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라 나이틀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03.23 109. 어톤먼트
  2. 2019.03.01 65. 비긴 어게인 :음악으로 치유되다.
  3. 2018.12.02 6.오만과 편견 : 키이라 나이틀리. 매튜 맥퍼딘
posted by 해이든 2019. 3. 23. 16:45

어톤먼트


감독 조 라이트

 

 

Atonement가 주는 의미는 속죄다. 
13살때 자신이 한 거짓말로 두 사람의 사랑과 인생이 무너졌다. 철없는 짓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 여파가 너무 컸고, 되돌리기에는 불가능해졌다. 
용서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그럴 수 없음에 평생 죄책감의 무게로 눌려져 왔다. 그리고 속죄의 방편으로 'Atonement'이라는 자전적 소설로 세상에 내 놓게 된다.
소설로 자신이 한 거짓말로 인해 그들이 삶에서 잃어버린 것을 가상으로나마 주려고 했다고 인터뷰하고 있다. 
하지만 난 그 인터뷰가 맘에 들지 않았다. 
13살이었던 문학소녀인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넌)가 이제 77살의 노작가로 벌써 21번째의 소설을 내놓았고,  이 작품이 마지막소설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에게 참 많은 시간이 있었다. 

죽음이 코앞에 닥쳐서야 소설로 선물이라고 내놓고 가기에는 그녀는 끝까지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용서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벼워지기 위해서 말이다. 
그녀는 18살에도 소설을 준비했다. 20번의 소설을 발간하면서 그 많은 세월동안 자신이 용기없다고만 변명하고 싶은 것인가?
인생을 통틀어 기만하고 변명하고 끝까지 소설가로서의 결말을 미화하고 포장하는 것으로만 보였다면 내가 이 영화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인가?

 

제목은 속죄인데, 실명을 거론해서 자신의 잘못을 끌어내는 것으로  그녀는 그들의 잃은 삶을 소설속에 담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희망과 만족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가상의 만남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13살의 그녀도, 77살의 그녀도 변한 건 하나도 없다.

 

1935년 영국 탤리스 가문, 오빠 리안과 세실리아, 그리고 막내 브라이오니가 있다. 
13살이던 브라이오니는 첫 희곡을 쓸 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문학소녀이다.
그녀의 대저택에는 사촌 쌍둥이 형제와 사촌언니 롤라가 집에 묵고 있었고, 리안이 친구 마샬을 데리고 놀러 왔다. 
그리고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가 있다. 
로비(제임스 맥어보이)는 브라이오니의 아버지의 후원으로 캠브리지 대학까지 나온 재원이다. 
여름동안 정원 일을 하며 의사가 되려고 계획중이다. 
분숫가의 로비와 세실리아
어톤먼트 분수가에 앉아있는 세실리아와 로비
브라이오니는 침실 창가에서 분수가에서의 두사람, 언니인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로비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것은 분수 안에 떨어진 물건을 찾기 위해 세실리아가 속옷차림으로 수영해 꺼내오는 장면이다. 
로비는 브라이오니의 언니 세실리아를 사랑한다. 그래서 세실리아에게 편지를 쓰게 되고, 음흉한 생각으로 쓴 편지를 잘못 넣어 브라이오니를 통해 언니에게 전해주라고 부탁받게 된다. 

 

로비를 짝사랑하고 있던 브라이오니는 언니에게 전달하기 전 편지를 읽고 너무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에 충격을 받는다. 
로비가 편지지를 잘못 보낸 걸 알고 세실리아를 찾아가지만 이미 브라이오니가 다 읽고 언니에게 전달된 후였다.
로비와 세실리아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서재에서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장면을 또 브라이오니가 목격하게 된다.

 

몰래 편지를 읽는 브라이오니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전해주라는 편지를 몰래 읽는 브라이오니
 
그날 밤 저택에 머물던 쌍둥이 사촌형제가 쪽지를 써 놓고 가출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들을 찾아 나서고 브라이오니는 어둠 속에서 사촌언니 롤라가 성관계하는 걸 목격하게 되고 브라이오니에게 들킨 남자는 황급히 사라지고 롤라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브라이오니는 롤라에게 다 봤다며 성폭행 당한 것이고, 범인은 로비로 못박는다. 
로비의 음탕한 편지내용을 공유했던 롤라 역시 입장이 곤란해질게 뻔하니 브라이오니의 말에 그저 묵인한다. 

