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5. 19. 11:35
감독 밀로스 포만

고야의 유령

프란시스코 고야는 스페인 궁정화가로서 왕족, 귀족, 정치, 종교적 인물 등 다양한 상류계층의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렸고, 또 성직자들을 조롱하는 듯한 외설적인  종교화도 다루었고, 스페인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된  유화, 동판화, 석판화 등 다양한 주제를  작품으로 표현한 화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격동의시대를 산 증인으로서 이 영화에서 고야는 당시 스페인 역사의 관찰자나 기록자, 목격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궁중화가 고야(스텔란 스카스가드)의 모델이었던 이네스(나탈리 포트만)는 누명을 쓰고 종교재판소에 갇히게 된다. 고문을 당하자 허위자백을 하게 된다.

당시 스페인은 고압적인 교회와 무자비한 전제군주, 나태한 귀족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이단 종교에 대한 심판이 다시 시작되고 과거처럼 마녀사냥으로  단지 돼지고기를 안먹는다는 이유로 이교도로 몰려 이네스가 걸려든 것이다.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고야의 그림에 그려진 그대로 악마의 모습이다.

이네스의 아버지 토마스는 부유한 상인으로 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고야을 찾아와 종교재판소 로렌스 신부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프란시스코 고야 역을 맡은 스텔란 스카스가드


고야와 로렌스 신부(하비에르 바르뎀)를 집으로 초대한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고문에 의해 자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라진 심문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심문에 의하면 없는 사실도 불게 된다고 말하자 로렌스신부는 어이없는 강변을 늘어놓는다. 

신앙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그럴 수 없다고 한다.

토마스는 증명해보이겠다고 아들과 함께 신부를 밧줄에 묶어 종교재판소를 모독하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고문한다.

결국 고문에 못이겨 문서에 허위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토마스는 성당재건 비용을 종교재판소에 기부하며 로렌조신부를 돌려보낸다. 자신의 딸을 풀어달라고 말이다.

로렌조는 종교재판소에 그녀의 석방을 청하지만  심문에 의한 것이 부당하다는 걸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로렌조는 감옥에 있는 이네스를 찾아가 나체로 있는 그녀를 겁탈하고 종적을 감추어버린다.

딸을 풀어주지않자 토마스는 왕을 찾아가  아무리 신념이 강한 신부도 고문을 하면 허위 자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로렌조신부의 종교재판소를 모독하는 문서를 보여주며 딸을 석방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청한다.

이로 인해 종교재판소를 욕보인 로렌조의 지위를 박탈하고 고야가 그린 로렌스 초상화를 불태운다. 
종교재판소에 갇힌 이네스(나탈리 포트만)


스페인 국민들은 부패한 왕족과 타락한 교회로 고통받았고 국민들은 왕실을 혐오하고,종교재판소를 증오했다. 그래서 스페인계몽주의자들은 프랑스와 힘을 합쳐하루라도 빨리 억압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15년 후  유럽전반에 걸쳐 반교권주의가 확산되었고 스페인 계몽주의자들이 프랑스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프랑스혁명으로 격동의 시대를 맞이한다.

나폴레옹이 스페인 해방과 프랑스 혁명의 자유,평등,박애라는 혁명의 이상을 수호한다는 미명아래 스페인 시민을 무참히 학살한다.

스페인 국민들에게  나폴레옹의 군대 역시 침략자요 점령군에 불과했다.

마드리드 폭동은 프랑스 군대에 의한 유혈사태로 진압되었고 ,마드리드에서 일어났던 사태와 프랑스군대에 의해 자행된 잔인한 살육은 고야가 그린 그림에 묘사되어있다. 

그는 판화집을 통해 그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얼마나 참혹하고 어리석은 일이 벌여졌는지 기록자로서 화가의 자리를 지켰다.

그는 부르봉 왕조, 종교재판소, 프랑스군, 영국군 모두를 위해 일했던 화가이다. 


