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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06 <이터널 선샤인> 기억을 지우는 영화* 짐캐리 케이트 윈슬렛 주연
  2. 2019.04.06 김태리.류준열 <리틀 포레스트> 나만의 작은 숲
  3. 2019.04.03 리플리, 거짓말을 멈출 수 없는 남자
  4. 2019.04.01 120.천녀유혼 :인간과 귀신의 러브스토리 {왕조현의 전성시대}
  5. 2019.04.01 119.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
  6. 2019.04.01 118. 동사서독 :움직이는 것은 오직 사람마음이다.
  7. 2019.03.28 117.트럼보 :로마의 휴일을 쓴 진짜 작가가 나타났다.
  8. 2019.03.28 116.호프 스프링즈 : 진짜 부부처럼 살고 싶어.
  9. 2019.03.28 115.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10. 2019.03.28 114.포레스트 검프 : 최선을 다하면 기회는 저절로 오는 법
  11. 2019.03.27 113.정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정글 아마존에서 살아남기
  12. 2019.03.25 112. 행복 목욕탕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비밀
  13. 2019.03.25 111.파이트 클럽 :인간은 누구나 망가진다. 완벽을 찾지마라. 그건 다 유치한 허영심
  14. 2019.03.25 110.겟아웃(GETOUT):인종차별의 독특한 소재,숨겨진 복선과 해석
  15. 2019.03.23 109. 어톤먼트
  16. 2019.03.21 108.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현실의 무게 앞에서 이별한 사랑
  17. 2019.03.21 107. 피아노 :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
  18. 2019.03.20 106.조 블랙의 사랑 : 사랑은 열정이고 집착이다.
  19. 2019.03.20 리즈 위더스푼
  20. 2019.03.20 105. 리즈 위더스푼의 로드무비<와일드>
  21. 2019.03.19 104.미스 리틀 선샤인: 자신이 가장 힘들었을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다. 그게 자신을 만든다.
  22. 2019.03.19 103.셰익스피어 인 러브 : 비극적인 사랑으로 끝난 로미오와 줄리엣
  23. 2019.03.18 101.레옹:외로운 킬러와 소녀의 사랑이야기
  24. 2019.03.17 100.오베라는 남자: 죽지 않으려면 죽지 않을만큼 버텨야 해
  25. 2019.03.17 99.내 마음속의 지우개: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26. 2019.03.17 98.노예 12년: 자유를 항한 여정
  27. 2019.03.15 97.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사랑의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하자.
  28. 2019.03.15 96.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방법
  29. 2019.03.15 95.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뿌리가 되어준 가족
  30. 2019.03.15 94.캐스터 어웨이: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9. 4. 6. 18:02

 

영화 이터널 선샤인

 

감독 미셸 공드리

제77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100선에 포함된 영화로 6위에 있는 영화이다.

짐 캐리가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진지한 연기로 케이트 윈슬렛과 호흡을 맞추었고, 커스틴 던스트와 마크 러팔로가 출연한 로맨스 SF물이다.

"누군가를 오래 사귀어서 생기는 손실이 있다면 결국 남남이 된단 것이다"

조엘(짐 캐리)은 파란 머리의 여자에게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녀는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이다.

이 해변에서 오늘 처음 만난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끌린 것이 처음이 아니다는 것이다.  실은 클레멘타인은 조엘의 애인이었고,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애인이었다.

클레멘타인은 활발하고 적극적인 반면 조엘은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이다.

정반대의 성격의 두 사람은 사소하게 다투는 일이 많았고 그러다 헤어졌다.

그 이별로 인해 괴로웠던 클레멘타인은 Lacuna라는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에 가서 조엘과의 기억을 모두 지운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른 조엘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조엘은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Lacuna라는 회사에서 보낸 편지로 옛 여자 친구 클레멘타인이 당신에 대한 기억을 전부 지웠으니 예전 관계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라는 내용이었다.

클레멘타인은 조엘에 대한 기억만을 선택하여 그 부분만 지운 것이다. 그래서 조엘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조엘은 화가 났고, 자신도 기억을 지우기로 한다.

최근 기억부터 지우기 시작한다.

둘 사이에 있었던 그 모든 과정들과 두 사람사이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며 지워진다.

기억을 하나씩 지워 갈수록 클레멘타인과 행복했던 순간들, 행복했던 기억들, 그 모든 것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지우고 싶었던 것과는 다르게 지우고 싶지 않은 것과도 마주하게 된다.

둘만의 아름다웠던 추억의 장소, 찰스강에서의 데이트가 떠오르자 조엘은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다고 취소하겠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가상현실이라 현실속의 Lacuna 직원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조엘은 어떻게든 지우지 않으려고 음미하려고 안간힘 쓰게 된다.

그렇게 기억은 지워지고 서로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또 조엘은 파란 머리 클레멘타인에게 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인 사이 이별의 상처가 아무리 아파도 시간과 함께 아물면서 흘러간다.

사랑하다 싸우고, 미워지고, 겹겹이 쌓이는 감정으로 지쳐 가기도 하지만 시작이 뜨거웠던 순간들이 없었다면 오지 않을 감정이다.

그녀와 보낸 시간들이 지워진다고 그리웠던 감정마저 지워지지 않는다.

서로에게 반해 끌렸던 그 설레임도 추억이 되고, 그리움으로 숙성되어 인생의 반짝반짝 빛날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수시로 영화처럼 삶에 펼쳐질 것이다.

 

메리(커스틴 던스트)와 Lacuna원장 하워드도 사랑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아내에게 들키고 하워드와의 기억을 지워야 했다.

하워드(톰 윌킨슨)는 기억을 지운 매리와 함께 일하고 있었던 것이고, 메리와 사귀는 스탠(마크 러팔로)도 이 사실을 알고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워드와 사랑했던 기억은 지울 수 있어도 그를 향한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는 지우지 못했던 것이다.

화가 난 메리는 녹음된 환자들의 테이프를 환자들에게 모두 발송해 버린다.

조엘과 클레멘타인도 테이블을 받는다.

어제의 자신을 뜨겁게 했던 아름다움을  인생에서 도려내는 것이다. 어제 없이 오늘이 오지 않는다.

그녀만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도 도려내는 것이다. 어떤 관계이든 과정 없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거센 폭우같겠지만 시간이 흐른 후 잔잔한 여우비처럼 가슴을 적실 순간이고 기억의 한 페이지일 것이다.

아프면 아픈대로 사랑했던 기억도, 미워했던 기억도, 자신의 삶과 같이 흐르게 되어있다

헤어지는 게 두려워 시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뜨거움을 안아 볼 기회가 없다. 어느 누구도 장점만 갖고 있지 아니한다.

사랑은 달콤하게 뭉쳐있는 솜사탕 같지만 언젠가는 녹는다. 눈에 보이는 건 녹아 사라져도 달콤한 맛은 기억된다.

"잊힌 세상에 의해 세상은 잊힌다.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여기엔 성취된 기도와 체념된 소망 모두 존재한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6. 15:17

감독 임순례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 줄 한 줄이 마음을 살랑살랑 흔들리게 하는 영화였다.

무심한 줄 알았던 것들이 어느 날 소중하게 다가오는 날처럼 이 영화가 그랬다. 몇 번을 스쳐 보내고 보지 않았던 장면이 다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이다.

젊다고 다 젊은 것이 아니라 젊게 살지 않으면 젊음의 의미를 공감할 수 없는 것 같다.

 

도시의 바쁜 일상속에서 인스턴트식품으로 한 끼를 때우며 맞이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온기가 없었다.

그저 버티고만 있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혜원은 고향으로 내려왔다.

 

혜원 역 김 태리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

고시공부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인스턴트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우기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무언인가를 채우려고 끝없이 달리고 있지만 항상 제자리걸음 같은 위치와 푸르르고 생기 나는 웃음이 숨어 버리고 없다는 느낌이 든다.

땅에서 추위와 같이 버텨낸 겨울배추로 된장국을 끓여 먹으니 따뜻하고 배부르다.

현대인들의 허기짐을 달래주는 따뜻한 한끼는 소박하지만 사랑 가득 담긴 엄마의 밥상같다.

 

어린 혜원과 엄마 문 소리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강하다.

4살 때 아빠로 인해 요양차 시골에 내려와 살게 된 혜원(김태리)은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엄마는 시골을 떠나지 않고 머물렀다. 혜원은 시골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시골에서 엄마와 둘이 살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남자 친구는 고시에 붙었는데 혜원은 고시에 떨어졌다. 남자 친구에게 제대로 합격 축하 한마디 못 건네고 그냥 고향으로 내려왔다.

 

재하, 은숙, 혜원

 

최고의 안주는 알싸한 추위와 같이 나눠마실 사람인 거야.

오랜 고향 친구인 재하와 은숙을 만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그렇게 겨울, 봄,여름,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한다.

잠시 머무르려고 했다.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다.

젊은 날의 시선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 봄 햇살처럼 따스하고, 여름처럼 강렬하고, 가을처럼 무르익고, 겨울처럼 저장된다.

그렇게 고향과 친구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와도 편안하게 안길 곳이고, 반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엄마품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도시생활의 미련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류준열)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다.

재하를 통해 혜원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류준열, 김태리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재하의 이 말에는 참 많은 생각을 주워 담게 한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바쁘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계처럼 작동되고 있다.

바쁘게 산다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외면하고 그때그때 열심히 사는 척 고민을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미련까지 도시에 다 버리고 온 재하와는 달리 혜원은 그저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은 채 떠나온 것이다.

 

아줌마 떡 맛은 달지 않은데 단맛이 나고, 네 건 짜지 않은데 짠맛이 나.

겨울에 심은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고 한다. 밤 조림이 맛있다는 건 가을이 깊어졌다는 이야기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추운 겨울을 견딘 양파가 더 달고 단단해진 것처럼, 밤조림이 때가 되면 깊어지는 것처럼 자연처럼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혜원의 친구 은숙(진기주)이 던진 이 한마디가 나에게 참 강하게 부딪혔다. '통장에 스쳐 지나가는 월급 같은 년'

한 달 죽어라 바쁘게 달린 결과는 허무하게도 통장에 숫자만 찍고 스쳐 지나가버린다. 바쁘게 스쳐만 가느라 정작 아무 것도 못 담아낸 청춘이 아프다.

재하의 말처럼 바쁘게 산다고 문제 해결이 돼라는 질문에 젊은 청춘이 NO라고 외칠 태세 같다.

 

적어도 농사에는 사기, 잔머리 그런 게 없잖아.

태풍에 사과들이 다 추락해 맥이 빠지기 하지만 최소한 사기 치고 짓밟진 않으니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지는 것이고,

그 모진 풍파에도 용케 버텨 떨어지지 않는 사과 하나를 혜원에게 건넬 수 있음에 행복해 보이는 재하였다.

기다릴 줄 알아야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듯이 실패에 발길을 돌리지 않고 떨어진 사과를 주워 사과잼을 만들고,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하는 것이다.

 

요리도 인생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세상엔 늦은 일이란 없다고 생각하지만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곡식들도 제대로 심고,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많은 과정을 거치고 버티고 흔들린다.

열매가 열리기까지,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까지,세상은 우리에게 과정 없이 결과물을 주지 않는다.

 

난 그곳을 떠나온 게 아니라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친구에게 내뱉고 싶을 때 내뱉지 않으면 독이 된다고 말하면서 혜원 역시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걸 안다.

재하는 다 버리고 도시를 떠나왔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제대로 축하도 못해주고 제대로 관계를 끝낼 용기도 없었다.

두 번의 겨울을 맞이하고서야 남자 친구에게 전화해 진심으로 합격을 축하해주고, 이별도 한다. 잘 정리해야만 다시 잘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겨울이 와야 정말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는 거야.

실패하면 어쩌지, 늦었으면 어쩌지, 그런 불안감 때문에 대문을 걸어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잘 돌아오기 위한 긴 여행의 출발선에 있다고 생각하라는 엄마의 말처럼 자주 출발선에 서야 하는 게 청춘인 줄 모른다. 우리 모두가 그저 견디고만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줄도 모르겠다. 잘 견뎌내는 것 또한 과정이다.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어지는 영화이다.

고향은 언제든 지치면 쉬고 가라고, 언제든 돌아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으라고 어머니가 마련해 준 숲인 것 같다.

 

엄마(문소리)에게는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이 그만의 작은 숲이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봐야겠다. 시험, 연애, 취업 그게 인생이 주는 그림은 아니다.

인생에 사계절을 제대로 담아낼 자신만의 숲을 만들어 가야 하고, 자신의 나무를 심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3. 00:17

감독 앤서니 밍겔라

 

리플리 역 맷 데이먼과 딕키 역 주 드로

 

나는 영영 창고에 갇힐 거야.

이 어둡고 무섭고 외로운 창고, 난 거짓말을 했어. 내가 누군지 내가 어디 있는지 나는 늘 생각했지.

초라한 현실보다 멋진 거짓이 낫다.

 

세상은 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출발선이 다르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무위도식하며 호화로운 상류사회를 누리는 딕키(주드로)와는 다르게 고아로 태어난 리플리(맷 데이먼)는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도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 낮에는 호텔 보이로 볼 잘 것 없는 삶을 산다.

톰 리플리는 어느 날 대타로 파티장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기 위해 빌려입은 프린스턴 대학 재킷으로 인해 기회가 주어진다.

어쩌면 빌려 입은 이 재킷이 그를 초라한 현실에서 탈피시켜 주고, 거짓으로 위장 인생을 살게 한다.

재벌인 하버트 그린리프는 톰이 입고 있던 옷만 보고 자신의 아들 딕키와 같은 프린스턴 대학 출신으로 오해하고, 유럽에서 방탕하게 지내는 자신의 아들을 설득해 데려와 주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얼떨결에 한 거짓말로 인해 그는 재벌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탈리아로 간다.

리플리는 딕키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가 재즈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재즈 음악을 듣게 된다.

그린리프로 인해 호화 유람선 일등석에 타게 된 리플리는 상류사회에 발 담근 것 같은 기분에 배 안에서 만난 섬유재벌의 딸 메르디스에게 자신을 딕키라고 소개하며 거짓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딕키와 그의 연인 마지

 

이탈리아에 도착한 톰은 딕키와 그의 연인 마지(기네스 펠트로)를 만나게 된다. 딕키에게 집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말을 전달하나 딕키는 무시한다.

톰은 딕키의 관심을 끌려고 재즈음반을 일부러 떨어뜨리고 딕키는 톰에게 관심을 보이며 같이 지낼 것을 제안한다.

톰은 딕키와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듯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딕키에게 빌붙어 상류사회의 맛을 즐기는 동안 딕키 아버지로부터 편지가 온다. 계약은 끝났으니 포기하고 돌아오라는 것이었고, 딕키 역시 톰을 떼어 내려는 눈치였다.

딕키와 더 있을 명분이 사라지고 딕키는 마지막으로 로마로 보트여행을 하고 각자 헤어지자고 한다.

그렇게 둘은 보트로 여행을 떠나고 말다툼 끝에 몸싸움이 나고 톰은 딕키를 살해하게 된다.

바다 한가운데라 증인이 없었던 톰은 로마에 잡은 호텔로 돌아와 딕키 행세를 하며 알리바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리플리는 그 이후로도 딕키 행세를 하며 딕키의 신용카드를 마음대로 쓰고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멋진 집을 사서 상류층의 삶을 누리기 시작한다. 그런 그가 다시 톰의 생활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예전 미국에서 관객이 다 돌아간 무대에서 몰래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이탈리아 협주곡>을 쳤던 초라한 현실 속의 리플리였으나 지금은 부잣집 아들 딕키로 살고 있다. 화려한 무대를 꿈꾸었는데 지금 그는 딕키인 것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사들인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화려하게 연주하고 있다. 무대 뒤에서 몰래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딕키로 완전히 몰입한 화려한 삶이 펼쳐지고 있다.

딕키로 사는 삶에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모든 것이 아슬아슬 잘도 넘어가는데 딕키의 친구 프레디는 톰을 수상히 여겼고 결국 가짜 행세를 들키고 만다.

그러자 가짜행세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 그는 딕키의 친구 프레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마저 살해하고 만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톰은 경찰에게도 딕키 인양 행세하며 프레디의 행방을 둘러댄다.

그리고 딕키의 얼굴을 알고 있는 그의 연인인 마지가 자꾸 아파트로 찾아오는 바람에 톰은 들통날 것을 염려해 죽은 딕키에게 프레디를 살해한 누명을 씌우고 톰의 신분으로 베니스로 떠난다.

 

영화 리플리

 

딕키 아버지는 아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하고 아버지와 사립탐정은 톰이 꾸며내는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그에게 수고비까지 내준다.

톰은 미국으로 돌아가기위해 피터와 배에 오르고 그곳에서 메르디스를 만나고 질투심에 피터까지 살해하고 만다.

이 영화는 어느 날 우연히 다가온 사람의 제안으로 인해 거짓과 거짓 행세를 하고 살인을 하고 살인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다.

계속되는 거짓이 먹히면서 자기 자신마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야기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된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그저 처음에는 초라한 자신을 가리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이 산불처럼 번져버려 살해 하지 않고는 가려지지 않게 된 것이다.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거짓을 덮고, 또 덮다 보니 어느새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어려워졌다. 계속되는 거짓말이 먹히고 또 먹히다 보니 본인 스스로도 이미 그 맛에 길들여져 버렸다.

계속 가상을 만들어 현실로 끄집어 와 펼치게 되고, 본인마저 자신이 펼친 가상이 현실인 줄 알고 눌러붙게 했다.

 

메르디스 역 케이트 블란쳇

 

리플리 증후군은 하나의 인격장애로 사회적으로 꿈을 실현할 수 없는 사람이 신분상승에 대한 강한 욕구로 현실에 없는 가공의 인물이나 세계를 만들어 그곳에서 살게 된다는 현상을 의미한다.

리플리는 미국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발표한 <재능있는 리플리 씨>라는 연작소설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태양은 가득히>로 먼저 영화화되었고, 앤서니 밍겔라 감독에 의해 다시 <리플리>로 두 번째 만들어졌다.

출신 배경이 화려한 자들에 비해 초라하고 보잘것 없던 리플리의 삶이 멋진 거짓으로 화려한 삶을 누리고 있으나 그건 자신의 진짜 삶이 아니다.

부잣집 아들인 딕키 행세를 하며 부잣집 딸 메르디스(케이트 블란쳇)와 함께 객석에 앉아 오페라 공연을 보는 그는 커튼 뒤에서 몰래 듣던 초라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살인을 했다는 죄의식은 남아있어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재킷을 빌렸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한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창고 열쇠를 주고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라고, 하지만 안돼, 그 안은 어둡고 더러우니까.

그 추잡함을 들키면 우울한 기분이 더 우울해져. 난 늘 그러고 싶어.

문을 활짝 열고 모든 걸 드러내고 싶다고. 큰 지우개가 있다면 모든 걸 지우고 싶어.

posted by 해이든 2019. 4. 1. 21:18

천녀유혼(1987)

감독 정소동

1987년 천녀유혼

1987년 작품이다.

책받침 세대에게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왕조현을 있게 한 영화이다.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라는 서양미인이 대세였던 시절, 어느 날 중화권 미인 왕조현의 출현은 우리에게 남달랐다.

그것은 천녀유혼에 나온 왕조현이 귀신임에도 너무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귀신으로서 다른 귀신들로부터 인간 영채신을 구하려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눈부셨다.

처녀귀신 섭소천 역 왕조현

솔직히 천녀유혼에서 영채신을 맡은 장국영의 존재가 섭소천 역을 맡은 왕조현에게 완전히 묻혀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녀의 존재가 독보적이었다.

그런데 이게 재앙이 되었다. 그녀는 천녀유혼 속에 갇혀 그 이후로 연기에 빛을 보지 못했다.

천녀유혼에서 왕조현의 연기가 뛰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외모가 독보적이었다.

마치 하얀 나비가 춤을 추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귀신이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이뻤다.

