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4. 1. 19:02

감독 왕 가위

왕가위감독의 화양연화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이별을 사랑의 완성품처럼 만들어 낸 영화이다.

사랑 안에는 많은 것들이 개입된다. 도덕, 열정, 가치, 행복, 현실 수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또 무엇에 더 행복의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거리가 정해진다.

왕가위 감독이 제작한 <화양연화>는 1960년대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따른 도덕적 관점에서 두 남녀의 사랑을 적극적이게 담아내지 않는다.

열정적인 사랑이야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지루하고 따분하고 미지근할 것이다.

불륜영화이지만 불륜을 다루는 장면은 하나도 넣지 않았다.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들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들에게 상처 주는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와 함께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비난받기를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

왕가위 감독은 불륜을 저지르는 차우의 아내와 수 리첸의 남편을 초반부 잠깐 뒷모습으로 존재감만 부여해 주고 영상 뒤편으로 보내버린다.

오직 수리첸과 차우만을 위해 영화는 세팅된다.

'불륜'을 아름답게 묘사하지도 않겠다는 의도와 그들에 의해 첸과 차우가 무너지거나 흔들리는 것보다 오로지 차우와 수리첸의 감정선에 몰입하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시선, 그들의 행동에 더 집중하게 만든 줄도 모르겠다

몽환적인 영상, 쓸쓸한 선율, 수리첸의 몸에 착 달라붙은 화려한 치파오, 신문사에 혼자 앉아 담배 피우는 차우의 모습,

좁디좁은 아파트 통로를 지나며 닿을 듯 말듯한 접촉. 국수를 사기 위해  오르내리는 어둡고 좁은 계단통로, 대사보다는 무성영화 같은 영상이 가득하다.

1962년 홍콩 그들의 첫 만남

우연히 같은 날 이사를 하게 되고 이삿짐이 섞이기도 한다.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는 닿을 듯 말듯한 비좁은 복도 통로로 차우와 수리첸은 몸을 옆으로 돌려 지나간다.

그날도 차우의 아내는 바빴고, 수리첸의 남편은 출장으로 혼자 이사를 한다.

수리첸은 일본 출장으로 집을 자주 비우는 남편으로 인해 청상과부나 다름없었다. 혼자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국수를 사려고 어둡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린다.

차우역시 아내의 늦은 퇴근으로 늦게 퇴근하거나 혼자 저녁을 해결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오르내리는 계단을 지나며 마주하게 되는 화면은 음악과 함께 굉장히 쓸쓸하다.

화려한 치파오를 입은 수리첸 역 장만옥

어느 날, 수리첸은 남편이 하고 있는 넥타이와 차우가 하고 있는 넥타이가 같다는 것과 차우의 아내가 가지고 다니는 핸드백과 같은 핸드백을 자신의 아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아내와 자신의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수리첸은 보이는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다. 같이 숟가락 하나 더 올려 같이 저녁 하자는 것에도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 그 넘의 체면 때문에 그녀는 밤길을 걸어 나가 국수를 사들고 온다. 신세 지기 싫어하고, 남의 호의도 부담스러워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항상 체면 유지와 자존심으로 자신을 치장하는데 흐트러짐이 없다.

수리첸은 가정을 지키고 싶은 게 아니라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아 그들의 관계를 모른 척할 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 것이다.

무역회사 사장이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면서도 그럭저럭 가정을 깨지 않고 아내의 생일선물을 준비하며 꾸려가는 가정을 본 비서로서 수 리첸 또한 그럴 것이다.

자신 또한 모른 척 사회적 체면을 위해 화려한 치파오로 자신의 쓸쓸함을 가리고, 세상의 틀에 맞추어 청상과부로 보일지라도 가정의 틀을 무너트리지 않을 것이다.

 

화양연화의 양조위와 장만옥

영화에서 차우와 수리첸의 대사는 별로 없다. 두 사람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안다.

서로의 모습을 통해 배우자들의 외도를 확인했고,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보고 서로의 모습을 통해 침착할 수 있다.

