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3. 9. 14:46

플루토에서 아침을 


감독 닐 조던

영화 플루토에서 아침을
패트릭 키튼(킬리언 머피)은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바구니에 담겨 성당 앞에 버려졌다.

사제 관저에서 일하는 여인의 가정에 입양되어 키워진다. 


그는 어려서부터 여자 옷을 입고, 루즈를 바르고, 여자 구두를 신고 그러면서 노는 아이였다. 
체육 시간대신  봉제 수업을 듣고, 학교에서 고민을 적으라는 쪽지에 성 전환수술 잘하는 곳을 알려 달라고 적은 것으로 인해 학교와 집에서는 난리가 나고 키튼은 집을 나오게 된다. 

그는  패트릭보다는 키튼으로 불리기 좋아한다.

집을 나와 우연히 모호크 밴드를 만나 노래를 하게 되고, 빌리 해칫을 사랑하게 된다.

키튼은 그냥 여자로 살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의 시선만큼 자신을 여자로 봐주지 않는다.

밴드 멤버들은 물론이고 관객들도 불편해한다. 편견으로 인해 또 세상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빌리는 그 시선을 의식하고 밴드를 잃을 수 없어서,  키튼에게 엄마가 물려 받은 콘테이너에서 살게 해준다.

언덕 위 홀로 외딴곳이지만 집이 생겨 좋은 키튼.

하지만 그곳은 아일랜드 공화당 일원들의 총을 보관하는 비밀장소였던 것이다. 

시내에서 폭탄이 터지고 로렌스 형제가 죽는 걸 본 키튼은 비밀창고에 있는 총을 전부 다 꺼내 던져 버린다. 

빌리는 도를 넘었다고 키튼을 두고 멀리 행방을 감추어 버린다. 

키튼은 떠나가는 빌리를 향해 "당신의 장미와 캔디는 다 거짓이었지만 행복했어요."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가 사랑해 봤냐는 물음에 한 번이라고 대답한 건 빌리 해칫을 두고 한 말 같다.

키튼은 엄마를 찾아 영국 런던으로 떠난다. 어릴 때 들은 이야기를 믿는다. 

엄마가 너무 이뻐서 런던이 삼켜 버렸다는 말을 믿는 키튼은 순수하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담고, 순수하게 표현한다.

키튼은 엄마를 유령신부라고 부른다. 엄마도, 현실도 유령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유령 숙녀 '아일리 버긴', 오직 이름만 알고 런던으로 떠난 여정은 참 험난했다. 상처 주는 악당들의 소굴 같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엄마는 런던이 삼켜 버려서 찾을 수가 없다.

악의 유혹은 키튼을 더러운 소굴로 끌고 갔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당하면서도 항상 경계를 하지 않는 키튼은 그들이 다 진심일 거라고 믿는다. 

키튼의 생각에 앉아 있으면 영화는 동화 속 같다. 악당들에게 당해도 항상 긍정적으로 노래하는 새 같다.

마술사도 경찰도 다 거짓투성이뿐이다. 그를 이용하려고만 한다. 

고향 친구 찰리가 키튼을 도시로부터 구해주러 온다. 

찰리는 어윈의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어윈은 자꾸 멀어져 간다. 비밀이 많아지고 맘은 딴 곳에 가 있다.

그는 공화당 비밀요원이다. 너무 많이 변한 어윈으로 인해 낙태를 하러 가지만 맘이 변해 나오고 만다. 

진실은 항상 맨 앞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맨 앞에 있는 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정면 돌파만이 답인 것도 있다.

키튼은 소수성 애자나 게이나 그런 것들로 부르는 것보다 키튼으로 불리고 싶은 여자다.

여자와 남자사이에서 갈등하지도 않는다. 자신은 여자라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라  갈등할 이유가 없다.

 

 
네모 난 상자의 단면만을 보는 것과 같다. 인생은 복잡하다. 그러나 답은 또 간단한 곳에 있을 수 있다. 

사물의 이면을 볼 생각들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 봐 줄 생각들이 없다. 설사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남의 인생을 비난할 생각은 넘치나 보다.

