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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이든 2019. 3. 12. 21:36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감독 자비에 르그랑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장은 아내와 아이들의 보호막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으로의 폭력을 막아져야 할 보호막이 그 보호막안의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가족에게 당하는 폭력은 그들이 숨을 곳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암시한다. 
세상밖으로 폭력이 표면화되지 않은 이상, 이들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법은 가정폭력을 가정내 불화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정 내 폭력이 공포 그자체이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사람과 닫힌 공간에 있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버지라는 자가 남들에게 보여지는 사랑으로 덮어 가하는 폭력은  그들을 매일같이 차디찬 삶에 놓이게 된다. 
 
이 영화가 영화보다 더 무섭고 치 떨리는 건 법이 들어올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고, 위장해서 담겨있기 때문이고, 죽지 않고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때문이다.
 
이 영화가 다른 가정폭력과는 달리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아이의 시선에 몰려있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진짜 꼼짝할 수 없게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11살의 줄리앙의 행동과 표정으로 아버지에 대한 폭력의 깊이를 가늠하느라 내내 긴장했다. 저 아이가 저렇게 두려워하는 아버지의 폭력이 언제 노출되나,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아버지란 사람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그 사람'이라고 부르는지,
부모 연락망에 아버지란 사람의 존재는 없으며, 엄마의 휴대폰번호를 끝까지 감추려고 하는지, 엄마와 살고 있는 집을 저 작은 몸집으로 필사적으로 숨기려 하는 것인지 극도의 긴장감으로 몰입해 갔다.
우리는 연약한 여자와 아이들을 때리는 가장을 향해 인간보다는 짐승같다고 욕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인간다운 모습으로 서 있기에 더 무섭다. 짐승같은 폭력의 증거물이 될만한 걸 내 놓지 않는다. 단지 아이의 시선에 우리는 계속 긴장하며 아빠를 주시하게 만든다. 
어떻길래, 어느 정도길래, 줄리앙이 저렇게 필사적인 거야.
하물며 줄리앙과 아버지가 몰고 다니는 차안에 있으면 앙투앙의 얼굴로 화면이 꽉 찬다. 무언가 터질 것 같은 불안함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줄리앙이 거짓말하고 있고, 그걸 아는 아빠 앙투앙도 아들을 몰아부치고 않고  무지 침착하게 아들 스스로 불게 기다리고 억누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줄리앙의 엄마 미리암(레아 드루케)과 아빠 앙투안(드니 메노셰)은 법정에서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의 양육권을 두고 다툼중인 첫화면을 내민다. 
큰딸 조세핀은 성인으로 면접권으로 자유로운데 초등학생인 아들 줄리앙은 그렇지 못하다.
조세핀(마틸드 오느뵈)과 줄리앙은 아빠에게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앙투안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앞세워 엄마가 아이들과 자신을 왕따 시킨다고 말하고, 엄마 미리암은 자신을 스토킹하고 협박에 폭력까지 행사한다고 주장한다.
 
법원은 결국 미리암과 앙투앙에게 줄리앙의 양육권을 분배한다.
줄리앙으로 하여금 정해진 날마다 앙투앙과 시간을 보내게 한다. 역시 법은 아이의 의견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줄리앙은 아빠랑 살기 싫다고 말했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볼모로 앙투앙은 아내에게 집착하며 접근을 시도한다. 
왜 줄리앙이  그토록 아버지의 시선을  마주하기 싫었는지, 이혼했음에도 양육권을 가장하여 아내에게 집착하는 앙투앙은 아무래도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앙투안이 심각하다는 건 영화가 끝에 가서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 초반과 중반은 11살 줄리앙이 엄마를 아빠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피나는 노력에 눈물이 날 정도다.
가정폭력을 그저 가정사불화로 다루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그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공포인지를 표면화시켰다.
 
그토록 마주하고 싶지않은 그사람과 매주 봐야 하는 줄리앙의 시선으로 들어가보자.
앙투앙에게 줄리앙은 아내 미리암을 붙잡기 위한 수단이다. 그의 진짜 목적이다. 줄리앙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아들을 이용해 전처가 살고 있는 집, 전화번호, 그리고 접근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엄마 미리암과 줄리앙은 할머니집에서 사는 것으로 위장한다. 아빠를 만나는 날은 할머니집에서 사는 것처럼 자신을 데리러 온 아버지의 차에 탄다.
그사람에게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는 표정으로 차에 올라 시선을 마주치지도 대답도 하지 않는다. 어린 줄리앙의 표정은 엄마를 아빠에게 노출시키지 않기위해  계속 거짓말을 한다. 