 

브라이오니는  롤라(주노 템플)가 성폭행당했고, 로비가 범인이라고 부모와 경찰에게 말한다. 로비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브라이오니는 알 수 없는 배신감에 로비를 성폭행범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13살의 질투심에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로 로비를 감옥에 보내고 만다.
언니와의 사랑을 나누는 장면과 노골적인 편지는 어린 브라이오니의 비툴어진 질투로 인해  이성을 마비시켰다.  
제임스 맥어보이와 키이라 나이틀리
세실리아와 로비
로비가 감옥생활을 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감옥을 가느냐, 군대를 가느냐 선택권이 주어졌고,로비는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동생의 거짓말로 로비와 헤어진 세실리아는 집에서 나와 간호사로 일하며 로비와 만날 날만을 기다린다.
세실리아는 간호사가 되어 가족과 연락도 끊고 지내고, 로비에게 돌아와 달라고 말한다. 

드디어 세실리아와 로비는 만나게 되고, 바닷가에 있는 하얀 별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전쟁이 끝나면 같이 지내자는 약속과 함께  하루하루를 버티어 낸다.
 
 18살이 된 브라이오니(로몰라 가레이)는 13살에 했던 거짓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철이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죄책감에 괴로워했고, 자신도 언니처럼 전쟁 중에 간호사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언니 세실리아를 찾아 갔다가 로비를 만나게 된다. 
"그때 난 13살이었어."
"사리분별하려면 몇 살을 먹어야 하니? 18살이 되어서야 거짓말을 고백하게 된거야. 길가에 버려져 죽음을 기다리는 18살 먹은 군인들도 있어. 5년전엔 진실 따윈 중요하지 않았잖아.내가 받은 교육에도 불구하고 너와 네 가족 모두에게 ,난 하인이나 마찬가지였어. 널 필두로 모두 합심해서 나를 늑대 소굴에 던져 넣었어"
로비는 그녀의 철없음보다 자신이 그저 하인에 불과한 존재로 모두가 힘 합쳐 늑대소굴로 밀어낸 가족 모두에게 협오스러움을 가졌다.

 

범인은 리온의 친구 마샬이 그런 것이고 롤라랑 결혼까지 했다고 말한다. 롤라는 마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없고 면죄된 것이다. 
"진실만을 적어줘 변명도 미화도 설명도 필요없어.그리고 우리를 내버려둬" 로비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는다. 이제라도 진실만을 모두에게 말하고 자신의 삶이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랬다.
 
21번째 소설 어톤먼트 브라이오니 탤리스 
77살이 되어  혈관성 치매라 곧 죽을 것이고, 마지막 소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진실만을 쓰기로 오래전부터 맘먹었다.변명도 미화도 없이"
그리고 그녀는 1935년 그날 경찰에 잡혀간 그 날이 로비를 본 게 마지막이었다. 
브라이오니가 간호사가 되어 세실리아를 찾아간 것도, 로비를 만나 사과한 것도, 모두  허구라고 말한다. 

 

1940년 이후의 모든 이야기는 그녀의 소설속의 허구라는 것이다. 
"사실 전 용기가 없어서 1940년에 언니를 찾아가지 못했어요.발햄에는 간 적이 없죠.제가 그들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허구에요.사실 일어날 수 없던 일이었어요."
로비는 후송 작전의 마지막 날 1940년 6월 1일에 브레이 듄스에서 패혈증으로 죽었고,언니인 세실리아도 못 만났다.

1940년 10월 15일에 발햄 지하철역 위의 가스와 수도관에 투하된 폭탄 때문에 죽었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어서 찾아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용기가 있더라도 용서를 구할 수 없었다.

