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3. 1. 18:26

 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


감독 마이크 바인더  

 

 

남의 슬픔에 섣불리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영화였다. 심장이 끊어지는 고통이 어떤 건지, 아내와 딸 셋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게 어떤 건지 솔직히 어떤 건지 그 아픔의 크기가 얼마만큼인지, 그 고통의 기억이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

2001년에 일어난 9.11사건, 그 사건으로 정말 너무도 많은 목숨을 앗아 갔고, 또 많은 가정을 비통하게 만들었다. 
그 아수라장이었던 곳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삶이 멈춰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다.

살아 있는 것이 더 지옥인 삶을 이해한다고 해도 우린 그 사람이 아니기에 그저 타인일 수밖에 없다. 그  남자가 겪는 고통에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위로의 손길을 쉽게 내밀지 못한다.
그는 치과의사였다. 가족과 공항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공항 대기실에서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참사를  TV로 보며 직감했다. 저기에 자신의 가족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게 느껴졌다고 ....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숨거나 기억해 내지 않으려고 발악한다. 
사람이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망각이 있기 때문인데, 그 기억은 더 생생하게 그를 쥐어짜버린다.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든다. 혼자 남은 게 역겨워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없게 만든다.

 

그가 찰리 파인맨(아담 샌들러)이다. 세상과 담을 쌓고 자신을 세상과 격리시켜 혼자 가두고 만다. 
고물 스쿠터를 타고, 귀에는 세상의 소리를 막기위해 헤드셋을 쓰고,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의 볼륨을 높이며  듣기 싫은 소리를 차단한다
그가 하는 것은 페인트를 사고, 자재를 사서 부엌을 고치는 것이다. 한달이면 몇번이나 고치고 또 고친다.
그게 아내 도린이랑 한  마지막 말이기 때문이다. 아내와 애들이 원하는 것이다. 부엌을 고치자고 했고 그걸 애들도 원했다.

 

그는 일도 안하고 아내의 부모가 찾아와도 만나주지 않는다. 

그가 하는 건 부엌을 고치는 것과 게임을 하는 것이다.

중독이 강한 무언가에 자신을 맡기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이 자신을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자기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사람들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다. 나름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집주인은 그런 그를 위해 그가 원치 않는 사람들의 방문을 막고, 청소나 기본적인 것만을 해결할  몇 명의 출입 말고는 그를 혼자 이겨내게 놔두는 것이다.

그러나 장모나 장인은 그런 그에게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들도 딸과 손녀들을 잃은 피해자인데 사위마저 자신들을 외면하니 속이 상하면서 분노가 생기는 것이다.

어느 날 대학동창인 앨런 존슨(돈 치들)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앨런 존슨은 치과의사로 그의 사고소식을 신문으로 보고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기억못 하는 찰리 파인맨의 달라진 모습에 당황스럽다.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밀어내 버린 것 같았다. 

앨런 존슨은 그를 도우려고 정신과 의사를 소개하지만 그 사건을 꺼내려고 하면 난폭해지는 찰리로 인해 난감하다.
그런데도 자꾸 그가 걱정되고 신경쓰여 외면하지 못한다.

그가 다시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정신과 의사 안젤라에게 데리고 간다. 존슨의 도움을 더는 거절하지 않고 찰리는 첫 발을 내딛으려 한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 앞에 가서도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다. 헤드폰을 끼거나 휴대폰 음악볼륨을 높이 올리며 대화를 차단한다.

 

"얘기하기 싫은 걸 얘기하게 하니깐 화가 난다."고 말한다. 
의사는 "이렇게 아무 얘기도 안할거면서 매주 병원에 오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당신은 너무나 소중한 걸 잃은거다. 진심으로 얘기할 수 있을 때까지 이건 그냥 연습에 불과하다.누군가에게는 꼭 해야한다."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상담실을 빠져나온 찰리 파인맨은 자신을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앨런 존슨에게 그 날의 일을 힘겹게 끄집어  말하게 된다.
 
