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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이든 2019. 3. 25. 22:45

행복 목욕탕


감독 나카노 료타

 

잔잔하면서 강하다. 따뜻하면서 슬프다. 기대이상으로 감동적이다. 
이 영화를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호출을 받고 학교로 간 엄마는 딸아이의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딸 아즈미(스기사키 하나)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  
이유없이 당하고도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있는 아즈미의 고통 앞에서 엄마 후타바(미야자와 리에)는 그동안 딸아이가 '머리아프다, 배 아프다' 말한 것이 투정이 아닌 왕따로 인한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두려움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저 힘든 시간을 견뎠을 아즈미에게 엄마는 감정을 안으로 감추고 유니폼으로 갈아 입히고 학교를 빠져 나온다.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과 모욕으로 가슴이 멍 들었을 딸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 어떤 위로의 말도 어떤 동요도 하지 않고 자전거에 태운다.
 
아즈미는 체육시간에 교복을 잃어 버렸다.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아즈미를 향해 엄마는 학교에 가라고 떠민다. 
"엄마 나는 맞설 용기가 없어. 너무 하찮은 인간이라, 엄마는 절대 몰라 내 마음!"
"도망치면 안돼! 맞서야지. 네 힘으로 이겨내야 해."
아즈미가 용기내어 맞서주기를 바란다. 물러서지 않고 언젠가는 맞서서 그 이유없는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  자신도 없는 세상에서 강하게 스스로 이 난관을 버티고 이겨내어 세상에  나갈 수 있게 아즈미가 선택해야 한다. 
계속 이유도 없는 희생양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님 강하게 부딪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용기내어 이 말도 안되는 장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선생님과 엄마는 지켜줄 수 없다. 스스로 성장해가고 이겨내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당당해지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고, 맞서지 않으면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아즈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아즈미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맞섰다. 한번이 어렵지 막상 용기를 내고 나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찾은 교복을 입고 엄마 앞에 당당히 선다.
 
엄마 후타바는 말기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암선고를 받는다. 
남편 가즈히로(오다기리 죠)는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집나간지 1년이다. 남편을 찾아 헤매느라 목욕탕은 문 닫은지 오래 되었고, 지금은 남아있는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 
자신없는 삶을 살아 갈 딸을 위해 준비를 해야한다.
 
사립탐정을 통해 남편이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내 찾아간다.  어떤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 파칭코에 간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던 사람이다.
철없는 남편이 좋아서 찾은 것은 아닌데 사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다.
남편은 여자아이 아유코(이토 아오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고작 집나가서 산다는 것이.남편은  항상 방관자처럼 무책임했다.
"나 이제 얼마 살지 못해 그러니까 돌아와" 그렇게 네 가족이 되었다. 사라졌던 아빠와 낯선 여자꼬마 동생 아유코까지 모여 살게 된다.
남편이 집 나가는 바람에 열지 못했던 목욕탕을 열고, 가족 모두가 역할을 분담하여 목욕탕을 청소하고 카운터를 지키고 각자 제 몫을 해 나간다.

 "이제 목욕탕을 열거니까 밥 값을 해야 해. 다같이 열심히 일하는 거다."

가족의 중심에 그녀가 있다.

 
후타바의 병세는 점점 깊어지고 아즈미와 아유코를 데리고  잠시 여행을 가기로 한다. 하지만 그 여행은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다. 매년 4월 25일이면 아즈미네 집에 커다란 게 한상자가 배달되어 온다.
엄마는 아즈미에게 키다리 게를 보내 준 먼 친척에게 정성스럽게 답장을 쓰라고 했었다.

여행 중에 엄마는

어느 게식당에 들어가 키다리게를 주문하고 ,오랜 세월 감추어둔 비밀 하나를 꺼내 놓는다. 그건 아즈미가 자신이 낳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즈미 아까 만났던 그녀가 바로 네 엄마야.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너는 강해져야해. 그리고 네엄마를 받아들여야 해."
 
