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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2.15 48. 툴리 : 육아전쟁터에서 보내는 산모의 경고메시지
posted by 해이든 2019. 2. 15. 14:36
툴     리

감독 제이슨 라이트맨

육아는 그 어떤 노동과 비교할 수가 없다. 경험하지 않고는 육아에 대한 그 무게를 측정할 수 없다.
이 영화가 그래서 너무 현실적이었다. 그냥 바로 내 이야기였다. 이 영화가 너무 리얼하고 생생해서 육아전쟁터에 다시 들어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샤를리즈 테론은 이 역을 해내기 위해 체중을 20kg이나 늘렸다고 한다. 역시 배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그냥 육아 스트레스로 힘든 엄마들의 다큐멘터리라 여길 만큼 실감 났다. 육아를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 될 엄마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잘 표현해 주었다.

그래서 정작 육아를 담당한 엄마들보다 남편과 가족들이 더 보기를 원한다. 자신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 한 여자가 감당해야 될 고통을 좀 들여다 봐주고 위로와 힘을 보태줄 수 있는 계기를 가졌으면 한다.

 

정말 옷 하나 입는 것도 제대로  몸이 작동하지 않는다. 자신이라고는 없다. 어떤 옷을 걸치고 있는지, 옷은 언제 갈아 입었는지,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자신을 인지할 정신이 없다.

여자와 엄마의 경계에서 갈등할 에너지조차 발현내지 않는다. 좀비가 된다.  마를린처럼 얼굴에 생기가 없고 초점도 없다. 환청과 환각이 오가기도 한다. 아기는 자고 있는데도 귀에서는 계속 애울음소리가 들린다. 환청에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
쌓여 있는 설거지거리와 빨래로 집안이 엉망진창인데도 몸은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집안청소에 대한 압박감은 밀려오는데 정말 손하나 까닥할 힘도 남아있지 않다. 의지는 있는데 몸과 정신이 바닥이다. 
그런 압박감은 잠시 잠시 조는 졸음사이에  꿈처럼 밀려와 우렁각시를 만나게 한다. 청소를 하고, 밥을 짓고, 장을 보고, 친구를 만난다.

잠에서 깨어 엉망진창인 집안을 보며 '어 이상하다. 내가 분명 아까 청소하고, 밥 했는데,장도 봤는데, 냉장고도 채워 놨는데? 환상 속의 내가 집안일을 한 것이다.

현실과 반대로 환상으로 내 몸이 하지 못하는 걸 충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마주하면 스스로 미친 것 같다는 생각에 더 기분은 다운된다.

마를로는 세 아이의 엄마다. 엄마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아이들, 거기다 둘째는 좀 특별해서 학교에서마저 개인교사를 구하라는 말을 하고, 오빠는 자신의 여동생이 육아로 생기를 잃은 것 같다고 말하며 야간 보모를 권유한다.

밤에 잠이라도 제대로 자라는 오빠의 배려지만,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길 수 없는 그녀의 고집은 오빠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거부당한다.

오빠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고, 그녀는 재정적인 여유가 없다. 아이 셋에 보모까지 둘 형편이 아니라는 것도 있고,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는 것도 싫고, 남편이 돈이 있는 오빠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 것도 자존심의 문제가 걸려 그리 탐탁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열이라도 부족하다. 아이들 학교 등교로부터 시작해 밤새 울어대는 갓난아기로 인해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한다. 집안은 엉망이고, 매일같이 인스턴트식품으로 식탁을 채우고, 둘째 조나의 문제로 점점 지쳐간다. 아니 이미 지쳐 있었다.

육아로 인해 하루 24시간의 노동이 아니라 3일 밤을 철야한 것처럼 멍한데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몸은 반시체와 다름없고, 성격은 날카로워져 웃음마저 얼굴에서 사라졌다. 잠을 못잔 사람은 모든 것이 귀찮다.

도저히 견뎌내고 버틸 수 없었던 그녀는 야간 보모를 쓰기로 한다. 그러나 야간 보모로 온 그녀는 26살의 너무 젊은 여자였다. 거기다 날씬하고 매사 활기차다. 갑자기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의 모유로 얼룩진 옷가지며, 늘어진 젖살과 부어버린 몸뚱이, 얼굴은 잿빛 하늘에 다크서클이 눈 밑에 자욱하고, 유령처럼 영혼도 없고 생기도 없는 자신을 본다.

나도 그랬다. 어느 날 시장 다녀오는 길에 쇼윈도에 걸린 옷을 구경하다 그 유리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너무 많이 놀랬다. 저기 비치는 사람이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너졌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서둘러 집에 와서 나도 모를 눈물로 하염없이 울었다. 육아 스트레스로 제대된 밥도, 제대로 된 수면도 부족했던 나는 무려 40kg까지 몸무게가 하강했고 쇼윈도에 비친 그 초췌한 말량깽이가 나였다.