시대의 재앙인 나폴레옹은 친 형 죠셉을 스페인 왕좌에 앉혔다.

그들은 나폴레옹의 이름으로 인권선언 및 시민의 이름으로 스페인 종교재판소를 폐지하고, 종교재판소 죄수들을 다 풀어준다.

  
나폴레옹에 의해 폐지위기에 몰린 종교재판소


오랜 감옥생활로 생기를 다 잃어버린 이네스는 완전히 망가진 몰골로 가족들을 찾아가지만 가족은 다 죽고 집은 엉망이었다.

청력을 잃은 채 살아가는고야를  찾아간  이네스는 감옥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찾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청한다.


한편 로렌조는 나폴레옹 정권의 간부가 되어 계몽주의자로 스페인으로 돌아와 이성과 혁명을 통해 세상을 구원한다고 종교재판소를 기소한다.


고야는 이네스의 딸 알리시아를 찾기 위해 로렌조를 찾아가고 로렌조는 그녀가 정신이 이상하다고 정신병원에 보낸다.

로렌조는 알리시아를 수소문한다.

알리시아는 수녀원에 뛰쳐나가 거리의 여자가 되었다.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고야는 이네스와 똑같은 알리시아를 보고 이네스가 딸을 낳았다는 말이 사실인걸 알게  되고 로렌조를 찾아가 알리시아를 봤다고 이네스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한다.

고야는 정신병원에서 이네스를 데리고 나와 알리시아와 만나게 해주려고 한다.

로렌조는 알리시아가 자신의 야망실현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 마드리드 모든 창녀들을 잡아 미국의 노예로 보내버린다.

끝내 알리시아를 목전에 두고 알리시아는 노예로 잡혀가고 이네스와  만나지 못한다.

버려진 아이를 안은 이네스


개혁이  진통을 겪고 스페인 사람들은 페르난도 왕자가 프랑스에 볼모로 사로잡히게 되자 전국적으로 항의 시위에 돌입하게 됐고 조셉이 스페인의 군주로 오르자 스페인에서는 혁명이 일어난다. 

스페인군은 영국과 포르투칼군과 연합하여 프랑스에 대적한다.

사제들 또한 신을 믿지 않는 프랑스를 비난하며 시위전면에 참여한다.

영국군이 포르투갈에서 스페인 국경을 넘어 진격하고 있다. 스페인 국민들은 영국군과 동조하여 조셉 프랑스군을 물리친다. 

종교재판소와 페르난도 7세가 다시 힘을 얻어 반동정치를 시작하게 된다.


나폴레옹의 시대가 저물고 도망가던 로렌조는 스페인사람에게 잡혀 결국 사형에 처해진다.


돼지고기를 싫어한다는 이유하나로 한 여인의 인생을  20년동안 감옥에 가두고 생을 파괴한 종교재판소는  신을 빙자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사악한 집단이요 악마들이다.

개혁을 이유로 행한 정치적 탄압 역시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드러낸 괴물들로 선량한 백성을 지배하려는 침략자일뿐이다.


이교도를 배척하는 종교적  탄압도 나폴레옹으로 이성과 계몽으로 지배하던 시대의 정치적 탄압도 그릇만  권력을 옮겨담은 사악한 가해자일 뿐이다.

어느  누가 권력을 잡든 국민만 고달프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18. 15:36

 

레옹

감독 뤽 베송
영화 레옹
뉴욕 빈민가에 사는 살인청부업자 레옹(장 르노)과 옆집에 사는 마틸다(나탈리 포트만)의 운명적인 만남.
얼굴에 멍이 들 정도로 맞고 복도에 나와 앉아있는 12살의 마틸다는 코피를 흘리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미는 따뜻한 킬러 레옹.

사는게 원래 이렇게 힘든 거냐구, 아니면 자기가 어려서 힘든거냐고 레옹에게 묻는 마틸다. 
어린 아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너무 어른스러워 보이는 마틸다. 
레옹은 그런 마틸다에게  언제나 힘든 것이라고 대답해 준다. 
 