 

클럽에서 폭탄이 터지고 11명이 죽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키튼이 여장을 했다는 선입견으로 범인으로 확신하고 심문한다. 경찰서에 잡혀 와 책상에 놓인 신문을 보고 키튼은 웃는다.
 '여장을 한 킬러의 미소'라고  적힌 신문 헤드라인에 거시기에  X를 한 자신의 사진을 보고,

키튼은 "거시기에 X를 하다니 정말 웃긴다." 

X라,  여자나 남자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부정일까? 사회의 인식은 그들을 어떤 부류에도 넣고 있지 않는 걸까?
무늬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뭘까? 그 사람의 내면도 마음도 여정도 알수 있는 건 없다.
X라고 하는 세상에 키튼이 진술할 게  있을까? 정말 소통 x 다. 

 

'폭탄 심은 거 자기가 아니면 왜  아니다라고 말을 안하지' 

키튼은 알고 있다. 말해도 안 믿을 것이라는 걸

이미 거짓으로 도배된 상자에 진실 한 방울 말로 떨어뜨린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될까? 아니라는 걸 아는 것 같다. 

비틀어진 선 위에 혼자 바로 선다고 그 선은 평행일까? 거시기에 X를 하고 무늬가 다르다고 속지까지 X로 자신을 이 세상에서 몰아 내려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진실이란 없다. 자신들의 그 시선만이 정답인 것이다.

 

키튼은 항상 진실했다. 거시기는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소통하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진실이, 보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진실은 그저 거짓 나부랭이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여정이야.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 위에 놓이는 것들을 봐야 된다.

그는 유치장이 거리의 시선보다 따뜻한 곳이라 느낀다.

"사람들은 여길 춥다고 하지만 플루토에서 아침을 먹는 만큼 따뜻하다."

 

플루토는 명왕성이다. 키튼이 만난 국경의 기사들에게 들은 이야기로 '수많은 별을 유람한 후 플루토에서 아침을 먹으리'란 말이 키튼에게는 굉장히 낭만적으로 들렸던 것 같다. 꿈꾸는 세상처럼 말이다.

 

 

유치장에서 나가라고 할 때 키튼은 여기 있고 싶다고 사정한다.
"여긴 맘이 편해요. 밖으로 나가는 순간 온 우주를 혼자 떠돌게 되는 것 같아요. 난 소속되고 싶어요."

 

그녀는 여자로도 남자로도 보지 않는 세상속에 그냥 같은 인간으로, 동료로서 소속되고 싶은데 그들은 키튼을 자신들과는 다른 종인 것처럼 소외하고 비난하고 불편해 했다. 자신들은 깨끗하고 키튼은 더럽다는 시선을 깔고 본다.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키튼에게 경찰은 평범한 일을 해보라고 한다. 길거리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키튼은 "전 자격미달인 걸요." 세상은 그에게 평범한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그 평범한 것까지 자격미달이라고 말할 만큼이나 세상이 정말 못되어 처먹었구나. 

그렇게 평범한 일을 해보라는 경찰이 안전하고 합법적이라고 데리고 간 곳이 또 코인 유흥업소(이런데를 뭐라고 하지 코인 성놀이방이라 해야 하나)라는 것이 정말 화가 났다. 

단지 거리에 있느냐 안에 있느냐지 뭐가 다른 건지.

 

키튼은 찰리에게 '이제야 주소가 생겼어'라고 편지를 보낸다.

거리로 거리로 떠돌던 삶보다 나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주소가 생긴 게 이름이 생긴 것만큼 그에게는 안전감을 준 것인지 이제야 주소가 생겼다는 말이 참 슬프게 내 가슴 언저리를 비빈다.

 

주소가 생기고, 자기 집이 있고, 엄마가 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기를 그가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 수 있다. 

어딘가 소속된 존재로 있고 싶은 것이다.

남자들은 자신을  성노리개로 가지고 놀고, 엄마는 자신을 버렸고,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고 삶이 뭐 이래.

 
잘 웃던 키튼은 이제 꼭두각시 인형처럼 표정도 없이 거울 안에 담겨 코인을 넣고 자신을 가지고 놀 남자 손님들을 맞이한다. 
"너 같은 남자 앨 알아"

"손님 전 여자입니다."

