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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21 30.시계태엽 오렌지 : 상영금지 당한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9. 1. 21. 13:03
 감독 스탠리 큐브릭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1971년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파격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많다. 
10대 소년 알렉스(말콤 맥도웰)는 학교도 가지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그저 신나게 세상을 휘젓고 다닌다. 
코로바 밀크바에서 우유에다 약을 타서 마시면 폭력적인 걸 즐기게 된다.
같이 다니는 3명의 부하들과 노숙자에게 이유없이 폭력을 행사하고, 다른 패거리와 패싸움을 벌이고, 차를 훔쳐 광란의 질주를 하는가 하면 어느 한적한 작가 알렉산더의 집을 습격해 그를 폭행하고 아내를 강간한다. 
 
작가 알렉산더(패트릭 마지)의 집 내부적인 색감과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알렉스의 방은 더 인상적이다. 마약과 온갖 강도짓과 폭력,강간을 하고 다니는 것과는 다르게 그의 침대와 이불이 주는 컬러감과 벽에 걸린 스피커와 베토벤 사진, 가지런히 진열된 LP판들이 그의 바깥 세상과는 다르게 깔끔하다. 
그리고 그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그 곡만 들으면 마치 여성을 둘러싸인 신선처럼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원초적 본능만을 추구하는 사탄의 모습같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폭력적인 장면을 음악으로 커버하거나  두 명의 여자와 섹스하는 장면 역시 빨리 감기기법으로 빠르게 회전시키고, 강간당하는 모습이나 죽이는 장면에서는 벽에 걸린 예술적 그림으로 확대시켜 화면을 덮는다. 
아트적인 것으로 살짝 숨기는 감이 없지 않다. 그리고 강렬하게 흐르는 베토벤 교향곡으로 미쳐 날뛰는 그의 범죄를 쿵쾅쿵쾅 놀이처럼 만들어 버린다. 
노숙자를 때리는 장면도, 강도하러 들어간 집에서도 남편의 입에 테이프로 막아놓고 아내의 옷을 가위로 오리며 노래를 부르면서 한바탕 즐기는 놀이쯤으로 생각한다. 
죄의식은 없다.그저 놀이에 불과하다.
어쩌면 영화가 상당히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것으로 금지됐던 영화라 많은 부분 삭제하거나 편집을 통해 세상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자신들의 무리에서 리더이기를 원했다. 나머지 부하들은 알렉스가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하들이 반발하자 그들을 제압했고,  자기가 위임을 보여준다.
어느 날 부하들과  돈이 많다는 저택에 잠입해 들어간다. 
여자의 집안에는 값나가는 그림과 성기모양의 예술품이 있다. 예술품을 만지지말라고 여자와 몸싸움하게 되고, 집주인을 남자성기모양의 예술품으로 죽이고 만다.  
현관앞에서 기다리던 부하들이 그의 머리를 내리치고 부하들의 배신으로 알렉스 혼자 잡혀 14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가게 된다. 

 

수감 후 2년 알렉스는 간수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좀 더 빨리 감옥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은 루도비코 요법으로 약물과 충격요법으로 범죄자를 교화하는 실험이었다. 
정부에서 새로 추진하는 것으로 교도소를 새로 짓고 세금을 낭비하는 것보다 루드비코 요법으로 범죄자를 교화시킨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실험용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에 지원한다.
검증되지 않아 위험하다는 목사의 충고도 들리지 않는 알렉스는 그 실험에 지원하고,병원으로 옮겨서 2주간의 실험을 받고, 감옥으로 가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된다는 사실하나로 사인을 한다. ,
눈을 뜬 채로 고정하고, 고개를 못 돌리게 억압하고, 약물을 투여하여선정적인 폭력물과 집단강간 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구토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약이 실험대상의 몸에 퍼져 죽음같은 마비증세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가장 열광하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을 그런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게 된다.
알렉스는 '베토벤 9번 교향곡'만 들어도 구토를 느끼고 고통스러워한다.
2주후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알렉스는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2주후 그는 성공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언론과 관계자들의 참여한 무대에 올려지고 폭력적인 상황과 성적 유혹을 만들어 그를 테스트한다.  
그는 폭력에 무기력했고, 성적 유혹 앞에서도 구토감을 느꼈다. 정부측에서는 성공적이었고, 신문에서는  실험에 성공한 것이 기사화되고 그는 풀려나게 된다. 
 
