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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이든 2019. 3. 7. 14:19
내 책상위의 천사

감독 제인 캠피온 

영화 내 책상위의 천사
<내 책상위의 천사>는 뉴질랜드 영화로 노벨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된 뉴질랜드 작가 지넷 프레임의 일생을 그녀가 쓴 세권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뉴질랜드 여성감독 제인 챔피온이 제작한 영화이다. 
뉴질랜드 풍경이 담겨 있고, 자넷의 성장과정을 압축적이면서도 디테일하게 끄집어 냈다. 
영화의 줄거리나 사건이 아닌 오로지 자넷 프레임이란 한 인물에 완전히 초점을 맞추어 그녀가 가진 내면을 향해 카메라를 갖다대는 느낌,그 주변인물이 아닌 오직 자넷 프레임만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좀 답답할 수도 있다.
딱 한 캐릭터를 두 시간넘게 보고 있자니 그녀의 삶에서 오는 감정들로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아닌 나로 살고 있지 않은지, 세상에 보여지는 나말고, 내가 알고 내가 있는 내가 맞는지, 나를 집중있게 고려해보게 된다. 누군가의 삶을 통해서 말이다. 
자넷이 글쓰기로 자신의 삶을 찾았고, 이 영화에서 말하는 책상위의 천사란  글을 쓰며 자신의 삶과 행복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낡은 타자기이다. 나의 천사는 어디에 놓여 있는 것일까?
 
 
자넷 프레임(케리 폭스, 알렉시아 케오그)은 다섯자녀중 세째로 태어났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곱슬머리, 뚱뚱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주위에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
특이한 외모와 소심한 성격, 가난한 시골소녀인 그녀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쳐 친구들에게 껌을 나누어주자 그 껌을 얻어먹으려고 몰려드는 친구로 인해 그녀는 잠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주위에서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본다. 먹을 것으로 환심을 사고 싶어하고 먹을 것으로 사람들을 유인하여 관심을 받는 사람말이다.

 

잠시나마 자신에게 관심 가져주는 순간이 좋았다.하지만 그들은 그가 내미는 껌에 관심을 둘 뿐이다. 그걸 알고도 사람들속의 무리이고 싶은 갈망에 따스하게 안아주고 배려하는 친구도 선생님도 없었다. 그저 도둑질한 행위로 찬물을 끼얹고 더 소외시켜버린다. 그들이 내미는 먹이만 먹고 빠져나가는 약아빠진 원숭이처럼 말이다.

 

자넷은 감수성이 많은 아이이다. 예민하다보니 사람들의 시선에 쉽게 상처받고 극소심해져 버린다.
자신을 주관적으로 잘 드러내지 못하는 자넷은 누가 다가와 손내밀어주기 전에는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아이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특별나게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다.  가족들은 그런 그녀의 문학적 열정에 배려하고 지원해준다. 아버지가 어린 자넷에게 시를 적으라고 노트를 사다 줄때가 그렇다. 

 

그녀는 다른 여자아이처럼 외모나 이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다보니 자신을 드러내기 싫었을 것이다. 
오직 시를 사랑하는 그녀는 글을 쓰는 것이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유일한 소통이었다. 
그녀의 어린시절은 가난했고, 소외되었고, 언니의 죽음으로 슬픔에 차기도 했다. 자신없는 외모와 불운한 가정환경으로 그녀는 점점 더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고, 오래토록 대인기피증으로 자신의 삶을 고립시켰다. 

 

그래도 사범대학교를 다녔고,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 생활하던 중, 학교에 장학관이 참관하는 수업에서 그녀는 소심한 성격으로 한마디도 못하고 교실을 나가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소심함으로 교사생활을 그만 둔 그녀의 상태는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심각했고, 주위에서는 자넷이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거기다 또 다른 자매의 익사사고로 더 깊은 좌절로 이어지게 된다. 

내성적인 성격이 안으로 안으로 더 깊이 더 깊이 동굴을 파고 아예 들어가 앉아 나오지 않았다. 내성발톱처럼

대학교를 다녔던 그녀는 심한 신경증을 앓고 있었고,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해준 교수는 그녀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여겨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게 된다. 이 병원에서는 자넷이 정신분열증을 가진 것으로 오진하는 바람에 200회나 넘는 전기충격요법을 받으며 8년을 고통속에서 보내게 된다.
병원은 정신분열증 치료를 위해 뇌절제술을 시도할 예정이었는데 그녀의 책이 출판되고, 소설로 문학상을 수상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겨우 두뇌절제수술을 모면하게 된다.
 
자넷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 본  뉴질랜드 작가 프랭크 사지슨은 그녀에게 오클랜드 타카푸나에 있는 집필실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자넷은 그곳에서 첫번째 소설을 완성한다. 