세실리아 역시 로비를 만나지 못했다. 1935년 여름 그 거짓말로 로비가 경찰에 잡혀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13살의 브라이오니와 로비
13살 마지막 로비와 브라이오니
그래서 언니와 로비는 그토록 원했고 누릴 권리가 있었던 둘만의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브라이오니로 인해 막혔기 때문이다

브라이오니는 책속에서나마 로비와 세실리아가 잃어버린 삶과 사랑을 주고 싶었다 말한다. 그것이 나약함이나 회피가 아니라고 한다.

 

"제 마지막 친절입니다.저는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한 거에요."
그리고 언니와 로비에게 바닷가 별장에서 행복하게 있는 모습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두 사람에게 소설속에서 그들을 만나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게 선물이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언 맥큐언의 소설 <속죄>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1935년과 1940년 그리고 1999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브라이오니의 거짓말로 시작해 속죄에 대한 고백으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하지만 브라이오니는 그동안 아무 것도 안했다. 
그리고 죽기 전 마지막소설로 그 긴 시간을 아무 것도 안했다. 
물론 로비로서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브라이오니 역시 용서받을 생각으로 소설을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녀로 인해 로비의 이야기는 계속 될 수 없었다. 
인생의 약속 위에 당당하게 서서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부끄럼 없이 살고 싶었던 로비의 삶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본인은 그동안 20번의 소설을 쓸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기회를 앗아버린 사람이 자신의 기회는 다 누리고 가지고 살았다. 

로비가 전쟁에 끌러간 후라도, 언니에게 편지로라도 아니면 18살때 소설을 준비하던 때라도 어떤 형태로든 미화없이 변명없이 사실만 알리면 되는 것이다. 부모에게 아니면 로비의 엄마에게 사실만 말해 주어도 되었다.
자신의 잘못을 말하면 되는 것이다. 롤라의 결혼식으로 부모에게 알려도 되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다 살아놓고 생의 끝에서 반성문 쓰고 가는 것으로 밖에.
'어톤먼트'라는 소설을 쓰면서도 독자들을 원하는 결론을 위해 그 두사람을 만나게 한 작가로서의 이기적인 마음만 느껴졌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9. 3. 1. 00:52
비긴 어게인(Begin Again)

 감독 존 카니

<원스>를 만들어낸 존 카니 감독은 또 한 번 거리밴드를 만들어 녹음실을 뉴욕 거리로 옮겨 감성을 음악에 녹여낸다. 영화  OST 'Lost Stars'와  더불어 'Tell Me If Wanna Go Home', 과 'Like A Food'같은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을 탄생시킨다. 음악만큼 사람들을 하나로 소통시키는 도구는 없다고 본다. 음악만큼 사람의 감정의 질감을 어루만지는 건 없다고 본다. 

음악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독보적인 정서의 도구요. 소통의 도구요. 사랑의 멜로디라 본다. 슬프면 슬픈대로 음악을 듣고, 아프면 아픈 대로 가서 만져주는 손길 같고, 힘들 때 위로가 되는 토닥임 같고, 지친 어깨에 쉼표를 올려주고, 상처 받은 가슴에 쓰다듬어 준다.  잠시 나를 멈춰 세우고 싶은  영화였다. 

노래도 가수를 잘 만나야 빛나듯이 사람도 자신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런 면에서 데이브(애덤 리바인)는 자신이 빛나길 원하는 사람이다. 환경에 쉽게 변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지만 인간은 환경에 지배당하면서 변한다. 하지만 사랑마저 환경에 지배당하며 변질되어 가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 

그런 사람이라면 지금의 이별이 길게 봤을때 더 고마울 수도 있다. 사랑보다는 덜 변덕스러운 열정이 이 영화안에서 우리에게 좀 더 나은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별할 때 여기가 끝인 것처럼 슬퍼한다. 하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는 이의 눈에는 또다른 시작이다.
이별이 사랑의 종착지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랑의 시작점이 되어 준다는 것이다.

 

그냥 한 사람이 지나간 것이다. 내게 인연이 아니었던 사람, 환경에 너무 쉽게 변질된 사랑, 유통기한이 없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마셔보니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었다. 인연이 아니었던 사람이기에 어짜피 스쳐갈 바람인 것이다.