마를로는 야간 보모툴리(맥켄지 데이비스)로 인해 점점 활기를 찾아갔다. 툴리는 아기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집안 청소도 해 놓고, 쿠키도 구워놓기도 하며, 그녀의 힘든 삶을 나누어 주었다. 밤에 와인을 나누며 여자로서의 삶도 이야기하고, 남편과의 소홀한 관계도 그녀와 서로 대화를 나눈다..

"전체를 치료하지 않고 부분만 고칠 수 없어요. 당신을 돌보러 왔어요." 그녀는 아이만 돌보는 보모가 아니었다.

아이를 돌보아할 엄마도 자신이 돌봐 주어야 할 존재라고 말한다. 엄마가 치료되지 않고 아기만 돌본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뿌리가 치료되어야 가지도 잎도 무성 해지는 법이다.

툴리는 마를로에게 시내에 나가자고 한다. 술도 마시며 엄마로서 말고 여자로서의 즐거움을 갖자는 취지이다. 젊은 날 자신이 살던 곳으로 간 마를로는 과거 자신의 젊음을 만끽한다. 클럽에 가 술도 마시고 춤도 추면서 말이다.

그런데 툴리가 야간 보모를 그만둔다고 한다. 그 얘기를 하려고 놀러 가자고 한 것이란다. 이제 자신이 보이는 육아를 하고, 이제야 여유가 생겨 아이들과 놀아주고 행복한데 그녀가 그만둔다는 말은 그녀에게 고통이었다.

말리려고 하지만 젊은 그녀가 자신의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간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녀는 받아들이기가 싫다. 툴리에게 너는 나처럼 안 될 것 같냐? 나이 먹고,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다 나처럼 된다는 말에 툴리는 자존감이 낮아진 마를로에게 실패가 아니라 성공한 인생이라 말한다.

"가족을 위한 당신의 단조로운 일상은 모두에겐 소중한 선물이에요."

매일같이 일어나 아이들 씻기고,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고, 학교를 보내는 그 모든 일상들이 가족들이 살아가는데 선물 같은 날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나의 희생으로 그들이 숨 쉬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정작 내가 숨을 쉴 수 없는데, 육아는 혼자만의 무게가 되면 안 되는 거다.  

마를로는 클럽 화장실에서 고통스러워한다. 가슴이 퉁퉁 붓고 아프다. 모유를 먹이지 않으면 그 통증에 어디 나다닐 수가 없다. 모처럼 맘먹고 친구들과 만나 커피숖에서 커피를 마시다 젖몸살로 화장실에 들어가 똑같은 경험을 했다.

커피 없이 단 하루도 못 사는내게 임신은 커피를 못 마시는 것만으로도 삶이 끊어질 것 같았다. 난 확실한 카페인 중독이었다. 그럼에도 엄마니까 해 낸 일인지도 모르겠다. 젖이 불어  옷이 젖고 퉁퉁 부어올라 손을 댈 수도 없이 아파 짜내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마를로가 겪은 그 경험을 나는 경험했다. 아니 마를로가 바로 나다. 생전 처음 맛 본 이 통증에 그것도 커피솝 화장실에 앉아 울었으니 말이다.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젖을 물렸는데  엄마 아픈 줄도 모르고  그 작은 입으로 빨아 당기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비명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한 번도 모유 하는 아이를 놔두고 외출하지 않았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앓았던 젖몸살, 영화를 보면서 그녀가 화장실에서 겪은 통증에 내 가슴도 앓았던 고통인지 뻐근했다.

음주운전에 졸음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마를로와 툴리가 타고 있던 차가 강물에 빠진다. 그리고 그녀는 병원에 입원하고, 의사는 그녀가 과로와 수면부족이었다고 말한다.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아내에게 조금만 관심 가졌다면 어쩌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아내의 삶이 육아로 점점 위태로웠다는 것을, 그녀는 환상으로 버티고 있었다. 우렁각시가 툴리였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 있는 것이다. 상상의 집을 짓고 들어가지 않으면 육아 독박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던 삶이고, 그녀 스스로 견뎌내야 하는 엄마라는 신분이 그녀를 무너지게 만들고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누구의 자식이나 아네과 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게로 짓누른다.

몸도 마음도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자신이 망가지는데 온통 자신만이 아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육아전쟁으로 고갈되어가는 마를로를 통해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지쳐가는 엄마들을 대변해 준 작품이다. 

어쩌면 "아내 분 전 성은요?"라는 간호사의 물음에 반전을 눈치챈 분도 있을 것이고, 툴리와 외출을 나가 춤을 추고 술을 마실 때 반전을 눈치 챈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보모가 아이를 안았을 때 알았다.

감독이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말이다. 나 역시 우렁각시와 같이 내 아이를 키워 냈으니 말이다.

산후 우울증을 겪었던 나는, 마를로의 삶이 바로 나의 삶이었다. 엄마가 되는 것만큼 육아는 여자를 떠나 한 인간으로 겪을 가장 힘든 노동이고 전쟁이다. 소리 없이 내가 말라간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가족들이 엄마에게 독박으로 씌운 육아를 좀 나누어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