둘이 차 안에 타고 있으면 왠지 공포감과 긴장감이 더 증폭된다. 아들을 향해 폭력을 가하는 것도, 고함을 치지도 않는데 줄리앙이 시선이 아빠와 마주하지 않고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굳어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엄마의 연락처를 묻지만 "엄마는 휴대폰이 없어요."라 답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들의 노트에서 엄마의 연락처를 봤다. 아들은 예전번호라고 둘러 대지만 아빠는 아들의 노트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건다. 엄마가 받는다.
앙투앙은 할머니집에 줄리앙을 태우러 갈때마다  엄마를 보고 간다고 불러달라고 한다. 엄마가 집에 없다고 하면 어디갔냐고 꼬치꼬치 묻는다.
이쯤에서 11살 줄리앙이 엄마를 아빠로 부터 지키기 위해 끝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앙투앙은 그들이 할머니집이 아니라 다른곳에서 살고 있다는 걸 눈치채게 된다. 그리고 아들의 가방에서 열쇠를 빼앗고 주소를 불라고 압박을 가해 온다.
줄리앙은 아빠의 다그침에 "죽어버려"란 말을 내뱉는다.  이 정도면 폭력이 나올만한데 그는 아무 말없이 운전을 한다.

 

엄마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줄리앙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엄마가 사는 아파트를 안내하며 운전해가는 동안 줄리앙은 두려움에 눈물을 계속 꾹꾹 누른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아파트로 들어서지만 "인식할수 없습니다" 이란 기계음과 함께 줄리앙은 도망쳐 달아난다. 하지만 앙투앙은 아들을 쫒지 않고 돌아간다. 계속 도망치지 않고 돌아와 아빠의 차에 다시 탈 수 밖에 없는 줄리앙은 더이상 버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하지만  앙투안은 물러설 생각이 없다. 결국 아빠와 같이 엄마랑 살고 있는 9층 아파트로 같이 동행한다. 
그리고 줄리앙의 한마디"엄마 때리지 마세요"로 아빠 앙투앙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엄마임을 알 수 있다.

 

줄리앙이 그토록 보호하고자 했던 엄마를 지키지 못하고, 적대감과 두려움으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엄마가 애인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엄마의 아파트에 들어가 집안을  다 뒤지고 다닌다. 엄마는 그를 경계하고, 아들 줄리앙은 엄마옆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굉장한 집착과 의처증이 이 가정을 파괴했던 것이다. 집착이 자식과 아내로부터 외면당하고 이혼까지 했음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사람을 피해 전화번호를 바꾸고, 사는 곳을 숨기고, 피해다니는 가족을 집요하게 공포로 몰아 넣고 있다.
그를 낳아준 부모마저 그런 아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앙투앙만 빠지면 너무 행복한 가정이다. 괴물을 가장으로  폭탄처럼 끌어안고 산 것이었다.
 조세핀의 생일선물을 주기 위해 왔다는 문자에 조세핀과 엄마는 긴장한다. 엄마가 빠져나간 곳을 바라보며 조세핀은 노래를 하면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즐기지 못한다. 다행히도 이모가 등장해 앙투안을 내쫓으며 일단락 된다.
 
가정폭력은 밖으로 폭탄처럼 터지지 않으면 계속 그 안의 있는 가족들은 평생  폭력에 멍들게 된다. 아들 줄리앙이 "죽어버려"라고 외친 한마디가 비극적이게도 그 폭력으로서의 끝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을 위협하는 가장, 
우리는 가정폭력에 평생 고통스럽게 살다가 끝내는 남편을 죽이고 ,부모를 죽이고, 법정에 앉아야만 했던 가해자를 언론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들을 가해자라고 불러야 하는 현실이 너무 가슴아펐다. 그들이 살인을 저지를 때까지 주위의 시선은 그저 가정내의 일이라고, 그걸 범죄로 인정해 주지 않았고, 법은 그들을 지키기에는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새벽에 앙투앙이 아파트 벨을 누르는 자체로 엄마와 줄리앙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문을 두들기고 발로 찾고 급기야 총까지 쏘는 것으로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몸서리친 공포에 대해 실감했다.  
내내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고, 그저 아이의 표정속에서 읽었던 공포가 현실로 나타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극대화되고, 문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것으로 범죄로 비추어진 것이다. 
그래야 이웃이 경찰에 신고를 해주고, 경찰들이 출동하여 그를 잡아갈 수 있게 된다. 그는 경찰들에게 제압되면서도 "내 아내다"라고 말한다.
아내에게 누가 그래도 된다고 했는가?
도대체 가정안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을 왜 법은 이렇게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인가?
사랑안으로 폭력을 포장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폭력을 행하는 가장에게 부모로서의 양육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 두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살인범보다 그 죄를 물음에 있어서 가장 엄중한 처벌을 행해야 한다.

 

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말하는가?
앙투안은 곧 풀려나와 그들에게 위협을 가할 것이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말한다. 죽지 않은 이상 끝나지 않는다고.

 

우리는 얼마전 사회적으로 이슈를 몰고 왔던 전처 살인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폭력적인 남편과 아버지를 피해 가족은 숨어 살았다. 결국 남편은 그들의 주거지를 알아냈고 전처를 살해했다. 그리고 엄마를 잃은 딸들은  아버지를 제발 사형시켜달라고 언론을 통해 말했다.
제발 이 비극이 끝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법원은 폭력의 증거가 없다고 짐승에게 아이를 보냈다. 누구하나 죽어나가야 들여다보겠다고 하는 것 같아 정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공포스럽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압도적으로 몰입했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 주제의 무거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