1987년 왕조현, 장국영이 출연한 <천녀유혼> 말고도 2편, 3편이 만들어졌지만 난 1편을 따라잡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2편에도 왕조현과 장국영이 나오지만 1편만큼은 아니었다.

개봉 당시 <천녀유혼>과 <영웅본색>은 홍콩영화로 우리나라에서 양대산맥이라 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천녀유혼 영채신 역 장국영

가난한 서생 영채신(장국영)은 수금을 하러 다니다 비가 와서 장부가 젖어 지워지는 바람에 착수금은커녕 하룻밤 숙소도 구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폐허가 된 난약사라는 절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 절은 창백한 얼굴을 한 귀신들이 미모로 남자를 유혹한 뒤 정기를 빨아먹는 무서운 요괴들이 사는 곳이다.

천녀유혼 영화속 장국영과 왕조현

영채신은 아름다운 가야금 소리에 이끌러 섭소천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고 만다.

섭소천(왕조현)은 간신들의 모함으로 일가족이 죽음을 당해 나무귀신에게 잡혀 다시 환생하지 못하고 있는 처녀귀신이었다.

섭소천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해 있는 영채신을 유혹하여 죽이려 했으나, 겁도 많고 순박하기 그지없는 영채신를 사랑하게 된다.

영채신은 인간이지만 섭소천은 귀신이었다.

인간과 귀신의 사랑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요괴들에 의해 영채신이 위험에 빠지고 섭소천은 그 요괴들로부터 영채신을 구해준다.

영채신은 퇴마사 연적하(오마)의 도움을 받아 섭소천을 구해내어 환생시키려고 노력한다.

정말 예쁜 남자 장국영과 정말 예쁜 왕조현만으로 이 영화는 홍콩영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여긴다.

말보다 영상으로 접해야 한다고 본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 19:02

감독 왕 가위

왕가위감독의 화양연화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이별을 사랑의 완성품처럼 만들어 낸 영화이다.

사랑 안에는 많은 것들이 개입된다. 도덕, 열정, 가치, 행복, 현실 수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또 무엇에 더 행복의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거리가 정해진다.

왕가위 감독이 제작한 <화양연화>는 1960년대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따른 도덕적 관점에서 두 남녀의 사랑을 적극적이게 담아내지 않는다.

열정적인 사랑이야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지루하고 따분하고 미지근할 것이다.

불륜영화이지만 불륜을 다루는 장면은 하나도 넣지 않았다.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들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들에게 상처 주는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와 함께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비난받기를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

왕가위 감독은 불륜을 저지르는 차우의 아내와 수 리첸의 남편을 초반부 잠깐 뒷모습으로 존재감만 부여해 주고 영상 뒤편으로 보내버린다.

오직 수리첸과 차우만을 위해 영화는 세팅된다.

'불륜'을 아름답게 묘사하지도 않겠다는 의도와 그들에 의해 첸과 차우가 무너지거나 흔들리는 것보다 오로지 차우와 수리첸의 감정선에 몰입하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시선, 그들의 행동에 더 집중하게 만든 줄도 모르겠다

몽환적인 영상, 쓸쓸한 선율, 수리첸의 몸에 착 달라붙은 화려한 치파오, 신문사에 혼자 앉아 담배 피우는 차우의 모습,

좁디좁은 아파트 통로를 지나며 닿을 듯 말듯한 접촉. 국수를 사기 위해  오르내리는 어둡고 좁은 계단통로, 대사보다는 무성영화 같은 영상이 가득하다.

1962년 홍콩 그들의 첫 만남

우연히 같은 날 이사를 하게 되고 이삿짐이 섞이기도 한다.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는 닿을 듯 말듯한 비좁은 복도 통로로 차우와 수리첸은 몸을 옆으로 돌려 지나간다.

그날도 차우의 아내는 바빴고, 수리첸의 남편은 출장으로 혼자 이사를 한다.

수리첸은 일본 출장으로 집을 자주 비우는 남편으로 인해 청상과부나 다름없었다. 혼자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국수를 사려고 어둡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린다.

차우역시 아내의 늦은 퇴근으로 늦게 퇴근하거나 혼자 저녁을 해결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오르내리는 계단을 지나며 마주하게 되는 화면은 음악과 함께 굉장히 쓸쓸하다.

화려한 치파오를 입은 수리첸 역 장만옥

어느 날, 수리첸은 남편이 하고 있는 넥타이와 차우가 하고 있는 넥타이가 같다는 것과 차우의 아내가 가지고 다니는 핸드백과 같은 핸드백을 자신의 아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아내와 자신의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수리첸은 보이는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다. 같이 숟가락 하나 더 올려 같이 저녁 하자는 것에도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 그 넘의 체면 때문에 그녀는 밤길을 걸어 나가 국수를 사들고 온다. 신세 지기 싫어하고, 남의 호의도 부담스러워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항상 체면 유지와 자존심으로 자신을 치장하는데 흐트러짐이 없다.

수리첸은 가정을 지키고 싶은 게 아니라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아 그들의 관계를 모른 척할 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 것이다.

무역회사 사장이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면서도 그럭저럭 가정을 깨지 않고 아내의 생일선물을 준비하며 꾸려가는 가정을 본 비서로서 수 리첸 또한 그럴 것이다.

자신 또한 모른 척 사회적 체면을 위해 화려한 치파오로 자신의 쓸쓸함을 가리고, 세상의 틀에 맞추어 청상과부로 보일지라도 가정의 틀을 무너트리지 않을 것이다.

 

화양연화의 양조위와 장만옥

영화에서 차우와 수리첸의 대사는 별로 없다. 두 사람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안다.

서로의 모습을 통해 배우자들의 외도를 확인했고,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보고 서로의 모습을 통해 침착할 수 있다.

슬픔이 같다. 배신감 또한 같다. 나랑 똑같은 사람이 옆에 있는 것으로 위로받으며 그 두 사람은 이 상황을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혼자 겪고 있는 슬픔이 아니다. 이 슬픔 안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나와 대면하고 있다. 평정심과 냉정함을 찾아간다.

괜히 감정소비로 자신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고, 삶을 흔들고 싶지도 흔들리기도 싫었다. 

결혼해 사느라고 무협소설을 쓰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내려놓았는데, 아내의 외도로 인해 그런 자신의 꿈을 다시 들어 올리기로 했다. 차우는 자신을 위한 무협소설을 써보기로 하고 첸에게 같이 하자고 한다.

우리는 불륜을 저지르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는 수리첸은 모텔을 찾아가 그와 무협소설의 연재를 도운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회적 망원경에서 좀 더 자유롭기 위해서 말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뜻하는 '화양연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벽을 사이에 두고 등을 댄 수리첸과 차우의 영상화면은  가까이 있지만 같이 할 수 없는 사이, 도덕적 거리만큼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 쓸쓸했다. 점 뜨거웠으면 했다.

어쩌면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하던 때가 그들에게 배우자들의 외도로 가장 아프기도 했던 때이다.

부도덕한 배우자들과는 다르다고 도덕으로 옷을 입고, 모텔방에서도 첸의 방에 갇혀서도 그들은 감정을 절제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그들과 다르다."

'우린 도덕적이야' 라고 무장되어 있는 두 사람은 자신의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독이 아마 이 둘을 갈라놓기 위해 연출된 장면 같았다.

둘이 사랑하는 것 맞아? 할 정도로 자제된 감정과 터치들 , 불륜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그들의 표현은 서로를 향해 뜨겁지 않다고 느끼는 걸 넘어 너무 인색하다. 몸은 항상 거리두기가 있다.

모텔에서 거울을 통해 보이는 차우

 

비가 갑자기 퍼붓던 어느 날, 수리첸은 동네 골목 어귀 비를 피하고 있다. 차우는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비를 맞고 집으로 뛰어가 우산을 들고 온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수리첸은 그가 가져온 우산은 같이 쓰고 갈 수도, 그렇다고 차우의 우산을 혼자 쓰고 갈 수도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을 불륜으로 포장해버릴 테니까, 상자 안의 내용은 그들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테니까

비가 멈추거나 비를 맞거나 둘 중의 하나이지 같이 우산을 쓰고 갈 수 없는 사이이다.

 

둘이 한 방에서 밤을 지새워도, 호텔방에서 무협소설을 같이 쓸 때도 그들은 '우리만 아니면 불륜이 아니다.'

배우자들의 외도에 아파하기보다 자신들의 또 다른 삶을 만들어내려고 꿈이었던 무협소설을 쓰고 연재하는 추와 같이 읽어주며 공유하는 것으로 우리는 너희들과 다른 사랑이야. 삶도 사랑도 도덕적 토대 위에 반듯하게 올려놓는다.

출장 갔다고 친정에 갔다고 거짓말하는 그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마음은 그 거리가 힘들었다.

처음 시작은 이게 아니었지만 조금씩 변해갔고,수리첸이 남편과 있다는 생각만으로 미쳐버릴 정도로 사랑하게 되었다. 불륜을 택한 배우자들과는 다르게 그녀가 지키고자 하는 가정과 도덕성을 지켜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을 도덕적으로 봐주지 않았다. 소문이 무성했다. 우린 다르다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고 수리첸을 위해 떠나기로 한다. 차우는 싱가포르로 신문사를 옮겨간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이별로 담아낸다.

그들이 택한 사랑은 이별이었다. 불륜을 제거되고 아름답고 애틋한 정서만을 담아 헤어진다.

사원에서 구멍에 비밀을 말하고 봉인하는 장면

손가락 다섯 개를 깍지 낀 사랑보다 검지 손가락 끝이 닿아 물결 같은 애틋한 감정이 전해진다.

비바람에 젖는 나무보다 바다 위를 적시는 비처럼 스며들어 의식할 수 없는,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알 수 없고 분리하지도 못한 채 서로가 흡수되어 그저 가슴만 아는 비밀로 봉인된 사랑이다.

"옛날엔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고 진흙으로 봉했다고 하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시간이 흐르고 자신들이 살았던 아파트를 찾아 창가를 바라보며 눈물짓던 수리첸, 차우는 그때를 가장 아름다웠던 때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가서 작은 구멍에 대고 수리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말하고 그 비밀을 영원히 봉인하는 장면은 내가 이 영화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 01:32

감독 왕 가위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몇 편 본 사람이라면 이 감독만이 가지는 특이한 시선을 알고 있을 것이다.

느림의 미학과 대사보다는 독백으로 여백을 만들어 내는 감독이다.

처음에는 뭔 내용인 줄 모르겠고, 지루하고 복잡하다. 처음에는 관계도가 모호하고 복잡하다.

. 또 하나 이 영화는 생략이 많다.

여백이 많고 생략이 많으면 그건 독자들의 몫이다. 끝까지 정주행 해야 하는 영화이다.

 

왕가위 감독의 특유한 감성을 믿고 가야 한다.

'화양연화'를 통해 보여 준 상처와 회한처럼 사랑에 있어 적극적이지 않다. 어떻게 보면 소심하고 또 어떻게 보면 용기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에 대한 선택으로 이별을 한다.

화양연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잡지 못하고 떠나가는 것으로 사랑보다는 그녀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도덕적 가치를 지켜주는 것으로 타협을 본다.

그리고 회한에 젖어 남자 주인공은 그녀를 사랑했던 비밀을 사원에 있는 구멍 안에 속삭이고 영원히 봉인한다.

어쩌면 <동사서독>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된다.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다.

자애인 역 장만옥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을 의지해서 자랐던 서독 구양봉(장국영)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했다.

'천하를 얻기 위해선 여자를 버려야 하는 줄 알았지.'라고 생각했던 구양봉은 사랑하는 여인 대신 무사로서의 길을 택했다.

'거절당하기 싫으면 먼저 거절하는 게 최선이다.'이라는 그의 독백으로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온 것은 상처 받기 싫어 먼저 상처를 주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킨다고 생각한 것 같다.

구양 봉이 사랑했던 여인 자애인(장만옥)은 결국 자신의 형과 혼인했다. 그녀가 혼인하는 날 구양봉은 자애인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꼭 잃고 나서야 얻으려고 하는 그를 수긍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혼자된 구양봉은 고향 백타 산을 떠나 사막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경칩이면 동사 황약사(양가휘)가 술 마시자고 찾아온다. 그리고 황 약사는 구약봉을 만나고 나면 꼭 누군가를 만나러 떠난다.

황 약사는 구양 봉이 사랑했던 자애인을 사랑한다. 하지만 자애인은 구양봉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는 구양봉을 시기한다.

자애인 때문에 복사꽃을 좋아한다. 매년 복사꽃이 필 때면 그녈 만날 수 있다.

그녀가 구양봉의 소식을 궁금해해서 구양봉을 만나러 간다. 구양 봉이 있는 한 매년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서로 엇갈리는 사랑으로 인한 상처와 질투가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다.

황 약사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남에게 사랑받는 느낌을 알기 위해서 친한 친구의 아내와 정을 통하고, 친구였던 맹무살수(양조위)는 그로 인해 아내를 떠난다.

맹무살수는 황 약사를 다시 만났을 때 그를 죽이려 했지만 이미 그는 시력이 나빠져 그를 죽일 수 없게 되었다.

 

모룡 연(임청하)은 황 약사가 술에 취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상처 받고 황 약사를 죽여달라는 살인 의뢰를 구양봉에게 하게 된다.

또 모룡언은 돈을 두배로 줄 테니 황 약사를 죽이지 말라고 한다. 대신 오라버니 모룡 연을 죽여 달라고 한다.

사랑에 대한 상처로 또는 복수로 그녀는 자아가 두 개로 분열이 된 것이다.

오라버니라는 모룡연과 여동생인 모룡언은 두 개의 모습을 지닌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모습의 정체는 상처 받은 사람인 것이다.

'사람들은 좌절하면 자기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장국영,양가휘,장만옥,임청하,유가령,양채니,장학우,양조위

구양봉도, 황약사도 모룡 연도 맹무살수도, 맹무살수 아내 도화 삼량(유가령)도 남동생의 죽음으로 복수를 하려고 하는 완사녀(양채니)도 모두 상처 받은 사람이다.

영화에서 복사꽃은 사랑하는 여인들이다. 맹무살수(양조위)가 복사꽃이 시들기 전에 그녀를 만나러 가야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돈을 벌려고 구약봉 밑에서 일하지만 끝내 가지 못했다. 우리는 그게 복사꽃인 줄 알았지만 복사꽃은 그의 아내 도화 삼량의 이름이었다.

구양 봉이 맹무살수의 아내가 우는 걸 보고 황 약사가 자신에게 오는 이유를 알았다고 말한다.

자애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복사꽃을 제대로 마주해 보지 못한다.

 

이젠 옛날에는 산을 보면 산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을 기다려줄 여인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면서 왜 혼인하지 않았냐는 황약사의 질문에 자애인은 대답한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구양봉은 해주지 않았다.

예전에 사랑한다고 말로 해야 영원한 줄 알았지만 사랑은 말하든 안 하든 차이가 없다. 사랑 역시 변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거울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사람 마음이라.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대 마음이 움직인 것뿐이다.

 

완소녀가 당나귀와 달걀을 들고 구양봉에서 자신의 남동생의 복수를 위해 살인 의뢰를 하지만 구양봉은 달걀로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홍칠공(장학우)은 달걀 때문에 완사녀를 도왔고,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잃는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의 모습이다.

홍칠공은 구약봉에게 '난 당신을 닮고 싶지 않다. 달걀 하나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지 않겠지. 그게 당신과 나의 차이지'

구양봉은 그런 모습이 시간낭비로 느껴진다고 했지만 오직 그만이 살아있어 보인다.

다들 좌절하느라 자기변명만 늘어놓고 있지만 그만은 바람을 향해 정면으로 맞서 간다. 회피하지도 등지지도 않는다.

홍칠공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이 상실감으로, 질투로, 자존심으로, 변명으로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아파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괴로운 것은 상처 받기 싫어서 끄집어내지도 않았거나 아님 먼저 상처 줘 버린 것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 기억에 집착하는 것이다.

구양봉은 홍칠공이 단순하다고 생각했지만 마누라를 데리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질투가 났다.

자신에게 똑같은 기회가 있었을 때 왜 자신은 자애인을 포기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 약사는 구양봉을 만나고 그녀를 보러 가면서도 왜 구양봉에게는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지 못한 것일까? 시기이다. 질투가 우정을 외면한 것이다.

사랑받기 위한 느낌을 알고 싶어서 친구 맹무살수에게도 그의 아내 도화 삼량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친한 친구 둘을 기만했다. 질투는 결국 친구와 자신을 파괴했다.

 

자애인은 죽기 전에 '취생몽사'이라는 술을 황약사를 주면서 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구양봉이 자신을 잊어주길 바랬다. 마시면 지난 일은 모두 잊는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 한다.

황 약사는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매일이 새로울 거라고 나눠 마시자 했지만 그런 술이 있다는 걸 믿지 않았던 구양봉은 마시지 않았다.

황 약사는 혼자 마셨고, 그 해부터 그는 많은 일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기억했다.

구양봉은 사막에 오랫동안 있었으면서도 사막도 제대로 못 본 걸 알았다. 곁에 있을 땐 모른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는다.

꼭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취생몽사는 갖지는 못하더라도 잊지는 말자라고 그녀가 자신에게 던진 농담이었다.

취생몽사를 한 잔 마셨다. 하지만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사랑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다.

그녀를 혼자 몰래 좋아하던 황 약사는 첨부터 졌다고 했지만 그가 취생몽사를 마시고도 많은 기억을 잃고도 복사꽃만 기억한다. 취생몽사를 마신 구약봉 역시 잊을수록 더 기억은 선명해진다. 사랑에는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잊히지 않는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28. 20:19

감독 제이 로치

로마의 휴일을 쓴 진짜 천재작가 트럼보

최고의 몸값을 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한 할리우드 천재 시나리오 작가 제임스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7년 미국 냉전 시대 미국에서는 공산주의 척결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트럼보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소환을 받아 청문회에 참석하게 된다.

그는 청문회에서 정확한 답변을 거부하고 "사상의 자유는 의회도 뺏을 수 없다."

"네 아니오 로만 대답하는 사람은 바보나 노예일 뿐이다"라는 식의 발언으로 의회 모독죄와 증언 거부 죄로 1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을 가게 된다.

냉전시대의 정치 스캔들에 휘말려 정치 탄압을 받고, 영화계 블랙리스트인 '할리우드 10'에 오르게 된다.

 

가족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고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시나리오를 써야만 했다.

하지만 '할리우드 10'에 오른 영화계 블랙리스트 중에 한 명이었던 그와 계약하려는 영화제작사는 없었다.

미국영화협회에서는 '할리우드 10'의 명단의 인물들과 일을 할 수 없었고, 그는 차선책으로 11개의 가명으로 시나리오를 써서 판 돈으로 살아가게 된다.

가족들을 위해 B급 영화제작사를 찾아가 가짜 이름으로 시나리오를 계약하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동료 작가들과 합심하여 수많은 시나리오를 써 내려간다.

<로마의 휴일>은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시나리오를 낼 수 없게 되자 이안 맥켈런 헌터의 이름으로 영화를 제작한 트럼보의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로마의 휴일>은 오드리 헵번과 평범한 기자 그레고리 펙의 출연으로 유명한 영화이다. 오드리 헵번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이기도 하다.

가짜 이름으로 쓴 <로마의 휴일>과 <브레이브 원>은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지만 가명으로 수상만 하고 실제 수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간 동안 가명이나 다른 작가의 이름을 빌려 15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카우보이>, <커리어>, <스파르타쿠스>, <영광의 탈출>등이 그의 작품이다.

인간 트럼보는 블랙리스트로 가두어 졌는지 모르지만 그의 예술적 재능은 가명으로 세상의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고 서서히 작품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는 드디어 1960년 공개적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미국 자본주의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미는 이들을 마녀사냥 하듯 범죄자로 만드는 것도 모잘라 그들의 삶을 감옥에 가두고, 문화적인 활동마저 말살했다.

"난 미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단지 의견을 말했다고 잡아간다는 것은 옳지않다."

"세상엔 영웅도 악당도 없습니다. 오로지 희생자만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난 후에야 아카데미 상을 수여받는다. 가명으로 내보냈던 자신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되찾아 온다.