 
레옹은 의뢰를 받고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하는 살인 청부업자이다. 프로페셔널 킬러 레옹! 
그는 살인을 할 때는 민첩하게 냉정하게 목숨을 앗아간다. 지저분하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한 번에 정확한 스킬로 죽인다.
 
청부살인이라는 직업상 그는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전문가였다. 
그런데도 그가 잔인하고 냉정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은 그가 우유를 마시고, 화초가 심어진 화분을 들고 다니고,
해맑은 표정으로 영화를 보는 장면과 안경을 벗으면 선량해 보이는 두 눈이다. 
그의 손에서 총과 안경을 버리면 그는 그저 철이 들지 않은 어른일 뿐이다. 
거친 욕설을 하거나, 마약이나 술로 절여 있지도 않고, 여자를 만나지도 유흥에 흥청거리지도 않는다.

거들먹거리지도 포악하지도 않다. 

 
어린 마틸다의 눈에도 레옹이 무섭거나 거부감이 들었다면 말을 걸지도 가까이 가지도 않았을테니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살인청부업자가 아니다. 화초를 키우고 애지중지 다루는 모습은 킬러로서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마틸다가 나간 사이 마약조직 밀매업을 맡고 있는 마틸다의 어버지에게 비리경찰 스탠스 필드(게리 올드만)가 들이닥치고 사랑하는 동생과 가족들이  몰살당한다. 
총소리에 레옹은 그 광경을 보고 경계만 할뿐 마틸다의 가족이 죽어가도 개입하지 않는다. 킬러이면서도 말이다.  
그 사이 마틸다가 돌아오고 눈치가 빠른 그녀는 자신의 집을 지나쳐 레옹의 방문을 두드리고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망설이던 레옹은 문을 열어준다.
 
마틸다는 레옹이 킬러라는 사실에 가족의 복수를 할 수 있게 킬러로 키워 달라고 한다. 문맹인 레옹을 위해 글을 가르쳐주기로 하고 말이다. 복수는 위험한 것이라고 레옹은 거부한다. 하지만 과감하고 완강한 마틸다로 인해 수락하게 된다. 
복수를 위해 킬러가 되려는 마틸다는 레옹을 통해 총쏘는 법을 배운다.
냉철할 것만 같은 킬러 레옹은 나이가 들었지만 다 자라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처럼 아직도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12살의 어린 마틸다는 나이는 어리지만 세상이 너무 힘들다는 걸 다 알아버린 어른같은 아이였다. 삶이 고달퍼서 마음하나 비빌 곳 없이 너무 빨리 성장해 버린 어른이었다. 
마음의 나이는 마틸다가 더 어른스럽고 많았다. 서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삶과 외로움에 그들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감정들이 녹아들게 된다. 서로 다른 삶 같지만 너무 같은 마음인 둘은 서로 가까워진다.

 

레옹은 자신이 모아둔 돈을  자신에게 일이 생기면 마틸다에게 전해주라고 토니에게 가서 말을 할 때는 레옹이 마틸다로 인해 삶이 뿌리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고 싶은 건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 아닌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충동을 가지게 한다. 감정이 빗줄기처럼 흘러 내리고 있다고 말이다.
 
레옹이 집을 비운 날 마틸다는 혼자 스탠스 필드에게 복수하기 위해 경찰단속국에 위장잠입했다가 스탠스 필드에게 잡히게 된다.
마틸다의 편지를 보고 레옹은 마틸다를 구하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해 마틸다를 구해 온다. 
스탠스 필드는 자신의 부하가 죽게 된 걸 알고 경찰 특공대를 이끌고 레옹의 아파트에 쳐들어온다. 
완전히 포위된 레옹은 환풍구를 통해 마틸다를 탈출시키려 하고 마틸다는 혼자 가는 걸 완강히 거부한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잠도 자고, 뿌리도 내릴 거야. 절대 네가 다시 혼자가 되는 일은 없을 거야. 사랑한다 마틸다" 라며  자신이 아끼는 화초와 함께 마틸다를 탈출시킨다. 