"옛날에 부모를 모르는 한 소년이 있었어.  항상 웃고 있었어"
" 눈물을 감추려고 웃은 건 아닐까요."
"웃지 않으면 힘들었겠지 자기 처지를 감당하기가 ."
"그를 꽤 잘 이해하시는 것 같네요."키튼은 점점 이야기에 끌려 거울 앞으로 다가가지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다.
" 난 그 애 아빠를 알아. 그 아빠는 아일 몹시 사랑했지만 얼마나 사랑하는 지 표현할 수 없었어. 그 방법을 몰랐어."
" 세상에 그렇게 쉬운 말을"
" 때론 쉬운 말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불가능한 말이야 그 아이 엄마도 사랑했지만 그 또한 불가능했어."
키튼은 지금 손님이 키튼의 이야기를 한다고 확신했다. 거울을 얼굴을 갖다대지만  바깥 손님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영국으로 떠났지. 혹시 엄마 찾으려고 간 걸 아닐까 ?"
"엄마 이름이"

"아일리 버긴" 자신의 엄마 이름이다. 그리고 바깥에 있는 사람은 아빠인 것이다. 그는 키튼에게 엄마가 가정이 있기 때문에 꺼려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주소를 알려주고 사라졌다.

그는 리암 신부였다.

그의 생부는 교구를 책임진 리암 신부(리암 니슨)로 사제 관저에서 일하던 아일리 버긴과의 사이에서 키튼을 낳게 된다.

신부로서 그는 키튼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과 해줬어야 하는 것들을 생각했고,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것도, 너무 힘들어했다는 것도 너무 늦게 알았다. 

어쩌면 그또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래서 아버지로서 살아주지 못했고, 한 여인을 사랑한 남자로 살지 못했던 것이다.

 

여자보다 더 여자같은 키튼 . 그가 입는 옷들은 스타일도 끝내준다. 어쩜 저렇게 착착 감길까.

걸음걸이며, 표정이며, 맵씨까지 킬리언 머피가 이런 모습이란 걸 상상도 못 했는데 엄마를 보러 갈 때 차려입은 그녀의 스타일은 아름다운 여성 그 자체였다.

 

 

지적이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자 키튼.... 엄마를 찾아간 키튼은 차마 자식이라고 말을 못 하고 전화국 설문조사원이라고 말한다. 엄마를 보자마자 쓰러지고 만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인데, 엄마는 알아봤을까? 못 알아본 것 같다. 여자인 키튼을 몰라본 것 같다. 키튼이 성당 앞에 버리고 간 아들이라고는 생각 못한 것이겠지.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 왔다. 본 것만으로 이제는 유령 숙녀가 아닌 엄마로 기억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찰리에게서 자신이 주소를 신부님에게 가르쳐 줬다는 소식을 듣고 키튼은 아일랜드로 돌아간다.

리암 신부를 보고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하자 리암 신부는 "아버지"라고 말한다.

네가 돌아오기를 기도했다는 아버지를 만났다. 

"인생은 묘해요. 엄마를 찾아 나섰는데 아빠를 발견했어요."
인생은 예기치 않는 것들과 마주치기도 하고, 내가 아는 만큼 아름답지도 내가 당한만큼 추한 것도 아니다.

 세상은 거짓투성이이지만 진주 같은 진심도 있다. 

 
킬리언 머피가 이렇게 여성스러울 수가,

이 영화로 킬리언 머피를 정말 다시 보게 되었다.

<플루토에서 아침을>이란 영화는 패트릭 맥케이브가 쓴 동명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닐 조단에 의해 제작되었다.
posted by 해이든 2019. 2. 28. 15:20
사랑의 순간

 감독 존 메이버리 

 
영국 웨일즈 출신의 시인이자 방송작가였던 딜런 토마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종잡을 수가 없는 이야기이다. 사랑을 위장한 우정인 것인지, 우정을 포장한 사랑인 건지, 
사랑의 가장자리를 메우는 질투인지, 질투로 포장된 사랑인지 참 헷갈리게 한다.

