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1. 28. 18:00
글루미썬데이(Gloomy Sunday 1999)

감독 : 롤프 슈벨

영화 글루미 썬데이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는 어렸다. 사랑에 대한 깊이도 없었다. 유대인과 나치에 대한 관점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고, 세명의 남자를 이해할 수도 없었다. 특히 여주인공 일로나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 영화를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습득하기 힘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이루어지 않는 사랑의 형태가 외국에서는 아니 헝가리에서는 가능한 것으로 문화적 차이로만 배타적으로 받아들인 영화이다.

그저 내게 이 영화는 자살곡으로 알려진 글루미 선데이란 곡만 기억하게 하는 영화이다. 왠지 글루미 선데이 노래를 틀어놓고  세 주인공을 바라보면 다 하나같이 슬퍼 보였다.

이 영화를 오늘로서 세번째 접하고 있다. 내가 좀 더 세상의 물결을 타고 나이를 먹었고, 사랑의 깊이를 좀 더 팠고, 홀로코스트 영화를 선호하게 됨에 따라 이 여자 주인공 일로나와 자보와 안드라스를 좀 더 다른 각도로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독일인 사업가 빅크 한스가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작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을 찾는다. 6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식당은 그 자리에 있었고, 간판 이름도 그대로이다.

전에 먹던 비프 롤이 그리웠던 그는 아내와 같이 이곳에 왔다. 비프 롤을 주문하고 노래 한 곡을 신청한다. 그리고 연주되는 아름답고 슬픈 선율과 눈에 들어오는 여인의 사진한 장, 한스의 표정으로 이 곳이  추억에 깃든 장소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일어서는가 싶더니 갑자기  쓰러진다.

일로나, 자보,안드라스
60년전 다정한 남자 자보(요아킴 크롤)와 그의 연인 일로나(에리카 마로잔)가 운영하는 부다페스트의 작은 레스토랑, 레스토랑에는 한 대의 피아노가 있고, 그 피아노를 연주하는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라는 피아니스트가 있다. 안드라스는 좀 우울하고 외로움이 느껴지는 인상이다. 
일로나의 생일날, 그녀에게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을 선물로 연주해 준다. 
노래는 아름다우면서도 선율이 굉장히 슬펐다. 예전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 검색 했더니 나온 노래가 바로 이 곡이었다. 
그리고 일로나에 반해 식당에 매일같이 와서 비프 롤을 시키는 독일 남자 한스, 그는 일로나에게 자신도 오늘 생일이라고 하며 그녀 사진을 한 장 찍어 준다.
네 사람은 식당을 마치고 나란히 길을 걸어 나간다. 한스는 일로나에게 자신과 결혼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일로나는 거절한다. 
안드라스, 자보, 한스는 일로나에게 빠져 있다. 일로나가 매혹적이긴 하다. 뭔가 사람을 흡입하는 눈빛과 묘한 매력이 있다. 자보는 일로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일로나는 안드라스를 선택한다.
일로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보와 한스는 강물을 지켜보며 안드라스가 연주한 '글루미 선데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주 이상한 노래야. 마치 듣고 싶지 않은 얘길 해주는 것 같다."라고 한스가  말하자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게 진실이라고 하죠."라 자보가 말한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지금 한스나 자보에게 일로나의 마음일 거란 생각이 든다.
한스는 글루미 선데이를 흥얼거리며 다리를 건너 가더니 강물에 뛰어 내리고 만다. 풍덩소리에 놀란 자보가 물에 빠진 한스를 구해낸다.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말하며 자신을 구해 준 은혜를 꼭 갚겠다고 말하며 독일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우울한 일요일
안드라스와 일로나가 사랑하자 일로나를 사랑하는 자보는 "일로나를 완전히 잃느니 한 부분이라도 가지겠다"고 말한다.
솔직히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 또 자보의 저 심정이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일로나가 안드라스를 좋아하게 되는 것을 알고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배려해 준 것이고, 누구나 모두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4년동안 일로나와 지내오면서 인간은 그게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무엇인가를 계속 채우려는 갈망을 가지고 있고, 그건 인간의 무한한 욕구와 같다. 그걸 억지로 나만 사랑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세상에 이런 남자가 있을 수 있구나.'그는 너무 넓은 아량과 따뜻한 배려와 깊은 사랑을 가진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반쪽이라도 갖기를 원했고, 일로나는 두 남자를 사랑하기로 한다.  한 여자를 남자 둘이서 나누어 갖는다?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과연 이게 가능할까? 서로 질투로 상처만 남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들은 세명이서 사랑 이상의 우정과 협력을 보여 주었다. 

안드라스가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는 라디오를 통해 헝가리에 울려 퍼진다. 음반으로 발매한 '글루미 썬데이'는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음악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 슬픈 선율이 연이은 자살사건으로 이어진다. 이 신비하고 소름끼치는 선율은 지난 8주간 헝가리에서만 157명의 자살을 낳고,유럽대륙은 물론 세계에  울려 퍼져 죽음으로 인도하는 노래가 되었지만 작곡가에게 부를 안겨주었다.그러나 안드라스는 괴로워한다.
 
Gloomy Sunday
사랑에도 파열음이 생기고 삶에도 균열이 오는 계기가 그들에게도 다가온다. 부다페스트가 나치에 점령당하고 일로나를 사랑했던 독일 남자 한스가 독일군 대령이 되어 나타나면서부터다.

