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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14 26. 덕혜옹주 :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손예진, 박해일 출연
posted by 해이든 2019. 1. 14. 19:48

덕혜옹주 손예진

조선의 26대 왕이고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과 귀인 양 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 덕혜옹주! 솔직히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이다. 이 영화로 인해 우리는 덕혜옹주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60살의 나이로 얻은 늦둥이이고 하나 밖에 없는 딸이다. 그래서 그녀를 향한 고종의 사랑은 아주 남달랐다.

고종,명성황후외 가족사진

고종에게는 명성황후 민씨사이에서 얻은 아들  제27대 왕이며 대한제국의 2대 황제인 순종이 있다. 그는 일제의 강요로 양위하면서 즉위하였으나, 1910년 국권을 일본에 뺏기면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일곱번째 아들인 영친왕, 그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로 민비의 몸종 상궁 출신이던 귀빈 엄 씨의 몸에서 얻은 자식으로 이토 히로부미 통감에 의해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일본의 인질로 잡혀간다. 그리고 일본왕족의 딸 마사코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마사코가 영화에서 나오는 이방자 여사이다.

그리고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 귀인 장 씨의 아들로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일본인과 정략 강요받으나 끝까지 거부하여 조선인과 결혼한 이우 왕자로 더 알려져 있다. 바로 고수가 열연한 의친왕이다.

고종과 덕혜옹주

그리고 귀인 양 씨사이의 덕혜옹주는 고종의 넷째 딸인 대한제국의 황녀이다.

아버지 고종은 영친왕과 같은 정략결혼을 성사시키지 않기 위해 은밀히 그녀의 약혼을 추진하여 김장한을 부마로 내정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일본에 의해 무산되고 덕혜옹주의 약혼은 실패하고 만다.

그러던 중 고종이 사망하게 된다. 고종이 사망 후 14살의 어린 나이로 어머니와 생이별하고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일본 유학이란 명목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어머니인 귀인 양 씨마저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녀는 정신적인 충격은 컸으리라 본다. 영친왕에 이어 덕혜옹주에게도 정략결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일본 백작인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으나 정신분열증이 심해지자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무려 15년이란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외롭게 살게 된 비운의 인물이다. 일본은 일본과 조선의 한일 융합정책의 일환으로 영친왕과 덕혜옹주는 희생양이었다. 물론  나라를 잃은 왕족이 볼모로 수모를 겪을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이방자 여사는 영친왕과 같이 귀국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고 영친왕 곁을 지켰으나 덕혜옹주의 남편이었던 다케유키는 덕혜옹주가 정신병원에 있는 그 기간에 이혼을 하였고, 딸도 죽음으로 잃고 만다.

손예진과 박해일

영화는 실존인물이다. 그러나 그들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픽션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해 주었다면 하는 바람이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영화를 보면서 고수나 덕혜옹주가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사실이기를 바랐다.

한 개인으로서 비운 했던 그녀의 삶은 참 안되었으나, 왕족으로서 그들의 안위 말고 목숨과 전재산을 걸고 나라를 되찾겠다고 싸운 의병들 속에 그들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는 신세라 할지라도 대한제국의 왕족으로서 자신으로 인해 의병들이 일본군에 의해 총을 맞고 죽어가는 상황에서 자신의 가족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나약함에 참 통탄스러웠다.

일본 땅에 끌려와 손가락이  잘리고 개돼지만도 못한 처우로 학대받고 고통받는 백성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해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의병과 애국단체에 대한 경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뜨거웠다.

저런 힘없는 왕이라도 상해로 데리고 가려고 목숨을 내어놓는 그들에 비하면  정말 영친왕이나 다른 왕자들의 모습은 그저 일본이 주는 대우라도 받는 게 어디냐고, 우리가 어디 가서 이렇게 살 수 있겠냐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고통받는 건 힘없는 백성이라는 말에 또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지언정, 어차피 볼모로 살바에 차라리 당당히 조선의 왕으로 죽기를 자처했더라면 나라를 위해 싸우는 저 의병이나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힘이라도 되어 주지 않았을까? 그럼 우리가 저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낼 수 있었을까?

그 아무리 왕의 후손일지라도 나라가 없는데 그저 일본의 볼모로 그들이 하던 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로 살아야만 했을까?

그들의 한마디는 동포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덕혜옹주 역을 맡은 손예진이 일본 수용소에서 고생하는 동포 앞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그러니 견디어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아리랑을 부르는 동포 때문에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들이 그 긴 겨울을 버티어내서 그들이 목숨을 던져 그 시린 겨울에 투쟁하였기에 이 땅에도 봄은 왔고 우리는 독립을 맞이했다.

빼앗긴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걸고 그들이 외친  한마디는 대한민국 만세! 죽어서라도 독립을 이루겠다는 외침에 하늘은 답을 해주었다.

독립운동가

이 영화는 그 당시 나라 잃은 민족이 겪을 수밖에 없는 수치와 고단함을 이 덕혜옹주를 통해 나라 잃은 백성이 얼마나 힘든 겨울을 보내야 했는지, 나라 잃은 왕족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능했는지를 보여주었다.

해방이 되고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들의 귀국을 막는 바람에 그들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으로 바뀌고 김을한이라는 기자의 노력으로 인해 일종의  황족들의 입국을 허락하면서 정신병원에 있는 옹주를 데려올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박해일을 고종이 맺어주고자 했던 김장한으로 설정하여 그녀를 찾게 하지만 이건 실제와 다르다. 영화는 덕혜옹주라는 인물을  좀 더 극대화시키기 위해 설정한 것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말년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만신창이인 그녀는 귀국 후 낙선재에서 지내다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었던 비운의 인물로 살아야 했던 덕혜옹주를 손예진이란 배우를 통해 잘 표현했으나, 독립운동이라는 것보다 친일파에 가까운 그들이 삶이 나는 내내 불편했다.

이 영화는 사실과 픽션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역사왜곡을 논하기 전에 사실과 픽션을 구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연기자들의 캐릭터와 연기 감정선도 느끼며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권비영 작가 소설 <덕혜옹주>을 원작으로 스크린에 담은 것이라 하니 한번 책으로 더 접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