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5. 22. 15:24
감독 파블로 솔라즈

삶의 끝 가장자리에서 자식들에게 남은 재산을 넘겨주고,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고집스런 손길로 손녀와 손자들을 꼬드겨 사진을 찍고 있는 아브라함,  

그저 주변인들에게 행복한 인상을 남겨놓고 싶은 그는 자신의 삶이 그런대로 마무리되어도 크게  후회가 남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서 고이 잠들어 있다 이제서야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수트'를 보는 순간,  그의 표정이 달라진다.

잊었었다. 아니 묻었었다. 

퍼렇게 멍든 과거를 잡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아 그는 애써 칼날을 갈지 않고 무뎌지게 두고 외면했던 것 같다.

폴란드 여행을 떠나려는 아브라함
그는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폴란드로 가는 긴 여정길에 오른다.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 곳, 폴란드로 가기 위해 그는 그동안 연락 한 번 주고받지 않았던, 생사도 알수 없는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비행기에 오른다.

다리도 성치 않은 아브라함에게는 이 여행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지만 죽기전에 꼭 지키고 싶은 그 약속, 

그것은 자신이 만든 마지막 수트를 친구에게 전하는 것이다. 

70년동안 지킬 수 없었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88세인 그가 폴란드로 가는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만난  따뜻한 사람들의 손길로 이 여정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유태인으로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부모와 여동생이 독일나치에 의해 학살되었다. 

그는 가까스로 도망쳤고, 그런 그를 구해주고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준 친구에게 잊지못할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생의 끝자락에서 용기를 내 고마움을 전하려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 약속한 수트를 전해주는 게 그의 삶에 있어 마지막 여정인줄도 모른다.

폴란드를 글로 적어서 보여주는 아브라함
그는 폴란드로 가기 위해 독일의 땅을 밟아야 되는 사실에 당황한다.

그는 매표소앞에서 독일땅을 밟지 않고 폴란드로 갈 수 없냐고 질문을 한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폴란드'가 금지어인냥  입으로 발설하지 않고 쪽지에 적어 펼쳐보이기까지 한다.

독일 땅을 밟을 수 없다고 폴란드행 기차표를 끊으려고 하지만 독일땅을 거치지않고 폴란드를 갈 수 없다는 조롱섞인 비웃음이 주위에서 흘러나온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독일 인류학자인 그녀가 다가와 말을 건다.

하지만 그녀가 독일인이라는 걸 안 아브라함은 그녀와 말도 하지 않으려고 멀리 떨어져 앉고 곁을 내주지 않는다. 

독일을 통하지 않고는 폴란드로 갈 수 없다는 걸 안 아브라함은 어쩔 수 없이 기차를 탄다. 

그리고 기차안에서 아까 그 독일 인류학자가 다가온다. 과거의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사죄를 구하고 아픔을 위로하는 그녀의 진정성에 아브라함은 그녀가 내미는 손길을 받는다.

엉뚱하게도 내가 기차에서 내렸을때 독일땅을 밟지 않게 해달라는  엉뚱한 제안을 하지만 그 마음이 그 아픔이 얼마나 깊은지 느껴지기에 웃을 수가 없었다.

독일땅을 밟지 않으려는 그의 발
그녀는 기차에서 내려 자신의 트렁크에서 옷을 다 끄집어내서 그가 땅을 밟지 않게 옷을 카페트처럼 깔아주었다. 

저런다고 밟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나 싶으면서도 그녀의 노력도 아브라함의 마음도 고스란히 전해져 오기에 그 일련의 행동들이 예술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나치에 의해 어떻게 죽었는지를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독일의 만행은 이제 입이 아플 정도라 그만 하고자 한다. 

독일 인류학자와 가까워진 아브라함
그는 묵고있던 호텔에서 소지품을 다 도둑맞고 빈털털이가 되기도 하고, 정신을 잃어 병원에 실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절단해야만 하는 다리이지만 얼마남지 않은 삶을 굳이 절단하지 않는 선택으로 마무리짓고, 간호사는 그의 약속이행을 위해 기꺼이  동행인이자 보호자가  되어 아브라함의 친구가 있는 주소지로 찾아간다.

70년이 지났다. 그는 막상 여기까지 왔지만 그가 죽었을까, 아니면 예전의 그자리가 없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돌아서고 싶어했다.

슈트를 전달하는 것보다 그 친구가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까 더 두려웠던 것이었을까.. 아니면너무 늦게 온 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을까,그의 초조함과 두려움이 이해되었다. 

나라도 만감이 교차할 것 같았다.

오고 보니 모든 것이 두려웠던 그때처럼 다가왔을 것이다.그의 표정이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모든 어제를.
마직막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여정
건물은 예전 그대로 존재했다.

기억을 따라 건물앞에서 문을 두드린다. 아무 인기척이 없다. 앞집에 벨을 누르고 물어봐도 모른다는 말이 들려온다.

실망하고 돌아서 나오며 익숙한 계단을 발견한다.

문앞에 쓰러진 자신을 안고 친구가 지하계단으로 데리고 내려가 자신을 숨겨주고 돌봐줬던 그 곳이었다. 

다리가 불편한 아브라함은 그 자리에 서 있고, 간호사가 그 계단을 내려가 확인하러 간다. 그 순간 아브라함 눈에 한 노인이 들어온다. 

앞에 보이는 창문안에 앉아있는 노인과 아브라함이 눈이 마주치고 두 사람의 눈시울은 이내 뜨거워진다. 

살아있다. 살아 있었다. 

노인은 이내 밖으로 나와 아브라함을 끌어안는다. 아무 말이 필요없이 그 둘은 깊은 포옹으로 70년의 세월을 어제처럼 끌어안았다.

그의 수트는 주인을 만났고, 아브라함은 약속을 지켰다. 

참 뜨겁고 저린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까칠하고 고집불통 같았던 노인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18살의 아브라함 청년이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