슬픔이 같다. 배신감 또한 같다. 나랑 똑같은 사람이 옆에 있는 것으로 위로받으며 그 두 사람은 이 상황을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혼자 겪고 있는 슬픔이 아니다. 이 슬픔 안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나와 대면하고 있다. 평정심과 냉정함을 찾아간다.

괜히 감정소비로 자신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고, 삶을 흔들고 싶지도 흔들리기도 싫었다. 

결혼해 사느라고 무협소설을 쓰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내려놓았는데, 아내의 외도로 인해 그런 자신의 꿈을 다시 들어 올리기로 했다. 차우는 자신을 위한 무협소설을 써보기로 하고 첸에게 같이 하자고 한다.

우리는 불륜을 저지르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는 수리첸은 모텔을 찾아가 그와 무협소설의 연재를 도운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회적 망원경에서 좀 더 자유롭기 위해서 말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뜻하는 '화양연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벽을 사이에 두고 등을 댄 수리첸과 차우의 영상화면은  가까이 있지만 같이 할 수 없는 사이, 도덕적 거리만큼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 쓸쓸했다. 점 뜨거웠으면 했다.

어쩌면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하던 때가 그들에게 배우자들의 외도로 가장 아프기도 했던 때이다.

부도덕한 배우자들과는 다르다고 도덕으로 옷을 입고, 모텔방에서도 첸의 방에 갇혀서도 그들은 감정을 절제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그들과 다르다."

'우린 도덕적이야' 라고 무장되어 있는 두 사람은 자신의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독이 아마 이 둘을 갈라놓기 위해 연출된 장면 같았다.

둘이 사랑하는 것 맞아? 할 정도로 자제된 감정과 터치들 , 불륜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그들의 표현은 서로를 향해 뜨겁지 않다고 느끼는 걸 넘어 너무 인색하다. 몸은 항상 거리두기가 있다.

모텔에서 거울을 통해 보이는 차우

 

비가 갑자기 퍼붓던 어느 날, 수리첸은 동네 골목 어귀 비를 피하고 있다. 차우는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비를 맞고 집으로 뛰어가 우산을 들고 온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수리첸은 그가 가져온 우산은 같이 쓰고 갈 수도, 그렇다고 차우의 우산을 혼자 쓰고 갈 수도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을 불륜으로 포장해버릴 테니까, 상자 안의 내용은 그들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테니까

비가 멈추거나 비를 맞거나 둘 중의 하나이지 같이 우산을 쓰고 갈 수 없는 사이이다.

 

둘이 한 방에서 밤을 지새워도, 호텔방에서 무협소설을 같이 쓸 때도 그들은 '우리만 아니면 불륜이 아니다.'

배우자들의 외도에 아파하기보다 자신들의 또 다른 삶을 만들어내려고 꿈이었던 무협소설을 쓰고 연재하는 추와 같이 읽어주며 공유하는 것으로 우리는 너희들과 다른 사랑이야. 삶도 사랑도 도덕적 토대 위에 반듯하게 올려놓는다.

출장 갔다고 친정에 갔다고 거짓말하는 그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마음은 그 거리가 힘들었다.

처음 시작은 이게 아니었지만 조금씩 변해갔고,수리첸이 남편과 있다는 생각만으로 미쳐버릴 정도로 사랑하게 되었다. 불륜을 택한 배우자들과는 다르게 그녀가 지키고자 하는 가정과 도덕성을 지켜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을 도덕적으로 봐주지 않았다. 소문이 무성했다. 우린 다르다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고 수리첸을 위해 떠나기로 한다. 차우는 싱가포르로 신문사를 옮겨간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이별로 담아낸다.

그들이 택한 사랑은 이별이었다. 불륜을 제거되고 아름답고 애틋한 정서만을 담아 헤어진다.

사원에서 구멍에 비밀을 말하고 봉인하는 장면

손가락 다섯 개를 깍지 낀 사랑보다 검지 손가락 끝이 닿아 물결 같은 애틋한 감정이 전해진다.

비바람에 젖는 나무보다 바다 위를 적시는 비처럼 스며들어 의식할 수 없는,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알 수 없고 분리하지도 못한 채 서로가 흡수되어 그저 가슴만 아는 비밀로 봉인된 사랑이다.

