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4. 9. 22:11

감독 킴벌리 피어스

소년은 울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에 담기면 담길수록 많은 지식과 경험과 함께 공감대가 넓어진다.

다른 이의 슬픔에 쉽게 얹히고, 다른 이의 다른 모습에 또 하나의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경시하지 않는다.

외모보다 마음의 온도에 더 다가서게 된다.

살면서 나자신보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성장해 가는 것이 더 많았다.

 

나를 제외하고 나면 전부가 타인이다. 나를 대할 때와 타인을 대할 때의 온도는 다르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내가 뜨거워질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 뜨거움에는 설명도 해명도 필요치 않다. 같은 무늬로 사랑하지 말라고 누가 정해 놓은 것인가?

다른 무늬만 사랑이라고 묶어놓은 것은 또 누구의 상식인가?

상식을 논하는 사람치고 상식적인걸 본 적이 없다. 진실만 100% 먹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위선을 보지 못할 뿐이다.

 

그녀로 태어났지만 그로 살았다.

그게 자신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신의 장난처럼 겉은 여자로 만들어 놓고, 육체 안에는 남자를 심어준 것이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겉지인 육체가 아니라 속지인 정신이라는 것이고, 마음이라는 것이다.

실화라서 더 안타까운 삶이다. 그래서 가해자들이 미운 것이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존과 그 친구들'

티나 브랜든(힐러리 스웽크)은 그녀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그로 살아야 했다.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조차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점점 남자같아졌고, 여자에게 호감이 갔고, 여자에게 사랑을 느꼈다.

남자가 되어가면서 삶이 엉망이 되었다.

브랜든은 남자로 행사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남자였다. 그로 사는 걸 행복해했다. 티나 브랜든은 자신을 사랑했다.

단지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자신의 껍질을 바꾸고 싶어 했을 뿐이다.

하지만 성전환수술을 받기엔 금액이 너무 감당할 수 없었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라나에게 반한 티나 브랜든'

남장을 하고 우연히 들른 술집에서 캔디스(알리시아 고랜슨)를 만나 인연이 이어지고, 그녀의 집에서 머물며 그녀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브랜든은 남자로서 거친 그들의 생활에 가담했고, 안에 담겨있던 자신의 남성 본능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라나 티셀(클로에 세비니)을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해 버린다. 하지만 라나에게는 그녀를 좋아하던 남자 친구 존(피터 사스가드)이 있었다.

존은 탐(브렌단 섹스톤)과 나쁜 짓을 서슴없이 하고 다니는 거친 친구들이었다.

라나와 브랜든은 점점 서로에게 빠졌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티나 브랜든과 라나'

티나 브랜든은 절도혐의로 수배 중이었고, 경찰 단속으로 위조된 면허증을 제시한 것이 발각되어 유치장에 들어가게 된다.

그로 인해 그가 그녀라는 사실을 라나와 그 친구들이 알게 된다.

유치장에 면회 온 라나에게 자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여자라고 말한다.

"네가 누구든 난 상관없어. 내가 널 여기서 꺼내 줄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우리도 아름답게 살아야지."

라나는 그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사랑한 것이다. 티나는 자신이 여자인 것을 라나가 알고 이해해주자 이제야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라나만이 그도, 그녀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그냥 이렇게 두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주변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라나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모두 브랜든을 내치기만 했다.

그리고 존과 탐은 브랜든을 데리고 나가 그가 여자임을 모욕적으로 밝히고 짓밟았다. 하물며 성폭행하고 폭력까지 가했다.

존과 탐은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복수심에 캔디스에 집에 있는 티나를 살해하고 만다.

존과 주변인들의 편견과 혐오로 여자로도 남자로도 살아가기 힘들었을 티나 브랜든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삶을 더 진행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잔인한 현실이다.

누구로 인해 구분되어진 사랑인지 모르겠다.

무엇으로 구분짓는지 모를 세상이다.

남자, 여자 보다 인간과 짐승으로 구분지어야 할 세상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존은 브랜든 티나 살인죄로 유죄를 선고받고도 사형을 면하려고 항소했다는 사실이 짜증이 난다.

남의 목숨을 둘이나 앗아간 자가 본인은 무엇을 위해 더 살아보겠다고 용쓰고 있는 것인가?

겉모습으로 구분 짓는것이 아니라 인간적인가 비인간적인가로 갈라놓고 싶은 세상이다.

마음이 차가운가 따뜻한가로 온도를 측정해 갈라놓고 싶은 세상이다.

 

그는 고속도로를 타 본 적도 없고, 어디 멀리 가 본 적도 없고, 링컨을 벗어나 본 적도 없다.

더 살았다면 펼쳐 보았을 삶과 사랑이 안타까워 눈물이 난다.

존으로 인해 티나 브랜든(1972~1993년)이 살지 못한 삶이 너무 아프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가 아니라 소년은 울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그 세상을 살지 못하고 가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