대로 해보려고 했지만 그녀가 구토를 했고, 지금은 월터가 일방적이다.

사랑이 잘못된 욕망으로 서로에게 상처와 모욕을 남기고 서로에게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준 것이다.

 
다친 학생으로 인해 대신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된 에리카는 어머니와 연주회에 참석한다. 그녀의 시선은 입구쪽에 향해 있고, 어머니가 들어가고 나서도 구석에서 입구쪽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월터를 기다린다.
방법이 비뚤어지고 어긋났지만 월터를 사랑한 심장 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월터가 들어오는 걸 보고 가까이 다가가지만 그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마치 그저 학생중의 한명처럼 "존경하는 선생님 연주 빨리 듣고 싶어요." 하면서 계단을 뛰어 올라가 버린다.
그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원오디션 보는 월터
 
그녀는 월터의 뒷모습을 보며 가방에 준비해 온 칼로가슴을 찌르고 연주를 포기하고 그대로 연주회 건물을 빠져 나와 버린다.
어쩌면 40이 넘어 처음 찾아온 사랑에 그녀는 나름 잘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사랑을 할 줄 모르는 나이 먹은 여자였지만 아직 제대로 사랑에 대한 걸음마를 배워본 적도, 떼어본 적이 없었던 그녀가 어린 학생에게 사랑을 배웠고, 자신이 비뚤어진 성행위로 그에게 상처주고 모욕한 것에 사과하고 자신이 방법이 아닌 그들의 사랑을 습득하고 자신의 억압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월터에게는 이제 그저 자신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닌 교수로 자신을 밀어버린 것이다.
이제 엄마가 만들어진 틀을 깨버리는 것으로 연주회를 나와 버린 것이고, 사랑을 느낀 자신의 가슴에 칼을 찌른 것이 아닐까?
 
참 가엾은 인생이다. 에리카가 피아노칠 때만이 그녀가 자신을 표현하는 데 가장 아름다웠다. 
인생도 사랑도 피아노치는 모습처럼 아름다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에리카 역을 한 이자벨 위페르는 이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배우이다. 많은 작품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이고,  비뚤어진 욕망과 사랑을 가진 에리카역을  아주 당혹스럽게도 잘 표현해 주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계속 가련한 삶속에서 뻬내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쉬운 역이 아니었다. 

이 <피아니스트>란 영화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