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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16 밀양, 칸의 여왕 전도연을 탄생시킨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8. 9. 16. 15:36

밀양, 빛이 빽빽하게 모인 이 곳에서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이 허락지 않은 용서를 한 하느님을 향해 보란 듯 자신의 고통을 널어놓는다.

보이는 것도 안믿는 그녀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려했던 건 아들을 잃고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없고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고통에서  그나마 목구멍을 통해   눈물이란 걸 토해내게 해 주어서다. 원수도 용서하라는 그 뜻에 따라 아들을 빼앗아 간 살인범을 용서하려 했다. 아니 죽을 힘을 다해 용서해보려 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믿고자 했고, 그 뜻을 전하고자 했고 힘겹게 용서란 걸 하려고 했다. 그런데 산산히 부서졌다.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을 눈물로 덜어내주고 살아짐에 살아진다고 믿고 당신에게 기대려했는데 내 안에 당신을 끌여들였는데 아들을 지키지 못한 건 당신이 아니라 내 잘못이라 용서받고 싶었는데. 마음 밑바닥에서 100% 진심으로 끌어올린 건 아니지만 용서란 걸 허하여  죄를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는데  하느님, 당신이 그 죄많은 사람을 먼저 용서하였다 한다. 난 이렇게 가슴이 짓이기듯 아픈데 아직도 찢어지는 고통에 매일이 힘든데  내가 그 살인범을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싶었는데  하느님이 그를 너무 쉽게 용서해 버림에  억장이 무너진다. 범인이 죄를 용서받고 평안하다고 말한다. 내 안에 있다고 믿었던 하느님의 뜻이 거짓말이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내 삶에 빛을 허하실 생각이 없던 거였고, 당신은 애초에 나의 아픔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죄 많은 그가 저리 쉽게 용서받고 교도소 안에서 너무 건강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잘 살고 있다니,축복은 그 쪽에만 행복도 그곳에만 비추어지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죄 지은 사람에게 평온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주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이제 내가 당신에게 보여주지,죄라는 걸 열심히 펼쳐 볼테니 보라고, 당신이 볼 수 있는 곳에 햇빛 비치는 밝은 곳에서 보여줄테니 보라고....

 

슬퍼할 자격도 없는 엄마라서 스스로 가두어버렸는데 햇볕 한 줌에도 다 뜻이 있다 하여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고 사랑해준다 믿었는데 죄를 지은 범인에게 한 용서로 인해 신애의 고통에 소금을 뿌렸다.

어떤 사람은 슬프면 소리지르고 기절하고 내보낼 수 있는 눈물로 목구멍으로 토해내듯 쏟아낸다. 그런 사람을 보면 그래 다 쏟아라.  바닥까지 빡빡 긁어내 다 비우면 뭔가 다시 채워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슬퍼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몸의 구멍은 다 닫혀버린 듯 쏟아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걱정이 된다. 어찌 되는 거 아닌가, 저러다 미쳐버리는 건 아닌가, 아슬아슬하고 위험해보인다. 고여 썩지 않을까, 곪지는 않을까, 부패하지 않을까, 그러다 끝내 삶을 놓아버리지는 않을까.

 

신애가 그래보였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무엇에 빗대어 말해야 통할 수 있을까. 그 고통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하는가. 죽은 남편의 고향에서 자신을 아는 이 하나 없는 밀양에서 인생을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세팅하고 싶었는데  새롭게 출발하고자 연고지 하나 없는 이곳 밀양까지 왔는데 아들마저 하늘은 빼앗아 가버렸다.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모든 것을 잃고 그녀는 삶에 위태롭게 걸려 있다.

 

신애는 밀양에 피아노 학원을 열었다. 그는 얼마 있지도 않은 통장 잔고에도 불구하고 좋은 땅을 소개해달라며 말하고 다닌다. 남편 죽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살아가는 과부를 보며 사람들은 측은해 한다. 그녀는 그런 눈빛이 싫었다. 불행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속으로는 어찌됐든 겉으로나마 씩씩해보이고 싶었고  땅 살만큼 돈이 있다는 걸 과시하려했던 것이 아니라 남들이 자신을 불쌍하게 보지말라는 신애 나름의 발악이었다. 서울 여자가 시골로 그것도 죽은 남편의 고향으로 돌아와 아이와 살려고 했던 건 그녀는 도시에서 아이와 살 경제적 여력도 되지 않았고 남편의 배신도 남편의 죽음으로 젊은 나이에 혼자도 된 자신을 향한 동정의 눈빛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아는 이 하나 없는 남편의 고향에서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에 말들이 많다. 생각해준답시고 위로해준답시고 건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무시하는 사람들보다 무관심한 사람들보다 더 아프게 다가와 꽂힌다. 위로의 말도 불쌍하게 보는 것도 다 싫다. 남에게 초라하게 보여지는 자신을 감당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밀양으로 내려와버렸다. 집을 구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아들 준과 함께 무작정 밀양을 향해 내려왔다.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곳으로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곳으로 죽은 남편의 고향이라는 연줄 하나 가지고 남편에게 사랑받았던 여자로 남편을 못 잊고 사랑하는 여자로 여겨지게 자신을 쉽게 보지 않게 새로운 삶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도 없이 돈도 없이 아들 데리고 사는 과부로 보이기 싫었다. 돈이라도 있어 초라하지 않다고 가려보려 거짓말을 했다. 땅에 투자할 만큼 돈을 가지고 있는 여자처럼 있는 척 했던 것이다. 땅을 보러 다니는 자신의 행동이 아들의 삶을 앗아가버렸다.