대령이 된 한스는 예전의 한스와는 다른 모습으로 자보를 대한다. 레스토랑에 독일군과 식사로 하러 온 한스는 안드라스에게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하라고 한다.
하지만  한스에게 반감을 가진 안드라스가 피아노 연주를 하지 않자 위기감을 느낀 일로나가 글루미 선데이 악보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안드라스가 그녀의 목소리에 피아노를 연주를 얹는다.
아마 이 영화중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것 같다. 가사가 더해진 노래와 곡의 선율, 그리고 일로나의 음색까지 더해져 노래는 정말 슬프고 아름다웠다. 숨막히는 분위기였다.
레스토랑안은 숨소리하나 나지 않고 오로지 일로나의 목소리와 그 위에 얻어진 피아노 선율만이 모든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듯 했다. 
노래를 마친 일로나가 주방 안으로 들어와 숨을 돌리고 있는 순간 총소리가 들렸다. 놀라 뛰어나가보니 안드라스가 한스의 권총을 빼앗아 자살을 한 것이다.결국 노래를 만든 작곡가가 자신의 노래를 연주하고 자살을 한 것이다.

 

자보가 안드라스의 장례식을 치르고 글루미선데이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부분을 가져올까 한다. "상처를 받고 모욕을 당해 마지막 남은 존엄성을 가지고 최대한 견디는 것이다.
더는 못 견딜 상황이 오면 차라리 세상을 떠나는 게 나아 떠나는거야. 존엄성을 가지고." 그는 질투로 자신과 일로나의 사랑을 지키는데 바닥을 드러내 보였다.자살을 부르는 작곡가로서 최대한 견디고 있었다.
글루미 선데이를 일로나의 목소리를 통해 불리어 질 때 그의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그는 일로나의 사랑에 상처 받고 최대한 견디고 있었으나 한스로 인해 모욕당하면서 자신의 존엄성을 바닥나게 할 바에야 존엄성을 가지고 자살을 선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루미 선데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지는 곡이었다.
 
한스는 사업가이다. 독일군 대령으로서라기보다 사업가로서 이 전쟁을 이용하여 돈을 벌 생각을 계획중이었던 것이다. 유태인을 돈을 받고 스위스로 빼주는 것이었다. 
거리에 최소한 50만명이 유태인이 있는데, 독일군은 헝가리에 있는 유태인을 다 학살하려고 한다. 한 사람당 천달러를 요구하며 유태인들을 빼내려면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한다.
그는 그 유태인들에게 받은 현금과 귀금속들을 관속에 넣어 운반했다. 오직 사익만을 위해 자신의 조국인 독일도 속이고 유태인들도 속이는 비열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일로나와 자보는 믿었다. 자신들이라도 도울 것이라고 말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재물을 건네며 헝가리를 벗어 나갈 수 있게 해 준 한스에게 고마움을 가졌다. 
 
자보가 독일군에게 잡혀가자 일로나는 한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간다.  한스는 자신에게 도와 달라고 온 일로나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자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한스밖에 없고 그의 요구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일로나였다.
 한스는 기차역으로  자보를 빼내려 간다. 하지만  정작 눈 앞에 있는 자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간다. 자보를  구할 수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구하지 않는다.
한스가 강물에 빠졌을 때 구하지 않았어야 했다. 전쟁 후에 자길 도울만한 사람들만 구한 것이다. 계획적이었다. 
더 분노할 일은  한스가 2차대전 당시 천명의 부다페스트 유태인을 구한 영웅처럼 알려진 것이다. 그렇게 번 돈으로 종전 후 독일에서 가장 큰 수출입 회사를 세웠다.
자신의 한 짓을 조금이라도 가책을 느낀다면 어떻게 이 식당을  추억을 되새기려고 비프롤을 먹으러 올 수 있으며, 자신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안드라스의 곡을 좋아하는 곡이라며 신청할 수 있으며, 80회 생일에 아내와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고 이 식당에 올 수 있는 것일까? 
 

안드라스의 무덤에 간 일로나는  배가 불러있었다. 도대체 누구의 아이인가? 그렇게 60년이 지나 그 식당은 일로나에 의해 계속 운영되어 왔고, 그 배속의 아이가 60살이 되어 그 식당 지배인으로 그 독일대령이었던 한스 부부를 자리를 안내하고 음식을 내온다. 

지배인인 아들이 설거지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생일 축하해요.'라고 할 때 전율이 흘러 내렸다. 같은 날 생일이었던 일로나였다. 마지막 남은 존엄성을 가지고 최대한 견뎌서 한스에게 전해준 것이다.  
이상하게 세명의 러브스토리에서 이게 뭐지, 너무 비현실적이라 여겼다. 
자보와 안드라스는 "당신은 두 남자를 가졌잖아. 우린 반쪽씩만 가지고 말야. 우리가 고통스러운 게 누구탓인데! "자보도 안드라스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일로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누구보다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을 .....
우울한 일요일은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셰레시 레죄가 1933년에 발표한 곡으로 많은 자살을 불러 일으킨 노래로 유명하다.헝가리 정부에서 이 노래를 금지시켰다. 작곡자 역시 68년도에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