즉 영화가 개봉된지 40년 만인 1993년에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게 된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대립된다고 빨갱이로 치부하며 학살을 자행했던 우리의 역사도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문학인과 예술인들의 삶과 가치를 가두었던 역사 또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28. 17:18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

호프 스프링즈

31년 동안 부부로 산 케이(메릴 스트립)와 아널드(토미 리 존스)

"진짜 부부처럼 살고 싶어."

케이는 사진 찍을 때 빼고는 곁에 오지 않는 남편 아널드로 인해 불행했다.

빈 껍데기인 남편과 살고 있는 케이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케이는 저축한 걸 다 털어서 '일주일간의 부부관계 힐링 캠프'에 예약을 하고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한다.

남편은 아내 케이에게 미친 짓을 했다고 완강히 거부한다.

미리 결제를 다 해버린 케이는 남편의 완강함보다 더 큰 간절함으로 계획을 추진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아널드는 내키지 않지만 여행에 동참해 준 걸 고마워하라는 투로 케이에게 말한다.

그렇게 정신과 의사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소파에 뚝 떨어진 거리만큼 서로에게 멀어져 있었던 것 같다.

한 집에서 이 부부의 거리

한 집에서 하숙생보다 못한 동거생활을 한 그들의 결혼생활.

키스한 적은 언제인지, 한 침대에서 언제 자 봤는지, 섹스를 안 한 지는 또 얼마나 되는지, 팔이나 어깨를 보듬어 준 적도 없이 서로에게 터치마저 없어진 그들의 부부생활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여자. 남자로서의 설렘은 사막처럼 변해버리고, 가족이란 존재로 그저 가정이란 그릇에 담겨있는 것으로 다 안주하고 만다.

아널드는 의사 앞에서 성적인 문제까지 이야기하는 게 미친 짓이라고 화내고 돈이 썩어나간 인간들이나 오는 곳이라고 화를 낸다. 이렇게까지 하는 아내가 미친 줄 알았다는 그의 말, 케이가 이해되지 않는 아널드.

식당 음식이 비싸다고 마트에서 장을 봐 모텔에서 해 먹자고 하지를 않나,  자신을 너무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아널드 계속 화를 내고 있다. 여행 내내 투덜대고 짜증만 부린다. 케이는 결국 설움이 터져 나와 버리고 조용히 혼자 카페에서 감정을 다스린다.

자신을 만지지 않는 남편, 같이 자지도 않는 남편,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지도 않는 남편과 한 집안에서 사는 것이 부부로서의 삶은 아닐 터.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 나아가고 싶은 케이로서는 이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 남편과 진짜 부부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싶다.

결혼하면 좋겠지, 아이 낳으면 행복하겠지, 아이들이 크고 출가하면 오손 도손 살게 될 거라 기대하며 살았는데 둘이 남은 집은 썰렁하다 못해 온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남편의 온기는 다 사라지고 자신은 더 이상 바라볼 곳이 없게 되었다. 아직도 사랑을 꿈꾸는데, 아직도 행복을 꿈꾸는데, 포기할 수 없는데, 이렇게 빈 껍데기처럼 살기 싫어 지금 간절한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뒤로 한채 섹스를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의사 앞에서

 

돈 주고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하는 게 못 마땅한 아놀드

의사 앞에 앉게 된 두 사람에게 의사는 과제를 하나 낸다. 그것은 한 침대에서 끌어안고 자라는 것이다.

이 나이에 어이없게도 의사라는 사람에게 돈까지 줘가며 이런 미친 짓을 하나 싶기도 하지만 불평하면서 마지못해 한다.

31년이나 산 부부가 세상에 끌어안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케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간다.

31년이나 산 부부들이 다 그렇지. 식구들 먹여 살리고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지.

걸핏하면 때려치우자고 케이를 미친 사람 취급하지만 섹스에 대해 그동안 오해의 벽이 있었던 것을 수긍하며 그녀의 노력에 서서히 조금씩 협조해 준다. 

서로 애무를 하라고 의사가 과제를 내주자 그를 눕혀놓고 쓰다듬는 케이에게 "개새끼 만지듯 하네"라고 말할 때 정말 빵 터져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애무하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케미와 아놀드

가끔 여자와 남자의 생각과 관점 차이에서 오해가 깊어지기도 한다.

여자는 섹스할 때 욕구보다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더 원한다.

선물을 해도 다 같이 사용하는 것 말고 나만의 선물이라는 느낌을 주는 선물을 받고 싶고, 섹스도 그저 남편의 정욕을 채우는 섹스 말고 아내를 배려하는 섹스를 받고 싶은 게 여자의 마음이다.

그저 자기 성욕을 채우기 위해 후다닥 하고 마는 남편의 배려 없는 섹스에 상처 받았던 케이,

하기 싫은 섹스를 마지못해 해주는 아내의 행동에 또 상처 받은 아널드는 언제부터인가 관계가 전혀 내키지 않게 되고 혼자 자는 것이 편해져 버렸던 것이다.

남편을 위해 모든 걸 했고, 자신의 삶에서 남편이 전부지만 케이는 너무 외롭다.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덜 외로울 것 같다는 말에 그게 어떤 느낌인지 메릴 스트립의 표정으로 절절히 전해져 왔다.

하지만 부부 중 한 명이 힘들면 방법을 찾고 노력해 봐야 한다고 의사는 말한다. 그리고 "케이가 너무 불행합니다."

"난 최선을 다 했는가?"하고 아널드에게 반문하게 한다.

 아널드는 비싼 호텔을 예약하고 호텔 레스토랑을 예약하여 그녀에게 행복을 선사하려고 노력한다.

난 최선을 다 했는가 생각해보라는 의사

그렇게 관계 회복을 위해 멋진 레스토랑에서 멋진 호텔에서 그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가 황홀한 밤을 보내려는데

관계를 가지려는 순간 케이를 얼굴을 보는 순간 남편은 멈추었고, 그런 아널드의 표정을 보고 만 케이는 자신에게 더 이상 매력도 사랑도 못 갖는 아널드의 표정으로 인해 모든 감정이 원점으로 돌아가버린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그들은 여전히 각방을 쓴다.

외롭고 불행함으로 케이는 견딜 수 없는 밤을 보내고 더 이상의 관계 회복이 불가능한 것인가 생각할 무렵 아널드가 아내의 침실에 들어온다.

너무 오랜 닫힌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오랜 단절이 서서히 서로를 배려하며 다시 열매를 맺게 된다.

너무 현실적인 오래된 부부들의 이야기이다. 영화로 미화되지도 확대되지도 않은 그저 생활 속 부부의 연기를 두 사람이 너무 완벽하게 연기하여 몰입하게 된 영화이다. 역시 메릴 스트립과 토미 리 존스이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9. 3. 28. 16:35

감독 마이크 뉴웰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친구의 결혼식에 들러리인 찰스(휴 그랜트)는 늦잠을 자고 정신없이 달려간다. 친구의 결혼식에 지각한 것도 모자라 신랑 신부의 반지까지 못 챙겨 온다.

찰스는 그 결혼식에서 벼락 치듯 운명 같은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은 예고 없이 그의 시선을 흔들었고 캐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다음 날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캐리(앤디 맥도웰)는 찰스에게 그렇게 번쩍 하고 사라졌다.

여자들과 사귀면서도 결혼을 전제로 할 만큼 진정한 사랑을 못 만난 찰스는 이번엔 리디와 버나드의 결혼식에 또 지각하며 들어선다.

결혼식장에서 두 번째 캐리를 만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캐리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에 급절 망한다.

그런 그녀와 또 하룻밤을 보낸 후 잡지도 못하고 헤어진다.

 

그리고 3번째 캐리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게 된다.

캐리의 부탁으로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같이 봐주고, 그녀에게 어정쩡한 고백을 하고 돌아선다.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다.

캐리의 결혼식날 호탕하고 유쾌한 친구 가레스가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곧이어 장례식이 거행된다.

장례식에서 개러스의 연인인 매튜(존 한나)가 조사를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이 너무 가슴에 와 담긴다. 그는 자신의 짧은 문장을 대신해 W.H.Auden의 시로 자신의 감정을 대신한다.

 

W.H.Auden의 시 中 일부

그는 나의 동서남북이었고

나의 주일, 나의 휴일이었다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맘, 나의 노래였다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던 내가 틀렸다

이젠 별들을 원치 않는다

다 꺼버려

달을 없애고 해도 치워라

바다의 물을 빼고 숲을 베어버려라

이제는 모든 것이 소용없어졌으니까

 

10개월이 지난 후 그저 삶의 형식처럼 자신도 형식에 묶여 들러리가 아닌 자신의 결혼식을 한다.

찰스의 결혼식에 캐리가 왔다. 그런데 그녀가 이혼을 하고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찰스는 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갈등한다.

마음이 복잡한 상태에서 결혼식이 거행되고 주례사 혼인서약이 행해진다. 이 결혼에 의의 있는 사람 손들라는 주례사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찰스의 말 못 하는 동생이 손을 들어 형에게 수화로 이렇게 말한다.

"이건 형 일생이 걸린 문제야. 형은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찰스는 캐리라는 여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혼자이다. 그런데 자신은 지금 결혼식에서 혼인서약을 해야 한다. '네'라고 말하면  진짜 부부가 되어 캐리를 놓칠 것이다. 혼인서약에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대답한다.

신부의 강력한 펀치로 이 결혼식은 무산이 되고 만다.

신부 될 사람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그는 캐리와의 사랑을 선택하게 된다.

진실한 사랑을 기대하는 건 가망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찰스지만 그렇게 망설이다 결혼식 날 벼락 치는 진실한 사랑을 맞이한다.

누군가는 그저 단지 상냥하고 자기 모습에 질색하지 않으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벼락 치는 인연을 만난다.

사랑은 그렇게 잔잔히 일어나 자신의 마음을 모르게 하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한다거나 아무 기대 없이 천둥번개처럼 내리치는 인연을 안겨 주기도 한다.

찰스는 자신이 결혼과는 인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한 사람에 대한 완전하고 절대적인 사랑은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이라고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다고 캐리에게 고백한다.

"나와 결혼 안 하고도 평생 같이 살아줄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물론 캐리의 답도 "Yes"이다.

인생은 형식보다 어떻게 살아내는가가 중요하고,결혼이란 굴레보다는 진정한 사랑이 더 중요한 것이다.

사랑은 어떤 그릇에 담기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맛을 내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결혼으로 구속되기보다 사랑으로 완벽한 사랑을 꿈꾸는 한쌍을 위하여.....

 

완벽한 한 쌍, 완벽한 사랑,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기 힘들다고 본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다시 점검하게 된다.

나는 매튜가 동성 연인이었던 개러스의 장례식에서 그가 추도사로 낭독한 시가 너무 좋았다.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것도 W.H.Auden의 시 때문이다.

어쩌면 네 번의 결혼식보다 한 번의 장례식이 더 많은 걸 표현해 준 것 같다. 사랑과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이 영화의 OST도 유명한데 영국의 락밴드 Wet Wet Wet이 부른 'Love is all around'입니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28. 16:19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죽기전에 봐야할 영화 포레스트 검프

아이큐 75의 낮은 지능 포레스트 검프, 아이들은 포레스트 검프를 바보라고 괴롭힌다.

유일하게 자신의 곁을 내 준 제니(로빈 라이트)는 포레스트 검프의 정신적인 에너지가 된다. 괴롭히는 아이들이 자전거로 쫒아올 때 제니는 포레스트 검프(톰 행크스)에게 달리라고 한다.

제니의 그 말에 포레스트는 달린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자전거가 쫒아올 수 없는 속도로, 그렇게 달리다 보니 자신이 잘하는 것이 달리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달리기로 미식축구 선수로 발탁되어 대학도 간다.

"난 가고 싶은 곳에 가기 위해 뛰었는데 그게 삶의 기회가 될 줄은 몰랐어요."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기회가 되고, 그 기회는 선택이 되고, 선택은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져 인생이 만들어진다.

엄마(샐리 필드)는 포레스트 검프를 남들과 다르지 않게 키웠다.

그래서 일반 학교에 보내려 했고, 편견을 가진 교장선생님에게 "겨우 아이큐 5점이 모자라는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그 느낌은 그저 한 문제를 틀린 것뿐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포레스트 검프 역시 "바보는 단지 지능이 낮을 뿐이랬어요"

엄마는 포레스트 검프에게 항상 '넌 남과 다르지 않아'라는 것으로 검프를 긍정적인 격려로 이끌어 주었고, 긍정적인 검프의 마인드는 그의 무한한 잠재력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불편했던 다리가 삶을 바꾸고, 헌신적이고 강한 어머니의 사랑과 따뜻하고 순수했던 첫사랑 제니로 인해 그를 긍정적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는 베트남전에 참여했고, 거기서 부바를 만난다. 세상에서 자신을 아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사람은 자신을 격려하고 위해주는 이로 인해 방향을 잡아가기도 한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부바(미켈티 윌리암슨)를 좋아했고 서로 의지했다.

적군에게 공격을 받을 때 그는 달리기로 도망쳤지만 미처 도망치지 못한 부바를 구하기 위해 적진으로 들어간다.

부바를 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두려움 없이 달려든다. 그리고 많은 부상자들을 들고 나른다. 그리고 부바도 구해냈지만 죽었다.

그와의 약속을 위해 새우잡이 배를 사 새우를 잡아 부자도 된다.

엄마가 병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열기 전까지는 뭘 집을 지 알 수 없어. 난 네가 운명을 만들어 나가리라 믿는다. 신께서 네게 주신 걸로 최선을 다해 살거라."

"제 운명이 뭐예요? 엄마"

"그건 너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것이란다."

엄마는 병으로 포레스트를 떠났고, 어느 날 제니가 찾아온다.

제니는 어릴 적 아버지의 학대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 가수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지만 마약으로 힘든 삶을 살다 지쳐서 돌아왔다. 제니를 항상 사랑하지만 제니는 항상 다른 남자와 함께 하며 힘들어한다.

포레스트가 결혼하자고 하지만 제니는 포레스트 검프에게 답하지 않는다.

"난 똑똑하진 않지만 사랑이 뭔지는 알아."라고 말한 포레스트 검프, 제니는 밤에 검프의 침대로 들어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그를 떠났다.

제니가 떠나고 공허하고 뭔가 알 수 없는 슬픈 감정으로 포레스트는 무작정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그렇게 3년을 넘게 달리고 달렸다.

포레스트는 목적 없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또 달려서 미국 횡단까지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언론에 알려지고 포레스트를 따라 사람들도 하나둘씩 달리기 시작한다.

"엄마가 과거는 뒤에 남겨둬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래서 달린 것 같아요."

항상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렸던 포레스트 검프, 그런 무한 긍정이, 꾸밈없는 사랑이, 그런 선택들이 결국 기회로 이어지고 그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게 된다.

그러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맘에 집으로 돌아왔고, 제니의 편지를 받고 제니를 찾아간다.

제니의 하룻밤으로 포레스트 검프와 제니 사이의 아이가 생겼고, 검프는 자신의 아이가 똑똑하냐고 묻는데 마음이 저렸다. 지능이 낮아도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은 것이었다.

제니는 곧 죽을 것이라고 한다. 둘은 결혼을 하고 제니는 세상을 떠났다. 엄마도 제니도 그의 곁을 떠났지만 그는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긍정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제니의 묘지 앞에서 포레스트 검프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어쩌면 엄마가 검프에게 스스로 알아내라는 운명인 것 같다.

"우리가 각자 운명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우연한 바람 같은 것인지 난 둘 다 맞다고 생각해. 내 생각엔 둘 다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아."

지능이 5점이 낮은 포레스트 검프가 신이 주신 걸로 엄마의 말처럼 최선을 다해 살았더니 기회와 사랑과 행복은 저절로 다가온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보자. 긍정적으로

난 남들이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의 역사적인 사건 따윈 이 영화에서 논하기 싫다. 그저 포레스트 검프에게만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27. 18:08

감독 그렉 맥린

영화 정글

요시 긴스버그(다니엘 래드클리프)는 군 복무를 마치고 모험을 해보고 싶어 남미의 볼리비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요시는 평범한 삶에서 일탈하여 탐험이나 모험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 하는 모험가 기질이 있는 사람이다.

우연히 남미 여행 중 만난 스위스 교사인 마커스(조엘 잭슨)와 호감을 느껴 친구가 된다.

그리고 마커스의 절친 케빈(알렉스 러셀)을 만나게 된다. 케빈은 남아메리카를 돌며 사진을 찍고 다니는 사진작가였다.

같이 여행을 하던 중 한 마을에서 금을 채취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칼(토마스 크레취만)을 만나게 된다.

그는 요시에게 정글 속 발견되지 않은 부족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고 정글 아마존을 가자고 제안한다.

요시에 아마존 정글에 가자고 제안하는 칼

자신의 머릿속에 정글 지도가 있다는 칼의 제안은 요시의 모험심에 대한 욕구를 자극시켰지만 마커스와 케빈은 처음 만난 칼의 제안에 거부의사를 보인다. 

아마존이 어떤 곳인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글이다. 모험심만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곳이다. 모험심이 강한 요시는 마커스와 케빈을 설득하기로 한다. 사진이 욕심이 생긴 케빈은 정글탐험에 동의하고, 마지못해 응한 마커스와 함께 칼의 가이드로 정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미를 여행하던 중에 만난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아마존 정글탐험이 시작된다.

 

뗏목을 이용해 정글로 이동하는 네 사람

처음에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환경에 신기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이 생긴다.

첫 번째 마커스의 발에 습진이 생겨 일정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걷지 못하는 마커스로 인해 서서히 불만이 생기고 어쩔 수 없이 뗏목을 만들어 강으로 이동하게 된다.

하지만 목숨을 잃을 뻔한 급류로 인해 칼이 더 이상 강으로 가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강을 거부한 칼과 발이 아픈 마커스는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요시와 케빈은 강을 타고 가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두 팀으로 나누어진다.

강으로 가던 케빈과 요시는 급류에 만나 위험한 상황에 부딪히고 결국 뗏목이 부서지면서 요시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그렇게 혼자 정글에 남게 된 요시는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정말 왜 이런 고생을 자처하면서까지 모험을 즐기는 건지..

급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요시와 케빈

한편 급류에 떠내려간 케빈은 원주민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요시를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모두가 밀림에서 열흘이 지나면 죽었을 거라고 포기하라고 한다.

포기할 수 없었던 케빈은 정글을 탐색하며 많은 날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너무 처참하게 말라버린 요시를 발견하게 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케빈으로 인해 실종 3주 만에 극적으로 요시와 재회한 것이다.

한 달가량을 정글 속에서 목숨을 연명해왔던 요시는 너무 가엾은 모습으로 겨우 숨만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겨우 마을로 마을로 돌아온 케빈과 요시는 마커스와 칼을 찾으려 하지만 그들의 흔적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그 베일에 가려진 칼의 존재는 수배 중으로 도망 다니는 자였다는 걸 알게 된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정글에서 살아남은 요시의 지독한 생존본능과 친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기 위해 노력한 케빈의 의지는 대단했다.

이둘로 인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실화라는 점과 실존인물의 경험을 그대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한 달 동안 정글에서 겪은 요시 긴스버그의 이야기다.

요시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정글 탐험과 생존기를 적어 책으로 냈고, 이 책을 바탕으로 그렉 맥린 감독에 의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9. 3. 25. 22:45

행복 목욕탕


감독 나카노 료타

 

잔잔하면서 강하다. 따뜻하면서 슬프다. 기대이상으로 감동적이다. 
이 영화를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호출을 받고 학교로 간 엄마는 딸아이의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딸 아즈미(스기사키 하나)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  
이유없이 당하고도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있는 아즈미의 고통 앞에서 엄마 후타바(미야자와 리에)는 그동안 딸아이가 '머리아프다, 배 아프다' 말한 것이 투정이 아닌 왕따로 인한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두려움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저 힘든 시간을 견뎠을 아즈미에게 엄마는 감정을 안으로 감추고 유니폼으로 갈아 입히고 학교를 빠져 나온다.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과 모욕으로 가슴이 멍 들었을 딸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 어떤 위로의 말도 어떤 동요도 하지 않고 자전거에 태운다.
 
