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8. 12. 26. 11:25

감독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그리스 영화를 첨으로 접했다. 그리고 옴니버스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쉽사리 글을 적을 수가 없었다.

사랑이야기로 쉽게 접근할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좀 더 깊게 들어가자니 무거워질 수밖에 없어서다.

이 영화는 그리스가 처한 국가적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  가족, 그리고  개인의 삶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밀도 있게 펼쳐져 있다.

감독이 영화 한 편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넘치다 보면 영화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구성면에서 흐트러지고 이도 저도 아닌 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영화는 중동의 위기로  인해 유럽으로 유입된 난민 문제와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유럽에 닥친 국가재정위기에 인물들의 사랑을 가미하여  다룬 짜임새 굵은 영화라고 본다.

세 편의 스토리는 서로 다른 나라 다른 언어를 쓰는 20대, 40대, 60대의 커플들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사랑의 힘으로 강하게 끌어 나간다. 마치 사랑의 신 에로스처럼 말이다.

우리 모두 각기 다른 얼굴이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만은 같은 모습이다.

 

# 부메랑

정치를 전공하는 그리스인 여대생 다프네는 밤길을 가던 중 두 명의 괴한들에게 공격을 받는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파리스가 그 광경을 보고 그녀를 도망치게 도와준다.

며칠 후 버스에 탄 그녀를 우연히 발견한 파리스는 그녀가 흘리고 간 아이폰을  돌려주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를 구해준 파리스는 시리아 난민이다. 5년째 계속되는 시리아 내전으로 그리스로 이주해 온 불법 이민자였다. 이민자였다.

거리에서 하루하루 부메랑을 팔며 생활하고, 폐공항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사랑은 깊어간다.

중동의 위기로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 난민들이 진입점인 남유럽으로 몰려 꾸준히 환승 국의 하나인 그리스로 유입되고

유럽에는 난민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로 인한 난민들의 범죄 또한 날로 급증하는데 유럽연합과 정부의 대응이나 지원은 늦장만 부리자 유럽 각국에서는

파시즘이 일어나게 된다.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난민 수용으로  세금이 충당되고 그로 인해 국가의 빚이 증가한다.

그러면 세금은 오를 것이고 경제적 부담을 끌어안아야 하는 사람들은 난민들이 결코 달가울 수가 없다.

기생충처럼 자신들의 삶을 좀 먹고 있다고 생각한 다프네 아버지는 난민들로 인해 자신의 일도, 삶도,자존심도 다 사라졌다고 여겨 자신이 직접 그들을 처단하려고 발 벗고 나선다.

소위 필그림이란 극우파 조직에 가담하여 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하게 된다.

겁에 질린 난민들은 또 목숨을 걸고 망명을 하려 하고 극우파 조직의 폭력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폭력사태로 번지게 된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넘어온 곳에서 또 파시스트에 의해 또 다른 곳으로 가야 되는 운명에 놓인 파리스는 그들 앞에 놓여있는 현실이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그 두려움도 사랑의 힘을 이기지는 못했다.

파리스는 끝내 다프네로 인해 캐나다로 망명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에 남게 된다.

그러던 어느 밤, 필그림 조직은 난민들과 파리스가 있는 폐공항을  습격한다.

마침 다프네는 파리스와 낡은 비행기 안에서 자고 있었다.

소리에 놀라 일어난 도망가던 중 다프네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속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게 되고, 아버지도 도망가는 난민들 속에서 서있는 다프네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다프네가 총에 맞아 쓰러지게 된다.

이 첫 번째 제목은 부메랑이다. 아버지는 난민들을 몰아내려고 강압적인 폭력을 휘두르다 자신의 딸을 잃었다. 

공존하며 살 방도를 찾아갔더라면 잘못 방향을 잡은 분노의 힘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파리스가 첨에 정치를 공부하는 다프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정치는 사람들을 둘로 나누게 한다는 말을 한다. 

억압된 정치와  종파 갈등으로  난민이 되어야만 했던 파리스도, 국가의 경제위기로 실업자가 된 아버지도 결국 다 정치적인 문제로 빚어진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리스와 시리아가 다 같이 힘든 상황이고, 그나마 같은 나라 사람끼리 죽이지 않으니 그리스가 훨씬 낫다고 말한 파리스였다.

시리아 내전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사망하고, 난민들은 국경을 넘어 배를 타고 유럽으로 넘어오다 배가 침몰하여 수많은 난민들이 죽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그때는 그저 남의 일로 여겼다.

그러나 난민 문제는 이제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예맨의 난민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어서 그리 쉽게 스쳐갈 문제는 아니었다.