어쨌든 그는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집에서 그는 환영받지 못한다. 아들이 살인자였던 것만으로도 부모도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손가락질과 질타속에 힘든 시간들을 보냈고, 하숙생인 청년이 자신의 방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아들처럼 자신의 부모를 챙기고 있었다. 
자신에게 함부러 말하는 하숙생을 때리려고 하나 구역질하며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있을 곳이 없다는 걸 알고 거리로 나와 강물을 바라보다 노숙자를 만난다. 
하지만 그 노숙자는 자신이 전에 그토록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이었다. 알렉스는 힘없는 노인과 노숙자에게 둘러싸여 폭행에 무기력하게 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경찰들이 다가와 말리는데 ,하필이면 그 경찰들이 자신을 배신한 부하들이었다. 
그들이 경찰관이 되어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인적이 드문 곳에 끌고 가 알렉스에게 물고문하며  폭행한다. 
폭력를 행사하지도, 자기방어도 못하고 고스란히 당하게 된다.
알렉스는 예전의 알렉스가 아니다. 실험으로 그는 철저히 무능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도움을 요청하러 간 집이 자신이 전에 망쳐놓은 작가 알렉산더의 집이다. 
알렉스에게 강간당한 아내는 그 이후 죽고, 알렉산더는 휠체어 신세다. 알렉산더는 그를 몰라보고 그가 신문에 난 비도덕적인 실험의 희생자로만 알고 그에게 뜨거운 목욕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알렉스는 알렉산더를 기억하지만 알렉산더가  가면을 쓰고 범행을 했던 터라  못 알아봄에 안심한다. 그리고 목욕하러 들어간다. 
여기서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1이라도 죄의식이 있었다면 그 집에서 목욕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와인을 마시고 밥을 먹는 짓거리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1도 양심의 가책도 못느끼는 악인이다.
 알렉산더는 반정부 글을 쓰는 작가이다.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알렉스를 이용하려고 생각한다.
정부가 사람들을 제압하기 위해 양아치들을 모아 경찰을 시켜주고, 죄수에게 말도 안되는 실험을 한다고  비도덕적인 실험이라는 비판을 하기 위해 지인들을 불러 알렉스를 인터뷰하게 하려고 연락한다.
알렉산더는 알렉스가 목욕하면서  부르는 Singing in the Rain을 듣고  강간범인걸 알게 된다. 분노로 참아내며 저녁을 내주고,수면제를 탄 와인을 마시게 한다. 그리고  지인들이 와서 알렉스를 인터뷰하는 동안 분노를 속으로 참아내며 그가 실험에 대한 것을 인터뷰하는 것을 듣고 있다. 수면제로 인해 기절한 알렉스를 2층방에 가둔다.
작가는 알렉스가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들으면 고통스럽고 괴롭다는 걸 알고 그가 있는 2층을 향해 베토벤 9번 교황곡을 크게 틀어 그에게 복수한다. 
단지 육체에 가해진 무기력증이 실험의 결과이다. 그저 2주동안 주입된 것에 대한 학습된 몸의 반응이다. 베토벤음악을 들으면 음악이 주는 고통이 아니라 베토벤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린 장면에 대한 연상으로 고통스러운 반응이다.
알렉스는 너무 고통스러워 창문으로 자살을 결심하고 뛰어 내린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치료를 받고 본성 그대로 몸도 반응하게 된다.
범죄치료 청년을 둘러싸고 비인간적 범죄갱생방식이란 비난이 쏟아지고,엄청난 비판을 받은 내무부장관은 이번 선거에서 알렉스로 인해 궁지에 몰리고, 알렉스가 죽게 되면 고소당하게 될 위기에 놓였다.
이로 인해 언론은  루드비코 요법 실험에 향한 정부를 향해 부정여론이 형성되고  이로 인해 정치적 입지가 불리해진 내무부장관은 병원에 입원한 알렉스를 찾아와 직업과 돈을 주겠다고 제의를 한다. 
내무부장관이 찾아와 그를 이용해 언론을 불러 전세역전을 노리는 것이다.
알렉스가 좋아하는 큰 스피커가 들어오고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들으면  고통스러워 하던 알렉스는 사라지고 다시 예전처럼 음악을 들으며 여자와 뒹구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나는 완벽히 치료가 되었다.' 라는 말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주인공 알렉스의 방과 작가의 집 인테리어와 죽은 여자의 집은 굉장히 아트적인 감각이 강하다. 뛰어난 인테리어와 색채에서 오는 부분들이 굉장히 살아있다.
알렉스는 처세술에 강하고 지능이 높은 인간이다.그리고 내면을 숨기고 교화된 척 아부하는 그의 내면은 쉽게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좋아하는 데 그게 나중에 고통의 요소로 그의 인생을 자극하게 된다. 물론 다시 원상복귀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나 예술품으로 가려도 인간의 사악한 본성은 가려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질서가 있는데, 인간의 마음은 질서가 없다.
사람의 본성은 정리될 수 없다. 범죄본능은 교화되지 못하고 사악한 사람들에 의해 더 강력해진다. 
사이코패스들이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죄의식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그들에게서 교화는 별나라 이야기일뿐이다.
그는 그냥 2주후의 나가고 싶다는 의지로 임한 것이고 무대위에서도 여자를 자빠트리고 싶은 본성은 끓어오르는데 속이 매쓰겁고 육체적 고통이 느껴져 멈춘 것 뿐이다. 
몸만 어떤 반응에 무기력해 졌을 뿐 본능은 사악하다.
 
교화가 불가능한 사이코패스같은 이들에게 어쩌면'눈에는 눈'이라고 말한 교도관의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철저히 악마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영화는 모방범죄로 인해 상영이 금지당한 영화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솔직히 영화자체가 좋았다 말하기 애매하다. 다시 볼 의향은 없다.
단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이기때문에 궁금해서 본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