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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15 96.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방법
posted by 해이든 2019. 3. 15. 22:39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우린 "영화 어땠어?"라고 물어볼 때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슬픈 영화야, 재밌어. 완전 웃겨, 통쾌해..라고 감정에 호소해서 표현한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의 특유의 감성으로 대부분 슬픔이 절제되어 표현된 영화였다.

 

'아이를 통해 아버지가 성장하는 영화'다.
영화가 슬프다가 아니라 정말 진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눈물보다 가슴울림을 통해 정말 진하게 전달되어진다.
슬픈 걸 담백하게 담아도 이렇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에 아낌없이 극찬하고 싶은 영화이다.
보통 딸들이 엄마의 삶을 더 이해하듯이 아들과 아버지사이에 동질감 또한 그럴 것이다. 
뭔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다른 듯 닮아있는 것들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든다.

닮아가거나 동일선상에 세워놓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더러 본다. 

'아버지처럼은 살기 싫어'라 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 가려고 하지만 의외로 자신도 모르게 닮아간다.
아버지란 존재는 아들에게 거울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동경으로, 때로는 거부적인 반응으로 삶에 잔류한다.
 
권위적이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역시 아들에게 사회적 성공을 우선시하여 아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권위적인 아버지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받은 영향이 그대로 아들에게 답습된다.

 

자신이 6년동안 키운 아들 케이타(니노미야 케이타)가 병원에서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의 친아들이 자신보다 못한 환경에서 자라는 걸 보고 서로의 아들을 바꾸어 친아들 류세이(황 쇼겐)를 데리고 와 생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료타는 류세이에게 이 집의 규칙에 대해 설명해준다.
하지만 류세이는 6년동안 료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았다. 집안에서 규칙이라니 '왜?'라고 묻는다. 
당황한 료타는 "그냥 그런거야." 대답한다. 왜? 라는 질문에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케이타와는 달리 순종적이지 않은 것이다.
자신조차 왜? 라는 대답에 답해주지 못한 료타는 처음으로 자신을 돌아봤을 것이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케이타가 자신의 방식에  통제 당하느라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밖으로 내놓지 못해 자신이 만든 환경에서 순종적일수 밖에 없었다면 말이다. 
정반대의 아버지인 유다이(릴리 프랭키)가 료타에게 아들과도 시간을 좀 보내라고 이야기하자 료타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유다이가 아버지라는 것도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너무 책임감에 갇혀 희생한다는 생각만으로 부모가 되지는 않는다.
가족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 가족은 정작 소외되고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은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정체되어 있다. 
정작 아이들이 커가는 삶 속에 같이 존재하지 않고 삶의 가치만 주입시키고 강요하고  통제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아들의 시간은 자신없는 인생이 만들어지고, 자신없는 일상이 진행되어 흘러간다.
가족에게 이방인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놓는다고 가족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바뀌고 자신의 친아들과 시간을 가지면서 그들의 관계속에도 시간이나 대화가 부여되지 않으면,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유대감없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료타는 아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처음으로 아버지로서 노력이라는 것을 해 보았을 것이다.
 
알아주기만을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태도이다.
자신의 성장기에 겪은 것을 그대로 아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중심가의 최고급 아파트에 살며 아름다운 아내와 순탄한 삶을 살고 있고, 아들과의 시간을 매일 뒤로 미루는 아버지로  자리했던 자신이었다.

 

료타는 자신의 어린시절 모습과 비교하여 케이타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실수로 뒤바뀐 아이였다는 것을 알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친아들인 유세이와 생활하면서 아들과 친해지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아버지란 존재로서 말이다.

자식이 바뀐  또다른 유다이 가족은 너무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다. 
전파상을 하고 있는 유다이는 료타보다 풍족한 환경은 아니지만 삶이 여유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중요시하는 순박한 아버지였다. 
서로의 다른 환경에서 키워진 아들을 바꾸어 키워가는 과정에서 료타는 진정한 아버지로 성장하게 만든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얼마나 강요하고, 부족했는지를 류세이와 유다이를 통해 가족이란 굴레와 가족의 진정함을 깨달아가게 된다.
 
 
6년간 부족함에서 키워낸 케이타에게 미안함을 느낀 료타는 아이를 찾아가지만 케이타는 료타를 보자마자 도망가 버린다. 
이런 케이타를 따라가면서 아들에게 미안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우린 정말 아버지가 된 료타를 안아주게 된다.
 
부족한 아버지가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전하는 장면은 잔잔하게 진한 슬픔을 자극한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진정 가슴으로 아버지로서 존중하는 것은 다르다.

 

'아버지는 다  같은 아버지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좋은 아버지가 되는 과정은 그저 한 공간에 담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장과 그들의 감정과 그들의 시선을 같이 해주는 것이다.

 

내 시선속에 아이들이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가치속에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버지가 되는 것이 연습된 학습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와 같이 나도 아버지로서 살아가면서 성장하기 위해 익혀야 하는 것이다. 

"아빠는 아빠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케이타에게 료타는 "많이 부족하긴 했어도 아빠였잖니!"자신의 부족함을 내어놓는다.
빌어야 할 잘못은 산더미 같다.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걸 다 털어놓고 케이타를 안아주는 료타는 진정 아버지로서 성장했다.
료타는 그동안 아이들의 시간을 공유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성장하는 시간에 자신의 성공을 위해 제대로 그 시간을  부여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이라고'
아이들에게 장난감으로 풍족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장난감을 같이 가지고 놀 아빠와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걸 아빠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다.
자식이 날 본보기로 성장해가고 있다면 어떠하겠는가? 날 닮은 자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삶에 멘토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