 

사랑에 눈이 가려 못 보고 있었던 것일뿐이다. 환상에서 깨어 현실로 나온 것 뿐이다. 남자보는 눈이 모자른 것으로 발길을 돌려 세워 다시 비상하면 된다. 여기가 다시 시작되는 곳이다. 
데이브의 성공으로  사랑을 변한 게 아니었다면 그의 오래된 연인으로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역시 그의 음악적 파트너로 같이 행복했을 지 모른다. 

 

정상에 올려가고 보면 자신이 그 곳까지 올라간 여정은 까맣게 잊고 자신의 자리에서의 화려함에 도취되기 싶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소중함도 망각하고 큰 것을 보느라 작은 걸 놓치고 만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게 만들어진 걸 잊게 된다. 

작은 것에 대한 가치를 못느끼는 것이 어쩌면 그 사람에게 길게 봤을때 불행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 나는 믿고 있는 사람이다.
 
오랜 연인이었던 데이브가 성공하여 메이저 음반회사와 계약을 하게 되면서 같이 뉴욕에 오게 된 그레타,
오직 데이브만의 청으로 결정한 뉴욕행이었다. 그녀는 싱어송라이터이며 데이브의 작곡가로 서로 연인이며 음악적 파트너로 함께 생활한다. 

 

그저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그레타는 그가 점점 스타로 성공해 감으로 혼자있는 시간이 늘어간다. 지방공연으로 바쁘지만 그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행복했다.
순례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오랜 연인이었기에 눈빛만 봐도 그가 만든 데모 가사만 들어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그레타는 그에게서 떠나온다. 사랑으로 데이브를 따라 온 뉴욕인데, 대책없이 무작정 나와 버린 그녀는 길거리 버스킹을 하고 있는 친구 스티브(제임스 코든)을 찾아간다.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친구, 또 한번 사랑보다 우정이 주는 믿음에 조용히 박수치고 싶어진다. 그는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지만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없다. 그래도 스티브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다. 힘든 그녀를 그저 편안하게 맞이해 준다.

그레타 혼자 집에 두기 싫었던 스티브는  자신이 노래하는 클럽에 데리고 간다. 우울한 그녀가 노래할 수 있게 무대로 끌어올린다.

담백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 같은 멜로디에 가사에 밥처럼 올라가 있는 느낌이었다.
세상의 음악이 다 내꺼처럼 감기는 것은 아니다. 날 감동시킬 음악이 있듯이 사랑도 그러하다. 
실패한 선곡으로 귀를 혹사시키지 말고  원하는 곡에 내 귀를 맡기면 그 귀를 통해 내 마음의  정서에 단비를 내려준다. 
사랑이라고 다 뜨겁지 않고, 사랑이라고 다 아름답지 않다. 배려가 있기에 그 사랑이 지속되는 것이다.
수량화할 수 없는 사랑에 완벽함이란 없다. 그건 오직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질감같은 것이다. 
 
음악이 주는 것은 사랑이 주는 것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기교없이 기타하나로 자신의 색을 담아내는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음반 제작자 댄이다. 그는 나름 왕년에 잘 나가던 음반제작자였지만 지금은 가진 건 아무 것도 없고,  실패의 끝자락에서 좌절하는 중이다. 그들은 서로 상처의 끝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댄(마크 러팔로)은 아내의 외도로 아내와 딸과 떨어져 혼자 조그만한 빌라에서 남루하고 살고 있으며,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마저 쫓겨났다. 주머니는 맥주값 한 푼 없이 빈털털이지만 음악적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다. 댄은 그녀의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이끌려 음반을 제작하자고 제안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그녀가 마음을 돌리고 댄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음악적 열정은 있는데 경제적인 제작비가 받쳐주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경제적으로 뒤따라주지 않으면 고생하게 되어 있다. 음악이 감이나 실력으로만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번번히 실패만 하던 댄에게 회사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댄은 뉴욕거리를 무대로 데모테이프를 만들기로 한다. 시련은 또 다른 인연으로 열정에 불을 당겼다.

