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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06 김태리.류준열 <리틀 포레스트> 나만의 작은 숲
posted by 해이든 2019. 4. 6. 15:17

감독 임순례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 줄 한 줄이 마음을 살랑살랑 흔들리게 하는 영화였다.

무심한 줄 알았던 것들이 어느 날 소중하게 다가오는 날처럼 이 영화가 그랬다. 몇 번을 스쳐 보내고 보지 않았던 장면이 다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이다.

젊다고 다 젊은 것이 아니라 젊게 살지 않으면 젊음의 의미를 공감할 수 없는 것 같다.

 

도시의 바쁜 일상속에서 인스턴트식품으로 한 끼를 때우며 맞이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온기가 없었다.

그저 버티고만 있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혜원은 고향으로 내려왔다.

 

혜원 역 김 태리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

고시공부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인스턴트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우기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무언인가를 채우려고 끝없이 달리고 있지만 항상 제자리걸음 같은 위치와 푸르르고 생기 나는 웃음이 숨어 버리고 없다는 느낌이 든다.

땅에서 추위와 같이 버텨낸 겨울배추로 된장국을 끓여 먹으니 따뜻하고 배부르다.

현대인들의 허기짐을 달래주는 따뜻한 한끼는 소박하지만 사랑 가득 담긴 엄마의 밥상같다.

 

어린 혜원과 엄마 문 소리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강하다.

4살 때 아빠로 인해 요양차 시골에 내려와 살게 된 혜원(김태리)은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엄마는 시골을 떠나지 않고 머물렀다. 혜원은 시골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시골에서 엄마와 둘이 살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남자 친구는 고시에 붙었는데 혜원은 고시에 떨어졌다. 남자 친구에게 제대로 합격 축하 한마디 못 건네고 그냥 고향으로 내려왔다.

 

재하, 은숙, 혜원

 

최고의 안주는 알싸한 추위와 같이 나눠마실 사람인 거야.

오랜 고향 친구인 재하와 은숙을 만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그렇게 겨울, 봄,여름,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한다.

잠시 머무르려고 했다.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다.

젊은 날의 시선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 봄 햇살처럼 따스하고, 여름처럼 강렬하고, 가을처럼 무르익고, 겨울처럼 저장된다.

그렇게 고향과 친구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와도 편안하게 안길 곳이고, 반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엄마품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도시생활의 미련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류준열)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다.

재하를 통해 혜원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류준열, 김태리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재하의 이 말에는 참 많은 생각을 주워 담게 한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바쁘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계처럼 작동되고 있다.

바쁘게 산다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외면하고 그때그때 열심히 사는 척 고민을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미련까지 도시에 다 버리고 온 재하와는 달리 혜원은 그저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은 채 떠나온 것이다.

 

아줌마 떡 맛은 달지 않은데 단맛이 나고, 네 건 짜지 않은데 짠맛이 나.

겨울에 심은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고 한다. 밤 조림이 맛있다는 건 가을이 깊어졌다는 이야기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추운 겨울을 견딘 양파가 더 달고 단단해진 것처럼, 밤조림이 때가 되면 깊어지는 것처럼 자연처럼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혜원의 친구 은숙(진기주)이 던진 이 한마디가 나에게 참 강하게 부딪혔다. '통장에 스쳐 지나가는 월급 같은 년'

한 달 죽어라 바쁘게 달린 결과는 허무하게도 통장에 숫자만 찍고 스쳐 지나가버린다. 바쁘게 스쳐만 가느라 정작 아무 것도 못 담아낸 청춘이 아프다.

재하의 말처럼 바쁘게 산다고 문제 해결이 돼라는 질문에 젊은 청춘이 NO라고 외칠 태세 같다.

 

적어도 농사에는 사기, 잔머리 그런 게 없잖아.

태풍에 사과들이 다 추락해 맥이 빠지기 하지만 최소한 사기 치고 짓밟진 않으니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지는 것이고,

그 모진 풍파에도 용케 버텨 떨어지지 않는 사과 하나를 혜원에게 건넬 수 있음에 행복해 보이는 재하였다.

기다릴 줄 알아야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듯이 실패에 발길을 돌리지 않고 떨어진 사과를 주워 사과잼을 만들고,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하는 것이다.

 

요리도 인생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세상엔 늦은 일이란 없다고 생각하지만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곡식들도 제대로 심고,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많은 과정을 거치고 버티고 흔들린다.

열매가 열리기까지,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까지,세상은 우리에게 과정 없이 결과물을 주지 않는다.

 

난 그곳을 떠나온 게 아니라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친구에게 내뱉고 싶을 때 내뱉지 않으면 독이 된다고 말하면서 혜원 역시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걸 안다.

재하는 다 버리고 도시를 떠나왔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제대로 축하도 못해주고 제대로 관계를 끝낼 용기도 없었다.

두 번의 겨울을 맞이하고서야 남자 친구에게 전화해 진심으로 합격을 축하해주고, 이별도 한다. 잘 정리해야만 다시 잘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겨울이 와야 정말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는 거야.

실패하면 어쩌지, 늦었으면 어쩌지, 그런 불안감 때문에 대문을 걸어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잘 돌아오기 위한 긴 여행의 출발선에 있다고 생각하라는 엄마의 말처럼 자주 출발선에 서야 하는 게 청춘인 줄 모른다. 우리 모두가 그저 견디고만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줄도 모르겠다. 잘 견뎌내는 것 또한 과정이다.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어지는 영화이다.

고향은 언제든 지치면 쉬고 가라고, 언제든 돌아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으라고 어머니가 마련해 준 숲인 것 같다.

 

엄마(문소리)에게는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이 그만의 작은 숲이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봐야겠다. 시험, 연애, 취업 그게 인생이 주는 그림은 아니다.

인생에 사계절을 제대로 담아낼 자신만의 숲을 만들어 가야 하고, 자신의 나무를 심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