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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이든 2019. 1. 7. 17:29

왕이 된 남자 영화포스터

천만 관객을 불러들인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에 공을 세운 덕에 15년간 조선의 왕으로 살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사라진 광해군 15일간의 행적을 상상력으로 구성하여 만든 추창민 감독의 작품이다.

왕위에 오른 광해는 시시때때로 왕권 다툼과 정적들의 역모로 인해 독살의 위기에 놓이게 되자 점점 예민해지고  어떤 사람도 믿지 못하며  그는 급기야 난폭해져 갔다.

절대 권력 '왕'이라는 자리임에도 중전의 오라비를 역모를 죽이려는 자들앞에서 그를 지키고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왕,

음식조차 독이 들어 있을까 맘 편히 먹지 못하는 왕' 광해'

자신의 아내를 지킬 수 없는 왕,

작은 것부터 모든 일상이 기록되는 왕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리임에도 무기력해 보이고 가련하기까지 한 왕!

점점 예민해지고 난폭해지는 광해는 급기야 '이리 살 수는 없다' 생각하여 방책을 내놓는다.

모든 것이 노출된 왕, 그를 죽이려 드는 세력들로부터 자신을 대신하여 위협에 노출될 대역이 필요하다고 여긴 광해는  도승지인 허균에게 대역을 찾을 것을 지시한다.

명을 받은 그는 은밀히 광해를 대신할 대역을 수소문하고, 마침내 천민 출신인 만담꾼 '하선'을 발견한다.

영문도 모르고 하룻밤 왕의 대역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마침 진짜 광해군이 알 수 없는 독극물로 의식을 잃게 되고, 도승지 허균은 광해가 의식을 차릴 때까지만

어의와 왕을 가까이에서 모셔야 하는 상선과 도승지인 자신만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 하선에게 왕의 자리를 대역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왕이 될 수 없는 천민 출신 하선은 가짜 왕이 된다.

광해와 똑같은 외모와 타고난 말솜씨로 왕의 흉내를 제법 내는 하선에게 도승지와 상선은 왕과 같은 흉내를 내기 위해 교육을 시키게 되며 중전과는 절대 만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아무리 그래도 부부로 지낸 세월이 있는데 중전이 못 알아볼 리가 없다.

눈치채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 번도 웃지 않는 중전을 위해 웃으라고 하는 장면이나 중전의 오라비를 구해주는 모습이나 조금씩 호패법이나 대동법에 대해 정치적인 색이 아닌 백성의 입장이 되는 장면에서는 상상이 아닌 역사적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개입이 되었다.

천민 출신의 하선은 점점 왕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갔다. 백성을 위한 왕말이다.

백성들의 편에서 생각하는 왕!

사대의 예를 갖추라는 신하들의 말에 "적당히들 하시오.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요? 그깟 사대의 명분이 뭔데, 2만의 백성을 사지로 몰아야 하오. 임금이라면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 지라도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곱절 백 곱절 더 소중하오."라고 말하는 광해 아니 가짜 왕 하선! 우린 이런 왕이 필요했다.

상선이나 나인들의 개인 사정을 듣고 같이 분노하고 공분하는 왕이 있었고, 그런 달라진 왕의 모습에 다들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게 된다.

웃지도 않던 광해에 비해  웃음이 많고, 아랫사람들에게까지 한없이 따뜻했던 하선의 따스한 면모에 상선도 도승지도 점점 매료되어가는 표정들이었다.

왕이 달라진 모습에 궁인이나 신하들이 점점 의심을 하기 시작하고, 왕을 가까이에서 모신 도 부장마저 왕의 손에 굳은살이 있는 걸 보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중전마저 그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왕이 가짜임을 눈치챈 세력들은 왕을 살해하기 위해 팥죽에 독극물을 넣으라고 상궁에게 지시하고, 상궁은 나인 사월이에게 팥죽에 넣으라 한다. 

안 그러면 우리가 죽는다고 말이다.

그러나 사월은  그동안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왕을 차마 죽게 할 수 없어 본인이 삼키고 만다. 

독극물을 먹고 죽어가는 사월에게 '내가 임금이다'말하라 누가 널 이리 했는지를...

하선은 사월이를 죽게 만든 자들을 잡아들이고, 그들은 왕이 자신들의 목을 조이게 되자 그가 진짜 임금이 아니라는 궁인의 말을 듣고 군사를 몰고 들이닥치게 된다.

도승지 허균은 하선에게  떠나라 한다.

그러나  그는 "싫소. 사월이를 저리 만든 자들을 벌하지 않고는 못 떠난다" 라 말한다.

이에 도승지는 하선에게 말하기를 "하면 진짜 왕이 되시던가, 사월이의 복수를 하고 싶다면, 백성의 고열을 빠는 저들을 용서할 수 없다면,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루어 드리리다."

이 장면에서 반전을 꿈꾸었다.

허구를 역사적인 배경에 집어넣은 건 알고 있지만, 도승지가 하선을 진짜 왕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선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왕이 되고 싶소이다. 하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 죽어야 하고, 또 그로  누군가 죽여야 한다면 나는 싫소. 진짜 왕이 그런 거라면.. 내 꿈은 내가 꾸겠소이다."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그러면서 하선은 임금의 자리가 그리 편할 수 없는 자리라는 걸, 또 권력을 쥐었다고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자신의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하는 자리라는 걸 알았나 보다.

두 왕을 섬긴 도승지는 하선이 그동안 한 일을 적은 보름간의 승정원일기를  진짜 광해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불충을 알뢴다.

그리고 이 엄청난 비밀을 묻고자 했던 광해는 그동안 가짜 왕 '하선'을 죽이라 어명을 내린다.

가짜인 줄 알지만 진정 마음으로 섬기었던 하선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운 도 부장, 그리고 배를 타고 떠나는 포구에서 배에 탄 하선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어 머리를 숙이는 허균의 모습에 또 뭉클했다.

두 왕을 섬기었다는 도승지의 말처럼 허균의 마음 안에는 하선이 백성을 생각하는 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소불위 같은 왕의 자리도 어쩜 한낱 천민의 자리보다 힘들어 보이는 위치라는 걸 내게 보여준 것 같고, 높은 곳에 오를수록 떨어질까 하는 두려움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무리 화려한 궁전이라도 그 안의 사람들에게 웃음이 존재하지 않는 걸 보면 가진 거 없는 하선의 마음이 궁안의 왕보다 더 편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은 피 냄새만 가득했다.

그런 곳에 하선이 웃음으로 사람들을 끌어안았고, 그 웃음이 그 따스함이 그들의 언 마음을 녹여 주었다고 본다.

연기자 각자의 캐릭터가 그 역에 잘 스며들었고, 1인 2역을 맡은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예민하고 난폭했던 광해와 인간미 넘치는 천민 만담꾼 하선 역을 너무 훌륭하게 연기해 냈다.

충신 도승지 허균 역을 류승룡은 마치 자신의 옷을 걸친 듯 자연스러웠으며, 도부장 역을 한 김인권, 나인 역을 한 심은경, 조내관 역을 한 장광, 중전 역인 한효주까지 모두 모두 훌륭했고, 따뜻했고, 아련했다.

멋진 영화이고, 멋진 작품이었다.

왜 천만 관객인지 영화를 본 이들은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