마틸다로 인해 새 삶을 되찾은 레옹, 

킬러로서 항상 뿌리없이 떠돌던 삶이었다.
그는 청부살인을 하는 잔인하고 혹독한 인간이 아니었다. 어떻게 살인으로 그 길로 접어 들었지만 그는 편안한 잠도 못자고,뿌리도 내리지 못했다. 항상 혼자였다.
왜 뿌리도 내리지 못하는 화초를 들고 다녔는지 알 것 같았다. 
화초를 가장 친한 친구라 했다. "항상 밝고, 귀찮게 안하고 뿌리가 없는 것도 나랑 비슷해"
자신의 삶이었기에 돌보고 안았던 것이다. 가족을 다 잃고 혼자된 마틸다를 보살펴 준 레옹의 마음은 자신과 비슷한 마틸다를 본 것이다. 그래서 보듬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그 어둡고 힘든 삶에 자신과 똑같은 마틸다가 들어온 것이다. 자신의 모은 돈을 다 주고 싶고,마틸다의 뿌리가 되어주고 싶은 것이다. 
"너는 내 인생의 빛이었어. 너로 인해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된거야."
 
레옹은 마틸다를 탈출시킨 후 부상당한 경찰로 위장해 건물을 빠져나가려다 스탠스 필드에게 발각되어 총을 맞고 쓰러진다.
레옹은 마지막 죽어가면서 스탠스 필드에게 '마틸다의 선물'이라고 그의 손 안에 무언인가를 쥐어준다.
그것은 수류탄 고리이다. 핀이 빠진 수류탄은 터지고, 레옹은 스탠스 필드의 목숨도 함께 가져간다. 마틸다의 가족을 죽인 복수를 해 준 것이다.
학교로 돌아간 마틸다는 레옹의 화초를 학교 마당에 심어  뿌리 내려준다.
 
 
<레옹>은 12살 마틸다 역을 맡은 나탈리 포트만의 첫 영화 데뷔작이다. 첫 데뷔라고 하기에는 13살이었던 그녀의 연기는 정말 너무 좋았다. 프랑스 감독 뤽 베송이 오디션으로 그녀를 만난 게 그에게 있어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레옹역을 맡은 장 르노의 연기도, 스탠스 필드 역인 악역연기로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준 게리 올드만의 표정연기 또한  틈없이 채워졌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11. 20:29
클로저

 감독 마이크 니콜스

우선 이 영화는 4명 배우만으로 관심을 끈다. 나탈리 포트만, 줄리아 로버츠, 주드로, 클라이브 오웬

부고기사를 쓰고 있는 댄(주드로)은 출근길에 스트립 댄서인 앨리스(나탈리 포트만)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인 댄은 앨리스의 삶을 소재로 글을 써서 소설가로 데뷔하게 된다.
그리고 책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를 보자 댄은 그녀에게 강렬하게 끌리고 만다. 

둘은 서로를 끌어당기듯 키스를 하게 된다. 안나는 그가 어린 애인과 동거하는 걸 알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제하지 못함에 뒷걸음쳐 물러나자 댄은 앨리스는 귀엽고 어리다고 말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 그녀를 이용한 나쁜 남자로 느껴졌다. 

그리고 댄은 앨리스와 사진작업실에 같이 들어와서도 안나를 향한 갈증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잠시 앨리스가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비운 사이, 댄은 더 적극적으로 대시한다.
사랑을 하면서도 또 다른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다.
 
화장실에서 둘의 얘기를 다 들은 앨리스는 슬퍼 눈물이 흘러나온다.
안나는 이혼하고 혼자 작업실에서 지낸다. 
 
