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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이든 2019. 1. 26. 22:30

영화 달링

 감독 앤디 서키스
 

 

일단 로빈(앤드류 가필드)의 삶에 몰입해 보려고 한다.
다이애나(클레어 포이)에게 한 눈에 반한 로빈과 '아 이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 다이애나는 서로에게 마법처럼 끌려 결혼을 한다. 
앤드류 가필드와 클레어 포이

로빈은 사업을 하러 케냐까지  다이애나를 동행하며 달콤한 결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신은 장난꾸러기가 맞는가 보다. 
갑자기 로빈이 폴리어 바이러스로 인해 전신이 마비된다. 목에 구멍을 뚫어 호흡기를 집어넣고 기계에 의해 숨을 쉬어야 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앞에 만삭이 된 다이애나는 일단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남편을 케냐병원에서 영국으로 데리고 간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저렇게 호흡기에 의존해 숨만 쉴 뿐 전신마비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이렇게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환자가 되어 버렸다. 
자신의 처지를 의식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로빈은 우울증까지 겹쳐 다이애나의 면회도 거부한다. 
그러나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던 다이애나는 계속 남편 곁으로 다가가 삶의 의욕을 부추기나 그는 죽게 해 달라고만 한다.  
다이애나와 로빈
로빈의 감정으로 들어가면 나는 그 마음을 온전히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인간답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이렇게 시체처럼 눈만 뜨고 사는 게 어찌 사는 거라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를 안아 볼 수도 없는 이런 아빠로 사느니 없는 게 낫고, 젊은 다이애나가 새 출발할 수 있게 보내는 게 맞는 것이다.
짐만 될 것이다. 불행할 것이다. 죽는 게 낫다고 나 역시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그냥 죽게 해 달라는 소리였다. 
다이애나는 로빈에게  자신이 제일 힘든 것은 당신이 죽고 싶다고 말을 하는 것이라 했다. 자신이 "정말 어떻게 해주면 좋겠냐?"고 말이다. 
로빈은 일단 자신을 병원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절대 안된다고 강경하게 막는다. 호흡기없이 살 수 없고, 만약에 호흡기에 문제가 생기면 2분안에 죽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로빈과 아들 조나단
다이애나는 간호사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로빈을 병원으로부터  빼내 집으로 옮긴다. 집에 호흡기를 설치하고 어린 아들과 아내 다이애나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점점 삶을 찾아간다.
로빈은 침대에서만 생활하다 우연히 아들이 끄는 유모차를 보고 친구 테디 홀에게  인공호흡기가 달린 휠체어를 제작해 달라고 한다. 
아마 이것은 그 당시 혁신적인 기구였다. 중증 장애인도 병원을 나와 생활할 수 있게  삶의 활력을 주는 발명품인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를 가고 싶다고 말하는 아들의 말을 시작으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휠체어를 타고 세계를 경험하며 다닌다. 
휠체어를 탄 로빈과 친구들

 

오로지 아내와 아들때문에 살기로 했던 삶이 아내의 배려와 사랑으로 그는 불가능한 것 같은 삶을 아주 길게 살아냄은 물론이고, 병원에서 꼼짝없이 갇혀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들을 위해 자선기금을 모으고 휠체어를 제작하여 자신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봉사한다. 
그러나 로빈은 너무 오랜 세월 호흡기를 끼고 살아서 염증이 생겨 피가 나고,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침대에서 고통스럽게 피를 흘리고 있는 로빈의 모습에  놀란 아들의 표정에 로빈은" 괜찮아 괜찮아로" 말로 다독이지만 겁먹은 아들의 표정앞에 오히려 로빈이 더 걱정이 되었다.

 

가족

 

로빈과 다이애나, 그리고 아들 조나단 세명이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로빈은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한다. 아내를 위해 살아보려고 했던 삶이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아내와 아들로 인해, 즉  상대로 인한 행복이었다. 그게 작다는 건 아니다. 절대적인 자신만의 행복일 수는 없다.  로빈은 케냐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이 감옥 같은데 갇혔다. 그러자 리더격인 사람이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죽음을 허락한다고 말을 했고, 아침이 되어 보니 모두 죽어있었다. 
영화초반에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생각했다. '왜 살지 않았을까, 왜 죽었을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로빈이 그 말을 꺼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목숨만 부지한 채 포로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택했던 그들의 선택이, 그리고 지금 죽음을 선택하려는 로빈의 마음도 말이다. 
다이애나는 흥분하지만 받아들인다. 로빈과 함께 한 삶이 자신의 삶이었기에 로빈의 결정이 아프고 힘들지만 아내나 친구나 아들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위해 선택하는 죽음이라면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당신이 그 선택을 하는 것이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상대적인 행복이 아닌 절대적인 행복을 위해 선택한 죽음이라면  말이다.

 

달링

 

"당신의 삶이 내 삶이야..내 사랑 나의 삶"이라고 말하는 로빈의 모습이 죽어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행복해 보였다.
다이애나도 "미투"라 말하며 마지막 작별을 한다.
난 로빈이 상대적 행복으로 삶을 선택했고 절대적인 행복으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같은 중증환자들에게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 주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힘을 주었다. 
친구의 말처럼 로빈이 불행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힘을 얻어간 것이다.
 
로빈 캐번디시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후천성 전신마비환자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과 같은 중증환자들을 위해 봉사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20대 후반에 목 아래로는  마비가 되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삶을 살아야 할 운명이었음에도 다이애나의 사랑으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다간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의 아들 조나단 캐번디시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러브스토리를 영화로 제작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달링의 원제포스터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에 영화를 가져오면서 달라지는 제목 때문이다. 어쩜 이 영화는 다이애나와의 사랑이야기보다는 로빈이 전신마비로 살아낸 삶에 더 비중을 둔 영화라고 본다.
그런데 달링이란 제목은 왠지 로맨스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포스터도 그렇구. 달달한 로맨스물처럼 유인하여 낚시질 당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일까? 물론 다이애나의 사랑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라는 건 알겠지만 굳이 제목을 <달링>이라고 지어야 하는 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본 <내사랑>이란 영화도 그랬다.  하지만 사랑이야기라기 보단 장애를 가진 여류화가의 전기적인 스토리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영화가 먹히지 않나? 왜 자꾸 로맨스물로 둔감시키는 걸까? 포스터나 제목에 좀 영화의 본질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게 선정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