때는 1940년 영국은 독일과 전쟁 중이다. 런던 지하 방공호에서 베라 필립스(키이라 나이틀리)가 돈을 벌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윌리엄 킬릭(킬리언 머피), 그리고 다시 만난 어릴 적 친구인 딜런 토마스(매튜 리즈), 그의 아내 캐틀린 토마스(시에나 밀러) 

총 4명이 끌어가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사방으로 번진다. 마음은 움직이며 갈등을 유발하고, 그 갈등속에서 욕망과 질투와 사랑과 상처로 얽힌다. 
전쟁중에도 사람들은 삶을 나름 즐기고, 방공호에서는 춤과 노래가 흐른다. 그리고 사랑도 꽃피운다. 
시인인 딜런과 베라는 어릴 적 웨일즈에서 자란 친구이다.  딜런은 오랫만에 만난 베라에게 첫 눈길에 별들에 불을 지른 듯 고뇌한다. 딜런은 이미 캐틀린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있다. 그리고 그는 시를 쓴다고 여자들의 환심을 사는 바람둥이이고, 생활능력은 없다.
아내 캐틀린이 딜런을 찾아오고 베라를 소개시켜준다. 그러나 여자의 직감은 첫 눈에 딜런이 베라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딜런과 캐틀린은 잘 곳이 없이 여기저기 전전긍긍하다 혼자 살고 있는 베라의 집에 얹혀 지내게 된다. 가운데 커텐 한장을 사이에 두고 베라와 딜런, 캐틀린이 동거하게 된다. 

베라가 자고 있는 걸 정신 나간 듯 바라보고 있는 딜런, 그런 딜런을 바라보는 캐틀린은 "그 몸 내게 돌려줘."라고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한 시를 써주지 않고 베라를 향해 있는 딜런에게 상처 받지만 쿨한 척 베라와 우정을 나눈다. 

실은 딜런과 베라는 15살에 첫 경험을 나눈 사이이다. 
어릴 적 순수하게 아무 것도 모를 때 한 것이라고 하지만 베라나 딜런의 표정은 친구이상의 끈적거리는 시선이 묻어난다. 
베라에게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그녀에게 끝없이 애정을 표현한다.
그는 군인이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전쟁에서 죽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그를 밀어낸다. 

하지만 윌리엄은 사랑하는 동안 최선을 다할 것이고 절대 나쁜 일은 없을 거라고 그녀에게 구애를 한다. 절대 내 말에 상처 받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결국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베라의 집에 윌리엄이 와 사랑을 나눈다. 베라를 원하는 딜런은 윌리엄이 탐탁치 않다. 딜런은 '거짓 불빛에 발하는 이에게 그녀가 사로잡혔다'고 시를 지어  질투와 시기로 문장을 만들어간다.

캐틀린은 그녀와 딜런의 첫 경험을 알고 있고, 베라는 딜런과의 첫 경험은 추억으로만 간직할 뿐  딜런을 돌려받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캐틀린에게 말한다.

캐틀린은 섹스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난 이해하지만 윌리엄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윌리엄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다. 딜런과의 첫 경험을,

윌리엄이 부대배치를 받아 전쟁터로 가야하고 베라와  결혼을 하게 된다.
베라를 보는 딜런의  끈적한 눈길을 캐틀린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윌리엄 역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딜런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자를 갈구하는 남자의 눈빛과 사랑을 하는 여자의 눈빛은 쉽게 숨겨지는 그림이 아니다. 

윌리엄은 악몽을 꾼다. 그건 그가 꿈을 꿀만큼 딜런과 베라의 사랑에 대한 의심과 질투로 쌓여간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내 친구일거야."라고 말하지만 캐틀린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다. 윌리엄은 베라에게 사랑하냐고 묻자 "살아 돌아오면 말해줄게"하고 그를 떠나 보낸다.그는 불안하 마음으로 전쟁터로 떠난다.

그렇게 셋은 남고 윌리엄은 떠났다. 그가 떠난 후 임신인 걸 알게 된 베라는 더 이상 가수를 할 수 없었다. 아무 능력이 없는 딜런과 캐틀린에게 고향 웨일스로 가서 살자고 한다. 자신에게 빌붙어 살고 있는 그들을 그녀는 끌어안았다. 우정이었든 사랑이었든 웨일스로 이사를 가서 이웃으로 같이 산다.