그 후, 기억을 끄집어 낸 찰리는 너무 고통스러워 한다.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게  고통스러웠던 그는 결국 권총을 꺼내든다. 그러나 총알이 없다. 그는 거리로 뛰쳐나가 지나가는 차에 시비를 걸고 권총을 겨눈다. 

 

경찰이 가게에 있는 걸 알았던 찰리는 경찰과 같이 총을 겨누며 경찰이 자신을 쏘아 죽여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더 난동을 부려 그들을 자극시키려 했지만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도와주려던 앨런 존슨은 왠지 자신이 너무 심하게 밀어부쳐 이렇게 된 것 같아 미안해 한다. 이 사건으로 정신감정을 받고 재판에 서게 된다. 경찰과 후견인 장인 장모는 그를 정신병원에 가두기를 주장한다. 

 

그는 외상후 장애와 환각증세도 있다. 그가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주장과 그의 담당의사였던 안젤라는 찰리가 본인 스스로 헤쳐가야 한다고 우리가 만들어 놓은 틀안에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틀에 맞춰야 한다고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을 반대한다.

하지만 전적으로 그의 후견인인 장인 장모에게 결정권이 주어진다. 장인 장모는 사위가 자신들과의 왕래를 끊고 전화도 안 받는다고 찰리의 행동이 자신들을 두 번 죽이는 거라며 흥분한다.

그리고 아내의 사진과 아이들의 사진을 재판과정에서 그에게 내보이자 찰리는 귀를 막고 울부짖는다. 결국 찰리를 퇴장시키고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 후견인을 다 불러모아 9,11유가족문제는 나라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가정사라고 말한다. 

 

지금 사위는 매우 힘든 과정을 겪고 있고, 가족이라곤 후견인 장모 장인밖에 없으니 두사람이 결정하되 따님이었다면 정신병원에 넣길 바라는지 잘 생각하라고 한다.

찰리는 그저 상처 받은 사람이다. 정신병원에 보내야 할 사람이 아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그걸 버티는 것이다. 기억하지 않으려 하지만 항상 죽은 가족들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집안에 죽은 사람들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길을 걷다가도 다른 사람들 얼굴 속에서도 계속 선명하게 보여 고통스러워한다.

장인 장모가 가지고 다니는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했다. 자나 깨나 눈에 밟히는 아내와 딸로 인해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것도 혼자 말이다. 심장이 뜯겨 나갈만큼 아퍼 본 사람만이 그게 상처라는 걸 알 수 있다. 그게 정신병이 아니라 한 사람이 감당하지 못해 숨는 상처라는 걸 아는 것이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고 더 선명하게 가슴을 파고들어 그가 게임중독으로, 그 기억의 자리가 없는 대학시절로 가 앨런존슨과 공유하는 것이다.

 

허리 끊어지게 웃어도 그 웃음이 아프고, 게임에 중독되어도 몰입할 수 없는 삶, 매일같이 아내와 애들이 원했던 부엌 싱크대를 바꾸어도  용서되지 않고, 자신이 도망갈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더 지옥인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줄거라고 믿어보고 싶지만, 그가 세상에 나와 어울릴 때 가능한 말이지 혼자 저러면 그는 평생 그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남의 아픔을 드러다 볼 수는 있어도 남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들에게 위로의 손을 내미는 게 또 다른 상처를 낼까봐 두렵다.
너무 어둡고 칙칙하고 메마른 그의 삶이 밝은 세상과 같이 아퍼하는 법을 권하고 싶다. 아퍼도 사람들 속에서 아퍼해주기를 그와 같은 고통을 받는 모든 분들이 혼자 삶을 멈추어 세우지 않기를 바래본다.

결국 'Reign Over Me' 뜻은 나를 통제하는 그 어떤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게 9.11 사건으로 잃은 가족에 대한 상처로 찰리 파인맨의 삶이 지배당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