아즈미는 체육시간에 교복을 잃어 버렸다.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아즈미를 향해 엄마는 학교에 가라고 떠민다. 
"엄마 나는 맞설 용기가 없어. 너무 하찮은 인간이라, 엄마는 절대 몰라 내 마음!"
"도망치면 안돼! 맞서야지. 네 힘으로 이겨내야 해."
아즈미가 용기내어 맞서주기를 바란다. 물러서지 않고 언젠가는 맞서서 그 이유없는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  자신도 없는 세상에서 강하게 스스로 이 난관을 버티고 이겨내어 세상에  나갈 수 있게 아즈미가 선택해야 한다. 
계속 이유도 없는 희생양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님 강하게 부딪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용기내어 이 말도 안되는 장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선생님과 엄마는 지켜줄 수 없다. 스스로 성장해가고 이겨내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당당해지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고, 맞서지 않으면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아즈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아즈미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맞섰다. 한번이 어렵지 막상 용기를 내고 나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찾은 교복을 입고 엄마 앞에 당당히 선다.
 
엄마 후타바는 말기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암선고를 받는다. 
남편 가즈히로(오다기리 죠)는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집나간지 1년이다. 남편을 찾아 헤매느라 목욕탕은 문 닫은지 오래 되었고, 지금은 남아있는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 
자신없는 삶을 살아 갈 딸을 위해 준비를 해야한다.
 
사립탐정을 통해 남편이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내 찾아간다.  어떤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 파칭코에 간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던 사람이다.
철없는 남편이 좋아서 찾은 것은 아닌데 사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다.
남편은 여자아이 아유코(이토 아오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고작 집나가서 산다는 것이.남편은  항상 방관자처럼 무책임했다.
"나 이제 얼마 살지 못해 그러니까 돌아와" 그렇게 네 가족이 되었다. 사라졌던 아빠와 낯선 여자꼬마 동생 아유코까지 모여 살게 된다.
남편이 집 나가는 바람에 열지 못했던 목욕탕을 열고, 가족 모두가 역할을 분담하여 목욕탕을 청소하고 카운터를 지키고 각자 제 몫을 해 나간다.

 "이제 목욕탕을 열거니까 밥 값을 해야 해. 다같이 열심히 일하는 거다."

가족의 중심에 그녀가 있다.

 
후타바의 병세는 점점 깊어지고 아즈미와 아유코를 데리고  잠시 여행을 가기로 한다. 하지만 그 여행은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다. 매년 4월 25일이면 아즈미네 집에 커다란 게 한상자가 배달되어 온다.
엄마는 아즈미에게 키다리 게를 보내 준 먼 친척에게 정성스럽게 답장을 쓰라고 했었다.

여행 중에 엄마는

어느 게식당에 들어가 키다리게를 주문하고 ,오랜 세월 감추어둔 비밀 하나를 꺼내 놓는다. 그건 아즈미가 자신이 낳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즈미 아까 만났던 그녀가 바로 네 엄마야.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너는 강해져야해. 그리고 네엄마를 받아들여야 해."
 
아즈미의 친엄마는 청각장애인이었고 키다리게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청각 장애인인 친엄마가 어떻게 수화를 할 줄 아냐는 질문에 아즈미는 수화로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언젠간 반드시 필요한 날이 올 테니 배워두라고 했어요."

이유도 모른 채 수화를 배웠던 아즈미, 언젠가 꼭 필요할 때가 이 날이었던 것이다.
청각장애자였던 엄마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가 아일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그래서 먼 친척인 것처럼 매년 키다리게를 보내온 것은 친엄마였던 것이다.
 
이러고 보니 저 남편 가즈히로가  더 형편없어 보인다. 결국 아즈미는 후타바의 친딸도 아닌데, 아즈미와 후타바를 버리고 누구의 딸인지도 모를 여자애를 키우고 있었던 것  아닌가?
무능하다 못해 무책임한 남편을 대신해 억척스럽게 산 후타바에게 연민의 정이 눈물처럼 솟는다.

최선을 다해 산 것도 죄이던가?  기다리는 건 죽음밖에 없는 그녀가 너무 안쓰러워 미치겠다.
닥쳐오는 죽음 앞에서 지금 그녀는 철없는 남편으로 인해 아즈미를 키우느라 억척스럽게 산 세월을 원망하기도 바쁠텐데,
청각장애인 엄마를 위해 딸에게 수화를 배우게 하고, 딸이 그리웠을 청각장애인 엄마에게 딸을 보여주고,아즈미에게 엄마를 만나게 해주고,무능한 남편과 그 남편이 데리고 온 아유코까지 원없이 끌어 안고 있다.

후타바는 기준 이상의 몫을 해내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다. 

후타바가 가족에게 보여준 만큼 두 아이와 남편도 그녀에게 웃음을 주려 노력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니 눈물을 참아내려 한다. 
어떤 사정이었건 아즈미와 후야코의 친모는 자신을 버렸다. 그런 자신들을 후타바는 누구보다 뜨겁게 끌어 안아준 유일한 엄마였다. 삶의 용기를 내어주고 따듯한 품을 내어주고 강한 정신력의 유전자를 주었다.

그런 후타바에게도 아픈 비밀이 있다. 후타바 역시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였다.  자신을 버린 엄마이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한번 안겨 보고 싶었다. 그래서 탐정의 도움으로 엄마를 찾았다. 하지만 엄마는 삶과 죽음을 통틀어 가혹하고 잔인했다. 자신을 거부했다. 딸이 없노라고 거부했다. 

엄마가 되어 자식에게 한 없이 주면서 자신을 낳아준 엄마도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안아주고 싶지 않을까,  그게 엄마이지 않을까 찾아나선 그녀의 발걸음이 참 아프다.

 

한 번쯤 강인한 엄마에서 물러나 한없이 안기고 싶은 연약한 자식이고픈 후타바의 바램은 너무나 아프게 무너진다. 
원망도 없이 다 내려놓고 그저 그리움 하나로 안아보고 싶었을 뿐이었을텐데, 진정한 가족이 된다는 건 꼭 내가 낳은 피붙이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에게 엄마의 부정은 자신의 죽음보다 더 슬프고 화났다. 
처음으로 그녀가 분노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가족들 속에서 웃음짓는 엄마를 향해서 말이다.
 
"조금 더 살겠다고 삶의 의미를 잃고 싶지는 않아"
엄마의 강인함과 포용력으로 이 붕괴된 가족을  행복목욕탕으로 집결시키고 그녀는 떠난다.
가족들은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 힘을 합쳐 가업인 목욕탕을 이어간다.

가족이라는 공간을 쥐어주고 간 후타바,

무능하고 철없는 남편이  지탱하게 가족의 각자 자신의 밥값을 하게 몫을 놓고 간 후타바,

청각장애인 엄마까지 자식을 못 보고 사는 슬픔을 더는 갖지 않게 그 모든 것을 해주고 그녀는 떠났다.

행복목욕탕은 후타바의 품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25. 14:36

파이트 클럽


감독 데이비드 핀처

 

영화 파이트 클럽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허구를 만들어낸다. 
자동차 리콜 심사관 잭은 비싼 가구로 집안을 가득 채워도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무기력하고 공허한 삶으로 인해  잭은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병원에을 찾아가지만 "불면증으로 안 죽어요"라고 의사가 말한다.
세상에는 더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불면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사의 권유로 잭은 아픈 환자 행세를 하며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모임에 나가 위로를 받고 잠도 자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신과 똑같이 환자행세하며 모임에 나오는  여자 말라를 만나면서 다시 공허함과 불면증과  대면하고 만다.
 
어느 날, 출장가던 비행기 안에서 남자답고 자유분방한 테일러 더든을 만난다. 자신이 가진 못한 매력이 있는 테일러를 내심 부러워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신의 집이 화재로 다 타 들어가는 광경 앞에 망연자실한다. 그동안 사들인 비싼 가구들마저 다 내려앉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는 비행기에서 만난 테일러 더든에게 연락하고 그와 맥주를 한잔한다.
그런데 갑자기 한대만 때려보라는 타일러  

 "싸워봐야 너 자신을 알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주먹질로 묘한 카타르시스와 해방감을 느낀 잭은 무기력한 일상속에서 벗어난다.  
테일러 더든과의 만남으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삶을 살기고 결심하고 창고에 '파이트 클럽'을 만들어 스포츠처럼 폭력을 통해  억눌린 감정들을 해소해 나간다. 
어느 새 파이트 클럽은 모여드는 회원들로 점점 커져간다.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파이트 클럽이 변질되어가고, 잭과 테일러와의 갈등도 고조된다.
 
잭은 테일러의 집에서 환자모임에서 만난  말라를 마주한다. 그리고 말라와 테일러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난다.
다음날 아침, 타일러와 관계를 가진 그녈 역겨워한다.
 
 
주먹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만나게 되는 남자들의 폭력에는 관심이 없다. 
스포를 하기 싫어 일단 여기까지 하고,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의  매혹적인 연기때문이다.
잭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같다.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살기 위해 자신안의 본능에 충실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과 같다. 
그런 반면 테일러는 자유분방하고 자기안의 본능에 충실하며 감정을 절제하지도 억압하지도 않고 표출하고 싶어하는 우리안의 자아다. 
잭에게 타일러는 자신안에 감추어두고 잠자고 있는 본능을 일깨워주는 존재인 것이다.
잭에게 있어 타일러는 삶의  동경인 것이다. 
 
테일러는 편의점 직원에게 총을 겨누며  "넌 뭐가 되고 싶었어?" 라고 묻는다.
"수의사요."
"6주안에 공부 시작해. 안하면 넌 죽어."

그리고 그는 말한다. "내일은 그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 될 거야."

자신이 꿈꾸는 걸 하고 산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게 없다는 것이다. 

 

가장 밑바닥에 네가 하고 싶은, 너를 갈증나게 하는 것을 끄집어내는 장면이다. 현실적인 삶에 밀려 저 가슴속 서랍안에 가두어버린 꿈을 끄집어내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현실에 적응한다는 합리화로 꿈을 참아내는 삶을 선택하며 간다.
'그냥 하고싶은대로 하고 살아.'  '그게 말처럼 쉽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깔려있다. 꿈은 수의사인데 편의점에서 생존을 위해 다 접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짜피 다 죽는다. 분명한 것은 다 죽는다는 사실이다.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처럼 살고 있다.테일러는  한번 뿐인 삶을 살라고 편의점 직원에게 말하는 것이다. 본능에 맡기라고
죽음의 순간에 자신이 얼마나 아둥바둥 살았는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얼마나 많이 뒤로 제껴 버렸는지를 깨우쳐준것이다. 
 
"지금 죽는다 치고 네 삶을 한번 평가해 봐"
"돈이 다가 아냐, 직업도 다가 아냐, 무슨 차를 타는지 지갑이 얼마나 두둑한지 그딴건 상관없어. 우린 움직이는 쓰레기야."
우린 필요도 없는 고급차나 비싼 옷을 사겠다고 개처럼 일하고 있는 것이다.  목적을 상실하고 고아처럼 여기저기 현실을 떠돌고 있다. 
 
TV를 통해 우린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고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환상임을 깨달았을 때 우린 분노하거나 좌절할 수밖에 없다. 

잭 역시 그런 것이다. 비싼 가구로 집안을 가득 채워도 공허하고 무기력해지는 삶뿐이다. 
물질적 가치로 정신적 가치를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제된 갈증이 폭력을 통해 바깥세상으로 표출되자 묘하고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느끼려면 모든 걸 다 잃어봐야 해"
테일러의 이 대사는 곧 잭의 행동을 움직이게 한 것임을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안다.
 
"우린 목적을 상실한 고아다. 2차대전도 공황도 안 격었지만 대신 정신적 공황에 고통받고 있다."
몇년전부터 우리는 잭이 의사를 찾아가지만 그 멍청한 의사는 "불면증으로 안죽어요"라고 말한다. 
불면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공황장애라는 말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모르고 그저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만을 강조하고 그를 환자들모임에 가 '네가 얼마나 배부른 소리하는지 확인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 내 겉모습만 보고 날 평가하려 할 때 '보이는 게 다가 아냐. 내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아는 척이야'라고 소리지르고 싶다.
우린 안은 항상 끓어 오른다. 하지만 현실은 자꾸 차겁게 식히라고 한다. 
 
테일러는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망가진다. 완벽을 찾지 마라. 그건 다 유치한 허영심이야"
세상에 내어놓지 못했던 본능과  세상에 내어 놓은 자아가 서로 만났다. 
현대인의 현실속에서 공허함으로 불면증으로 고통받는 잭과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는 자유분방한 테일러의 만남으로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삶을 평가해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잭은 '난 눈을 떴다.'자신 안의 본능과 만난다.

<파이트 클럽>은 폭력 뒤에 숨은 철학을 읽어내야 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현실과 타협하지 말라는 경고를 날리기 위해  폭력은 그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25. 01:52
겟 아웃

감독 조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Get Out (당장 나가주세요)

 
인종차별적인 소재를 담고 있다는 정보만으로 영화를 접했다. 
흑인 남자  크리스 워싱턴(다니엘 칼루야)이 백인 여자 친구 로즈 아미티지(앨리슨 윌리암스)의 집에 초대되어 가게 된다.
뭔가 잔잔한 듯 하면서 뭔가 이상하고 음산한 느낌이 난다. 그러면서 계속 의심하면서 스토리에 끌려 갔다. 
복선들을 추적한다. 나만의 느낌, 나만의 해석으로  

 

1. 여자 친구의 집으로 초대되어 로즈의 집으로 가는 길, 운전을 하던 로즈가 사슴을 치게 된다.

길에 친 사슴으로 크리스의 무의식 아래 길가에서 죽어가던 엄마에 대한 죄의식이 있음을 암시해준다.

 

2. 옆자리에 앉은 크리스에게 신분증을 제시하라는 경찰에게 로즈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한다고 완강히 거부한다.

크리스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더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크리스의 신분 노출을 꺼린 로즈의 행동이었다.

완전범죄를 위한 방어 

 

3. 신경외과 의사인 아버지 딘 아미타지(브래드리 휘트포드)는 크리스에게 집을 구경시켜 주게 되는데, 육상선수였던 로즈의 할아버지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제시 오웬스에게 흑인 선수에게 져서 좌절했다고 말한다.

리고 "거의 극복하셨어."라며 마치 살아있는 분처럼  표현한다. 살아 계신다.

- 여기는 지하실이라고 말하면서 "검은곰팡이가 퍼져서 "라고 말하고 통과한다. 지하실은 흑인들을 납치해 가두기 위한 곳이라고 해석된다.

- 마당으로 나가자 "여긴 우리집의 백미 운동장이야"이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경매를 하고 파티에 온 손님들이 물건의 상태를 확인하고 탐색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 "여기서 가장 가까운 집이 호수 건너편에 있다"는 말은 여기가 외딴곳이고, 완벽 범죄의 장소를 뜻한다.

 

 

겟아웃 딘역에 브래드리 휘트포드와 미시역인 캐서린 키너

4. 부엌에서 소개받은 조지나(베티 가브리엘)와 마당에서 소개받은 월터(마르쿠스 헨더슨)는 전부 흑인이다. 

딘은 마치 크리스를 의식해 '백인 가족에 흑인 하인'을 연상하고 인종차별을 의심받을까 봐 조지나와 월터는 부모님 간병인이었다. 그래서 해고하지 못하고 지낸다고 말한다. 조지나와 월터는 부모님 간병인이 아니라 부모님이었다.

5. 로즈의 어머니인 미시(캐서린 키너)는 정신과의 사이며 최면술사이다. 크리스의 부모에 대해 캐묻기 시작한다. 그의 약점을 찾으려는 것이다. 최면을 걸기 위해서 말이다. 11살 때 어머니가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 이야기를 하자 손을 초조하게 가만두지 못하는 그의 행동을 캐치해낸다. 마치 금단현상과 같은 것이다.

- 로즈의 아버지는 미시에게 크리스한테 금연을 할 수 있게 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치료법을 개발했는데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이건 최면을 걸기 위한 수단이고,담배를 끊게 하려는 것이다.

그가 담배를 피는 것에 로즈를 비롯해 가족들이 예민하게 구는 것은 그가 상품가치로서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6. 로즈의 아버지는 1년에 한 번씩 파티를 연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일 파티를 연다고 말한다. 파티는 납치해 온 흑인을 탐색하여 흑인(백인의 입장에서 물건)을 낙찰받기 위한 노예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검은 피부로 옷을 갈아입기 위한 노화된 백인들의 경매가 시작된다는 말로 해석과 함께 로즈의 할아버지 때부터 해온 일임을 알 수 있다.

 7. 크리스의 찻잔에 차를 따르던 조지나가 표정이 변하면서 찻잔이 넘쳐 흘리자 어머니 미시는 조지나에게 들어가서 쉬라고 한다. 침전의 공간에 있는 흑인 여성의 의식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순간 표출된 것이다. 

-2층 창문으로 보이는 조안나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외모를 흐뭇해하는 모습이다. 노화된 로즈의 할머니가 흑인의 몸을 빌려 젊음을 가진 것에 거울 앞에서 흐뭇해하는 모습인 것이다.

8. 로즈의 남동생 제레미(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크리스를 타고난 체격에 유전자도 좋다고 훈련만 하면 완전 짐승처럼 힘이 세지겠다고 말한다. 누나의 남자 친구를 대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남자로서의 힘이 좋은 물건을 탐색하는 사람의 표정이다.

그리고 주짓수는 힘이 아닌 머리로 한다고 백인의 우월성을 보여주려 크리스에게 헤드락을 걸려고 하자 어머니는 정색하며 아들을 말린다. 이는 상품을 훼손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9. 방에 돌아온 로즈는 랩을 하듯이 자기 가족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불편해 가버릴까 봐

"아빠는 흑인들 말투를 따라하지 않나, 엄마는 조지나에게 무례하지 않나, 동생은 헤드락을 걸려고 안 하나" 크리스가 거슬린 것이 없나 로즈 혼자 의식해서 똥줄 타는 모습이다.

낼 파티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연 로즈는 그가 불편할까 봐 "파티 전부 백인이야. 흰둥이 천지"라고 밑밥을 깐다.  

조안나와 월터

10. 밤중에 잠이 깬 크리스는 산책삼아 담배를 피우러 마당으로 나간다. 담배 한 대를 피려는 데 자신을 향해 무섭게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쏜살같이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 흑인 월터였다. 흑인선수에게 진 육상선수였던 로즈의 할아버지이다.

다음날, 마당에서 월터가 "로즈 참 이쁘죠. 목숨 걸고 지킬만한 애죠"라고 말하자 로즈를 사랑해 자신에게 적개심으로 질투한다고 오해하지만 할아버지로서의 무한한 손녀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제는 운동장에서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어젯밤의 일이 꿈이 아닌 걸 알게 된다

 그는 단지 악몽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누군가에 의해 로즈의 옆 자리인 침대에 눕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악몽인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월터의 말로 아마타지 부인의 상담실에서 최면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이젠 담배만 생각하면 토 나올 것 같아."라고 로즈에게 말한다

11. 밤에 산책 후 어머니인 미시가 대화 좀 하고 가라고 의자에 앉히고 찻잔에 스푼을 휘젓기 시작한다. 회중시계를 돌리는 것 같은 최면을 거는 것이다. 물건으로 집중시켜 감정을 최고조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잠재의식인 죄책감을 불러온다. 그건 바로 엄마. "돌아가실 때 어디 있었어요?"라고 묻는다.