그리고 안나의 사진전에서 재회하게 된다. 댄의 옆에는 여전히 앨리스가 있고, 안나옆에는 래리(클라이브 오웬)가 있다.
실은 안나와 래리는 댄의 장난으로 맺어진 인연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을 맺어준 건 댄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4명의 인연은 운명일까?
나탈리포트만,줄리아 로버츠, 주드로, 클라이브 오웬

사진전에서 만난 댄과 안나는 앨리스와 래리를 속이며 관계를 지속했다.

그리고 댄은 앨리스 앞에서 사랑하기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진실을 말한다. 안나를 계속 만나왔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은 지금 앨리스도 사랑하니까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면서 안나도 사랑한다고 한다. 
정말 웃기는 소리지만 그게 댄이 말하는 사랑이고 진실이라면 나는 듣고 싶지 않다.
차라리 사랑이 옮겨간다고 했다면, 차라리 사랑이 식었다고 했으면 그럴수 있다고 댄을 미워하지 않았을텐데,...

앨리스는 말한다. "운명이나 숙명이 아니다,사랑은 순간의 선택이야. 거부할 수도 있는 거라고, 자기한테도 분명 선택의 순간이 있었어."

그렇다. 아무리 운명으로 포장하려고 해도, 아무리 진실로 포장하려고 해도 그 선택의 의지는 자신이 하는 것이다. 
앨리스는 댄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옮겨간 것이 아프지만 그 선택이 아프지만 앨리스는 떠나준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그나마 앨리스가 가장 진실에 가까운 사랑을 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안나와 래리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출장에 돌아온 래리는 안나의 표정에서 왠지 이별을 감지한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래리는 가운이 아닌 옷을 갖추어 입고 이층에서 내려온다.
"가운을 입은 채로 버림받으면 너무 초라하잖아."
그리고 출장가서 딴 여자와 잤다고 말한다. 왜 그걸 얘기하냐니깐 사랑하니깐 진실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넘의 진실은 사랑하면 딴 여자와 안자는게 진실이지, 자고 말하는 게 진실이냐구?

안나는 괜찮다고 한다.

댄은 왜 딴 여자와 잔 게 괜찮냐고 따진다. 그럼 딴 여자랑 잤으니까 이혼해 이렇게 말하는 걸 원했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쓴 진실로 여자에게 확인하고 싶은 걸까, 달콤한 거짓말로 덮어야 할 때도 있는데,

안나는 댄과의 관계를 말하며 헤어지자고 한다.
여기서 래리는 진실을 알고 싶다면서 그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어디서 했냐, 좋았냐, 자세는 어땠냐, 오르가즘은 몇 번 느꼈냐, 
댄을 사랑해서 이별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그가 진짜 알고 싶은게 이런 성적인 걸까?
안나를 계속 몰아치며 래리는 그녀를 천박한 여자를 만들고서야 만족해 했다. 

자신이 이 여자를 못 채워준 게 아니라, 그 넘이 나보다 더 섹스를 잘하는 게 아니라, 이 여자가 그걸 밝혀 천박해서 그렇게라도 몰고 가서 자기 위안을 찾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마음이 떠난 여자를 잡는 건 너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테니까, 진실을 알고 싶다고, 그래야 보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무너지는 자존심을 건지려는 것이다. 
클로저- 거짓말과 진실사이

 래리는 클럽에서 일하는 앨리스를 만난다. 댄에게 상처 받은  앨리스와 안나에게 버림받고 상처받은 자신을 위해 위로라도 받으려고 하지만 그녀는 손님과 고객으로서의 선을 냉정하게 지킨다. 댄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인가? 한때 댄이 좋아했던 여자인 앨리스를 상대로.

