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2. 1. 18:48
감독 배리 젠킨스
문라이트 영화포스터

 

출연 : 알렉스 R.히버트(리틀), 에쉬튼 샌더슨(샤이론),트래반트 로즈(블랙), 나오미 해리스(폴라), 자넬 모네(테레사), 마허샬라 알리(후안)

 

항상 영화는 호불호가 나뉘는 부류의 영화가 있습니다. 성정체성에 대한 문제일 때가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 전 <브로큰백 마운틴> 을 보고 성정체성의 주제를 다룬 영화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고정관념이 세상을 보는 시야를 얼마나 좁게  만드는 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의 편견은 다양한 형태로 큰 벽을 이루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것 또한 개인의 취향의 문제라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퀴어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는게 이례적이라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성정체성 주제만 놓고 본다면 <브로큰백 마운틴>이 훨씬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의 성장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면 상당히 가슴 아픕니다. 너무나 많이 울어서 눈물로 변해버린 것 같다는 샤이론을 말을 듣고 있으면 내가 뭐라도 해주고 싶은 연민이 생깁니다.
그는 혼자 어둠을 삼키고 어린 시절의 어둠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의 인생은 햇살아래 놓이지 않게 됩니다. 
나는 그들의 성정체성이니, 흑인이니, 백인이니 하는 인종차별적인 문제를 떠나 한 인간으로만 오롯이 몰입 했습니다. 눈물 흘리지 않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그런 슬픔은 오래 여운을 남깁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전문가들이 하는 평은 높고, 일반 관객들의 평은 다들 제각각인지 궁금했습니다. 솔직히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르는 장면이 얼마나 되나? 계속 여운이 남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머리속에서 영상이 지워지지 않을 때 나는 그 영화를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가집니다. 

남들이 써놓은 평에 내 취향을 옮겨 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쏙쏙 박히는 대사가 있습니다.
대사를 들으면 마치 내 일인냥 '아 ~저 말 되게 가슴에 와서 꽃힌다.'하는 그런  대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스며 드는지를 느낍니다.  
이 영화는 한 흑인아이의 성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저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스토리가 아닌 감정선의 표현이 이 영화를 이렇게 극찬 위에 올려 놓게 된 것이라 여깁니다.
잔잔하게 깊이 파고드는 안쓰러움, 쓰라림,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눈빛과 표정과 몸짓에 담아 냈다는 것이 그걸 느낀 사람들의 감탄사가  박수를 보낸 것 같습니다.

리          틀

리틀시절

이름은 샤이론, 하지만 아이들은 리틀이라고 부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쿠바나 아프리카가 아닌 미국 마이애미라는 도시입니다. 이 곳에서 한 어린 흑인 아이가 같은 흑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엄마로부터의 관심도 사랑도 못 받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당하면서도 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르지 못하고 아프다고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합니다. 오히려 주눅이 들고 마음과 말문을 열지 않고 꽁꽁 닫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세상의 사람들과 치열하게 싸우거나 자신의 외롭고 눅눅한 감정들과 싸웁니다. 어떤 날은 어루만지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고, 또 회피하기도 하면서 자신을 자신 안에 가두기도 하고,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감추려고 애도 씁니다.

오늘도 리틀은 괴롭히는 아이들로부터 도망쳐 한 건물에 숨게 됩니다. 그 곳은 마약을 파는 동네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필이면 리틀이 숨은 곳은 후안의 약 창고였고, 후안은 마약거래상입니다. 후안은 안에 숨어있는 리틀을 데리고 식당에서 음식을 사주지만 리틀은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상처 받은 아이는 고개를 제대로 드는 법이 없습니다. 집에 데려다주려고 해도 입을 열지 않는 리틀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그의 여자 친구 테레사가 다가와 줍니다. 집에 가기 싫으면 오늘 밤 여기서 자도 된다고 리틀을 하루 밤 재워줍니다.

그렇게 후안과 테레사는 리틀을 따뜻하게 안아 줍니다. 리틀에게 손 내밀어준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리틀은 후안과 테레사의 집을 자주 찾아 갑니다. 후안은 아버지처럼 리틀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고,리틀도 후안을 믿고 따릅니다.
후안이 리틀 수영가르쳐주는 장면