딜런은 정말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역겹기까지 했다. 최소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아내를 먹여 살려야 남편으로서 책임지고 살아야 정상인데 베라의 도움으로 생계도 책임지지 않고 시나 적으며 살았다.  

 딜런은 캐틀린의 존재가치를 자기 재능을 키우는 토양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요리하고, 애 낳고, 청소나 하는 존재로 갖다 놓은 것 같다. 그것뿐이라고 말한다.

캐틀린이 베라와 딜런 사이의 관계에서 왜 견디고 사는지 나중에는 좀 알 것 같았다.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챙겨주는 베라를 그녀는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다가도 한 편으로 너무 이해할 수 없는 세 사람이다.

정말 윌리엄을 사랑하고 또 캐틀린을 걱정하고 우정이었다면 딜런에게 확실히 선을 그어야 했다. 유혹의 눈길을 철저히 차단해야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계속 미묘한 관계들이 이어지고 시를 쓴다고 벌이조차 없는 딜런으로 인해 캐틀린은 돈벌이용으로 뭇 남자와 관계를 가지고, 돈 한 푼 못 벌어 아내가 그 짓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하고 다닌다.

시인이란 허울을 쓰고 삶을 먹어치우는 모습이 정말 이 두 여자에게 딜런은 기생충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부끄럼도 없이 캐틀린이 딴 남자랑 하니 나도 딴 여자랑 잔다고 베라에게 말하는 거 하고는?

베라는 딜런에게 캐틀린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거야. 돈벌이로 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캐틀린은 누구 앤지 모를 애를 임신하고 중절 수술비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고, 베라는 기꺼이 그녀에게 돈을 대준다. 

 웨일즈에서 베라와 캐틀린은 아이를 키우며 캐틀린은 베라에게 의지하고, 베라는 외롭고 능력 없는 그들에게 돈을 대주며 살아가고 있다. 남편 없이 애를 키우며 편지해도 답장도  없는 윌리암으로 인해 그녀 역시 삶이 외롭고 불안했다. 그래서 캐틀린의 존재가 힘이 되고 위안이 되어 주는 것이라 여겼다.

남녀사이에 여자친구가 끼어있는 그림은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힘들다. 그것도 예전에 감정이 있는 사람이고 현재도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면 말이다.
경계를 허물것이 아니라 완벽한 차단을 했어야 했다. 그게 서로를 위한 길이고, 서로를 배려하고, 상처주지 않는 법이다. 자신들의 그 경계없는 감정이 캐틀린과 윌리엄에게는 상처였다. 

그렇게 되지 않길 빌었지만 베라와 딜런은 관계를 하고 만다.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것이다. 어떤 변명을 갖다 대도 이해받기 힘들다. 난 딜런과 베라에게 좋은 감정을 내어 줄 수 없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베라 역시 후회하고 미안해서 문을 두드리는 캐틀린에게 떳떳하지 못해 뒷걸음질 치며 집에 없는 척 숨은 것이 아닌가.

 

마을 사람들이 윌리엄의 아들마저 딜런의 아이라고 오해할 정도라면 자신의 행동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고, 딜런 역시 저런 상태로 두 여자의 삶을 갉아먹으면서 시를 쓰는 것이 너무 위선스럽고 화가 났다. 그런 영혼에서 어떤 단어를 내 뿜어도 아름답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에서 돌아온 윌리엄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많이 피폐해져 너무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자신의 아이를 안아주지도 않았고,그녀를 안아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전쟁터에서 하루하루 목숨을 담보로 고통스럽게 보내 온 월급이 바닥이 난 것에 좌절하고 분노했다. 자신의 월급으로 엉터리 시인을 돌봐준 것에 자신의 아들 로왓마저 딜런의 자식아니냐고 뱉어버리고 만다.

"저들은 내 친구야, 돌봐 준 것뿐야. 굶길 순 없잖아."

사랑보다 질투에 힘을 더 실어준 건 베라의 잘못이라고 본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한 윌리엄은 술에 취해 딜런의 집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다음날, 정신을 차린 윌리엄은 자신의 아들을 안아주고 그녀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총을 난사한 문제로 그는 법정에 세워지고 재판을 받게 된다.