그렇게 댄과 안나는 서로 같이 있게 되고, 안나는 남편 래리에게 이혼도장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하며 호텔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래리는 호텔방에서 한 번만 자주면 깔끔히 서명해 주고 더이상 괴롭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호텔에서 관계를 가지고 나서 댄에게 자신과 잤다고 진실되게 말하는 게 좋다고 충고한다. 어쩜 래리의 비열한 복수다. 
남자는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여자를 너그러이 용서하지 못한다는 걸 안 것이다. 그게 그 남자를 계속 괴롭힐 것이며 여자를 볼때마다 상기시키며 마음에 지옥을 만들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댄은 래리와 안나가 잔 것을 눈치채고 흥분한다. 결국 안나는 다시 래리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래리를 찾아와 안나를 돌려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다.

 

래리는 댄에게 "넌 사랑을 알려면 멀었어. 타협이 뭔지 모르거든."
어찌 말하든 래리는 비열하다. 사랑을 타협이라고 한다는 것이 여자인 나로서는 전혀 수긍할 수 없는 논리다.
그리고 그는 처방전이라면서 앨리스가 일하는 주소를 적어준다. 앨리스에게 돌아가라고 말이다.
떠나는 것도 돌아가는 것도 다들 지네 마음대로네...이 영화 보면서 너무 흥분하는 제가 보이십니까?
래리는 앨리스와 잤다고 한 방 먹인다. 이 싸움은 내가 승자야 하는 폼으로 말이다.
래리와 댄이 하는 것이 사랑인가? 집착인가? 타협인가? 
위선이다. 진실이 없다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진실로 알고 싶은 것은 딴 남자와 잔 것만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댄과 앨리스는 또 다시 사랑을 한다.
앨리스는 자신이 아직 댄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에게 돌아온 것만으로 댄을 다시 처음처럼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댄은 래리와 잤냐고 진실을 요구하며 묻는다. 아니라고 말하는데도 진실을 알고 싶다고 재차 물어온다. 
"거짓말은 하기 싫고, 진실은 통하지 않을 것 같고, 아무도 나만큼 당신을 사랑하진 못할거야. 왜 사랑만으론 충분하지 못한거지?
사랑이 어디 있어. 볼수도 만질수도 느낄 수도 없어. 몇마디 말은 들리지만 그렇게 쉬운말들은 공허할 뿐이야. 뭐라고 말하든 이제 늦었어."
앨리스는 이제 댄을 더이상 사랑해 주지 못한다. 사랑의 본질이 퇴색되었다.
여자에겐 사랑이 다인데, 남자에게는 섹스가 다인 것 같은 느낌이다. 
 
"진실에 중독되었어.사랑하기에 상처주기 싫은거야."라고 말하는 댄의 말이 너무 위선적이다. 
그래서 자신은 얼마나 진실했던 걸까?
 
앨리스가 왜 댄에게는 본명을 말해주지 않고, 래리에게는 본명을 말해주었을까?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거짓이라도 믿어주면 그게 진실이다.
하지만 댄은 한번도 그게 본명이 아닐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진실을 말해주어도 그게 거짓이라고 믿는 래리에게는 본명임에도 계속 의심하고 묻는다. 제발 본명을 말해달라고 말이다. 진실은 믿는 자의 몫이다. 말하는 자의 몫이 아니라 사랑하는 만큼 믿는 만큼 진실을 담게 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9. 3. 8. 16:24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인간은 완벽한 조형물이 아니다.

완벽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파괴하는 발레리나를 통해 이 영화는 자신을 통제하지 말고 흘러가게 두라고 말을 한다.

주인공인 니나(나탈리 포트만)는 뉴욕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이다. 그녀는 순수하고 연약한 백조 로는 완벽할 만큼 최고이다.

발레단의 감독 토마스는 '백조의 호수'공연을 앞두고 기존의 베스를 제끼고 니나를 주연으로 발탁한다.

이번 새롭게 각색된 '백조의 호수'는 1인 2역으로 백조와 흑조의 연기를 펼쳐야 한다. 그러기에 니나는 완벽한 백조 연기와는 달리 도발적인 흑조 연기는 부족함이 많았다. 토마스 단장은 말한다.

