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8. 12. 2. 18:47

 

저자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2005년 조 라이트 감독으로 인해 영화로 탄생했다. 영상과 배우들의 감정선이 살아 있고 캐릭터들이 강렬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출연했음에도 각각의 인물들이 꽤 묘사가 잘되어 있다는 것이다.


18세기 영국을 무대로 여성과 결혼에 대한 시대상을 잘 그린 연애소설이다.
당시 영국의 계급은 귀족과 대지주계급으로 나뉘고, 시골의 지주(젠트리) 사회를 그렸는데, 그 젠트리 계급에서도 재산정도에 따라 큰 격차가 있었다.


영국의 시골마을 롱본, 그곳에 시골의 지주인 베넷가에는 딸이 다섯이나 있었다. 당시 딸들에게는 상속권이 없었고, 지참금이 전부였다.
연수입 2000파운드에 불과했으나 지주계층은 생활을 위해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겼고, 그렇게 좋은 가정환경이 아님에도 딸 다섯과 베넷 부인이 뒹글 뒹글 모여 하루를 보내는 장면이 이해가 갈 듯하다.


직업을 가진 중류계급은 자산이 많아도 낮은 신분 취급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군인인 위컴이 많은 재산을 상속한 여성과 결혼하려고 하는 이유였다. 또 상속권이 없던 여자가 부유한 결혼상대를 찾아야 했던 것이었다. 


 베넷 부인은  자신의 딸들을 재산이 많은 남자에게 결혼시키려고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롱본에 찰스 빙리가 오게 되면서 베넷가의 집안은 분주해진다.
연수입 5000파운드의 재산을 가진 찰스 빙리가 베넷가의 첫째 딸 제인을 맘에 두고 있다.

언니 제인은 아름답고 차분하며 사려깊으나 말 수가 적고 감정표현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다. 

다아시는 빙리의 친한 친구로 자신의 친구가 제인과 결혼하는 것을 막는다. 베넷 부인이 욕심도 많고 경박해 보였고, 빙리에 비해 제인이 빙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베넷 부인이 극성스러움이 오히려 딸들에게 흠으로 비추어지고, 잘 표현하지 않는 제인의 성격 탓에 그리 생각할 수 있다.

다아시는 연수입이 1만파운드의 재산이 있는 명문가이다. 상냥한 빙리와 유쾌하고 잘생긴 위컴과 대조적으로 다아시의 차가움과 과묵함이 오만으로 더 비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아시가 가진 계급에서 오는 오만한 구석도 분명이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꿈 꿀 상대임은 분명 하나, 엘리자베스는 오만한 그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감을 드러낸다.

 베넷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재산이 없는 아가씨들이 결혼이 유일한 생계대책이 된 시대에 맞서 사랑을 갈구하는 재치 있고 당찬 성격의 아가씨이다. 그녀는 다아시가 거만하고 차가운 듯한 인상으로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말과 다르게 그에게 자꾸 신경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넷가를 업신여기고 기죽이려 하는 캐서린 부인 앞에서도 따박따박 기죽지 않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교양 없는 어머니와 자매를 들먹거리고, 자신의 집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계급에서 오는 당당함과 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편견이 분명 그들에게 있었다. 서로 대화를 함으로서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와 편견이 있었음을 인지한다.  그렇게 서로를 가로막는 것이 편견임을 조금씩 알아가며 제대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위컴과 리디아의 도피로 베넷 가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되고, 다아시는 그녀 모르게 조용히 위컴에게 막대한 재산을 주고 그 둘을 결혼에 이르게 한다. 그녀를 위한 행동이었다. 그녀와 그녀의 가문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위컴을 싫어하면서도 말이다.

캐서린 부인은 다아시의 숙모로서 막대한 재산과 토지를 소유한 자로 자신의 딸과 다아시를 결혼시킬 생각이었다.

나중에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약혼을 청했다는 소문을 듣고 한밤중에 베넷가로 찾아와 엘리자베스에게 모멸감을 안겨준다.
다아시는 마음이 깊고 배려가 많은 예의 바른 사람이다. 이게 엘리자베스가 새로 본 다아시의 진면모이다.

편견이란 장치를 치우고 나니 보이는 것이다.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나에 관련이 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가진 자의 오만과 없는 자가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허영을 지녔다고 보면 서로를 향해 있는 오만과 편견은 너무 지극히 당연하게 둘 사이를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청혼한 것은 오직 엘리자베스에 대한 사랑때문이었다. 설사 그에게 오만함이 넘쳐 흘려도 사랑하는 엘리자베스를  향해 갈 수 있다면 다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이다.

캐서린 부인의 모멸감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다아시를 향한 배려 때문에 견디었다. 자신이 가진 편견이란 장치가, 오만이라는 도구가 서로를 얼마나 비툴어진 각도로 바라보게 하는지를 알게 한다.

오만과 편견이란 도구는 사랑의 장애물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을 얻는 일, 서로를 향하는 마음을 진실되게 갈구하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라고 본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다른 사람의 입에 제대로 겪어보지 않고 가지게 되는 편견에 우리는 얼마나 가깝게 가 있는가,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랑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억눌려 있던 그 시대의 여인들과 다르게 다아시의 청혼앞에서도 자신이 자신의 가족이 다친 자존심에 대해 당당하게 거부하는 그녈 보면서, 캐서린 부인 앞에서 전혀 굴하지 않고  캐서린 부인을 당혹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서슴없이 비어내는 모습으로 당시 여성들이  대리만족 같은 걸 하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