캐틀린마저 베라가 딜런하고 잔 사실을 알고 베라에게 등을 돌린다. 이미 물은 엎질러 졌다. 딜런과 잔 사실도 총을 난사한 사건도 말이다. 수습해야 할 일만 남았다.

베라는 딜런에게 윌리엄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윌리엄을 사랑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법정에서 딜런은"날 죽이려고 했던 게 분명합니다. "라며 불리한 증언을 한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그동안 베라의 도움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나올 수 있지?

배신감에 베라는 "왜?"라고 묻자 딜런은 "넌 내 별이었어 예전처럼 살 수 있어. 방해물을 제거했잖아."

그러자 그녀는 "캐틀린과 헤어지라고 나랑 살아"라고 말하자 딜런은 아무 말도 없다.

"넌 그 해변의 15살 소녀를 원하는 거야. 지금 내가 아니고, 네가 가진 건 머릿속의 이야기뿐이야. 단어들 "

지금 현재의 베라에게는 윌리암뿐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감옥에 보내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진작에 보여줬어야 했다. 두 사람의 입장이 이렇게 다르다는 걸, 마음의 중심을 제대로 잡았더라면 윌리암도 캐틀린도 상처받지 않고 사랑도 의심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젠 추억마저 쓰레기가 되고 외면하게 되었다.

어쩌면 베라와 캐틀린에게는 남자 없는 세상이 더 낫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그 감정은 순간이고, 외로움은 영원했다. 그 외로움의 공간을 베라와 캐틀린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사랑했던 것 같다. 캐틀린의 말처럼 "섹스는 아무 의미 없어. 그건 사랑이 아니야. 근질근질해서 긁어야만 했다."

 딜런은 캐틀린 인생에 외로움을 지독하게도 짙은 안개처럼 만들어 냈다. 부부에게는 서로 함께 살아갈 사랑이 필요하다. 섹스로 긁어대는 것 말고 책임 있는 사랑말이다.

어쩌면 캐틀린을 더 돕고 의지하고 있었던 베라였지만 혼자 남편을 기다리던 근질근질함에 딜런의 품에 안긴 것이 잘못이었다. 그건 사랑과 다른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세상도 그렇게 봐줄 거라는 건 아니다. 

자신이 딴남자랑 관계를 해서 돈을 벌든 말든 질투조차 가지지 않는 딜런보다 자신을 위해 돈을 내어주고, 아프면 위로해주는 베라가 자신에게 거짓말한 것이 더 화났을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나쁜 넘은 딜런이다.
이런 사람이 사랑을,  인생을 문장같은 것으로 적는 걸 시라고  낭독하고 싶지 않다. 

캐틀린과 딜런이 떠나는 날, 베라는 딜런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캐들린에게 다가간다.

자신을 향해 웃어주던 항상 외로움에 응해주던  베라의 미소를 보고 캐틀린이 한 말이다.

"바로 그 미소였어."

그리고 베라가 캐트린에게 진심을 넘긴다. 
"상처 줄 생각 전혀 없엇어"
"그랬을거야. 외로워 마"

"너도,  외로워 마."

세상에서 여자를 가장 외롭게 만드는 사람은 남편이자 남자이다. 그들은 아내를 자신의 토양으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는 아내의 내면의 외로움에 답해준 적이 없다. 자신들만 세상에서 인생에서 고통받는다는 착각 속에 잘난 척하며 살기 바쁘다.

어쩌면 그녀가 남편의 월급을 탕진해가며 도와준 것은 딜런이 아니라 캐틀린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 줄 존재가 캐틀린이었고, 캐틀린 역시 자신에게 쏟아지던 베라의 미소로 외로움을 채우며 서로 의지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 중간에 딜런이란 줄이 있었지만 어쩌면 딜런 없이 그들은 흔들림 없이 지냈을지도 모른다.

캐틀린의 말처럼 섹스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남자들에겐 섹스의 의미는 달랐다. 그래서 아내의 사랑에 답하지 않고 아이마저 부정했던 윌리엄이었고, 딜런 또한 시적인 망상에 잡혀 원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남자는 과거가 중요할 지몰라도 여자는 현재의 사랑이 더 중요하다. 남자는 첫사랑을 못 잊는다고 하지만 여자는 마지막 사랑만 간직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