"옛날엔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고 진흙으로 봉했다고 하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시간이 흐르고 자신들이 살았던 아파트를 찾아 창가를 바라보며 눈물짓던 수리첸, 차우는 그때를 가장 아름다웠던 때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가서 작은 구멍에 대고 수리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말하고 그 비밀을 영원히 봉인하는 장면은 내가 이 영화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 01:32

감독 왕 가위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몇 편 본 사람이라면 이 감독만이 가지는 특이한 시선을 알고 있을 것이다.

느림의 미학과 대사보다는 독백으로 여백을 만들어 내는 감독이다.

처음에는 뭔 내용인 줄 모르겠고, 지루하고 복잡하다. 처음에는 관계도가 모호하고 복잡하다.

. 또 하나 이 영화는 생략이 많다.

여백이 많고 생략이 많으면 그건 독자들의 몫이다. 끝까지 정주행 해야 하는 영화이다.

 

왕가위 감독의 특유한 감성을 믿고 가야 한다.

'화양연화'를 통해 보여 준 상처와 회한처럼 사랑에 있어 적극적이지 않다. 어떻게 보면 소심하고 또 어떻게 보면 용기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에 대한 선택으로 이별을 한다.

화양연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잡지 못하고 떠나가는 것으로 사랑보다는 그녀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도덕적 가치를 지켜주는 것으로 타협을 본다.

그리고 회한에 젖어 남자 주인공은 그녀를 사랑했던 비밀을 사원에 있는 구멍 안에 속삭이고 영원히 봉인한다.

어쩌면 <동사서독>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된다.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다.

자애인 역 장만옥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을 의지해서 자랐던 서독 구양봉(장국영)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했다.

'천하를 얻기 위해선 여자를 버려야 하는 줄 알았지.'라고 생각했던 구양봉은 사랑하는 여인 대신 무사로서의 길을 택했다.

'거절당하기 싫으면 먼저 거절하는 게 최선이다.'이라는 그의 독백으로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온 것은 상처 받기 싫어 먼저 상처를 주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킨다고 생각한 것 같다.

구양 봉이 사랑했던 여인 자애인(장만옥)은 결국 자신의 형과 혼인했다. 그녀가 혼인하는 날 구양봉은 자애인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꼭 잃고 나서야 얻으려고 하는 그를 수긍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혼자된 구양봉은 고향 백타 산을 떠나 사막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경칩이면 동사 황약사(양가휘)가 술 마시자고 찾아온다. 그리고 황 약사는 구약봉을 만나고 나면 꼭 누군가를 만나러 떠난다.

황 약사는 구양 봉이 사랑했던 자애인을 사랑한다. 하지만 자애인은 구양봉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는 구양봉을 시기한다.

자애인 때문에 복사꽃을 좋아한다. 매년 복사꽃이 필 때면 그녈 만날 수 있다.

그녀가 구양봉의 소식을 궁금해해서 구양봉을 만나러 간다. 구양 봉이 있는 한 매년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서로 엇갈리는 사랑으로 인한 상처와 질투가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다.

황 약사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남에게 사랑받는 느낌을 알기 위해서 친한 친구의 아내와 정을 통하고, 친구였던 맹무살수(양조위)는 그로 인해 아내를 떠난다.

맹무살수는 황 약사를 다시 만났을 때 그를 죽이려 했지만 이미 그는 시력이 나빠져 그를 죽일 수 없게 되었다.

 

모룡 연(임청하)은 황 약사가 술에 취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상처 받고 황 약사를 죽여달라는 살인 의뢰를 구양봉에게 하게 된다.

또 모룡언은 돈을 두배로 줄 테니 황 약사를 죽이지 말라고 한다. 대신 오라버니 모룡 연을 죽여 달라고 한다.

사랑에 대한 상처로 또는 복수로 그녀는 자아가 두 개로 분열이 된 것이다.

오라버니라는 모룡연과 여동생인 모룡언은 두 개의 모습을 지닌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모습의 정체는 상처 받은 사람인 것이다.