12. 크리스는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신고도 안 하고 찾지도 않았다. 3시간이 지났는데 난 그냥 앉아서 TV나 본거다. 차에 치었을 때 엄마는 살아있었다. 추운 새벽에 길가에 쓰러진 때 누군가 찾았다면 살릴 시간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자책한다. 최면이 걸린 크리스는 마비된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몸이 어둠의 구덩이 속으로 추락하고 TV 화면 안에 미샤가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떨어진 곳은 침전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크리스 역 다니엘 칼루야

13 .검정차들이 줄지어 집 안마당으로 들어온다.  생각보다 손님들의 연령대가 많았다. 당연했다. 그리고 하인인 월터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포옹하며 맞이한다. 로즈의 할아버지들처럼 같은 세대를 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월터는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14. 손님들이 크리스에게 거는 말들은 크리스의 운동신경이 어떤지, 근육을 만지며 '나쁘지 않네' , '흑인이 더 잘해'라고 성적인 노골적인 반응과 "몇 백 년은 흰 피부를 선호했지만 이젠 달라졌고 검은 피부가 유행이지"라는 이상한 말들을 쏟아낸다.

자신들이 바꿀 흑인 크리스에 대해 사전 탐색과 아울려 품질을 보고 경매에 들어가려는 목적을 가진 백인들이었다.

노화된 육체를 교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수집인 셈이다. 그가 거실을 통해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자  아래층에서 대화를 나누던 손님들이 일제히 침묵하는 장면으로 소름이 쫙 돈다.

15. 크리스는 백인 손님 중에 흑인 남자 앤드류 로건 킹(키스 스탠필드)을 발견하고 동족을 만나 반갑다고 다가가 인사한다.

하지만 흑인들의 인사법이 아니고, 젊은 친구 치고는 행동이나 옷차림이 나이 든 사람 같았다. 그리고 나사 풀린 사람 같았다. 그리고 엄마 뻘쯤 되는 백인 여자와 결혼했다.

부인이 다가와 친구들이 찾는다고 데리고 가더니 그는  백인 노인들 앞에서 마치 새 옷을 입고 자랑하듯이 몸을 한 바퀴 도는 모습을 보인다. 남편이  흑인의 젊고 건강한 육체를 가진 것을 자랑하는 모습이었다.

 

실종된 로건과 첫대면한 크리스

16. 백인 남성이 "현대사회에서 흑인으로 사는 게 장점이 많은가요, 단점이 많은가요?"라는 질문을 크리스에게 던진다. 너무 황당한 질문이다. 크리스는 흑인 남성 로건에게 "당신은 어떤가요?" 하면서 질문을 그에게 넘긴다.

크리스는 늙은 백인 아내와 서 있는 로건을 휴대폰으로 몰래 사진을 찍는다. 갑자기 찰칵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터지자 로건은 코피가 흘러나오고 자신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어 불안한 표정으로 "여기서 나가, 당장 나가야 해"라고 한다.

신경외과 의사인 아버지 딘은 그를 치료하고 나와 카메라 플래시 때문에 발작을 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는 발작이 아니라 "나한테 달려들 때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어"라고 로즈에게 말한다.

로건은 6개월 전에 로즈의 남동생에 의해 납치되어 실종된 흑인이었다. 자동차 안 좌석에 있던 투구는 처음 흑인의 납치하기 위해 로즈의 남동생이 쓰던 투구였다. 

크리스는 친구에게 전화해 여기서 만난 흑인에 대해 말한다. 그러자 친구는 백인들이 최면을 걸어서 성노예로 삼은 거라고 빨리 나오라고 한다.

17. 허드슨 갤러리의 눈먼 미술상인 짐 허드슨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는 이미 크리스에 대해 알고 있다.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아냐는 질문에  "비서가 작품을 자세히 설명해 주네"라고 말한다. 그는 여기 흑인 경매를 하러 왔고 비서는 여기 로즈의 가족일 것이다.

18. 충전기 코드가 자꾸 빠져있다. 이것은 누군가 그가 다른 사람과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안나가 자신의 코드를 뽑아 는 것이라고 이른다. 조안나가 충전코드에 사과하려고 들어온다. 크리스는 일러바쳐서 미안하다고 하니 "난 누구한테도 해명할 필요가 없어요. 아미티지 가족은 가족처럼 대해줘요."라고 말한다. 조안나는 로즈의 할머니이고 당연히 가족이다.   

"가끔 주위가 다 백인이면 나도 불안해요"라고 크리스가  말하자 소름 돋는 표정으로 바뀌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이내 웃으면서 "아뇨 전혀 아니에요, 난 그런 경험이 없어요. " 라 말한다. 눈물을 보인 건 침전의 공간에 있는 흑인 의식이고, 전혀 아니라고 말한 건 로즈의 할머니인 것이다. 

 

19. 로건의 발작으로 인해 다운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폭죽놀이랑 빙고 놀이를 하자고 제안하고 로즈는 크리스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로즈가 그들이 경매할 수 있게 자리를 피해 준 것이다.

로즈와 크리스가 나가자마자 "시작할까요"하고 소리 없는 경매에 들어간다. 그리고 큰 액자에 크리스의 사진이 걸리고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전부 파티에 초대되어 온 백인 노인들이고 빙고 딱지로 경매 가격을 높이며 경쟁이 이어지고 눈먼 미술상에게 낙찰이 된다.

20. 문이 열린 벽장 안에서 수많은 흑인들과 찍은 로즈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조안나와 찍은 로즈의 사진도 있었다. 흑인 남자 친구는 첨이라고 했던 로즈였다. 그동안 납치되어 수술된 흑인들이다.

크리스는 로즈에게 차키를 달라고 한다. 로즈는 차키를 찾는 척 시간을 끈다. 그리고 내려온 아래층에 가족이 다 크리스만을 주시하고 있다. 로즈는 "차키는 못 주는 거 알지? 하면서 태도가 싹 변하고, 긴 막대를 들고 있는 남동생과 몸싸움을 벌이는 중 엄마가 찻잔을 스푼으로 팅하고 치자 그는 최면에 걸려 몸이 마비된 듯 바닥에 쓰러진다.

옮기라고 하면서 헤드락을 걸어 벌써 상품에 흠집 낸 아들을 뭐라 한다 "다치게 했잖니" 그리고 그는 침전의 공간으로 떨어진다.

검은곰팡이가 퍼져서라고 말한 그 지하실에 갇혀 의자에 손발이 묶인 상태이다.

그리고 TV 화면이 켜지고 화면에 로즈의 할아버지인 로만 아미타지가 나와 신체조건이 탁월해서 선택받았다고 흑인의 탁월한 육체와 백인의 의지가 완벽하게 완성됐다고 우리 가족과 친구들에게 응고 수술법을 개발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부분 이식 수술을 통해 흑인의 육신 안에 갇혀 백인의 통제하에 영원히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흑인의 의식이 아주 사라지지 않아 몸이 하는 행동을 보고 들을 순 있지만 탑승객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 흑인은 관중처럼 살아가게 된다.

로즈는 다음 타깃을 검색하며 하얀 우유에 검은 빨대로 꽂아 마시는 장면, 시리얼을 검은색만 골라먹고 있다. 대학농구 유망주 흑인 선수를 검색하고 있다.

조안나를 차로 치게 된 크리스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으로 조안나를 차에 태우게 되는데 그녀는 "네가 우리 집을 망쳤어"라며 크리스를 공격한다. 로즈의 할머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가발이 벗겨지고 이마에 수술 자국이 드러난다.

나중에 도망가던 크리스를 총으로 위협하는 로즈 뒤로 흑인 월터가 그를 잡으러 뛰어온다. 로즈는 "잡아요. 할아버지"라고 외친다.

모자가 벗겨진 이마에 수술 자국이 있다. 크리스를 죽이려 하는 월터를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자 플래시가 터지고 월터는 일어나 로즈가 들고 있는 총을 "내가 하마"하고 건네받아 로즈를 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지배하는 백인을 쏘아 자결한다.

<겟아웃>은  미국인들이 노화를 겪는 노인들이  흑인의 육체속에서 영원히 젊고 빠르고 강한 몸으로 살아가려는 욕망으로 부분이식을 통해 흑인들을 납치해 소멸되지 않는 삶을 살려고 저지른 짓이다. 
아주 독특한 소재로 인종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몸에서 의식은 자신들이 월등하니 자신들이 지배하고 육체는 강한 흑인의 몸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백인들의 말도 안되는 차별을 다루고 있다.
포스터에서 흑백으로 겟 아웃인게 무엇을 뜻할까.
검은 색 화면에 Get의 의미는백인이 흑인의 몸을 얻다는 것이고, Out은 흑인의 몸에서 백인보고 나가라는 의미인 것 같다.
겟아웃(Get Out)은 흑인의 몸을 빌어 사는 백인을 나가라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로건이 크리스에게 여기서 나가라고 말한 것으로 Get Out로 그에게 위험함을 알린 침전의 공간에서의 로건의 외침이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9. 3. 23. 16:45

어톤먼트


감독 조 라이트

 

 

Atonement가 주는 의미는 속죄다. 
13살때 자신이 한 거짓말로 두 사람의 사랑과 인생이 무너졌다. 철없는 짓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 여파가 너무 컸고, 되돌리기에는 불가능해졌다. 
용서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그럴 수 없음에 평생 죄책감의 무게로 눌려져 왔다. 그리고 속죄의 방편으로 'Atonement'이라는 자전적 소설로 세상에 내 놓게 된다.
소설로 자신이 한 거짓말로 인해 그들이 삶에서 잃어버린 것을 가상으로나마 주려고 했다고 인터뷰하고 있다. 
하지만 난 그 인터뷰가 맘에 들지 않았다. 
13살이었던 문학소녀인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넌)가 이제 77살의 노작가로 벌써 21번째의 소설을 내놓았고,  이 작품이 마지막소설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에게 참 많은 시간이 있었다. 

죽음이 코앞에 닥쳐서야 소설로 선물이라고 내놓고 가기에는 그녀는 끝까지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용서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벼워지기 위해서 말이다. 
그녀는 18살에도 소설을 준비했다. 20번의 소설을 발간하면서 그 많은 세월동안 자신이 용기없다고만 변명하고 싶은 것인가?
인생을 통틀어 기만하고 변명하고 끝까지 소설가로서의 결말을 미화하고 포장하는 것으로만 보였다면 내가 이 영화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인가?

 

제목은 속죄인데, 실명을 거론해서 자신의 잘못을 끌어내는 것으로  그녀는 그들의 잃은 삶을 소설속에 담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희망과 만족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가상의 만남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13살의 그녀도, 77살의 그녀도 변한 건 하나도 없다.

 

1935년 영국 탤리스 가문, 오빠 리안과 세실리아, 그리고 막내 브라이오니가 있다. 
13살이던 브라이오니는 첫 희곡을 쓸 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문학소녀이다.
그녀의 대저택에는 사촌 쌍둥이 형제와 사촌언니 롤라가 집에 묵고 있었고, 리안이 친구 마샬을 데리고 놀러 왔다. 
그리고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가 있다. 
로비(제임스 맥어보이)는 브라이오니의 아버지의 후원으로 캠브리지 대학까지 나온 재원이다. 
여름동안 정원 일을 하며 의사가 되려고 계획중이다. 
분숫가의 로비와 세실리아
어톤먼트 분수가에 앉아있는 세실리아와 로비
브라이오니는 침실 창가에서 분수가에서의 두사람, 언니인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로비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것은 분수 안에 떨어진 물건을 찾기 위해 세실리아가 속옷차림으로 수영해 꺼내오는 장면이다. 
로비는 브라이오니의 언니 세실리아를 사랑한다. 그래서 세실리아에게 편지를 쓰게 되고, 음흉한 생각으로 쓴 편지를 잘못 넣어 브라이오니를 통해 언니에게 전해주라고 부탁받게 된다. 

 

로비를 짝사랑하고 있던 브라이오니는 언니에게 전달하기 전 편지를 읽고 너무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에 충격을 받는다. 
로비가 편지지를 잘못 보낸 걸 알고 세실리아를 찾아가지만 이미 브라이오니가 다 읽고 언니에게 전달된 후였다.
로비와 세실리아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서재에서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장면을 또 브라이오니가 목격하게 된다.

 

몰래 편지를 읽는 브라이오니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전해주라는 편지를 몰래 읽는 브라이오니
 
그날 밤 저택에 머물던 쌍둥이 사촌형제가 쪽지를 써 놓고 가출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들을 찾아 나서고 브라이오니는 어둠 속에서 사촌언니 롤라가 성관계하는 걸 목격하게 되고 브라이오니에게 들킨 남자는 황급히 사라지고 롤라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브라이오니는 롤라에게 다 봤다며 성폭행 당한 것이고, 범인은 로비로 못박는다. 
로비의 음탕한 편지내용을 공유했던 롤라 역시 입장이 곤란해질게 뻔하니 브라이오니의 말에 그저 묵인한다. 

 

브라이오니는  롤라(주노 템플)가 성폭행당했고, 로비가 범인이라고 부모와 경찰에게 말한다. 로비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브라이오니는 알 수 없는 배신감에 로비를 성폭행범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13살의 질투심에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로 로비를 감옥에 보내고 만다.
언니와의 사랑을 나누는 장면과 노골적인 편지는 어린 브라이오니의 비툴어진 질투로 인해  이성을 마비시켰다.  
제임스 맥어보이와 키이라 나이틀리
세실리아와 로비
로비가 감옥생활을 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감옥을 가느냐, 군대를 가느냐 선택권이 주어졌고,로비는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동생의 거짓말로 로비와 헤어진 세실리아는 집에서 나와 간호사로 일하며 로비와 만날 날만을 기다린다.
세실리아는 간호사가 되어 가족과 연락도 끊고 지내고, 로비에게 돌아와 달라고 말한다. 

드디어 세실리아와 로비는 만나게 되고, 바닷가에 있는 하얀 별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전쟁이 끝나면 같이 지내자는 약속과 함께  하루하루를 버티어 낸다.
 
 18살이 된 브라이오니(로몰라 가레이)는 13살에 했던 거짓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철이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죄책감에 괴로워했고, 자신도 언니처럼 전쟁 중에 간호사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언니 세실리아를 찾아 갔다가 로비를 만나게 된다. 
"그때 난 13살이었어."
"사리분별하려면 몇 살을 먹어야 하니? 18살이 되어서야 거짓말을 고백하게 된거야. 길가에 버려져 죽음을 기다리는 18살 먹은 군인들도 있어. 5년전엔 진실 따윈 중요하지 않았잖아.내가 받은 교육에도 불구하고 너와 네 가족 모두에게 ,난 하인이나 마찬가지였어. 널 필두로 모두 합심해서 나를 늑대 소굴에 던져 넣었어"
로비는 그녀의 철없음보다 자신이 그저 하인에 불과한 존재로 모두가 힘 합쳐 늑대소굴로 밀어낸 가족 모두에게 협오스러움을 가졌다.

 

범인은 리온의 친구 마샬이 그런 것이고 롤라랑 결혼까지 했다고 말한다. 롤라는 마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없고 면죄된 것이다. 
"진실만을 적어줘 변명도 미화도 설명도 필요없어.그리고 우리를 내버려둬" 로비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는다. 이제라도 진실만을 모두에게 말하고 자신의 삶이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랬다.
 
21번째 소설 어톤먼트 브라이오니 탤리스 
77살이 되어  혈관성 치매라 곧 죽을 것이고, 마지막 소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진실만을 쓰기로 오래전부터 맘먹었다.변명도 미화도 없이"
그리고 그녀는 1935년 그날 경찰에 잡혀간 그 날이 로비를 본 게 마지막이었다. 
브라이오니가 간호사가 되어 세실리아를 찾아간 것도, 로비를 만나 사과한 것도, 모두  허구라고 말한다. 

 

1940년 이후의 모든 이야기는 그녀의 소설속의 허구라는 것이다. 
"사실 전 용기가 없어서 1940년에 언니를 찾아가지 못했어요.발햄에는 간 적이 없죠.제가 그들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허구에요.사실 일어날 수 없던 일이었어요."
로비는 후송 작전의 마지막 날 1940년 6월 1일에 브레이 듄스에서 패혈증으로 죽었고,언니인 세실리아도 못 만났다.

1940년 10월 15일에 발햄 지하철역 위의 가스와 수도관에 투하된 폭탄 때문에 죽었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어서 찾아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용기가 있더라도 용서를 구할 수 없었다.

세실리아 역시 로비를 만나지 못했다. 1935년 여름 그 거짓말로 로비가 경찰에 잡혀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13살의 브라이오니와 로비
13살 마지막 로비와 브라이오니
그래서 언니와 로비는 그토록 원했고 누릴 권리가 있었던 둘만의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브라이오니로 인해 막혔기 때문이다

브라이오니는 책속에서나마 로비와 세실리아가 잃어버린 삶과 사랑을 주고 싶었다 말한다. 그것이 나약함이나 회피가 아니라고 한다.

 

"제 마지막 친절입니다.저는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한 거에요."
그리고 언니와 로비에게 바닷가 별장에서 행복하게 있는 모습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두 사람에게 소설속에서 그들을 만나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게 선물이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언 맥큐언의 소설 <속죄>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1935년과 1940년 그리고 1999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브라이오니의 거짓말로 시작해 속죄에 대한 고백으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하지만 브라이오니는 그동안 아무 것도 안했다. 
그리고 죽기 전 마지막소설로 그 긴 시간을 아무 것도 안했다. 
물론 로비로서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브라이오니 역시 용서받을 생각으로 소설을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녀로 인해 로비의 이야기는 계속 될 수 없었다. 
인생의 약속 위에 당당하게 서서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부끄럼 없이 살고 싶었던 로비의 삶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본인은 그동안 20번의 소설을 쓸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기회를 앗아버린 사람이 자신의 기회는 다 누리고 가지고 살았다. 

로비가 전쟁에 끌러간 후라도, 언니에게 편지로라도 아니면 18살때 소설을 준비하던 때라도 어떤 형태로든 미화없이 변명없이 사실만 알리면 되는 것이다. 부모에게 아니면 로비의 엄마에게 사실만 말해 주어도 되었다.
자신의 잘못을 말하면 되는 것이다. 롤라의 결혼식으로 부모에게 알려도 되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다 살아놓고 생의 끝에서 반성문 쓰고 가는 것으로 밖에.
'어톤먼트'라는 소설을 쓰면서도 독자들을 원하는 결론을 위해 그 두사람을 만나게 한 작가로서의 이기적인 마음만 느껴졌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9. 3. 21. 20:45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감독 이누도 잇신

 

영화 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할머니는 쓸모 없는 불구의 몸을 가진 녀석이라고 사람들로부터 숨기고 어둠으로 가려 밤에 조제를 데리고 산책한다. 

솔직히 늙은 몸으로 힘에 부쳐 그것도 못마땅하지만 조제(이케와키 치즈루)가 조르니, 밤이 되면 유모차에 태워 덮개를 덮고 타인의 시선을 피해 나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가 끌고 다니는 수상한 유모차에 대해 소문이 나돌게 된다. 

세상과 동떨어진 외톨이!

우리는  할머니의 시선에서 바라봐야 하는 장애가 아니라 조금은 특별하고 다른  존재로 조제를 바라봐야 한다.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와 조제의 강렬했던 첫 만남, 

유모차 안의 조제는

장애로 마음이 갇힌 여자애가 아니었다.  책으로 읽은 그녀의 세상은 어쩌면 대학생인 츠네오보다 더 넓어 보였다. 

호기심, 그러면서 특별한 감정들이 들어오고 , 동정이나 연민이라는 생각이 개입될 수 없을 만큼 순수하고 당당한 조제에게 츠네오는 사랑을 느낀다. 

 
부끄럼으로 손녀의 장애를 가리고만 싶었던 할머니와는 다르게 츠네오는 그녀를  낮에 유모차에 태우고 거리를 신나게 활주하며 다닌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는 츠네오와 처음 맞이하는 환한 세상은 그녀에게도 다른 사람들은 정지된 모습된 체, 오직 풍경과 자연만이 그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 역시 타인의 시선은 들어오지 않는다. 
 