 

 
음반을 제작할 돈이 없는 그는 뉴욕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연 그대로의 소리와 꾸미지 않은 그레타의 목소리를 담아간다. 그리고 그동안 잘못 살아오지 않았는지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으로 그들의 음악은 서서히 옷을 입어간다. 
녹음실에서 기계로 담는 것과는 달리 아이들의 웃는 소리, 지나가는 차소리 모든 자연이 주는 소리가 악기가 되어준다. 뉴욕 거리 곳곳을 배경으로 .현장의 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사랑, 예술, 인생이 하나로 모이게 된다.

 

이 영화는 뉴욕의 거리마저 우리에게 여행가이드처럼 안내한다. 뉴욕지하철, 센트럴파크 호수 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옥상, 차이나타운 등 
가면에 가려 덪입혀진 스타의 음악처럼 웅장하지 않아도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도시의 소리와 그들의 진심이 담긴 소리는 그 어떤 합주보다 빛났다
사랑, 우정, 진심, 인생, 실패, 좌절, 기쁨 그 모두를 담아내는  뉴욕거리와 음악이 만나 생동감이 넘쳤다.
 
사는 건 별 거 없다. 그래 스타가 되지 않아도 이렇게 살면 되는 거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열정 불태우며 주위사람들의 손 함부러 놓지 않으며 
그저 상상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자체로 주위와 어울리며 사는 것이  행복한 것임을 알게 된다. 

 

높은 곳에 올라 화려하게 산다고 마음까지 화려한 것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기초공사가 차곡차곡 쌓여간 건물이 오래가듯, 긴 세월 같이 한 가족이 말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이 사람사는 것 같아 좋았다.
그레타, 댄, 가족 ,친구들이 진심을 다하여 엮어낸 음악은  서로를 이끌어 주며 하나가 될 수 있는 음악으로 관계들을 엮어 준다.

 

댄은 그렇게 멀어지던 아내와 딸과의 거리도 음악으로 좁혀지고, 그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노래로 전해진다.

그레타가 추구하는 음악과 댄이 추구하는 음악이 어느 정점에서 만나 불꽃이 된다.

음악으로 치유된 그레타는 이제 데이브에 대한 마음을 치유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자신의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원스>에서도 화려한 무대가 아니어서 좋았다. 그저 어디서나 있을 것 같은 사람의 이야기라서 그들이 들려주는 노래라서 좋았다.

 

< 비긴 어게인>도 뉴욕거리가 무대가 되어주어 더 정감어렸다. 티켓을 예약하고 콘서트에 가서 듣는 것이 아니고 문득 지나다 음악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같이 공감하며 보답으로 동전을 넣어주고 싶은 그런 음악이라서 좋았다.
posted by 해이든 2018. 12. 2. 18:47

 

저자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2005년 조 라이트 감독으로 인해 영화로 탄생했다. 영상과 배우들의 감정선이 살아 있고 캐릭터들이 강렬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출연했음에도 각각의 인물들이 꽤 묘사가 잘되어 있다는 것이다.


18세기 영국을 무대로 여성과 결혼에 대한 시대상을 잘 그린 연애소설이다.
당시 영국의 계급은 귀족과 대지주계급으로 나뉘고, 시골의 지주(젠트리) 사회를 그렸는데, 그 젠트리 계급에서도 재산정도에 따라 큰 격차가 있었다.


영국의 시골마을 롱본, 그곳에 시골의 지주인 베넷가에는 딸이 다섯이나 있었다. 당시 딸들에게는 상속권이 없었고, 지참금이 전부였다.
연수입 2000파운드에 불과했으나 지주계층은 생활을 위해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겼고, 그렇게 좋은 가정환경이 아님에도 딸 다섯과 베넷 부인이 뒹글 뒹글 모여 하루를 보내는 장면이 이해가 갈 듯하다.


직업을 가진 중류계급은 자산이 많아도 낮은 신분 취급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군인인 위컴이 많은 재산을 상속한 여성과 결혼하려고 하는 이유였다. 또 상속권이 없던 여자가 부유한 결혼상대를 찾아야 했던 것이었다. 


