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쉬 걸
덴마크 풍경화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와 초상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는 부부이자 예술적 영감을 주는 파트너다.
게르다의 발레리나 모델이 자리를 비우자 남편 에이나르에게 대역을 부탁한다.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선 에이나르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혼란을 겪는다.
아내 게르다는 남편 에이나르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오늘밤 외출하자 색다른 모습으로” 게르다는 에이나르에게 여장을 시키고 파티에 가게 된다.
여장을 한 에이나르는 여성 릴리였다. 남자로 보는 이는 없었다. 그의 여장은 완벽했다. 표정, 몸짓, 느낌.
처음에는 단순한 게임이었는데, 릴리가 자신의 여성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릴리는 존재하지 않아. 우린 게임을 한거야” 분명 릴리에게는 중요한 내면의 변화가 오고 있다.
게르다는 남편에게 내면의 릴리가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가끔 자신의 속옥을 입고 있던 남편인데도 말이다.
에이나르는 자신이 뭔가 달라지고 있음을, 자아에 엄청난 변화가 시작됐고, 그걸 억압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삶이 흔들리고 있다.
대니쉬 걸은 덴마크 화가 베게너의 삶을 영화한 것이고, 세계 최초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실존인물이다.
베게너의 여성인 릴리의 일기를 바탕으로 쓰여 졌다고 한다.
1920년대 남성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남자에서 여성으로 넘어가기 위해 5차례나 수술대 위에 오른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성전환수술을 1년여에 걸쳐 무려 5번의 수술을 한 그는 난소와 자궁이 성공적으로 이식된 그 해 나이 49살이었다. 여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후에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남자로 태어나 여성으로 죽은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나 역시도 그런 말이 나오니까.
하지만 아이를 갖고 싶다는 그녀의 간절한 소원은 그를 5번이나 목숨을 걸고 수술대에 오르게 만들었다.
그의 갈증을 우리가 이해할 문제는 아니었나보다. 그들이 그렇게라도 감행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다고 여자가 되나?’ 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던졌던 나였다.
세계 최초로 성전환수술을 한 덴마크 풍경화가 베게너가 내면의 릴리를 받아들이기까지의 걸음은 이해받고 이해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이해 따윈 필요 없는 그의 자아였고, 그의 행복의 척도라고 본다.
이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통해 사랑이 얼마나 특별하고 깊은 감정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성이나 성별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남편을 잃게 되는 일임에도 정작 그의 선택을 지지했던 게르너, 사회적인 분위기나 편견보다 정말 그의 전부인 그의 선택을 지지했다는 건 오직 사랑이었을 것이다.
이 사랑에 전 세계가 매료되었다고 본다. 성전환수술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으려는 그의 용기는 벌써 백 년전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냥 용기로만 가능했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에게 에이나르는 “전 여자라고 믿어요” 라고 말하자,옆에 있던 게르다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포용력 끝에 분명히 아픔도 컸으리라. 난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나의 육체를 나눠가질 수 없는 슬픈 운명!
편견을 빼라, 그들은 잘못 태어난 것도, 하느님의 실패도 아니다. 병도 아니다.
하나의 몸 안에 두 개의 성이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조금은 이해된다고 위선 떨고 싶지는 않다.
하나의 육체에 남성인 에이나르와 여성인 릴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멋진 아내 베게너는 릴리를 끄집어내준다.
“당신만이 나를 존재하게 만들어 줬어”게르다는 릴리를 끝까지 사랑했다.
그 모습에 감명 받았고, 에이나르의 저 말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무리 개방적인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으로 이어질 수 없는 편견과 인식!
우리는 아직도 그 모진 눈빛을 에이나르같은 사람에게 보내고 있고, 문을 닫고 있다.
이 영화는 에이나르같은 성정체성을 갖고 태어난 그들에게 나의 잣대로 들이대지 말라고 말하는 듯 해 내 안의 편견에 칼집을 냈다.
죽음과 맞바꿀 수 있는, 자신의 자아를 갈구하는 에이나르의 용기 있는 삶에 비해 우리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 얼마나 될 것인가? 조금이나마 유리의 색을 닦고 보면 어떨까?
톰후퍼감독이 에디 레드메인의 배우를 만난 게 축복이라 여긴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의 감정과 만난다. 그의 표정에 집중하면 그의 내면과 만난다. 이런 영화는 없었다.
만지지 않고도 촉감이 느껴지는 섬세한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력!
에이나르가 살아온 건 아닐까? 에디 레드메인의 육체를 빌어 들어온 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영화화면을 수없이 정지시키며, 에드 레드메인의 섬세함에 끝없이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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