아즈미의 친엄마는 청각장애인이었고 키다리게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청각 장애인인 친엄마가 어떻게 수화를 할 줄 아냐는 질문에 아즈미는 수화로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언젠간 반드시 필요한 날이 올 테니 배워두라고 했어요."

이유도 모른 채 수화를 배웠던 아즈미, 언젠가 꼭 필요할 때가 이 날이었던 것이다.
청각장애자였던 엄마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가 아일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그래서 먼 친척인 것처럼 매년 키다리게를 보내온 것은 친엄마였던 것이다.
 
이러고 보니 저 남편 가즈히로가  더 형편없어 보인다. 결국 아즈미는 후타바의 친딸도 아닌데, 아즈미와 후타바를 버리고 누구의 딸인지도 모를 여자애를 키우고 있었던 것  아닌가?
무능하다 못해 무책임한 남편을 대신해 억척스럽게 산 후타바에게 연민의 정이 눈물처럼 솟는다.

최선을 다해 산 것도 죄이던가?  기다리는 건 죽음밖에 없는 그녀가 너무 안쓰러워 미치겠다.
닥쳐오는 죽음 앞에서 지금 그녀는 철없는 남편으로 인해 아즈미를 키우느라 억척스럽게 산 세월을 원망하기도 바쁠텐데,
청각장애인 엄마를 위해 딸에게 수화를 배우게 하고, 딸이 그리웠을 청각장애인 엄마에게 딸을 보여주고,아즈미에게 엄마를 만나게 해주고,무능한 남편과 그 남편이 데리고 온 아유코까지 원없이 끌어 안고 있다.

후타바는 기준 이상의 몫을 해내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다. 

후타바가 가족에게 보여준 만큼 두 아이와 남편도 그녀에게 웃음을 주려 노력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니 눈물을 참아내려 한다. 
어떤 사정이었건 아즈미와 후야코의 친모는 자신을 버렸다. 그런 자신들을 후타바는 누구보다 뜨겁게 끌어 안아준 유일한 엄마였다. 삶의 용기를 내어주고 따듯한 품을 내어주고 강한 정신력의 유전자를 주었다.

그런 후타바에게도 아픈 비밀이 있다. 후타바 역시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였다.  자신을 버린 엄마이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한번 안겨 보고 싶었다. 그래서 탐정의 도움으로 엄마를 찾았다. 하지만 엄마는 삶과 죽음을 통틀어 가혹하고 잔인했다. 자신을 거부했다. 딸이 없노라고 거부했다. 

엄마가 되어 자식에게 한 없이 주면서 자신을 낳아준 엄마도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안아주고 싶지 않을까,  그게 엄마이지 않을까 찾아나선 그녀의 발걸음이 참 아프다.

 

한 번쯤 강인한 엄마에서 물러나 한없이 안기고 싶은 연약한 자식이고픈 후타바의 바램은 너무나 아프게 무너진다. 
원망도 없이 다 내려놓고 그저 그리움 하나로 안아보고 싶었을 뿐이었을텐데, 진정한 가족이 된다는 건 꼭 내가 낳은 피붙이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에게 엄마의 부정은 자신의 죽음보다 더 슬프고 화났다. 
처음으로 그녀가 분노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가족들 속에서 웃음짓는 엄마를 향해서 말이다.
 
"조금 더 살겠다고 삶의 의미를 잃고 싶지는 않아"
엄마의 강인함과 포용력으로 이 붕괴된 가족을  행복목욕탕으로 집결시키고 그녀는 떠난다.
가족들은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 힘을 합쳐 가업인 목욕탕을 이어간다.

가족이라는 공간을 쥐어주고 간 후타바,

무능하고 철없는 남편이  지탱하게 가족의 각자 자신의 밥값을 하게 몫을 놓고 간 후타바,

청각장애인 엄마까지 자식을 못 보고 사는 슬픔을 더는 갖지 않게 그 모든 것을 해주고 그녀는 떠났다.

행복목욕탕은 후타바의 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