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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10 86. 미 비포 유 : 삶을 위한 마지막 선택
posted by 해이든 2019. 3. 10. 19:42

미 비포 유


 

감독 테아 샤록

영화 미 비포 유

젊은 사업가였던 윌(샘 클라플린)은 사고를 당한 후 마음의 문을 닫았다.
임시 간병인 루이자가 그의 저택에 왔다.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옷차림, 표정에 다 드러나는 감정들, 뇌가 순수하다 못해 어딘가 바보스러운 그녀.
 
6년동안 일하던 카페가 문을 닫자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했던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 
그녀가 새로 얻은 일자리는 전신마비 환자 윌의 임시 간병인, 
까칠한 윌을 6개월동안 간호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루이자는 윌의 시선에서 그의 고통과 삶을 마주한다.
루이자는 윌을 위한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간다. 

누굴 미워해본 적도, 싫어해 본 적도 없는 엉뚱 발랄한 루이자와  죽음에 가까운 남자 윌이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모차르트 오보에 콘체르토에 가기 위해 빨간 드레스를 꺼내 입은 루이자의 모습에 윌은 특별한 감정이 개입된다.

마치 진흙같은 어둠 속에서 빛이 걸어오는 것 같다.

밝은 그녀로 인해 잠시 행복해지는 순간들이 자신의 아픔을 밀어낸다. 

"빨간 드레스 아가씨와 데이트한 남자로 있고 싶어요" 너무나도 특별한 순간을 선사한 그녀로 인해 그는 이 특별한 시간을 기억하고 싶다.

그동안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끽했던 윌은 상상 속에서 자신이 두 다리로 열심히 뛰어다니고, 서핑을 했던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 추억이라기보다는 고통스럽다.

전신마비인 윌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자신의 삶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자신의 삶을 더 연장하는 것은 어쩌면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다.  

빨간 드레스 아가씨와 데이트한 남자
 
하지만 자신의 앞에 나타난 루이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자신의 꿈을 꾸지 못하면서도 원망 한마디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고 활기찬 그녀의 모습에 차츰 닫아버린 마음의 빗장을 연다.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미워하고, 좌절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할애되어 있지 않다. 최소한 자신을 웃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 주는 루이자의 밝음으로 지금의 순간을 느낀다.

사고 나기 전

윌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하지만 사고 후 윌의 약혼자였던 그녀는 자신의 친구와 결혼식을 올린다고 청첩장을 보낸다. 배신에 좌절하고 분노했던 윌은 이제 그녀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려고 루이자와 같이 결혼식장에 간다. 

신랑. 신부보다 더 빛났고 돋보였던 윌과 루이자였다. 
결혼식장에 초대되어 간 두 사람

윌과 루이자는 해변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진다.

서로의 인생에 찾아온 사랑으로 마음을 열고 서로로 인해 변화된 그들, 그러나 그는 안락사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지 않았다.
"난 정말 내 삶을 사랑했어요."
이렇게 사는 건 나의 삶이 아니다. 자신이 꿈꾸던 삶이 아닌 걸 억지로 이어가는 건 당신과 나를 위한 게 아니다. 난 나를 사랑한다. 누구보다 나의 삶을 멋지게 아름답게 살았고, 또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윌은 이렇게 사는 건 너무 불행하다. 행복해 지기 위해 존엄사를 선택한다고 했다.

루이자는 윌을 옆에서 간호하고 살겠다고 하지만 윌은 그저 절망감에 내린 결정이 아니다. 그녀의 삶을 그녀의 꿈을 자신이 저당잡으며 사는 건 루이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날개를 꺽인건 자신으로 충분하다. 윌은 살아온 자신의 인생과 루이자와의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가지고 행복하기 위해 이별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아무것도 작동되지 않는 육체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모 사랑하는 루이자에게 고통이 되고, 또 그 고통은 고스란히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해지고 싶은 게 인간이다. 한 시간을 살아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게 인간이다.

전신마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은 자신을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우리는 가끔 고통없이 잠자듯이 죽는 게 복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윌은 매일같이 고통스럽다.
열로 사경을 헤매고 끊어질 것 같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삶이  하루빨리 끝날 수 있기를 빌 것이다.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걸 그는 온몸으로 이야기한다.

 

춤추는 루이자와 윌
행복을 위해 마지막을 준비하고, 루이자는 그의 삶의 시작을 위해 생을 준비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 때 더 행복하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위해  날개를 펼 수 있게 도와주고 떠난다. 아버지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어 그녀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게 해준다.
행복해지기 위해 존엄사를 택한 그를 나는 이해할 수 있다.

행복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윌을 끝내 루이자도 존중하며 마지막 작별을 한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지는 그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 앞에서 그걸 그 사람의 몫으로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것은 본인이다. 
윌이 그나마 부자라서 주위사람들의 고통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경제적 바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건 윌만의 불행이 아니다. 가족 전체의 삶을 병들게 한다.
존엄사의 기준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해하나 존엄사는 그 사람의 판단과 가족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편지는 나를 뜨겁고 슬프게 했다.  마지막에 찾아온 루이자로 인해 그가 얼마나 행복해 했을지, 또 매일아침 얼마나 눈뜨고 싶었을지...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서로를 마음 아프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살면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이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서였다.

조조 모예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