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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이든 2019. 4. 1. 01:32

감독 왕 가위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몇 편 본 사람이라면 이 감독만이 가지는 특이한 시선을 알고 있을 것이다.

느림의 미학과 대사보다는 독백으로 여백을 만들어 내는 감독이다.

처음에는 뭔 내용인 줄 모르겠고, 지루하고 복잡하다. 처음에는 관계도가 모호하고 복잡하다.

. 또 하나 이 영화는 생략이 많다.

여백이 많고 생략이 많으면 그건 독자들의 몫이다. 끝까지 정주행 해야 하는 영화이다.

 

왕가위 감독의 특유한 감성을 믿고 가야 한다.

'화양연화'를 통해 보여 준 상처와 회한처럼 사랑에 있어 적극적이지 않다. 어떻게 보면 소심하고 또 어떻게 보면 용기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에 대한 선택으로 이별을 한다.

화양연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잡지 못하고 떠나가는 것으로 사랑보다는 그녀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도덕적 가치를 지켜주는 것으로 타협을 본다.

그리고 회한에 젖어 남자 주인공은 그녀를 사랑했던 비밀을 사원에 있는 구멍 안에 속삭이고 영원히 봉인한다.

어쩌면 <동사서독>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된다.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다.

자애인 역 장만옥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을 의지해서 자랐던 서독 구양봉(장국영)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했다.

'천하를 얻기 위해선 여자를 버려야 하는 줄 알았지.'라고 생각했던 구양봉은 사랑하는 여인 대신 무사로서의 길을 택했다.

'거절당하기 싫으면 먼저 거절하는 게 최선이다.'이라는 그의 독백으로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온 것은 상처 받기 싫어 먼저 상처를 주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킨다고 생각한 것 같다.

구양 봉이 사랑했던 여인 자애인(장만옥)은 결국 자신의 형과 혼인했다. 그녀가 혼인하는 날 구양봉은 자애인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꼭 잃고 나서야 얻으려고 하는 그를 수긍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혼자된 구양봉은 고향 백타 산을 떠나 사막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경칩이면 동사 황약사(양가휘)가 술 마시자고 찾아온다. 그리고 황 약사는 구약봉을 만나고 나면 꼭 누군가를 만나러 떠난다.

황 약사는 구양 봉이 사랑했던 자애인을 사랑한다. 하지만 자애인은 구양봉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는 구양봉을 시기한다.

자애인 때문에 복사꽃을 좋아한다. 매년 복사꽃이 필 때면 그녈 만날 수 있다.

그녀가 구양봉의 소식을 궁금해해서 구양봉을 만나러 간다. 구양 봉이 있는 한 매년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서로 엇갈리는 사랑으로 인한 상처와 질투가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다.

황 약사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남에게 사랑받는 느낌을 알기 위해서 친한 친구의 아내와 정을 통하고, 친구였던 맹무살수(양조위)는 그로 인해 아내를 떠난다.

맹무살수는 황 약사를 다시 만났을 때 그를 죽이려 했지만 이미 그는 시력이 나빠져 그를 죽일 수 없게 되었다.

 

모룡 연(임청하)은 황 약사가 술에 취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상처 받고 황 약사를 죽여달라는 살인 의뢰를 구양봉에게 하게 된다.

또 모룡언은 돈을 두배로 줄 테니 황 약사를 죽이지 말라고 한다. 대신 오라버니 모룡 연을 죽여 달라고 한다.

사랑에 대한 상처로 또는 복수로 그녀는 자아가 두 개로 분열이 된 것이다.

오라버니라는 모룡연과 여동생인 모룡언은 두 개의 모습을 지닌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모습의 정체는 상처 받은 사람인 것이다.

'사람들은 좌절하면 자기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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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봉도, 황약사도 모룡 연도 맹무살수도, 맹무살수 아내 도화 삼량(유가령)도 남동생의 죽음으로 복수를 하려고 하는 완사녀(양채니)도 모두 상처 받은 사람이다.

영화에서 복사꽃은 사랑하는 여인들이다. 맹무살수(양조위)가 복사꽃이 시들기 전에 그녀를 만나러 가야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돈을 벌려고 구약봉 밑에서 일하지만 끝내 가지 못했다. 우리는 그게 복사꽃인 줄 알았지만 복사꽃은 그의 아내 도화 삼량의 이름이었다.

구양 봉이 맹무살수의 아내가 우는 걸 보고 황 약사가 자신에게 오는 이유를 알았다고 말한다.

자애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복사꽃을 제대로 마주해 보지 못한다.

 

이젠 옛날에는 산을 보면 산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을 기다려줄 여인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면서 왜 혼인하지 않았냐는 황약사의 질문에 자애인은 대답한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구양봉은 해주지 않았다.

예전에 사랑한다고 말로 해야 영원한 줄 알았지만 사랑은 말하든 안 하든 차이가 없다. 사랑 역시 변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거울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사람 마음이라.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대 마음이 움직인 것뿐이다.

 

완소녀가 당나귀와 달걀을 들고 구양봉에서 자신의 남동생의 복수를 위해 살인 의뢰를 하지만 구양봉은 달걀로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홍칠공(장학우)은 달걀 때문에 완사녀를 도왔고,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잃는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의 모습이다.

홍칠공은 구약봉에게 '난 당신을 닮고 싶지 않다. 달걀 하나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지 않겠지. 그게 당신과 나의 차이지'

구양봉은 그런 모습이 시간낭비로 느껴진다고 했지만 오직 그만이 살아있어 보인다.

다들 좌절하느라 자기변명만 늘어놓고 있지만 그만은 바람을 향해 정면으로 맞서 간다. 회피하지도 등지지도 않는다.

홍칠공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이 상실감으로, 질투로, 자존심으로, 변명으로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아파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괴로운 것은 상처 받기 싫어서 끄집어내지도 않았거나 아님 먼저 상처 줘 버린 것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 기억에 집착하는 것이다.

구양봉은 홍칠공이 단순하다고 생각했지만 마누라를 데리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질투가 났다.

자신에게 똑같은 기회가 있었을 때 왜 자신은 자애인을 포기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 약사는 구양봉을 만나고 그녀를 보러 가면서도 왜 구양봉에게는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지 못한 것일까? 시기이다. 질투가 우정을 외면한 것이다.

사랑받기 위한 느낌을 알고 싶어서 친구 맹무살수에게도 그의 아내 도화 삼량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친한 친구 둘을 기만했다. 질투는 결국 친구와 자신을 파괴했다.

 

자애인은 죽기 전에 '취생몽사'이라는 술을 황약사를 주면서 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구양봉이 자신을 잊어주길 바랬다. 마시면 지난 일은 모두 잊는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 한다.

황 약사는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매일이 새로울 거라고 나눠 마시자 했지만 그런 술이 있다는 걸 믿지 않았던 구양봉은 마시지 않았다.

황 약사는 혼자 마셨고, 그 해부터 그는 많은 일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기억했다.

구양봉은 사막에 오랫동안 있었으면서도 사막도 제대로 못 본 걸 알았다. 곁에 있을 땐 모른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는다.

꼭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취생몽사는 갖지는 못하더라도 잊지는 말자라고 그녀가 자신에게 던진 농담이었다.

취생몽사를 한 잔 마셨다. 하지만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사랑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다.

그녀를 혼자 몰래 좋아하던 황 약사는 첨부터 졌다고 했지만 그가 취생몽사를 마시고도 많은 기억을 잃고도 복사꽃만 기억한다. 취생몽사를 마신 구약봉 역시 잊을수록 더 기억은 선명해진다. 사랑에는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