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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이든 2019. 3. 2. 23:03
피아니스트

감독 로만 폴란스키 

영화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는 폴란드 출신의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일생을 소재로 한 전기소설을 프랑스 출신의 폴란드 영화감독인 로만 폴란스키가 영화로 구성한 작품이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시 폴란드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나치에게 점령 당한 참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의 모습을 통해 나치의 만행과 심장이 끊어질 듯이 비참했던 삶의 현장으로 데려다 준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던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이  쇼팽의 야상곡 20번을 연주하는 도중 라디오 방송국이 폭격을 당하게 된다. 독일나치에게 점령당한다.
 
나치들은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탄압했다. 그들은 유대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의 만행을 여기에 일일히 적고 싶지않다. 기차역에서 아는 공안원의 도움으로 그는 혼자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러나  스필만의 가족들은 죽음의 기차에 태워져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 홀로 목숨을 건진 그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일하게 되고 친분이 있던 도로타의 도움으로 수용소에 탈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은신하며 삶을 이어가게 된다.

 

스필만은 처음엔 아는 공안원 덕분에 죽음의 기차에 타지 않았고, 이번에도 친분이 있던 캡친스키와 도로타의 도움으로 수용소에서 탈출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 남은 것도 어쩌면 그에게 살아남으라는 신의 계시인지도 모르겠다. 
나치의 학살로 도망치기는 했지만  숨어지내야 하는 운명이었다. 하루 하루를 어렵게 비참하게 견디고 또 견디어야 했다. 
폴란드 내 나치에 대항하는 지하조직의 도움으로 살아가는데, 그들마저 발길이 끊어졌다. 
전쟁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암울함,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에서 지독한 추위와 고독과 공포와 허기로 끈질지게 삶을 이어간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명장면

배가 너무 고파 먹을 것을 뒤지다가 통조림을 발견하고 그 통조림을 따려다  독일군 장교 호젠필트(토마스 크레취만)와 마주치고 만다. 독일장교는 그가 피아니스트라는 말에 연주를 하라고 명령한다. 

얼마나 추운지 입술사이로 입김이 연신 뿜어지고 옷은 다 헤어져 소매끝이 너덜너덜하고 손은 너무 앙상하여 건반위에 올려진 나뭇가지 같았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초라하게 머뭇머뭇 거리던 손은 이내 음들을 만들어가고 조금씩 건반을 옮기며  익숙하듯 선율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가 생존본능에 의해 필사적이었듯이 피아니스트였던 손가락도 음을 기억하며 운명적으로 연주했다. 스필만은 쇼팽의 발라드 1번 G장조를 연주한다. 
폐허된 건물에서 살기위해 먹을 것을 뒤지고 몰골은 너무 야위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그 앙상한 손으로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의 선율이 마치 그가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슬픔으로 덮혔다. 
인간으로서도 피아니스트로도 마지막일 거라는 전율이 안개처럼 자욱했다.
허기진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했다. 독일장교는 뒤에 의자에 앉아 그가 연주하는 선율을 묵묵히 들었다. 

 

연주가 끝나고 장교는 그가 이 춥고 어두운 폐건물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는 지 궁금해 했고, 그는 후레쉬로 공간을 비추더니 돌아서 나갔다. 이 장면이 있기에 더욱 빛났던 영화였다. 
사무실에 돌아간 장교는 책상에서 결재사인을 한다. 그의 책상에 놓인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그도 한 집안의 가장이고 아버지고 남편이고 아들인 사람이었구나. 
독일군은 심장도 없는 살인마같은데 눈에 들어온 가족사진으로 나치도 유대인과 다르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에  더 아프고 슬퍼졌다. 

 

아름답고 슬픈 선율을 같이 공감하고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인간임은 분명한데, 왜 그토록 잔인한 것인지, 왜 그토록 심장도 없는 사람들처럼 구는 것인지, 누가 날 이해시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는 빵과 쨈과 통조림을 딸 수 있는 도구를  그에게 주고 간다. 가슴이 따뜻한  독일장교였다. 저런 사람이 저들에게도 있었다. 
스필만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가보다. 하필이면 독일장교에게 들켜 심장 쫄였는데 다행히 가슴이 따뜻한 인간미 있는 장교라 그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장교가 주고 간  쨈을 손가락으로 퍼서 입에 넣는 순간 그는 눈을 감는다. 생존본능만큼 음식에 대한 미각도 삶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느낌이라는 걸 알기에  그 평범했던 소소함이 지금 순간은 극적인 황홀함감을 줄 것이고, 행복함을 줄것이고 살아있다는 순간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전쟁중에도 삶은 계속되기에 순간 순간 찾아오는 행복감이 단비처럼 젖셔주기도 한다. 그 이후 독일장교는 그에게 빵을 갖다주고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그에게 입고 있던 장교 외투를 벗어주고 떠난다. 
그리고 그는 "우린 철수해. 신께 감사해라"고 말한다.
마침내 1945년 독일이 패배하고 소련군이 바르샤바로 들어오면서 폴란드는 해방이 된다. 그리고 독일장교였던 호젠펠트는 1952년 소비에크 포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홀로  남겨진 세상에서 그것도 은신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들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절망속에서 울려퍼지는 쇼팽의 피아노 선율과 오직 생존본능만 살아 있는 스필만
독일장교앞에서 혼을 다해 치는 연주하는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아름답거나 예술적으로 들린 게아니라 그의 생존본능에 집중된 소리였다. 

 

전쟁영화로 영웅담을 담아 위대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피아니스트의 나약함이지만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그는 누구보다 처절하게 삶을 연주했다. 
세상에 하찮은 목숨은 없으며, 생명을 어떠한 이유로도 함부러 할 가치는 누구에게도 없다. 하찮은 동물도 그렇게 죽이지 않는다. 세상에 생명이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하찮은 것이라고는 없다.
인간이 인간을 잔인하게 처단하고 뭉개고 하는 행위가 어찌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죽음앞에서 인간이면 누구나 다 두려움에 떤다. 살기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본능적으로 발버둥친다.  
전쟁은 끝나고 50만명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딱 20명, 
수백만을 학살한 독일 나치의 만행, 인간이지만 다 같은 인간이 아님을 보여준 영화이다. 전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괴물이 더 무서웠던 영화였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도 영화를 꽉꽉 채운 OST들이 빛났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독일 장교 앞에서 피아노 치던 스필만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을 갈가리 찢어놓은 독일군에게 들려주는 사람의 소리를 연주한 것 같았다.

 
실존 인물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자신이 바르샤바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써서 <도시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출판하려고 했다. 하지만 공산주의 정권의 검열에 걸려 출판하지 못했고, 50년이 지나 <피아니스트>라는 책 제목으로 1998년에 다시 출판하게 된다. 이를 로만 폴란스키가 영화로 제작하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을 연기했던 애드리언 브로디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이때 그의 나이 29세로 최연소 수상자가 된다.
요즘 이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개인적으로 너무 실망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하지만 나는 감독과는 별개로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로 만들어간 작품이라 생각하고 오직 작품만을 감상하고 여기에 적는다. 홀로코스트 영화로서 이미 인정받은 작품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