신나게 달리다 넘어진 잔디위에서 그녀에게 보이는 구름은 집에 데려가고 싶을만큼 아름다웠다. 
츠네오의 만남으로 조제는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다.
사랑으로 안아주는 츠네오의 감정들이 그녀의 희망을 내어 놓게 만든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평생 진짜 호랑이를 볼 수 없다고 생각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보고 싶었던 호랑이, 그리고 안기고 싶었던 품, 

츠네오는 조제에게 무서운 호랑이를 같이 보고 무서워서 안기고 싶은 남자였다.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이기를 꿈꾸었던 조제, 그런 조제가 사랑스러운 츠네오. 
다리가 불편하다고 해서 그녀의 마음까지 불편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편견이 불편한 것이다. 할머니처럼.

 

조제, 조개침대안에서
 
츠네오를 좋아하는 카나에는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꿈을 꾸는 대학생이다. 근데 츠네오가 조제에게 빠져있다.

카나에는 조제를 만났다.

"너를 혼자 둘 수 없다고 지켜줄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츠네오가 말하는데 웃기더라. 솔직히 네 무기가 부럽다."

"그게 정말로 부러우면, 너도 니 다리를 자르면 되잖아."

카나에는 조제를 때렸다. 츠네오를 자기보다 못한 장애를 가진 여자에게 뺏긴게 자존심이 상했다.

이게 우리가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일 것이다. 

츠네오는 조제를 장애인이라서 사랑한 게 아니다. 

하지만 카나에는 장애 때문에 불쌍해서 츠네오가 조제를 동정한다고 착각한 것이다. 

어쩌면 이게 싸움이라면 카나에의 패배인 것이다.

 

"내가 그 여자를 때렸어, 참을수가 없었어 장애인 주제에 내 애인을 빼앗다니"

조제가 카나에에게 당당했던 것은 사랑에 대한 당당함도 있지만 카나에의 지질한 생각들이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멀쩡한 육체로 병든 사고방식을 가진 카나에보다 조제가 더 나은 인간 같았다.
장애는 조제가 아니고, 카나에가 가진 편견이 장애이다. 
 
 
눈을 감으면 아주 깜깜하다. 그 곳이 조제가 살던 곳이다. 아주 아주 깊은 바닷속이다. 
물고기는 늘 방 안에 갇혀  다리도 없이 몸을 이리저리 휘저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의 처지와 같은 모습이다. 
"네가 떠나고 나면 난 길잃은 바닷속 조개처럼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돌겠지. 그렇게 된다해도 나쁘진 않아.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뿐이지"

언젠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날이 올 것이다. 아니 사랑하기에 보내주어야 할 날이 올 줄도 모른다.  그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왔다. 

이별후,츠네오의 눈물

 

츠네오는 누굴 책임질만큼의 위치가 아니었다. 사랑은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책임을 요구한다. 책임을 요구받는 순간 무거워진다.  사회초년생으로 츠네오의 삶 자체가 결코 가볍지 않다.

조제를 늘 업고 다녀야 하는 현실, 동생의 "지쳤냐?"는 질문에 츠네오는 부정할 수 없었다. 

츠네오 또한  사회가 주는 기준치를 향해 몸을 휘젓든 다리를 휘젓든 열심히 휘젖어 그 기준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으로 취업하기까지 조제에 별반 다르지 않는 인생의 심해에 있는 것이다. 

 

조제가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게 츠네오가 통로가 되어 주었듯이, 조제 역시 츠네오가 사회인으로 성공하기 위해 현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무게를 안다. 그래서 조제는 츠네오를 자신을 떠나 현실 밖으로 보내주는 것으로 이별을 한다.
사랑했다. 하지만 미래까지 감당하기에는 츠네오는 무거웠다. 

 결국 조제를 떠나고 길을 걷다 츠네오는 밀려오는 감정에 서럽게 운다.

담백한 이별이었다.이별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아니 사실은 하나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 헤어진 여자와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조제를 보지 못할 것이다.'

츠네오가 조제를 배려나 연민으로 사귄 것이라면  장애를 가진 친구를 계속 도와주며 만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다.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여자를 친구로 만나 동정할 수 없었다.
진정 사랑했기에 상처로 남지 않기위해 이별을 선택했다. 현실의 무게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다.

그래서 츠네오가 흘리는 눈물이 아프게 다가온다. 

조제에게 당당하게 밖으로 나가는 법을 알려주고 사랑의 특별함을 가르 쳐준 츠네오로 인해 조제는 밝은 세상으로 나왔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21. 16:50

피아노


감독 제인 캠피온

 

 

이 영화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참어려웠다. 영화를 통해서 머리는 이해되는데 가슴에서는 쳐내는 경우가 있고, 가슴으로 이해되지만 머리속에서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
또 영화의 캐릭터에 몰입하여 누군가를 동정하거나 사랑하거나 응원하게 되거나 경멸하기도 한다. 
어느 방향이든 선과 악으로 나뉘거나 거짓과 진실로 다가와 속삭이기도 하고, 현실과 비현실의 타협점을 찾아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대로 무엇인가를 줄 수도 내놓을 수도 없이 혼란스럽다. 

물론 이 영화를 벌써 3번째 보고 있다. 
처음 이 영화가 개봉 되었을 때 부산 남포동에 자리한 극장에서 봤다. 
난 그때 부산으로 휴가를 갔고 이 영화포스터에 끌려 선택하게 되어 본 영화이다. 

 

수많은 시간이 나와 함께 흘러갔다. 그래도 이 영화는 강인하게 남아 있다. 

스토리적인 것이 아니라 바닷가에 놓인 피아노, 바닷가에서 퍼지는 피아노 선율, 뉴질랜드의 풍경, 그리고 그녀가 피아노 앞에서 하얀 건반을 홀린 듯이 치는 모습과 그녀의 잘룩한 허리와 목선, 말 못 하는 여주인공과 그의 딸 등 그렇게 장면 장면 박힌 기억들이 생생하다. 

감정에 몰입되어 감동을 받았다거나 스토리를 이해한 것도 아니다. 사랑으로 날 물들이지는 못했다. 
 
그 때는 난 그 여자의 사랑에 동요된 건 같지는 않다. 단지 피아노를 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고, 엄마가 성장하지 않고 딸아이의 시간과 같이 멈춰 서 있는 것처럼 느꼈다.
 
이 영화를 두 세번 더 보면서 나름 몰입하려고 해 봤다.
시대적 배경이나 여성감독의 메시지에 관점을 두고 보기도 했지만 역시 보고나면 개운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여주인공 에이다 맥그레스(홀리 헌터)는 
'이상하게도 난 내가 침묵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 피아노 때문이다.'

그녀는 벙어리가 아니다. 말을 안하는 것이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여섯 살 때부터 말하기를 그만두고 침묵을 선택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어만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녀가 말을 안 한다고 해서 답답하지 않았다.

피아노로, 글로, 손가락으로, 그리고 딸 플로라로 자신의 생각과 언어들을 세상에 다 내보내고 있었다. 

20대의 미혼모였던 에이다에게는 아홉살 난 사생아 딸 '플로라'가 있다. 

거의 모든 시간을 피아노와 플로라와 함께 했다. 

 

19세기 말, 여성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은 억압된 것이었다. 남자들의 지배속에 권위적인 아버지와 남편들의 종속적인 존재였다. 
감독역시 이 영화에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 

그녀가 입은 검은색옷과 검은 모자는 왠지 자기 색을 낼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여성으로서 삶의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자가 소리 낸들 전해지기나 하겠냐 말이지, 그래서 에이다를 침묵시키는 것으로 설정해서 감독은 억압된 여성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결혼 역시 에이다의 의사는 하나도 없다.
'나의 아버지는 나를 시집보내려한다. 그래서 나는 딸과 함깨 남편의 나라로 떠나야 한다.'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 넘어간 소유권처럼 편지 한 장으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넘어간 것이다.
남편이 될 사람은 에이다가 말을 못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 또한 그저 순종하기를 바라는 것에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내 말만 알아들음 되지'남성위주의 소통방식이라는 것으로 들린다.

모녀를 데려가기 위해 해변가에 도착한 남편 스튜어트(샘 닐)는 짐을 나를 원주민을 데리고 왔지만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아노를 해변에 두고 간다.

그녀는 피아노를 가져가야 한다고 글을 써서 스튜어트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딸 플로라(안나 파킨)에게 수화로 의사를 전달하지만 무시된다.

원주민 땅을 지나쳐 가는 길은  미개척지로 가는 길로 험난했다. 

에이다는 해변가에 놓인 자신의 피아노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녀에게 피아노가 어떤 의미인지 남편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남편이 피아노를 가지고 가 주었더라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했더라면 달라졌을 것이다. 

결혼식도 없이 달랑 사진 한 장 찍고 그들은 형식적인 부부가 되었지만 에이다는 딸과 꼭 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남편 역시 그녀가 여기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겼다. 
스튜어트가 땅문제로 집을 며칠 떠나게 되자 에이다는 원주민 베인스를 찾아가 피아노가 있는 해변가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안된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딸과 무작정 집 앞에서 기다린다. 
어쩔 수 없이 피아노 있는 해변가에 데려다 주자 에이다는 너무 행복한 미소를 자아내며 피아노를 연주했다.

플로라는 피아노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그 에이다의 모습에 반해 버리고 마는 베인스,
에이다는 딸에게 '사람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들을 가치가 없다'라 말했다. 

에이다에게 피아노는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주는 유일한 소통의 도구였다.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인 셈이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의 그녀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미소짓게 한다. 

 
침묵하게 만드는 현실로부터 유일하게 자신을 채워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피아노의 선율이야말로 자신을 살아가게 만드는 유일한 힘인 것이다.
자신의 내면의 슬픔, 아픔, 외로움, 욕망, 그 모든 내적 자아를 피아노를 통해 내뿜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피아노 선율은 그녀의 감정인 것이다.
 
피아노를 치지 않을 때의 그녀의 표정은 무표정한 모습뿐이다.
유일하게 딸과 침대에서 장난치고 잠들 때 빼고는 사람들과 있을 때의 표정은 완전히 석고상처럼 물기를 다 뺐다.
그녀에게 있어 손은 자신과 동일시되는 존재이다. 그녀의 딸과 소통하는 도구이고, 피아노를 연주해 자신의 내적 자아와 소통하고 교류한다. 

 

남편 스튜어트는 베인스가 피아노와 땅을 교환하자는 말에 피아노 주인인 에이다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넘겨 버린다.

그리고 베인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라고 한다. 분노하며 펄쩍 뛰는 에이다를 향해 버럭 화를 낸다.

희생을 강요한다. 어짜피 에이다도 피아노도 그에게는 재산목록이었는지도 모른다. 거저 얻은 땅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게 그의 실수였다. 한 번쯤은 피아노가 아내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했다. 일방적인 언어말고 쌍방향적인 소통이 가져올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 베인스는 어떨까?

베인스는 해변가에서 피아노 선율에 반한 게 아니다. 피아노치는 그녀의 모습에 반한 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피아노를 원하는 내면을 읽은 것이다. 
그리고 피아노를 가져오고, 그녀가 행복할 수 있게 조율하고, 그리고 피아노 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레슨을 핑계로 피아노와 땅을 교환한 것이다. 
베인스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로 인해 잠도 못자고, 못 먹는 열병 같은 사랑으로 그녀가 마음 안에서 끓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되는 게 사랑일 때가 있다. 참을 수 없는 게 사랑이라 했던가, 그녀가 피아노 치는 모습만 볼 수 있다면

점점 자신을 추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걸 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에이다 역시 베인스가 그녀에게 느끼는 갈증만큼이나 피아노에 대한 갈증이 그러했다. 치맛단을 걷어올리면 피아노 건반을 하나씩 넘기겠다는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다.

피아노에 대한 갈망을 베인스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걸 스튜어트가 모르는 걸 베인스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걸 주겠다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간다. 그리고 그 수위는 더 높아지고 피아노를 빨리 소유하겠다는 그녀의 열망도 더 높아져 그가 원하는 것에 동참한다. 

하지만 먹지도 못할 사과를 눈으로 보고 만지기만 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베인스는 피아노를 그녀에게 넘겨준다. 스튜어트는 피아노를 넘기는 베인스에게 땅값을 지불할 돈이 없다고 피아노를 못 받겠다고 한다. 땅값 필요없으니 그냥 당신 아내에게 그냥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열망했던 피아노가 자신의 집에 놓였는데, 그녀는 피아노를 칠 수가 없다. 그녀는 혼란스럽다.

자신의 의지가 무엇인가에 강하게 끌리고 베인스를 찾아간다. 

베인스는 힘들다고 한다. 맘이 아프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을 원하지 않는 여자를 안는 건 아니라며 자신에게 맘이 있는 게 아니라면 가라고 매몰차게 내몰려한다. 

에이다는 그런 그를 사정없이 때리며 주저 앉고, 그녀 역시 이 알 수 없는 감정이 베인스를 향한 사랑임을 알게 되고, 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스튜어트가 이 장면을 문틈으로 목격하게 된다. 스튜어트는 그녀를 방 안에서 못 나가게 가두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무의식적으로 남편의 몸을 손으로 연주하듯 어루만진다. 하지만 남편이 자신의 몸을 만지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피아노로 내적 자아를 표출하던 그녀가 베인스로 인해 욕망과 사랑에 눈을 뜨게 되고, 감금되어 있는 상태에서 남편의 몸을 무의식적으로 만지며 자신 안에 있는 베인스에 대한 사랑과 갈망을 밖으로 표출하고 있는 장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이미 스튜어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튜어트는 그녀가 자신에게 맘을 열어주기를 기다렸고, 그녀를 믿고 가두었던 창문도 뜯어내고 일하러 간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소중히 여기던 피아노 건반하나를 뜯어내 베인스에게 '내 마음은 당신 꺼'이라는 글을 적어 딸 플로라를 시켜 베인스에게 전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플로라는 그 건반을 베인스가 아닌 스튜어트에게 갖다주고,스튜어트는 믿음을 무참히 깨버린 에이다에게 분노한 나머지 날개를 꺾어버리겠다고 에이다의 손가락을 도끼로 잘라 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플로라에게 시켜 베인스에게 갖다 주라고 한다.
 
열이 펄펄 나던 에이다의 옆을 지키던 스튜어트는 분명 아내를 사랑하기는 한다. 하지만 에이다가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원하는 사랑을 갖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베인스를 찾아간 스튜어트는 에이다가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느냐를 묻는다.

없다고 말하자, 베인스에게 자신은 에이다가 말하는 것을 머리로 들었다고 말한다. 

"내 의지가 두려워요. 베인스와 떠나게 해줘요" 이렇게 말이 아닌 머리로 들렸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그가 에이다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진정 마음으로, 그리고 에이다가 원하는  베인스에게 에이다를 데리고 떠나라고 한다. 

 

베인스는 작은 배에 어떻게든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피아노를 싣고 가려고 한다. 원주민들은 피아노를 버리고 가야 된다고 하지만 베인스는 안된다고 싣고 출발한다. 
에이다는 피아노를 바다에 버리라고 한다. 
처음 이 해변가에 버려진 피아노를 그렇게 가져가기를 열망했던 에이다가 이젠 사랑하는 사람과 이 해변가를 떠나며 피아노를 버리고 가자는 것이다.
피아노는 바다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베인스와 사랑을 하고 입으로 소리내는 법을 익히고 있다. 소통이라는 것은 상대가 들어주었을 때 진정으로 전달되는 것이라는 걸 느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

posted by 해이든 2019. 3. 20. 23:17

조 블랙의 사랑


감독 마틴 브레스트 

영화 조블랙의 사랑

 

이 영화는 아버지인 빌이 딸 수잔에게 삶의 긴 여정속에 사랑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건조하고 의미가 없는 것임을 가르쳐 주는 모습과 인생의 끝에 섰을 때 죽음이 닥쳤을 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내용이라고 본다.
65세의 생일을 앞둔 윌리암 패리쉬(안소니 홉킨스)는 패리쉬 통신 사장으로 성공한 사업가이고, 두 딸을 가진 자상한 아버지로서 화려한 저택에서 살고 있다. 
큰딸 앨리슨(마샤 게이 하든)은 아버지의 성대한 생일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아버지 빌은 둘째 딸 수잔(클레어 포라니)이 황량한 사막처럼 흥분도 설렘도 정열도 없이 자신의 오른팔인 드류(제이크 웨버)와 연인인 게 안타깝다. 달콤하거나 황홀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을 하길 바라며 자신을 열어 두라고 말한다.

 
"사랑은 열정이고 집착이다. 그가 없이는 한시도 견딜 수 없고 정신 못차리는 그런 거 있잖니, 네가 미치도록 사랑할 수 있고, 너를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라."
 
레지던트인 수잔은 커피숍에서 낯선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아쉬움을 남기며 이름조차 묻지 않은 채 헤어진다. 
서로 아쉬움과 미련으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지만 서로 엇갈린 뒷걸음질에 남자는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는다.
 
 한편 빌은  자신의 귀에만 '예(YES)'라는 소리가 귀에 자꾸 들린다. 
알 수 없는 소리의 정체는 빌의 현관문 앞에 서있고, 저녁식사를 뒤로 하고 그와 서재에서 만나게 된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수잔이 커피숍에서 만났던 남자의 몸을 빌어 나타났다. 그는 저승사자였다.
그가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댓가로 인간세상에 머무르고 둘러볼 수 있게  안내자가 되어줄 것을 계약하자고 제안한다.
"내게 이 곳을 보여줘.나의 안내자가 되어 줘 "
삶에 있어 아주 모범적이고, 자상하고, 성실한 인간이었고,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랑에 있어 열정적인 빌을 적임자로 여긴 것이다.
 
 
빌은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것도, 저승사자와의 동거도 달갑지는 않지만 달리 선택권이 없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저승사자의 신분을 노출하면 안된다.
빌은 가족들에게 저승사자라 말할 수 없어 조 블랙(브래드 피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소개한다. 

 

 

집에 돌아온 수잔은  아침에 커피솝에서 만난 남자가 자신의 가족 식탁에 앉아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회사까지 졸졸 자신을 따라 다니는 조로 인해 곤란하지만 그저 가까운 지인이라 소개하며 회사 이사회 회의에 참석한다. 
도대체 조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회사 이사회자리까지 오는지 드류는 불쾌해한다.
조의 존재는 수잔과 자신과의 사이도 갈라 놓았고,수잔은 조를 좋아하게 되었다.

 

빌은 이윤보다  가치에 중점을 두며 본테큐의 제안을 거절하고 회사 합병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오른팔 드류는 큰 사위 퀸스를 이용해 이사회를 조정하여 빌을 해고하고 회사를 인수해 쪼개버릴 음모를 꾸미게 된다. 
드류는 빌의 허락도 없이 이사회를 열어 그를 해고하고 합병도 진행한다. 
드류는 첨부터 내부간첩이었다. 본테큐와 계략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를 인수해 분해할 생각이었던 것인데 조로 인해 물거품이 되자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빌의 재치로 드류의 계획을 폭로되고, 드류는 해고된다. 
 
한편 조를 보기 위해 집에 들어온 수잔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며 뜨거운 사랑을 나누게 된다. 
처음으로 여자와 관계를 가진 조는 이 황홀한 감정에 취해 자신이 저승사자라는 규칙을 어기고 있고,  자신의 딸과 사랑하는 저승사자에게 빌은 화를 낸다.

 

"내 인생에 걸어들어와서 최악의 소식을 전하고, 내 사업과 내 가족을 망치고 내 딸에게 접근하다니"
빌은 수잔에게 조를 멀리하라고 얘기하지만 이미 둘의 사랑은 깊어진 후였다. 
드디어 빌의 65년 생일파티날이자 저승사자와 떠나기로 한 날이 되었다.
조는 사랑에 빠져 떠나기 싫다고 말하고 수잔역시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에 조는 빌에게 당신 딸과 사랑에 빠졌고, 오늘밤 수잔도 데리고 간다고 말한다.  빌은 저승사자에게 말한다.

 "그건 사랑이 아냐. 그 빌린 몸을 사랑하는거지. 사실을 말해보지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라고, 모든 걸 밝히고 강물 흐르게 놔두지."