"너는 아름답고 순수한데 하얀 백조 밖에 생각이 안나,하얀 백조는 완벽해. 하지만 검은 백조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완벽해지고 싶은 니나는 점점 압박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릴리(밀라 쿠니스)로 인해 점점 자신의 역할을 빼앗길 것 같은 초조함으로 힘들어한다.

릴리는 자신처럼 테크닉은 부족하지만 흑조에 어울리는 존재로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관능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니나는 등에 붉은 상처가 생기고, 그것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부담감에 자면서 긁는 것이다.

토마스는 니나에게 말한다 "넌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만 하지. 너 자신을 내맡기지 않아. 놓을 줄도 알아야 해"

그녀에게 성적 발언을 하고 키스를 하고, 자위를 해보라고 숙제도 낸다. 아마도 토마스는 그녀 안에 들어있는 금지된 욕망을 끄집어 내려는 듯 싶다. 흑조는 백조의 순결이나 순수함과는 다른 쾌락, 욕망, 탐닉 등을 표현해 내야 하는 연기다. 그러기엔 니나는 성적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는 어린애와 같았다.

 

 

이 영화에서 백조와 흑조라는 서로 다른 두 백조를 한 사람이 연기를 해야 한다.

니나 곁에는 조력자이며 통제자, 또는 매개체 역할을 해주는 두 사람이 있다.

백조이기만을 바라는 엄마와 흑조를 만들어 주려는 토마스가 있다.

니나의 어머니는 28살에 임신을 하고, 니나를 낳는 바람에 발레를 포기하고, 자신의 딸 니나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는 존재이다. 자신의 통제와 억압 속에 니나를 순수하고 완벽한 백조로 만들기 위해 희생하고 지지하며 때 묻지 않는 순결함의 결정체로 만드는데 공을 들인 사람이다.

반면 토마스는 그런 엄마와는 달리 쾌락과 욕망, 탐욕 등 그녀의 내면 안에 엄마로 인해 깨어 나오지 못하는 어두운 면을 자극하며 밖으로 표출되게 하려고 한다.

"네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너야. 이제 보내야 할 때야. 너를 편안하게 해줘 봐."

백조인 니나는 점점 흑조 같은 릴리를 경계하면서도 그녀를 꿈꾼다.

자신을 통제하려는 엄마를 막기 위해 방문을 잠그고, 소녀같이 꾸며진 방의 인형들을 집어던지고, 릴리와 술을 마시고, 그녀가 주는 약을 먹고, 그녀와 관계를 가지는 점점 깊은 환각에 빠진다.

공연이 시작되고 니나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릴리를 찔러 살해한다. 그리고 그녀는 어머니와 관객 모두를 감동시켰다.

 

 

공연을 마친 그녀는 쓰러진다. 그녀가 릴리를 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릴리가 아닌 자신을 찌른 것이었다.

그녀가 만든 자신의 내면의 흑조였고, 그토록 완벽해지고 싶다는 강박관념이 그녀를 옭아맸던 것이다.

그녀의 등에 난 상처는 완벽한 흑조로 무대에 서고 싶었던 처절한 몸부림의 흔적이었다. 

그녀는 "난 완벽했어요."라고 말한다.

완벽해지려는 불안감이 환상과 환각으로 백조의 호수를 피로 물들이게 했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릴리를 죽이고 백조로 완벽해지려고 날아오른 니나는 결국 자신의 꿈꾸던 무대에서 피흘리며 쓰러졌다.

니나는 현실과 환상 속에서 혼돈하며 보이는 자신과 보이지 않는 자신을 치열하게 비교하고 대립시키며 고통스러워했다.

"너가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네 자신뿐이다."

니나가 두려워할 사람은 릴리가 아니었다.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싸워야 했다. 그 부담감이 너무 커 통제하지 못하고 자신을 파괴하고 만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갈라져 있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통스럽게 자신을 학대하지 않아도 된다. 이 길이 아니면 또 다른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블랙 스완>은 각각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영화 같다. 물론 반전이 있는 영화이고, 스릴러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데 스릴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