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4. 28. 14:11

세가지 색 : 화이트

화이트는 평등을 테마로 다룬 소재이지만 솔직히 감독의 의도가 좀 억지스럽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사랑이란 그늘에 가려진 복수로서의 평등이 아니었을까.

폴란드인 이발사가 프랑스의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쫓겨난 입장에서 모든 것이 불평등하고 차별받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다.

 

 

폴란드인 이발사 카롤(즈비그니브 자마코브스키)은 프랑스인 도미니크(줄리 델피 )와 결혼해 프랑스에서 살고 있지만 아내에게 성적 만족을 주지 못해 이혼당하게 된다.

아내 때문에 재산까지 다 뺏기고 방화범이란 누명까지 쓴 채 한 푼도 없이 지하철 역에서 노숙을 한다.

솔직히 성적 만족을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판까지 가서 까발려지는 것도 치욕스러운데 그래도 같이 산 최소한의 정이 있건만 한 푼도 없이 내쫓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아내를 사랑하는 카롤은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만난 폴란드인 미콜라이에게 아내를 자랑하기 위해 지하도 위로 올라가 그녀의 창문을 가리킨다.

하지만 아내의 방 창문 실루엣으로 다른 남자를 끌어안는 장면을 보게 되고 공중전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는 자신과 다른 남자가 사랑을 나누며 내는 신음소리를 전화기로 들려주었다. 자신이 원하는 건 이런 것이라고 까롤이 못 채워주는 걸 드러내 보인다.

 

미콜라이는 까롤에게 자살을 원하는 어떤 남자를 대신 죽여주면 거액의 돈을 준다는 제안을 한다.

까롤은 폴란드로 떠나기로 하지만 돌아갈 돈이 없어서 비행기를 타는 대신 커다란 가방 속에 숨어 비행기 소화물 칸에 실리게 된다.

그렇게 국경을 넘지만 짐꾼들이 그 가방을 훔치는 바람에 카롤은 미콜라이와 헤이지고 하얀 눈으로 덮인 외진 곳에 버려진다. 까롤은 그 와중에도 주머니 속에 담긴 2프랑을 뺏기지 않으려고 지켜낸다.

그녀와 통화하고 남은 동전을 공중전화기가 집어삼키자 동전을 환불해달라고 고함을 질러 받아낸 2프랑이었다.

 

미련을 버리려고 동전을 강물에 버리려고 하는데 손바닥에 붇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를 닮은 하얀 조각상을 항시 곁에 두고 도미니크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도미니크를 만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어렵게 폴란드로 돌아온 까롤은 이발사와 보디가드로 일하며 열심히 돈을 번다.

미콜라이를 찾아간 까롤은 그때 자살을 원하는 사람이 아직도 죽기를 원하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돈이 필요했던 그는 총을 준비해 가지만 그때 죽기를 원한 사람이 미콜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첫 공포탄으로 그를 쏘고 아직도 죽고 싶으냐 묻자 미콜라이는 아니라고 하며 그에게 제시했던 돈을 전한다.

투자라고 생각하라고 그 돈을 받아 개발이 될 땅을 매입한다.

까롤은 공장이 들어설 농지에 대한 정보를 몰래 듣고 그 땅을 먼저 매입해 더 비싸게 되판다.

땅을 판 돈으로 무역회사를 차려 사업가로서 큰 부자가 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도미니크이다.

도미니크를 닮은 하얀 조각상을 바라보며 그녀에 대한 마음을 달래보고, 그녀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차가운 냉소만이 되돌아온다.

 

더 이상 애원하는 것을 하기 싫었던 그는 그녀를 폴란드로 오게 만들기 위해 전처에게 재산을 다 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가짜로 죽은 척 위장한다.

시체를 돈 주고 사서 관속에 시체와 함께 그동안 폴란드에서 유일하게 가져온 2프랑을 관속에 넣어버린다.

까롤의 가짜 장례식을 치르고 그 가짜 장례식에 도미니크가 찾아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몰래 망원경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가 묵는 호텔방에 먼저 가 그녀 앞에 나타나 그녀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성적 만족을 못 시켜주어 이혼까지 당했던 그는 도미니크를 만족시켜주고 다음날 아침 까롤은 사라지고 도미니크는 까롤의 살인범으로 몰려 감옥에 가게 된다.

프랑스에서 무능한 남자로 도미니끄에게 외면받았던 자신이었지만 지금은 막대한 재력과 성적 만족을 줄 수 있는 자신의 위치로 전환이 되었다.

프랑스 법정에서 당했던 차별이 아닌 자신의 나라 폴란드에서 그녀 역시 이방인으로서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좀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까롤은 감옥에 찾아가 멀리서 망원경으로 도미니크를 바라보고 도미니크는 수화로 출소해도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폴란드에서 까롤과 같이 살겠다고 한다.

까롤은 눈물을 흘리며 막을 내린다.

프랑스 법정에서 영화의 첫 화면에서 "폴란드인이라 차별하는 겁니까?' 하고 판사에게 외쳤던 부분이 있는 이유가 이래서일까?

 

서로가 일치하고 크기가 같은 사랑이란 건 없다. 사랑 앞에서 평등이라는 것 자체가 가능한 것인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은 프랑스 법정에서 너무 불공평하게 이혼을 당한 까롤을

힘없는 폴란드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차별을 표현해 내고,

성적 무능함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고, 자신을 방화범이라는 누명까지 씌우고, 카드마저 정지시켜 한 푼도 없이 거리로 내 몬 무정한 도미니크를 강대국 프랑스에 대입시킨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에 있어 위치로서 평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왠지 와 닿지 않는다.

개인 남녀의 사랑을 말이다. 자본이 갖는 위치와 사랑을 맞물려 생각하더라도 죽음을 가장해 도미니크를 감옥까지 보낸 것은 왠지 복수에 가깝지 않나 싶다.

폴란드와 프랑스라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불평등함으로 인해 이혼을 당한 것보다 도미니크 개인의 성적 취향을 채워주지 못한 한 남자의 부족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도미니크가 취한 행동도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다.

차별이라는 것은 힘 있는 자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다. 까롤은 거대한 재력가가 되어서야 자신을 보러 온 도미니크에게 맞서거나 부당함을 행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고, 프랑스가 아닌 자신의 무대에 세운 것이다.

어쨌든 둘의 관계는 역전된 것이다.

까롤이 재력을 갖춘 것은 도미니크와 평등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차별을 당한 만큼 차별당하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자신을 프랑스 법정에 세워 불리하게 만들었던 도미니크를 자신의 나라로 불러들여 자신을 죽인 살인범으로 똑같이 복수해줌으로써 평등을 지키기 않았나 하는 마음이 앞섰다.

이 정도면 서로 상처 주는 것은 공평해졌다. 너도 그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겠어. 이제 공평해졌지.

왠지 정신적 사랑보다 물질적, 환경적 대립에서 어느 정도 평행 선위에 올려놓으려고 한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폴란드로 그녀를 끌어들여 그녈 감옥에 보냄으로써 사랑의 위치를 바꾸어 생각하게 만든 의도가 아니었을까?

운명적으로 사랑을 느껴 국경을 초월하여 결혼했지만 그들의 이혼과 사랑은 첨부터 믿음과 사랑이 깊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