그랬다. 수잔은 그가 저승사자인 걸 모르기 때문에 따라 가겠다고 한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이 저승사자인 사실을 수잔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조는 수잔이 사랑하는 건 자신이 빌린 몸이란 걸 알고, 빌이 말하는 사랑을 이해하고 수잔에게 "사랑해줘서 고맙다" 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빌은 두 딸과 혼자만의 작별인사를 한다. 
빌은 혼자 남겨질 수잔을 위해 " 내 걱정은 절대 하지 말거라. 난 후회같은 거 없다. 너도 나처럼 느꼈으면 좋겠구나."

 

조는 화려하게 밤하늘에서 터지는 불꽃놀이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빌은 조에게 다가가서 수잔을 위해 해 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조와 있으면서 행복해했지.그건 내가 그 앨 위해 늘 바라던 거였지."
빌은 떠날 준비가 다 되었다고 말한다.
"떠나 보낸다는 게 쉽지 않군. 그게 인생이야. 그 이상 뭐라고 말할 수 있겠나!"

 

빌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가면서 그녀가 반했던 커피숍에서의 남자를 환생시킨다.
 
삶을 정리하면서 가지고 갈 기억들이 많다면 그건 그 사람이 빌처럼 잘 살았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후회같은 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또한 정말 삶을 잘 이끌어 간 것이다. 
'나처럼 느끼고 살거라'보다는 '나처럼은 살지 말라고' 하는 부모가 세상에 더 많을 것이다. 

그 긴 삶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뜨겁게 달콤하게 황홀하게 저물 수 있는 인생, 그 인생이 지금 저 불꽃놀이보다 더 화사했다.

그러기에 뒤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발길을 뗄 수 있는가 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20. 09:59

리즈 위더스푼


 

배우 리즈 위더스푼

 

미국의 배우이자 영화제작자로도 잘 알려진 리즈 위더스푼은 2001년에 <금발이 너무해>로 상업적 성과를 내며 그녀 경력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2005년 <앙코르>에서 준 카터 캐쉬역을 맡아 오스카의 인정을 받게 된다. 

준 카터 캐쉬는 미국의 컨트리 음악가 작곡가였던 쟈니 캐시의 둘째부인이자 가수로 활동한 실존인물이다.
이미 어린 시절 첫사랑과 결혼한 유부남이었던 쟈니는 가수인 준 카터와 투어를 다니다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미 약물중독으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쟈니를 그 자신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실존가수의 노래를 재현하기 위해서  쟈니 캐시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와 호흡을 맞추어 반년동안이나 노래연습을 해 직접 라이브로 노래를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힘들었던 역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연기의 성실성과 사실적인 결혼생활과 인간관계를 진정성있게 표현해 냄으로써  오스카에서 빛날 수 있었다.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골든 글로브상, 미국 배우 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2007년 리즈 위더스푼은 <피플>이 선정하는 가장 아름다운 100인에 선정된 바 있고,  <헐리우드 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가장 호감과 신뢰가 가며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스타'에 미국 헐리우드 여성스타 호감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바 있다.

<워터 포 엘리펀트>는 1930년대 서커스 극을 재해석한 영화로 영화를 위해 서커스 훈련연습을 시작하면서 서커스 단원 말레나 역을 연기한다. 말레나는 변덕스런 남편 크리스포트 왈츠와 결혼하게 되었으나 다른 베테랑 조련사와 삼각관계에 빠진다.

제프니컬스 감독의 성장 영화 <머드>에서 머드의 첫사랑인 주니퍼역을, 직접 제작을 맡은 영화 <나를 찾아줘>로 히트를 치고, 2014년 <와일드>는 제작과 주연을 모두 맡은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영화 와일드중에서 리즈 위더스푼

 

<와일드>에서 셰릴 스트레이드 역으로 열연을 펼친 로드무비영화다. 
4,300km의 광활한 태평양을 따라 이어진 커다란 산맥 줄기를 걷는 여정인데 성공하는 사람이 극히 일부일 정도로 험난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연출과 연기 모두 훌륭했던 내가 접한 로드무비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홀로 떠난 여정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리즈 위더스푼이란 배우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그녀가 출연한 작품을 검색해서 <앙코르>와 <머드>를 보게 되었다.

 

내가 위더스푼에게 반한 것은 <와일드>라는 영화를 통해서이다.
물론 그에게 아카데미가 인정한 여우주연상<앙코르>에서도 좋은 모습이었지만 내게 리즈 위더스푼은 <와일드>이다.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뒤로 하고 엄마와 행복한 인생을 맞이하려는 찰나, 엄마가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인생을 포기하고 좌절하던 셰릴 스트레이드는 스스로의 삶을 파괴해갔다. 그러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공간 .PCT를 걷기로 결심한다.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하고 주연을 맡고 장마크 발레 감독이 맡아 탄생한 영화이다. 첫 감동 로드 무비를 통해 셰릴 스트레이드의 실화를 보다 사실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선사했다. 

한줄기의 희망을 찾아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을 감수하고 수천킬로미터의 PCT 모험속에 감정적인 변화와 육체적인 고통까지 생생하게 담아내어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끌어내기에 충분한 영화였으며 삶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거칠고 험난한 도전으로 자신의 인생을 하나 하나 회복해 나아가는 모습을 임팩트있게 그려내어 깊은 용기와 공감을 선사받았다. 

 

첨으로 영화가 가슴에 담기 버겁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런 감동을 선사해준 리즈 위더스푼의 팬이 되었다.

 

한창 미투운동으로 고발이 이어질 때쯤  16살당시 영화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바 있다. 그럼에도 침묵하게 만든 고용인에게 분노를 느껴 아무것도 못했다고 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을 때 당혹스러웠다. 

 

우리나라보다 더 열린 문화라고 생각한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 자체를 악용하는 쓰레기들이 세계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영화속 말고 영화 속 밖에서도 좀 더 소신있는 발언들을 해주는 영화인들이 존경스러운 이유는 현실속에서 높아진 인기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올바른 사회나 정치에 힘을 실어주기를 바란다. 그것 또한 용기있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외면과 내면이 서로 맞닿기를 원치않고
잡아도 놓아야 하는 물건처럼
기대도 전부가 아닌 일부로 줄여야하는 무게로 끌고 다닌다.
왜 내게 가볍게 오지 않았는가.
왜 내게 빈손으로 오지 않는 것인가,

나의 시선은 항상 반대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20. 09:20

와일드


감독 장 마크 발레

 

영화 와일드

 

우리가 원하는대로 흐르지 않는 게 인생이다. 낯선 곳에서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삶이 침몰하기도 한다.
사니까, 살아 있으니까 견디어야 하는 게 인생이다. 하지만 냉정하고 이성적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감정이 이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끌어내릴 때면, 그저 무너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어둠속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면, 
좌절감에 그저 내려놓고 싶다면, 미치도록 날 향해 망치를 들게 한다면 ......
그런 절망의 무게를 안아본 적이 있는가?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수많은 고통과 동침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떤 희망의 메시지도 들리지 않을 때, 세상이 나에게만 차겁고 냉정하게 굴 때 
감당하기보다 버티기보다 삶을 파괴해 버리고 싶을 때,
어떤 생각도 머리속에 집어넣을 수 없을 때 ,
우는 것도 맘대로 안되고 몸과 마음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 같은 숨막힘이 엄습할 때면 

 

날 파괴하는 일에,
상처주는 일에 자신이 가장 먼저 흉기를 들게 든다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살다가 길을 잃었을 때,
이 영화는 용기를 내밀어 준다.
<와일드>는 나를 완전히 제압시켰다. 
자극이 되었다. 
열렬히 상처받은 20대의 젊은 여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파괴해 버리고 바닥까지 내려가고서야 자신의 길을 다시 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선택하게 된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용기, 아무나 성공할 수 없는 험난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은 인생이 무너지는 상실감이었다.
엄마의 죽음 이후 바닥까지 인생이 떨어진다. 정신적인 굶주림으로 삶이 메말라간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인생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셰릴 스트레이드가  밑바닥까지 내려앉은 자신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생각하고 로드무비를 결심한다. 
수 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홀로 걷겠다는 모험을 하게 된다.

 

 

그녀의 도전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사해 주었다.
극한 상황에서,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에서 슬픔도, 좌절도, 아픔도, 연민도, 웃음도 담으며 도전을 통해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간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도전기

 

실존인물 셰릴 스트레이드의 저서 <와일드>를 바탕으로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과 주연을 맡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제작한 장 마크 발레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 낸다. 

리즈 위더스푼은 절망의 끝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을 감수하며 4,285km의 PCT를 걷은 셰릴 스트레이드의 실화를 보다 사실적이고 실감 나게 그려낼 뿐 아니라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무너진 삶을 회복하기 위한 그녀의 절박한 심정과 감정 변화를 잘 표현했다.

 

이 영화는 고통을 극복하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모험속에서  담아낸 로드무비다.
이런 로드무비는 내게 처음이었다. 그것도 여자 혼자만의 모험이기에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무려 아홉개의 산맥과 사막과 황무지, 인디언 부족의 땅으로 이루어진 그곳에서
그녀는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잃고 무너졌던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일으켜 세우게 된다. 

 

정신적 고통에 비하면  육체적 고통은 참 작은 것일 수도 있다. 배고프면 생존본능만 남으니까
외롭고, 춥고, 굶주리고, 물집이 잡히고, 피곤하고, 야생동물과의 싸움, 험난한 절벽과 좁은 길, 인간마저 어쩔 수 없는 날씨와 기후가 만들어 내는 악천후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험난한 여정을 견디고 버티어 내어 정신적 건강을 회복해 나간다.
여러 위험과 모험으로 산맥을 넘고 도전하면서 성취감과 즐거움, 용기가 쌓인  일련의 과정들이 자신을 성장시켜 나간다.
그 모든 것을 초월한 3개월의 여정으로 그녀는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4,285km PCT를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선 그녀는 다시 태어났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삶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그녀가 선택했던 모험과 용기와 도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19. 22:01

미스 리틀 선샤인


감독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대학 강사로 성공하려고 발버둥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한 남편 리차드(그렉 키니어),

이런 남편을 경멸하는 엄마 쉐릴(토니 콜렛), 헤로인 복용으로 양로원에서 쫓겨 난 할아버지(앨런 아킨),

투 조종사가 될때까지 9개월째 자신의 의사를 노트에 적어 전달하며 묵음 수행하는 아들 드웨인(폴 다노),

게이 애인한테 차인 후에 자살을 시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해 이 집에 얹혀 살게 되는 외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

마지막으로 7살짜리 막내 딸 올리브(아비게일 브레슬린)는 유난히 미인대회에 집착한다.

 
자신의 실패에만, 자신의 꿈에만, 자신의 걱정거리만,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불행으로 상처내느라

각자 자신의 무게만을 감당하기 바쁘다. 다 벽만 만들고 소리내지도 듣지도 않는 세상, 한 공간에 담겨도 고립된 삶과 다르지 않다.

봉고버스에 탄 가족들 표정
고물 봉고차 안의 가족의 모습

그러던 어느날, 올리브에게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리는 어린이 미인대회 '미스 리틀 선샤인'대회 출전 기회를 잡게 된다.

딸아이의 소원을 위해 온 가족이 낡은 고물 봉고차를 타고 1박 2일 동안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이 고물 봉고차는 이 가족을 암시해준다.

멈추고, 망가지고, 문짝도 떨어져 나가고,엉망진창인 고물차이다. 이 가족의 모습처럼  서로 의견이 충돌하고, 자살 시도하고, 마약 하고, 묵언으로 가족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엉망진창인 가족의 모습이다.

올리브의 꿈을 향해 온 가족이 다 한 곳을 보다보니 서로가 다 위로받고 싶고,상처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차가 굴러 가게, 힘을 낼 수 있게 ,아퍼도 일어설 수 있게, 많은 장애물을 견디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위로와 응원해 주어야 하는 가족으로 살아 남아야 한다. 

뒤에서 다같이 밀어야 가는 차, 온 가족의 힘으로, 도움으로 움직이는 차, 가족도 그렇다. 인생도 그렇다.

삶이란 여정속에서 어쩌면 삶은 어른이나 아이나, 늙거나 젊었거나, 책임이 크거나 적거나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픈 것 보다 가족이 더 아픈 것이 나와 상관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 아픔에 너무 거리를 두고 타인처럼 살아온 자신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가족은 내가 타인으로 취급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들이다. 그들과 떨어져서 내 행복을 꿈꿀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 소중함을 망각하고 산  자신들을 알아간 여정이었다고 본다.
 
색맹이라 비행기 조정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드웨인은 차에서 뛰쳐 내린다. 

 "이혼, 파산, 자살, 다들 패배자인 이 가족에  끼고 싶지 않아"

어떻게 달래보라는 아버지 리차드의 말에 엄마는 말한다.

 "뭔 할말이 있어. 그냥 기다려주는 수밖에"   가족은 원래 그렇게 기다려준다. 

그리고 오빠에게 조용히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아무 말없이 위로해 주는 올리브처럼 유일하게 나의 절망과 나의 희망을 안아줄 품이었다.
가족의 크기가 다 담겨 있는 장면 같았다. 
 
패배자집단이라고 거기에 합류하기 싫다고 뛰어 내려도 그저 기다려 주는 것 밖에 할 게 없는 엄마라도 아들은 돌아간다.

진심이 아니었다고, 누구보다 안기고 싶은 가족의 품이라는 걸 안다.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힘들 때 자신을 담을 곳은 가족이 유일하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가족은 수식어가 아니다. 
가족은 목표나 꿈이 아니다. 가족은 존재 자체로 힘이 된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설득시켜야 하고, 강요 당해야 하고, 이해 받으려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곳,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 모습 그대로를 안아 줄 집단이고, 존재함으로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된다.

딸의 공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가족

 

빌어먹을 대회 '미스 리틀 선샤인'
보이는 것에 전부인냥 미쳐 있다. 어린 아이들이 화장을 떡칠하고,억지웃음으로 포장하며, 거기에 부모들은 열광하고, 평가받고, 점수 매기고,다들 미쳐있다. 이건 어른들 미인대회였다. 아이들의 동심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린이다워야 할 나이에  동심이 추락하고 있다.
미인대회를 개최한 사람들도, 점수를 매기는 사람들도, 부모들도 미쳤다. 
어린이 미인대회라는 것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삶을 상업적 용도로 타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대회에 어울리는 아이는 올리브 뿐이었다.
미인대회라는 이름하에 그들이 만든 건 어른들을 위한 스트립쇼와 다르지 않았다. 어린이들을 이용한 퇴폐적인 대회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환상적이야라고 말하는 사회자마저 변태 같았다. 속물덩어리들
"무대에 세우기 싫어"
"둘러보세요. 저런 놈들이 올리브를 평가하게 만들고 싶지 싫어요"
"원하는 대로 놔두자"

올리브 가족은 일제히 모두가 한마디를 던진다. 남이 내 가족을 평가하게 두고 싶지 않다. 

저런 미친 무대에 딸을 세우기 싫은 아빠, 동생을 저런 사람들에게 평가받게 하기 싫은 오빠, 딸이 집착하며 꿈꿨던 대회였기에 딸의 선택에 맡겨 두자는 엄마, 모두 가족으로서 갖을 수 있는 애정이고 보호이고, 선택이다.
올리브 역시 느낀다. 꼴등이라는 걸, 이런 무대에서 1등이 어렵다는 것을,

하지만 올리브는 이 대회를 위해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과 그리움을 담아 할아버지에게 바치기 위해 무대에서 열심히 춘다.

할아버지(알란 아킨)와 올리브가 열심히 준비한 미스 리틀 션샤인 대회의 마지막 무대를 통해 가족 모두가 변화하게 된다.

올리브 눈에도 이 무대가 개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걸까?  '니들에게 그럼 나도 보여줄게' 하면서 스트립쇼를 하는 올리브의 춤은 정말 통쾌했다.
올리브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가족의 마음은 하나로 통일된 사랑이었다.
아버지는 딸을 무대에서 끌어 내려는 사람들을 막아서며 딸과 같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가족들도 다같이 올라가 춤을 추며 난장판으로 바꾸어 놓는다. 어짜피 대회자체가 말도 안되는 난장판이었다.

딸을 응원하던 가족들의 따뜻함은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사랑이다.

가족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무대를 마치고 처벌을 기다리는 장면

다들 부족하면 어때. 좌절하면 어때, 치고 박고 막말을 하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걸 그들은 다 알고 있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가장 강하게 끌어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성장하게 되어 있다. 
이 영화는 우리의 아이가 내가 만들어놓은 덫에 걸리지 않고 살아가게 어른들이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가족은 유일한 존재들이다. 차가운 육신으로 떠나 간 할아버지도 손녀의 마지막 무대에서 살아서 가족들을 뭉치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올리브를 통해서 말이다.
 
외삼촌은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를 이야기하며 색맹으로 좌절했을 조카 드웨인에게 말한다. 
"인생의 막바지에 도달해서 뒤를 돌아보고는 이런 결론을 내렸어. 자신이 가장힘들었을 시기를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 했어.그게 자신을 만들었으니까."

가장 힘든 시기가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낼테니 이겨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 

posted by 해이든 2019. 3. 19. 17:36

셰익스피어 인 러브


독 존 매든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

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2번째 감독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나, 작품상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게 돌아갔다. 71회는 경쟁력이 뛰어난 작품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쟁쟁한 여배우들을 재치고 여우주연상에 기네스 펠트로가 수상하게 되면서 논란이 많았던 영화이다. 
워낙 경쟁후보들이 뛰어났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7개부문을 휩쓴 <세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영화를 두고 논란이 거세질 수 밖에 없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기술적인 부문에서 5개의 상을 거머쥐게 된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상을 나눠 먹는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71회 아카데미는 최장시간 진행 신기록을 세웠고, 아카데미 사상 처음으로 일요일 저녁으로 옮겨 시상하게 되었고,   남우주연상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에게 돌아가고 외국어영화상까지 받으며 외국영화가 이례적으로 각광 받은 해이기도 하다. 
 
 
1593년 엘리자베스 1세시절, 연극문화가 한창 번성하던 시대였다. 그 중심에 윌 셰익스피어가 있었다. 당시 전염병으로 인해 연예관리자들에 의해 두 극장은 공연을 못하고 문을 닫게 되자 극단사업가들과 연출가들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 있는 커튼 극장과 로즈 극장은 배우와 극작가에 대한 쟁탈전이 치열했다.

로즈 극장 연출가인 헨슬로(제프리 러시)는 빚 독촉에 위협을 받고 있고, 윌의 대본만을 목 빠지게 기다린다. 빨리 무대 상연을 해야 빚을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압박감 때문인지 로즈 극장의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윌 셰익스피어(조셉 파인즈)는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커튼 극장에서는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새 작품이 상연될 예정이었다. 영화속의 인물들은 실존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섞여 있다. 크리스토퍼 말로우는 실존인물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해에 태어난 시인이자 극작가였다. 
2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인물이기도 하다. 

로즈극장은 배우를 뽑기 위해 연극 오디션을 열고 윌은 오디션에서 재능을 보이는 켄트라는 소년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트에게 모자를 벗어 보라고 하자 켄트는 줄행랑을 친다. 실은 켄트는 남장을 한 귀족 출신인 부잣집 딸 바이올라(귀네스 팰트로)였다. 

윌은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극작가였다. 그 당시 여자가 무대에 오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시대라 바이올라는 남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자를 벗으면 여자인 게 들통날까 봐 도망친다. 하지만 윌은 도망가는 켄트를 뒤쫓아가고,대저택으로 집안으로 들켄트를 바이올라의 하녀는 자기 조카라고 둘러댄다.

마침 그 날, 무도회가 있고 윌은 연주자들과 안으로 들어가고,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바이올라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녀와 춤을 추게 된다. 남장으로 변장했던 바이올라는 그가 윌이란 걸 안다.
그러나 바이올라에게는 웨섹스(콜린 퍼스)라는 정략결혼 예정자가 있었다. 웨섹스는 자기 여자를 탐내는 윌을 협박하며 이름을 묻자 윌은 '크리스토퍼 말로우'라고 친구의 이름을 사칭한다.
바이올라와 윌의 첫 무도회장면
부모님이 2주간 지방에 가 있게 된 바이올라는 남장을 한 켄트로 '로미오'역에 발탁되어 연극연습을 하게 된다.