돈을 노린 유괴범이 아들을 유괴한 것이다. 아들을 유괴한 남자에게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고를 다 찾아 넘겨주었다. 유괴범은 얼마되지 않은 돈 때문에 신애에게 전화로 화를 내고 있다.

가진 게 그게 다라고, 있는 척 하려고 거짓말 한 거다. 남편 연금으로 빚 갚고 여기 집 구하고 남은 게 그거뿐이다. 자신을 결국 다 드러내고 동정을 구했다. 동정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는데 도로 동정을 구한다. 아들을 돌려달라고..

아들 준은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의 시체가 발견된 날도 햇볕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너무 맑고 밝은 빛을 내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지 자신을 현실 밖으로 보내버린 것인지 아들의 시체 앞에서도 아들의 장례식에서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못했다. 못한 것이었다. 아들의 죽음도, 자신도 스스로 박제시켜버린 듯 움직이지 않는 고체처럼 가두어버렸다.

이제 정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신애,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다 잃은 마당에 살아가고 싶을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들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아들 흉내를 내며 아들의 음성 테이프를 들으며.

 

난 아들 잃은 엄마 신애만 보였다. 신애를 향한 종찬의 사랑은 보이지 않았다. 신애 역시 종찬에 대한 감정은 없었다. 그녀에게 빛 한줌이 들어서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든 어울려 보내지만 그녀는 누군가 받쳐주지 않으며 금방 쓰러질 사람처럼 보였다. 종찬(송강호)은 그런 그녀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유괴범과 마주할 때도,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러 간 날도, 길에서 짓누르는 고통으로 가슴을 움켜잡을  때도,교회에서 처음으로 목구멍 밖으로 소리내어 통곡할 때도, 그녀가 종교에 의지해 교회를 다닐때도, 교도소에 유괴범을 용서하겠다고 찾아갈 때도,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그녀 옆에 항상 있었다. 신애가 신경쓰든 말든.

고통스러워도 살아진다고 하는 삶, 아들과 살아보려는 밀양에서 아들이 죽었다. 모든 걸 잃은 여자, 그녀의 삶에 앞으로 무얼 담을 수 있을까.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 하늘을 노려보며 화내는 신애 온전하다 말할 수 없었다. 종교에 기대어 안보이는 것에 기대어 숨으려 헸는데  하느님의 뜻을 전하러 교도소로 살해범을 면회간 날, 그녀는 충격으로  쓰러지고 만다. 빛이 그곳에만 비추듯 범인은 너무 평안해 보였다. 정작 고통속에 살아야 할 자가 하느님이 용서해주어 평온을 찾았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무슨 권리로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느냐고.

어떻게 해야 신애가 살수 있을까, 사람을 살게 하거나 고통으로부터 버티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그 중에 미워하는 마음도 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했다면 지금 신애는 하느님을 미워하며 버티고 있다. 모든 것을 빼앗가 가는 것도 모잘라 살인자를 용서하고 그가 사는 세상을 지옥이 아닌 천국을 만들어 놓았다.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하느님이 죄인의 삶에 빛을 비추어주었다. 그래서 하느님이 보란듯이 죄를 짓는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했다. 죄 짓고도 저리 쉽게 용서받고 행복해지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그래 발악이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혹독한 걸음이다.

 

땅에 발붙이고 있는 이상, 하늘을 마주해야 한다.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있음에도 삶은 계속된다. 아침은 어김없이 오고 밤 역시 어김없이 온다. 사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또한 죽는 것도. 

사람 사는 곳이라면 다 똑같다는 종찬의 말처럼 사람 사는 곳이라면 사람으로 인한 상처와 치유가 있고, 빛과 그림자가 있다.

솔직히 힘들어하는 신애만 보여 종찬의 서툰 표현방식이 탐탁치는 않았다. 신애와 종찬이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안다. 그림자처럼 옆에 있어주는 사랑이 흔하지 않다는 걸, 저런 사랑이 요즘 같은 세상에 많지 않다는 걸....

밀양이라는 도시, 연기보다 더 자연스러운 이웃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2007년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로 한국 배우 최초로 전도연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종찬이 신애를 뒤에서 묵묵히 있어줬듯이 송강호가 전도연이 빛나게 해준 면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