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8. 12. 27. 23:08

감독    에이슬링 월쉬

"내 인생의 전부가 이미 액자 속에 있어요."

영화 내사랑

이 영화에 난 운명이란 단어를 쓰고 싶지 않다. 영화 제목이나 영화 포스터로 낚시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랑! 달콤한 걸 기대했다면 맘을 접고, 인생을 담고 싶다면 보아도 될 것이다.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 그 세상에 오직 창문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실존 인물 모드 루이스, 그녀는 실제로 캐나다 나이브 화가로  '그림 그리는 일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장애로 인해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았고, 창문을 통해 보이는 세상이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이 영화로 인해 알게 된 '나이브 화가'란 용어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 기존 미술 양식 문제에 구애되지 않고 자연과 현실의 시각적인 대상에 대하여 경건한 만큼 소박한 태도로써 건강한 리얼리즘을 예술의 기초로 삼는 아티스트를 말한다고 한다. 

모드 루이스 역

샐리 호킨스는 모드 루이스 역을  맡아 정말 내공 있는 연기력을 보여줬고, 정말 장애인 같은 그 느낌을 영화 속에서 잘 표현해 주었다. 아주  아주 소름 끼치게 말이다.

[내 사랑]이란 제목에 속아 이를 달콤한 로맨스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 화날 뿐이지, 원제 그대로 가져오지 않은 것 빼고 이 영화는 꽤 괜찮은 영화이다. 에단 호크는 남편인 에버렛 루이스 역을 맡았다. 그런데 모드 루이스보다 남편인 에버렛이 내가 말하는 장애인 같았다.

괴팍하고 말도 얼마나 못되게 하는지 정말 너무 몰입해서인지 비포선셋에서 가지고 있던 에단 호크의 이미지는 산산조각 나 버릴 정도로 깨져버렸다. 

이 영화는 내게 제목처럼 애틋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았다. 모드는 몸이 불편하다.

실존 인물 모드 루이스는 8살 때부터 턱의 발달이 멈추면서 성장이 느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모드는 너무 말랐고, 다리도 불편하고 , 걷는 것도 이상했다. 부모가 다 돌아가시고 난 후  오빠는 그녀를 고모집에 맡겼고, 고모는 그녀를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에단호크

모드는 에버렛 루이스라는 남자가 가정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무작정 그 작은 집에 찾아갔다.

정말 작은, 너무너무 작은 집에 사는 에버렛은 생선과 장작을 팔며 산다. 정말 딱 혼자 살만한 공간에 그녀가 잘 곳도 없는 집에 가정부가 웬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층도 아닌 다락방에 있는 침실에서 같이 자고, 낡디 낡은 벽과 딱 창고 같은 느낌밖에 나지 않는 곳이었다. 그는 그녀를 너무 함부로 대했다. 짜증 났다. 너무 몰입해 버린다.

그만큼 두 사람의 연기가 실제 생활처럼 착착 감겨 들어갔다. 에버렛은 고아에 웃는 얼굴을 본 적 없는 외톨이였다.

그는 몸이 불편한 이 여자를 그냥 자신보다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 취급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시했다.

개를 야단치는 그녀에게 "너의 위치를 알려주겠어." 했을 때는 순간 욱했다.

"이 집 서열 순위를 말해주지. 나 다음이 개와 닭이고 당신이 그다음이야."

아무리 사랑이 서툴고 고아로 외롭고 고단하게 살았더라도 충분히 상대를 적셔 주는 건 말이 아니라도 된다.

상처 받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하나 보다.

모드의 작은 집

집을 꾸며도 된다는 말에 그녀는 그 작은 집에 그림으로 채워 나갔고, 창문은  그녀가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 같았다.

그녀는 에버렛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해요. 하지만 난 좋아해요." 서로를 조금씩 보듬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들 사이엔 온기가 없어 보인다. 돈이 없어 간단히 교회에서 형식만 취하고 그렇게 둘은 부부로서 인연을 묶는다.

몸은 불편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어린애 같았다. 그녀의 창문이 그녀가 바라본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불편한 그녀를 위해 좀 더 다정다감한 남편이 되어주었다면. 불편한 그녀를 위해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드 루이스가 그린 그림

실제 모드 루이스는 "손에 붓이 쥐어져 있고 눈앞에 창문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라고  했을 만큼 그 작은 집 창문을 통해 그린  예쁜 그림들, 바람 한점 드나들 것 같지 않는 에버렛의 마음에 온기가 들어섰다.

모드는 그의 메마른 집과 가슴에 풍경화를 채워주었고, 에버렛은 그 작은 집이란 스케치북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그림으로 채워진 작은 집과 에버렛과 모드는 서서히 나이 들어갔다.

샐린 호킨스

장애를 갖고 성장하면서 가족들의 구속 같은 보살핌은 그녀를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고, 소외된 사람은 또 같은 소외된 사람을 알아보며 그 긴 인생의 여정을 담아내나 보다.

정서적 결핍과 세상과 차단된 마음을 가진 에버렛이 맑은 영혼을 가진 여자 모드를 만나 서로의 결핍을 메워주고 있다면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그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산 것들이 그저 흐르는 것이 아니고 그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축적된 감정들이라는 것이다. 

모드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에버렛은 이렇게 말한다.

"내 아내가 보여.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자신의 운명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이었구나, 그런데 그렇게 못되게 굴었어.

"내가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이 말 또한 에버렛이 모드에게 한 말이다.

왜 모드를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후회하는 말이다. 그랬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장애를 가진 모드를 본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에버렛이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은 사람은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닐까 한다. 

그녀의 그림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있고 그녀의 그림은 밝고 생기발랄하며 예쁘다.

그녀는 죽어가며 에버렛에게 "난 사랑받았어."라고 말할 때  나도 이 두 사람을 보이는 거로만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사랑하며 사랑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두 사람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감정인데, 표현이 서툴게 나온다 하여 오해했었다.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내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울컥했다. 혼자보다는 둘이 서로를 물들이며 사는 삶이 인생이고, 사랑이 어떤 형태로든 인생에 물들게  촉진제 역할을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실존 인물인 모드 루이스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실존인물을 그대로 갖다 놓은 듯 해 놀라웠다.

마치 장애를 가진 사람인 양 표정 짓고 행동하고 표현한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당연 베스트다.

부부가 살았던 그 작은 집은  그대로 복원돼 캐나다 노바스코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