#  로세프트 50mg

어린 아들은 "우리 집도 경제위기인 거야?"..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면 부모들이 잠을 같이 안 자? "라고 아빠에게 묻는다. 

소위 요즘 말처럼 웃프다. 저 어린아이까지 가정의 경제위기라 토로하는 것이 말이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요 산업인 관광업. 해운업이 경기가 나빠지면서 세수가 감소하고 자영업자의 몰락, 실업자의 증가 등으로 그리스는 경제적 위기를 맞이한다.

그리스 정부는 공무원 수를 대폭 증가시켜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복지를 통해 사회안정을 꾀하려 한다. 

부족한 돈을 외국에서 빌려다 과도한 복지와 과도한 정부지출의 증가로 재정은 더 악화되고, 또 개인들은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아 투자율만 키우다 보니 빚은 늘고 경상수지 적자규모는 커지고  제조의 경제력이 약한 나라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는 정책 실패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구제금융과 긴축재정으로 대량학살이라 할 만큼 대량해고로 이어지고, 지오르고의 회사도 비켜갈 수 없었다. 

주택담보대출에 생명보험금, 가스, 전기비 , 재산세 , 집세를 내고도 의료보험료 카드대금을 다 내지 못해 지오르고는 빚에 허덕였다.  평생 이뤄 온 것들이 없어지고, 그건 마치 자신의 무능이 되어버린 현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우울증. 불안장애로 로세프트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우연히 바에서 한 여자를 만나 원나잇을 즐긴다. 그렇게 하룻밤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고 그가 흘리고 간 로세프트약을 핑계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지오르고가 다니는 회사에 매각을 위해 파견된 사람이었고, 지오르고는 매각 회사의 직원임을 알게 된다.

엘리제는 지오르고를 로제프트 약에 의존하는 약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지오르고, 두 사람은 엄연한 불륜이다. 

하지만 불륜이라고 비난할 틈도 없이 대량해고가 주는 압박감이 스토리를 강하게 끌고 갔고 견디기 힘들었다. 

나도 IMF를 겪은 세대로서 이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 나라가 겪는 현실에, 아니 지금 세계 인구의 2/3가 고통받는 위기에서 엘리제는 회사에서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는 달리 35%의 인원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으로 지오르고의 해고를 강행하지 못하고 본사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

지오르고의 친한 동료의 해고와 그의 자살소식을 들은 그는 '불공평하지만 이게 현실이야 '이라고 말하는 동료의 충고와 비난을 동시에 받아들이며 끝내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남유럽 국가에 대해 유럽연합이 제시한 경제 정치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비인간적인 긴축정책에 따른 공포와 압박감으로 회사의 분위기는 인간관계에 대한 것까지 마비시키고 있었다.

공공서비스와 긴축정책을 밀어붙였던 유럽연합을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로 표현했고, 임금과 퇴직연금의 급격한 감소로 세금 충당하기도 벅찬 40대의 가장은 아들과 가족을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우울증 약을 매일같이 먹어야 한다.

지오르고의 친구는 은행 담보대출로 집이 날아가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임신한 아내가 중절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저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 취급을 당한 회사로부터의 해고, 그리고 자살로 이어졌다.

다들 자기가 되지 않기를, 옆에 사람이 해고로 짐을 싸고 나가는데도 차마 고개 숙이고 눈을 못 마주치는 모습, 서로의 정면을 마주할 수 없는 사람들,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한 엘리제, 그녀 역시 로세프트 약을 먹으며 손 놓고 떠난다. 그렇게 유럽연합은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부작용만 잔뜩 남겨놓고 떠나간다.

독일학자인 세바스찬과 그리스 가정주부인 마리아

 두 번째 찬스

마트 앞에서 장을 본 봉지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리스어를 할 줄 모르는 그는 버스를 기다리는 마리아에게 허리가 아파서 주울 수가 없으니 좀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마리아는 그것들을 봉지 안에 주워 담으며 그리스어로 자신은 돈이 없어 치즈도 못 사는데, 돈이 없어 토마토도 못 사는데 하면서 불공평한 현실에 화를 낸다. 

그게 세바스찬에게 내는 화는 아니라는 걸 안다. 세바스찬은 그녀가 왜 그러는지 말을 못 알아듣지만 화가 난 것은 표정으로 봐 안다. 그녀는 매주마다 마트에 온다. 살 돈은 없지만 그저 마트에 매주 온다.

세바스찬(J.K시몬스)은 독일 역사학자로 그리스가 맘에 들어 퇴직 후 이주해 온 65세의 싱글이다. 마리아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가정주부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둘은 매주 같은 시간에 마트 앞에서 만난다.