후안은 어릴 적 달만 뜨면 맨발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달빛을 쫓아 뛰어 다니는구나. 달빛 속에선 흑인 이이들도 파랗게 보이지!"라고 말해주는 어느 할머니 얘기를 하며 흑인들은 어디 가도 있다고 합니다. 차별받는 소수로서 힘든 리틀의 마음에 달빛을 비추어 주듯 달빛을 쫓아 뛰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후안은  "언젠가는 뭐가 될 지 스스로 결정해야 된다. 그걸 남한테 맡기지 마."라고 말합니다. 마약에 취해 자신을 등한시하는 엄마로 인해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인해 아픈 리틀의 삶에  후안은 달빛과 같았습니다. 리틀은 엄마보다 후안과 테레사에게 더 가족 같은 정을 느낍니다. 리틀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샤    이     론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세 명의 다른 배우가 연기하지만 끊어짐이 없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저 포스터처럼 세줄 모를 정도로 전혀 어색함이나 이질감없이 매끄럽게 세 성장기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재미는 없습니다. 그만큼 재미로 보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어둡다.  청소년기로 넘어 온 샤이론의 삶이 좀 나아졌을까요? 
이미 마약중독으로 이성의 끈이 없어진 듯 엄마는 샤이론에게 돈까지 내놓으라며 고함을 지르고, 이미 몰골은 병든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그를 호모라고 더 심하게 놀리고 있습니다. 청소년기로 넘어오니 후안도 죽고 없습니다.  리틀때보다 더 고단하고 힘들어 보입니다.
그의 얼굴은 어둠으로 늘어져 있고, 고단한 어깨는 아래로 떨어져 있습니다.  저 아이의 푹 숙인 고개를 언제쯤 들게 해줄까요?  케빈은 샤이란을 블랙이라 부른다. "왜 그렇게 부르냐?"는 샤이론의 질문에 케빈은 "나만 부르는 별명이야."라 말합니다.
샤이론 청소년기

케빈은 "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세상이 다 멈춘 기분이야, 울고 싶을 정도로 기분 좋다니까!"  바람이 주는 느낌으로 인해 감정을 쏟아내는 두 사람은 세상의 고단함을 잊고 평화로워 보입니다. 넌 언제 우냐는 케빈에 물음에 "난 너무 많이 울어서 어쩔 땐 눈물로 변해버릴 것 같아!"라고 말합니다. 슬픔이 얼마나 크길래 너무 많이 울어서 어쩔땐 눈물방울로 변할 것 같다고 할까, 샤이론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싶은 연민을 가지게 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외로웠을지 가슴이 아픈 말이었습니다. 케빈은 그를 안아 주는데 묘한 감정의 끌림이 두 사람사이에 몰려옵니다. 그리고 케빈과 샤이론은 키스를 합니다. 정말 호모라 놀림받다보니 자신이 진짜 게이인 줄 알고 스스로를 넘겨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다가 이 상황 뭐지? 하는 생각으로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그의 표정에서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순간적인 충동이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몸 안 어디 깊숙이 박혀있던 성 정체성이 그의 표정 밖으로  쏟아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케빈과 샤이론
 
학교에서 케빈은 상황에 밀려 샤이론을 때리게 됩니다.샤이론은 이상하게 케빈에게 맞으면서도 저항하거나 웅크러 들지 않고 계속 일어나 케빈에게 맞으려 들었습니다. 케빈은 샤이론에게 "일어나지마. 누워 있어."라고 외칩니다. 그럼 멈출 수 있는데 샤이란은 계속 일어나 케빈에게 폭력을 가하게 만듭니다. 케빈에게 상처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케빈에게만은 좀 다른 모습이고 싶었던 건지 그동안 샤이론한테 보지 못한 표정이었습니다. 다음 날 샤이론은 항상 힘없고 의기소침한 발걸음이 아닌 굉장히 힘있고 분노에 차 있는 발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가 케빈에게 자신을 때리라고 종용하고 자신을 계속 괴롭혀오던 터렐을  의자로 머리를 가격합니다. 그로 인해 샤이론은  경찰에 의해 끌려 갑니다. 친구 케빈과 보낸 특별한 감정을 뒤로 한채 샤이론을 태운 경찰차는 사라집니다. 
 

 블       

 

성인이 된  그는 우리가 알던 약하고 의기소침한 샤이론이 아니었습니다. 근육질의 남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터렐을 폭행한 죄로 교도소에 간 그는 감옥에서 나온 후  애틀란타에서 마약 거래상이 되었습니다. 샤이론은 마약 거래상 후안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후안은 줄곧 검은 비니를 쓰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마저 후안을 닮아 있습니다. 블랙은 케빈이 샤이론을 부를 때 쓰던 별명이었습니다. 
성인이 된 샤이론

 