'사람들은 좌절하면 자기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장국영,양가휘,장만옥,임청하,유가령,양채니,장학우,양조위

구양봉도, 황약사도 모룡 연도 맹무살수도, 맹무살수 아내 도화 삼량(유가령)도 남동생의 죽음으로 복수를 하려고 하는 완사녀(양채니)도 모두 상처 받은 사람이다.

영화에서 복사꽃은 사랑하는 여인들이다. 맹무살수(양조위)가 복사꽃이 시들기 전에 그녀를 만나러 가야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돈을 벌려고 구약봉 밑에서 일하지만 끝내 가지 못했다. 우리는 그게 복사꽃인 줄 알았지만 복사꽃은 그의 아내 도화 삼량의 이름이었다.

구양 봉이 맹무살수의 아내가 우는 걸 보고 황 약사가 자신에게 오는 이유를 알았다고 말한다.

자애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복사꽃을 제대로 마주해 보지 못한다.

 

이젠 옛날에는 산을 보면 산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을 기다려줄 여인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면서 왜 혼인하지 않았냐는 황약사의 질문에 자애인은 대답한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구양봉은 해주지 않았다.

예전에 사랑한다고 말로 해야 영원한 줄 알았지만 사랑은 말하든 안 하든 차이가 없다. 사랑 역시 변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거울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사람 마음이라.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대 마음이 움직인 것뿐이다.

 

완소녀가 당나귀와 달걀을 들고 구양봉에서 자신의 남동생의 복수를 위해 살인 의뢰를 하지만 구양봉은 달걀로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홍칠공(장학우)은 달걀 때문에 완사녀를 도왔고,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잃는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의 모습이다.

홍칠공은 구약봉에게 '난 당신을 닮고 싶지 않다. 달걀 하나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지 않겠지. 그게 당신과 나의 차이지'

구양봉은 그런 모습이 시간낭비로 느껴진다고 했지만 오직 그만이 살아있어 보인다.

다들 좌절하느라 자기변명만 늘어놓고 있지만 그만은 바람을 향해 정면으로 맞서 간다. 회피하지도 등지지도 않는다.

홍칠공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이 상실감으로, 질투로, 자존심으로, 변명으로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아파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괴로운 것은 상처 받기 싫어서 끄집어내지도 않았거나 아님 먼저 상처 줘 버린 것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 기억에 집착하는 것이다.

구양봉은 홍칠공이 단순하다고 생각했지만 마누라를 데리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질투가 났다.

자신에게 똑같은 기회가 있었을 때 왜 자신은 자애인을 포기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 약사는 구양봉을 만나고 그녀를 보러 가면서도 왜 구양봉에게는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지 못한 것일까? 시기이다. 질투가 우정을 외면한 것이다.

사랑받기 위한 느낌을 알고 싶어서 친구 맹무살수에게도 그의 아내 도화 삼량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친한 친구 둘을 기만했다. 질투는 결국 친구와 자신을 파괴했다.

 

자애인은 죽기 전에 '취생몽사'이라는 술을 황약사를 주면서 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구양봉이 자신을 잊어주길 바랬다. 마시면 지난 일은 모두 잊는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 한다.

황 약사는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매일이 새로울 거라고 나눠 마시자 했지만 그런 술이 있다는 걸 믿지 않았던 구양봉은 마시지 않았다.

황 약사는 혼자 마셨고, 그 해부터 그는 많은 일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기억했다.

구양봉은 사막에 오랫동안 있었으면서도 사막도 제대로 못 본 걸 알았다. 곁에 있을 땐 모른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는다.

꼭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취생몽사는 갖지는 못하더라도 잊지는 말자라고 그녀가 자신에게 던진 농담이었다.

취생몽사를 한 잔 마셨다. 하지만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사랑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다.

그녀를 혼자 몰래 좋아하던 황 약사는 첨부터 졌다고 했지만 그가 취생몽사를 마시고도 많은 기억을 잃고도 복사꽃만 기억한다. 취생몽사를 마신 구약봉 역시 잊을수록 더 기억은 선명해진다. 사랑에는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