젊었을 때 사랑했지만 두려워 용기를 못 낸 세바스찬은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처럼 두 번째 기회를 위해 용기를 내려한다. 국립 도서관에서 일하는 세바스찬은 마리아를 만날 때마다 책을 선물하고, 조금씩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다른 언어로 표현해도 느낌을 아니까, 문을 밀고 나가는 법을 가르쳐 준 세바스찬으로 인해 두 번째 찬스를 갖게 된 그녀는 그 기회를 선뜻 잡을 수 없다. 남편과 자식이 있다.

감독은 세 번째 이야기에서 마리아를 통해 다프네와 지오르고, 그의 아들인 손자까지 한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으로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딸인 다프네가 난민과 사랑에 빠진 것과 남편이 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아들인 지오르고의 불륜도....

어려운 살림살이도 그래서 불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그저 집과 마켓을 오가며 답답한 현실에 나만 외로운 것인가, 나만 힘든 것인가를 마켓 안의 사람들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옷에 피를 묻히고 들어온 남편은 자신의 실패를 남탓하며 자신이 저주하는 정치인과 똑같이 남에게 해를 가하고 있다.

남 탓하는 남편에게 일침을 가하고 가방을 싸는데,한통의 전화로 그녀는 좌절한다.

다프네가 총에 맞았다는 비보를..... 그 사실을 알리 없는 세바스찬은 매일같이 마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다.

딸의 죽음과 아들의 이혼, 그녀의 가정은 따뜻함을 찾을 수 없는 황량함만이 깃든다.

1년 후, 지오르고가 발견한 책 '세컨드 찬스'에 적힌 내용을 보고 세바스찬을 찾아가고, 사정을 알게 된 그는 마리아를 찾아가 재회한다.

늦었다고 생각하며 놔버린 것들이 어쩜 시간문제가 아닌 용기나 두려움의 문제였다면 어쩔래 라는 말하는 듯하다.

진정한 사랑은 외부요인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독은 각 스토리에서 사랑과 정치 간의 대결구도로 그리스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입시키며 그리스라는 배경하에 그리스가 처한 현실을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장애물을 설치해놓고 그 안에 사랑이 보여주는 위대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민 문제를 다룬 #부메랑에서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고통받는 난민을 표현하기 위해 시리아인 파리스를, 로세프트에서는 북유럽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를 , 세 번째는 세컨드 찬스에서는 독일인 세바스찬을 말이다.

유로화가 만들어지자 유로존의 대부분의 부를 독일이 독식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로존의 통화정책은 유럽 중앙은행에서 담당했고 그곳은 독일이었다.

독일은 미국발 경제위기에도 제조 강국으로서  수출로 인한  높은 성장률과 노동에 따른 저임금과 저금리로 빌려준 통화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각종 이득을 취하게 된다. 거기다 과감한 구조개혁과 경제사 회개 혁등 정치적 성공을 거둠으로써 견고한 성장을 해 나가게 된다.

그에 반해 그리스는 2001년에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과도한 정부지출로 유로화로 인해 화폐가치는 절상되어  수출 경쟁력이 없는 그리스는 무역수지 적자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고 그리스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유로존의 통합은 독일에게는 부를 안긴 셈이다. 세계는 다 연결되어 있고 시리아의 정치상황이 난민을 만들었고 그게 그리스의 사회문제로 유입되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 경제의 위기로 전해지고 그리스 가정을 파괴하였다.

거시적 문제를 그리스의 가족 이야기로 서로 다른 나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일지라도 사랑으로 묶어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사랑의 신 에로스와 그리스의 정치와 경제문제를 그리스를 배경 삼아 훌륭히 스크린에 담아냈다.

바로 지오르고로 명연기를 펼친 사람이 감독이다. 감독과 배우인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의  첫 연출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게 그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참 많은 느낌과 감동과 회한을 내게 남겨주었다. 그래서 결코 가볍게 사랑이야기로 풀어헤칠 수 없었던 영화였다.

낭만과 신화의 나라가 현재는 국가적 경제위기 속에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감에 있어 사랑은 위로이고 용기이고 희망이 되어준다. 더 극한 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떤 모습으로든 그들이 매개체로 하나가 되는 것은 사랑이다.

 그리스 내부의 문제가 아닌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각기 다른 이유 생존을 위해, 또는 매각을 위해 또는 사랑을 위해 그리스로 왔고 그 가혹한 그리스의 현실 앞에서도 그들은 사랑을 키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