프랭크는  그녀가 좋은 글을 쓰기를 격려하며 여행을 해 볼 것을 권유한다. 그녀는 정부 문예기금으로 7년간 외국 여행을 하며 글을 써 조금씩 내성적인 성격을 치유해 나간다. 그나마 프랭크라는 작가를 만나 그녀의 내면을 종이 위에 맘껏 쓰게 권해주고 여행으로 그녀를 방향을 잡아 주어 그녀는 작가로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여행에 돌아와 그녀는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정신병원에 다녀온 것이 취업에 발목을 잡고 또 우울증이나 조울증으로 힘들어 제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세상으로부터 도피처를 찾아 숨어드는 사람처럼.

그러나 너무나 다행이게도 그 의사는 그녀에게 정신분열증이 오진이었음을 알려 준다.  그녀는 아주 정상적인 사람이고, 연금을 타 먹을 수 있게 조치할테니 그동안 정신병원에서 겪었던 일을 글로 쓰라고 독려한다. 그렇게 그녀는 또 한번 자신을 세상밖으로 밀어주는 의사로 인해 작가로서 자리잡게 된다.
가난했고,  오빠는 간질을 앓았고, 두 자매의 죽음, 소심한 성격, 못 생긴 외모의 모든 것을 담아 자서전을 완성한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 뉴질랜드로 돌아온다. 글쓰는 것이 자신의 삶을 바꾸어 놓았기에 작가로서의 삶에 매진한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면서 그녀가 주목받게 되지만 여전히 그녀는 대중앞에 잘 나서지 않는다. 글쓰기가 자신의 삶을 구원해 주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74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아무리 외모가 대수롭지 않다고 하지만 여자에게 외모는 자신감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세상이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 할수록 말이다. 그리고 성격 또한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일 것이다.
자신을 적극적. 외향적으로 표현하느냐, 소극적, 내성적으로 표현하느냐의 차이는 그 사람의 성격이다. 하지만 성격은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중요한 소통의 도구임은 분명하다.
자넷에게는 적극적인 표현의 도구가 글이었고, 소극적인 표현의 도구가 외모이고 성격이었던 것이다. 자신없는 것은 고개숙이고 소극적이었던 반면 자신있는 글로 세상을 향해 누구보다 열심히 외쳤고, 크게 울러 퍼졌다. 

 

소심하다 못해 극소심했던 그녀가  대인기피증까지 겪으며 사람들과의 접촉이 멀어지게 되고 사회속에서  소리내지 못하고 결국 안으로만 방향을 잡은게 글쓰기이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 가장 행복한 소통,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녀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 회피하다보니 주위의 시선에 의해 정신병원까지 간 것이 아닌가? 정신 분열이 아닌 반사회적 장애, 회피성 성격장애정도인 것을 그녀를 비정상적인 정신병으로 다루었다는 것이,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전기충격요법이라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외적요인에 의해 휘둘렸던 인생이었다. 

 

어릴 적 시를 적어오라는 숙제에 그녀가 처음 보인 열정, 첨으로 언니가 그건 아냐 고쳐 적으라고 할때 처음으로 자신의 느낌을 믿고 적어 내렸다. 그런 결단력이 잠시 그녀에게 머물렀엇다. 삶은 어짜피 자신을 주제로 주관적이어야 한다. 그 주관을 가지고 사람과 소통하며 사회적 주관을 갖게 되고, 나아가 객관적이 된다고 본다. 
사람들은 전부 제각각 자신만의 틀이 있다. 자신만의 천사가 있다. 
그 천사를 빨리 안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 같다.

그녀가 스스로를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가둬버린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않고 숟가락에 밥을 올려주는 대로 끌려 8년을 고통스럽게 갇혀 있었다. 어쩌면 정신병원이 아닌 스스로 그곳에 갇혀있는 것을 더 원했는지도 모른다. 돈을 벌어야 된다는 강박관념도 없고, 무얼 해내야 한다는 의무도 없고, 스스로 억압에서 내려놓고 싶어 그녀는 그곳에서 단, 한 번도 발악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천사를 찾기 전에는 말이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곳이다. 남의 의해 갇히기도 했지만 프랭크나 오진이라고 말해 주던 의사로 인해 그녀의 천사를 찾도록 도움을 받았으니 말이다. 
삶은 흘렀고, 시간이 멈추지 않아 여러 곳을 여행을 다니며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찾았기에 그녀의 여정에 우리는 감동받는 것이다. 그녀가 그대로 멈추었다면 그녀는 그대로 정신분열증을 앓는 환자로 마감했을 터였다.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천사를 찾아 세상에 나오라고 응원해주고 있다. 나도 이렇게 세상에 나와 있으니 당신들도 알을 뚫고 나오라고 말이다.
그녀의 통로는글쓰는 것이었다. 그게 그녀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이라는 걸 알기에 너무 멀리 돌아서 왔다. 
이 영화를 보고 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각자의 캐릭터일뿐이다. 외향적이든 내성적이든, 사교적이든 비사교적이든...각자의 스타일...자신에 맞게 옷을 입고 각자의 색을 칠하면 되는 것이라고 본다.
누구에게나 태어난 이상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부여받는 건 동등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누가 끄집어내 주지 않는다. 스스로 나서지 않는 한 자신안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