 베넷 부인은  자신의 딸들을 재산이 많은 남자에게 결혼시키려고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롱본에 찰스 빙리가 오게 되면서 베넷가의 집안은 분주해진다.
연수입 5000파운드의 재산을 가진 찰스 빙리가 베넷가의 첫째 딸 제인을 맘에 두고 있다.

언니 제인은 아름답고 차분하며 사려깊으나 말 수가 적고 감정표현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다. 

다아시는 빙리의 친한 친구로 자신의 친구가 제인과 결혼하는 것을 막는다. 베넷 부인이 욕심도 많고 경박해 보였고, 빙리에 비해 제인이 빙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베넷 부인이 극성스러움이 오히려 딸들에게 흠으로 비추어지고, 잘 표현하지 않는 제인의 성격 탓에 그리 생각할 수 있다.

다아시는 연수입이 1만파운드의 재산이 있는 명문가이다. 상냥한 빙리와 유쾌하고 잘생긴 위컴과 대조적으로 다아시의 차가움과 과묵함이 오만으로 더 비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아시가 가진 계급에서 오는 오만한 구석도 분명이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꿈 꿀 상대임은 분명 하나, 엘리자베스는 오만한 그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감을 드러낸다.

 베넷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재산이 없는 아가씨들이 결혼이 유일한 생계대책이 된 시대에 맞서 사랑을 갈구하는 재치 있고 당찬 성격의 아가씨이다. 그녀는 다아시가 거만하고 차가운 듯한 인상으로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말과 다르게 그에게 자꾸 신경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넷가를 업신여기고 기죽이려 하는 캐서린 부인 앞에서도 따박따박 기죽지 않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교양 없는 어머니와 자매를 들먹거리고, 자신의 집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계급에서 오는 당당함과 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편견이 분명 그들에게 있었다. 서로 대화를 함으로서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와 편견이 있었음을 인지한다.  그렇게 서로를 가로막는 것이 편견임을 조금씩 알아가며 제대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위컴과 리디아의 도피로 베넷 가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되고, 다아시는 그녀 모르게 조용히 위컴에게 막대한 재산을 주고 그 둘을 결혼에 이르게 한다. 그녀를 위한 행동이었다. 그녀와 그녀의 가문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위컴을 싫어하면서도 말이다.

캐서린 부인은 다아시의 숙모로서 막대한 재산과 토지를 소유한 자로 자신의 딸과 다아시를 결혼시킬 생각이었다.

나중에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약혼을 청했다는 소문을 듣고 한밤중에 베넷가로 찾아와 엘리자베스에게 모멸감을 안겨준다.
다아시는 마음이 깊고 배려가 많은 예의 바른 사람이다. 이게 엘리자베스가 새로 본 다아시의 진면모이다.

편견이란 장치를 치우고 나니 보이는 것이다.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나에 관련이 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가진 자의 오만과 없는 자가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허영을 지녔다고 보면 서로를 향해 있는 오만과 편견은 너무 지극히 당연하게 둘 사이를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청혼한 것은 오직 엘리자베스에 대한 사랑때문이었다. 설사 그에게 오만함이 넘쳐 흘려도 사랑하는 엘리자베스를  향해 갈 수 있다면 다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이다.

캐서린 부인의 모멸감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다아시를 향한 배려 때문에 견디었다. 자신이 가진 편견이란 장치가, 오만이라는 도구가 서로를 얼마나 비툴어진 각도로 바라보게 하는지를 알게 한다.

오만과 편견이란 도구는 사랑의 장애물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을 얻는 일, 서로를 향하는 마음을 진실되게 갈구하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라고 본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다른 사람의 입에 제대로 겪어보지 않고 가지게 되는 편견에 우리는 얼마나 가깝게 가 있는가,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랑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억눌려 있던 그 시대의 여인들과 다르게 다아시의 청혼앞에서도 자신이 자신의 가족이 다친 자존심에 대해 당당하게 거부하는 그녈 보면서, 캐서린 부인 앞에서 전혀 굴하지 않고  캐서린 부인을 당혹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서슴없이 비어내는 모습으로 당시 여성들이  대리만족 같은 걸 하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