밤 중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그는 케빈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요리사가 되었고, 지난 일을 사과하며 식당에 한번 들리라는 말을 남깁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직도 엄마에 대한 악몽으로 잠을 깹니다. 마약중독자였던 엄마는 재활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엄마는 자신의 잘못으로 아들의 삶을 거리로 내몬 것 같은 죄책감이 가슴을 에이게 합니다.
" 난 잘못 살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망쳤지! 나도 알아. 하지만 네 마음은 나처럼 검지 않아. 사랑해! 샤이론 정말이야.사랑한다 우리 아들! 넌 엄마를 사랑하지 않겠지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아들이 원할 때 사랑을 주지 못했던 자신이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만큼 검지 않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그렇게 서로의 고단했던 삶을 엄마와 자식이란 관계로 위로하고 용서하며 서로를 끌어 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가족이라는 것을...엄마에게는 샤이론이, 샤이론에게 엄마뿐이기 때문에 서로 안으며 치유해 갑니다. 긍정적으로 변한 엄마의 삶에 조금은 아들로서 다가가 엄마를 안아줍니다.
블랙과 케빈

 

그리고 샤이론은 케빈이 하는 식당을 찿아 갑니다.
너무 많이 변해버린 샤이론의 모습에 다소 어색함을 느낀 케빈,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샤이론은 애틀란타로 이사가서 강해지려고 처음부터 끝까지 바꾸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근육질 건장한 모습의 블랙과 그가 마약거래상을 한다는 말에 케빈도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감옥을 다녀왔고,자신의 아이까지 있다고 말입니다. 얼마 안되지만 자신의 삶을 산다고 "등신같이 살았지! 그냥 되는데로 진짜 하고 싶은 건 하나도 못했지. 남들 말만 들으면서 살았지. 지금은 지금은 애도 있고 직장도 있잖아.그러니까 당장은 무척 피곤하고 푼돈 밖에 못 벌지만 전에 있었던 그런 걱정은 없잖아 " 라고 케빈은 말합니다. 
너무 돌고 돌아 자신의 삶을 찾은 케빈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듯 했습니다. 
10년이 지나 만난 그들은 한동안 어색했지만 그의 집에서는 케빈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블랙은 계속 내면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낼 듯 말듯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눈빛이 묘하게 흔들렸습니다. 케빈을 바라보는 블랙의 눈빛에서 떨림이 느껴졌습니다. 그는 분명 케빈의 전화를 받고 예전 케빈과 있던 바닷가의 블랙이었습니다. 
" 날 만져준 사람은 너 뿐이야. 너 하나였어. 그 후로 아무도 만진 적 없어"라고 자신의 감정을 케빈에게 고백합니다. 케빈의 어깨에 샤이론은 머리를 기대고  케빈은 머리를 쓰담아 주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영화 문라이트
포스터 이야기를 해야 되겠군요. 한번 자세히 들여다 보세요. 샤이론이란 이름을 가진 한 흑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리틀로 불리던 어린 시절과 샤이론이라 불린 청소년 시절과 어른인 된 블랙 역을 맡은 세 명의 배우의 얼굴을 조합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같죠. 정말 최고의 포스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다시 이 포스터를 보십시요. 아마 처음 봤을 때랑 다른 영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명의 배우로 한 사람의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에 주어진 색도 나름 영화를 보고 나면 샤이론의 성장에 따라  내면을 서로 다르게 표현되었다고 봅니다. 아마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도 느낌으로 아~하고 느낄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한 사람의 성장과정을 통해 가족,사랑,인생, 정체성에 대한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라 여깁니다. 대사나 스토리로 담아내었다기 보다 세 명의 배우로 한 인물을 매끄럽게 연출하였음은 물론이고, 감정의 섬세함으로 삶의 색들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인물의 주변 사람들의 그에게 달빛도 되어주다 어둠도 만들어주다 잠자고 있던 정체성을 끄집어 내어주는 인연으로 관계로 풀어냅니다. 어짜피 삶은 홀로 살아낼 수 없습니다. 어둡고 칙칙하더라도 가야 하는 길에 달빛이 있었습니다. 그 달빛에 몸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영화는 터렐 앨빈 매크레이니의 희곡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례적인 사건이 많았던 작품입니다. 우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라랜드>와 봉투가 잘못 전달되어 작품상에 <라라 랜드>가 호명되어 출연진이 수상소감을 거의 마칠 무렵에야 번복이 되어 작품상을 받게 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퀴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30대 흑인 감독 베리 젠킨스는 연민과 섬세한 감성으로 한 인간의 내면의 정체성을 끄집어 냈습니다. <문라이트>는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8개부문 노미네이트 되어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색상을 수상하였고, 제74회 골든글로브 6개 부문 노미네이트 되어 드라마 부문 작품상 수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