바이올라는 사랑하지 않는 웨섹스와  2주 후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순응할 것을 강요받고,

뱃사공에 의해 켄트가 바이올라라는 걸 안게 된 윌은 담을 타고 그녀의 방으로 올라가 키스를 하고 사랑을 한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첫 경험을 한 바이올라는 연극보다 더 좋은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와 연극보다 더 좋은 첫 경험을 통해 바이올라는 사랑의 황홀함을 만끽한 것이다.

윌이 바이올라가 남장을 하기 위해 가슴을 칭칭 감고 있던 붕대를 푸는 장면은 많은 남성들을 설레게 한 명장면으로 꼽는다..

밤에는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낮에는 무대에서 공연연습을 하며 행복한 날을 보낸다.

윌 셰익스피어역의 조셉파인즈

 

 

당시 귀족들은 여왕 엘리자베스 1세(주디 덴치)의 동의를 얻어야 결혼할 수 있었다. 바이올라는 원치 않는 결혼 허락을 받으러 웨섹스 경과 그린위치로 가서 여왕을 만나게 된다.

여왕은 바이올라가 연극을 좋아하는 걸 알고  대화를 하다 그가 연극에 진실한 사랑에 있다고 말하자 여왕은  이렇게 말한다.

"연극은 사랑에 대해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아. 포장하거나 우습게 만들거나 아니면 정욕적으로 만들지. 진실하게 만들 수 없어."

바이올라는 여왕의 말에 반문하며 한 사람은 만들 수 있다고 말해 버린다. 

 "연극이 우리에게 정말로 진실한 사람을 보여줄 수 있을까? "라는 여왕의 말에 바이올라의 사촌으로 분장한 윌은 50파운드를 부르며 내기를 건다.

"내가 내기에 증인이 되고, 그런 연극이 있을때 내가 판단하겠소"

 

윌과 웨섹스경이 50파운드를 걸고 내기를 하고,여왕이 내기의 증인이 된다.
그리고 여왕은 웨섹스에게 다가가 조용히 귓속말을 한다.
"그녀를 가져, 근데 자네는 아주 바보야. 마지막으로 봤을 땐 처녀였지만, 이젠 처녀성을 잃었고 당신은 아냐. 여자만이 알 수 있지"
이에 화가 난 웨섹스경은 '크리스토퍼 말로우'를 죽이게 된다.
윌이 파티에서 바이올라와 춤을 추다 웨섹스 공작에게 위협을 받으며 이름을 묻자 자신의 이름이 아닌 '크리스토퍼 말로우'라고 사칭했고, 그래서 웨스가 오인하고 그를 윌로 착각하고 죽이게 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역 주디 덴치와 웨섹스 경의 콜린 퍼스


바이올라는 여인숙에서 윌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윌에게 너무 실망하여 뛰쳐 나가 버린다.

한편 웨섹스는 그녀에게  그가 죽었다고 전하며 교회에 애도하기 위해 같이 가겠다고 한다. 

윌은 자신이 사칭한 이름때문에 말로우가 죽은 것이라 자책하며 교회에 가고,웨섹스는 자신이 죽인 윌이 보이자 귀신을 본 것처럼 도망간다.
바이올라는 그가 죽은 줄 알고 슬퍼하다 그가 살아 있는 것에 안심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운명적인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 들인다.
그리고 윌이 쓰려던 희극은 비극적인 결말로 바뀌게 된다.
윌과 바이올라의 사랑하던 장면을 목격한 어린 소년는 무대 위에 여자가 있다고 밀고하고, 켄트가 남장한 여자라는 걸 알게 되어 로즈극단은 문을 닫게 된다. 이로 인해 공연은 물거품이 된다.

 

바이올라는 웨섹스경과의 결혼을 받아들이며 교회에서 식을 올리기로 한다. 

다들 공연을 할 수 없음에 좌절하고 있을때 커튼 극장의 연출가가 찾아온다. 

"난 극장이 있고, 커튼을 당신들이 써라"

커튼 극장은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죽음으로 극작가가 없고, 로즈극장은 문을 닫아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버배지의 허락으로  커튼 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공연을 하게 되고 '훌륭하고 슬픈 비극인 로미오와 줄리엣' 전단지가 뿌려진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공연이 시작된다. 하지만 줄리엣역을 맡은 배우가 변성기가 왔는지 목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공연이 불가한 상태가 된다. 바이올라가 맡았던 로미오역은 윌이 하지만 줄리엣 역할을 마땅히 대체할 사람이 없다.

그래도 쇼는 계속되어야 하고,무대 뒤는 너무 초조한 상황이 되었다.

한편 바이올라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길에 공연 전단지를 발견하고 하녀의 도움으로 몰래 빠져나와 극단으로 간다.
줄리엣역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바이올라가 대사를 다 외우고 있다며 줄리엣 대역으로 무대에 오르게 된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이 난다.

관객들은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 모두 기립박수치며 환호한다. 

마침 여왕이 공연을 몰래 보고는 연극에서 진실한 사랑을 보여줄 수 있어 감동하였다고 말하고,  내기에서 이긴 바이올라에게 50파운드를 주라고 웨섹스에게 여왕은 이야기한다. "내 생각에 당신이 졌소"라고 말이다.

50파운드를 웨섹스경에서 받은 바이올라는 윌에게 당신이 이겼다며 돈을 전한다. 하지만 그녀와 이별해야 하는 윌은 그저 슬픔에 즐거워하지 못한다.
바이올라는 남편과 미국으로 떠나기로 하고, 윌은 다시 다시 이야기를 적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윌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상의 인물과 실존의 인물을 믹스하여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무대안 <로미오와 줄리엣>과 무대밖 윌과 바이올라의 사랑을 통해 사랑의 진실한 질감을 만들어 낸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9. 3. 18. 15:36

 

레옹

감독 뤽 베송
영화 레옹
뉴욕 빈민가에 사는 살인청부업자 레옹(장 르노)과 옆집에 사는 마틸다(나탈리 포트만)의 운명적인 만남.
얼굴에 멍이 들 정도로 맞고 복도에 나와 앉아있는 12살의 마틸다는 코피를 흘리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미는 따뜻한 킬러 레옹.

사는게 원래 이렇게 힘든 거냐구, 아니면 자기가 어려서 힘든거냐고 레옹에게 묻는 마틸다. 
어린 아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너무 어른스러워 보이는 마틸다. 
레옹은 그런 마틸다에게  언제나 힘든 것이라고 대답해 준다. 
 
 
레옹은 의뢰를 받고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하는 살인 청부업자이다. 프로페셔널 킬러 레옹! 
그는 살인을 할 때는 민첩하게 냉정하게 목숨을 앗아간다. 지저분하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한 번에 정확한 스킬로 죽인다.
 
청부살인이라는 직업상 그는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전문가였다. 
그런데도 그가 잔인하고 냉정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은 그가 우유를 마시고, 화초가 심어진 화분을 들고 다니고,
해맑은 표정으로 영화를 보는 장면과 안경을 벗으면 선량해 보이는 두 눈이다. 
그의 손에서 총과 안경을 버리면 그는 그저 철이 들지 않은 어른일 뿐이다. 
거친 욕설을 하거나, 마약이나 술로 절여 있지도 않고, 여자를 만나지도 유흥에 흥청거리지도 않는다.

거들먹거리지도 포악하지도 않다. 

 
어린 마틸다의 눈에도 레옹이 무섭거나 거부감이 들었다면 말을 걸지도 가까이 가지도 않았을테니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살인청부업자가 아니다. 화초를 키우고 애지중지 다루는 모습은 킬러로서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마틸다가 나간 사이 마약조직 밀매업을 맡고 있는 마틸다의 어버지에게 비리경찰 스탠스 필드(게리 올드만)가 들이닥치고 사랑하는 동생과 가족들이  몰살당한다. 
총소리에 레옹은 그 광경을 보고 경계만 할뿐 마틸다의 가족이 죽어가도 개입하지 않는다. 킬러이면서도 말이다.  
그 사이 마틸다가 돌아오고 눈치가 빠른 그녀는 자신의 집을 지나쳐 레옹의 방문을 두드리고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망설이던 레옹은 문을 열어준다.
 
마틸다는 레옹이 킬러라는 사실에 가족의 복수를 할 수 있게 킬러로 키워 달라고 한다. 문맹인 레옹을 위해 글을 가르쳐주기로 하고 말이다. 복수는 위험한 것이라고 레옹은 거부한다. 하지만 과감하고 완강한 마틸다로 인해 수락하게 된다. 
복수를 위해 킬러가 되려는 마틸다는 레옹을 통해 총쏘는 법을 배운다.
냉철할 것만 같은 킬러 레옹은 나이가 들었지만 다 자라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처럼 아직도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12살의 어린 마틸다는 나이는 어리지만 세상이 너무 힘들다는 걸 다 알아버린 어른같은 아이였다. 삶이 고달퍼서 마음하나 비빌 곳 없이 너무 빨리 성장해 버린 어른이었다. 
마음의 나이는 마틸다가 더 어른스럽고 많았다. 서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삶과 외로움에 그들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감정들이 녹아들게 된다. 서로 다른 삶 같지만 너무 같은 마음인 둘은 서로 가까워진다.

 

레옹은 자신이 모아둔 돈을  자신에게 일이 생기면 마틸다에게 전해주라고 토니에게 가서 말을 할 때는 레옹이 마틸다로 인해 삶이 뿌리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고 싶은 건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 아닌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충동을 가지게 한다. 감정이 빗줄기처럼 흘러 내리고 있다고 말이다.
 
레옹이 집을 비운 날 마틸다는 혼자 스탠스 필드에게 복수하기 위해 경찰단속국에 위장잠입했다가 스탠스 필드에게 잡히게 된다.
마틸다의 편지를 보고 레옹은 마틸다를 구하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해 마틸다를 구해 온다. 
스탠스 필드는 자신의 부하가 죽게 된 걸 알고 경찰 특공대를 이끌고 레옹의 아파트에 쳐들어온다. 
완전히 포위된 레옹은 환풍구를 통해 마틸다를 탈출시키려 하고 마틸다는 혼자 가는 걸 완강히 거부한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잠도 자고, 뿌리도 내릴 거야. 절대 네가 다시 혼자가 되는 일은 없을 거야. 사랑한다 마틸다" 라며  자신이 아끼는 화초와 함께 마틸다를 탈출시킨다. 

마틸다로 인해 새 삶을 되찾은 레옹, 

킬러로서 항상 뿌리없이 떠돌던 삶이었다.
그는 청부살인을 하는 잔인하고 혹독한 인간이 아니었다. 어떻게 살인으로 그 길로 접어 들었지만 그는 편안한 잠도 못자고,뿌리도 내리지 못했다. 항상 혼자였다.
왜 뿌리도 내리지 못하는 화초를 들고 다녔는지 알 것 같았다. 
화초를 가장 친한 친구라 했다. "항상 밝고, 귀찮게 안하고 뿌리가 없는 것도 나랑 비슷해"
자신의 삶이었기에 돌보고 안았던 것이다. 가족을 다 잃고 혼자된 마틸다를 보살펴 준 레옹의 마음은 자신과 비슷한 마틸다를 본 것이다. 그래서 보듬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그 어둡고 힘든 삶에 자신과 똑같은 마틸다가 들어온 것이다. 자신의 모은 돈을 다 주고 싶고,마틸다의 뿌리가 되어주고 싶은 것이다. 
"너는 내 인생의 빛이었어. 너로 인해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된거야."
 
레옹은 마틸다를 탈출시킨 후 부상당한 경찰로 위장해 건물을 빠져나가려다 스탠스 필드에게 발각되어 총을 맞고 쓰러진다.
레옹은 마지막 죽어가면서 스탠스 필드에게 '마틸다의 선물'이라고 그의 손 안에 무언인가를 쥐어준다.
그것은 수류탄 고리이다. 핀이 빠진 수류탄은 터지고, 레옹은 스탠스 필드의 목숨도 함께 가져간다. 마틸다의 가족을 죽인 복수를 해 준 것이다.
학교로 돌아간 마틸다는 레옹의 화초를 학교 마당에 심어  뿌리 내려준다.
 
 
<레옹>은 12살 마틸다 역을 맡은 나탈리 포트만의 첫 영화 데뷔작이다. 첫 데뷔라고 하기에는 13살이었던 그녀의 연기는 정말 너무 좋았다. 프랑스 감독 뤽 베송이 오디션으로 그녀를 만난 게 그에게 있어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레옹역을 맡은 장 르노의 연기도, 스탠스 필드 역인 악역연기로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준 게리 올드만의 표정연기 또한  틈없이 채워졌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17. 20:16

 

오베라는 남자

감독 하네스 홀름

 

 
오베는 자살을 준비하고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실패한다. 매달아 놓은 밧줄 끈이 떨어지거나, 자동차 배기가스를 실내로 유입하여 자살시도하려는 찰나 이웃의 방문으로 실패하고, 기차역에서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려고 하나 플랫폼에 서 있던 사람이 쓰러지는 바람에 그를 구하느라 실패한다. 죽는 것도 사는 것만큼 어렵다.

6개월 전에 먼저 떠난 아내에게 가려한다.  오베(롤프 라스 가드)는 59살의 나이에 굉장히 까칠하고, 불만투성이에 고집불통이다. 그리고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이다. 

고집과 편견이 단단하게 눌러붙어 이웃과 제대로 소통하지도 못한다. 자기고집에 갇혀 있다보니 친구라고 해봐야 치매를 앓고 있는 그가 다지만 그와도 사이가 멀어진지 오래다. 

그가 남의 집 문앞에 서서 문을 두들기지 않는 이상 그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사람처럼 군다. 아내 소냐(이다 엥볼)가 그나마 이웃과 세상과 소통해주는 중간 역할을 해 주었지만 그녀마저 6개월 전에 그의 곁을 떠났다. 아내의 곁으로 가기 위해 꾸준히 자살을 시도한다.

 
아내 소냐를 만나기전까지 그의 삶은 온통 흑백이었다. 기차에서 만난 소냐는 자신의 가진 색과는 다른 색의 삶을 선사했고, 그녀로 인해 세상과 소통하며 살았다. 자신의 따뜻함을 알아주는 유일한 여자였고, 자신이 사랑하는 전부였다. 삶의 순간들을 같이 해 온 전부가 사라졌다.
 
소냐와 결혼하여 인생의 행복한 순간들을 가진다. 임신중인 그녀와 스폐인 여행을 간다. 그러나 여행중 버스가 추락하는 사고가 생긴다. 그 사고로 소냐는 아이를 유산하고 하반신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된다. 최악의 순간을 맞이한 셈이다.
 
소냐는 긍정적이고 강한 여자였다.  아내는 1년후교사가 되기 위해  교사 자격증을 딴다. 그러나 그녀는 교사로 채용될 수 없었다.
당시 학교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어느 날 신문에 특별학급에 교사가 필요하다는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가지만 그 학교 역시 학교 구조가 휠체어가 들어올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젊은 오베(필립 버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세상을 증오했다. 사고낸 버스를 증오했고, 음주운전한 기사를 증오했다. 기관을 고소하고 별짓을 다하지만 점점 지쳐갔다.
그러나 소냐는 끝까지 버티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죽지 않으려면 죽지 않을만큼 버텨야해. "라며 웃어준다. 
그는 그 날밤 학교 계단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게 경사로를 만든다. 그렇게 그녀는 학교로 갈 수 있었고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다. 
 
아내와 행복했던 최고의 순간에 사고로 최악의 순간을 마주했지만 소냐는 자신에게 있어 사는 이유였다. 
 그 유일한 삶의 색이 떠나고, 또 온통 흑백세상뿐이다.
"어떻게든 당신을 만나러 갈거야."

난 이 남자가 좋다. 세상에 대해 까칠해도 자신의 여자에게 부드러운 남자를 말이다. 그에게 아내가 사들이는 것은 다 사랑스러운 물건이라 할만큼 아내를 사랑한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쓸데없이 직장을 옮기고 책임지려 하지 않고 아내를 갈아치우는 세상을 향해 상당히 불쾌해 한다. 

 
오베는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보낸 사람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떠나고 직장에서까지 별안간 쓸모없는 빌어먹을 세대가 된 것이었다. 
오베는 자기 몫의 짐을 짊어지며 살았다. 책임감도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조금 느긋하게 사는 것도 좋을 겁니다."라고 말하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을 여기저기를 시찰하며  꼼꼼히 챙겼다.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마을을 신경쓰고 다니겠는가. 자기 집안 쓸기도 힘든 세상에 말이다.
오베는 그가 하는 시찰 중 하나라도 그냥 건너뛰는 법이 없다. 요즘 사람들이 책임지기를 원치 않지만 좀 까칠하고 융통성이 없고 책임감이 넘치는 그를 이웃들은 괴팍하다고 하지만 오베가 있어 어쩜 이웃들이 깨끗하고 편한 삶을 누린 것은 아닐까?
 
소냐와 결혼해 주택회사에서 일했고, 집까지 장만하며 삶을 누리며 살았다. 아내가 떠나고,직장에서까지 정리됨으로서 그는 이제 세상과 완전히 닫혔다고,더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같이 자살을 준비하는 최악의 순간에 최고의 이웃들을 만난다.
옆집에 새로 이사온 파르바네(바하르 파르스)가 오베를 계속 귀찮게 만든다.
그는 귀찮아하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는 사실 따뜻한 사람이다. 남에게 기대지 않으려는 까칠하고 괴팍한 성격이 그의 따뜻함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오베를 구해준 사람은 이사온 젊은 부부이다. 셋쩨를 임심한 젊은 아내가 오베를 귀찮게 한다. 
그녀는 수시로 찾아와 중요한 순간마다 방해를 한다. 사다리를 빌리려 오고, 라디에에터 수리를 부탁하고,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사정하고 계속 성가시게 귀찮게 한다. 
그는 투덜대고 귀찮아 하면서 그녀를 도와준다.

팽팽한 감정을 좀 느슨하게 풀다보면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가 보인다.

그는 서서히 이웃들의 귀찮은 부탁에 도움을 주면서 자신이 아직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이고, 쓸모있는 삶으로서의  이웃들과 소통을 배운다.  손재주가 있는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있기때문이다.
 
오베의 오랜 친구가 정부요양원에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써주고,운전면허 시험을 돕기 위해 자기차를 내주고 동승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수리도 해준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하나씩 돕다보니 어느새 이웃들과의 관계가 만들어져 있었다. 
 
까칠하게만 대했던 이웃들과의 일상속에  자신의 삶이 스며들고,그들과 따뜻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삶의 변화가 만들어져 간다.
소냐가 없는 삶이 흑백같았는데 이제 마을사람들의 정으로 오베의 삶도 유채색이 되어간다.
 
사람은 관계속에서 사는 사회적 동물이다. 오베는 재주 있고 이웃을 잘 도와주는 친절한 사람이 되어 옆집 아이들과의 관계를 갖을 만큼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사는게 이거구나' 의미를 알아간다.
 
오랫동안 길게 산다고 인생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생의 줄을 너무 팽팽히 당기고 살았다. 좀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말이다. 59살의 자신도 이웃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과 자신 역시 작고 사소하더라도 인간관계를 통해 쏟아붓고 담아내야 한다. 남에게 도움도 받고 도움도 주는 삶이 작은 일상의 행복으로 자리잡는다.
열심히 두들겨야 한다. 세상은 혼자서 못산다고 계속 두들겼던 이웃처럼 말이다.
 
사회성  없고 고지식하고 융통성없는 오베가  자신에게 손내미는 이웃의 손을 잡으면서 사회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말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17. 18:02
내 마음속의 지우개

 

 
<내 마음속의 지우개>가 2004년 작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한데 벌써 15년이 되었다는 사실에 참 세월이 빠르게 흐르는구나 싶었다.
내 삶도 사랑도 흐르고 있었다.

 

<내 마음속의 지우개>는 철수와 수진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야기이다.
막노동꾼으로 외롭고 거칠게 살아가고 있는 철수(정우성) 앞에 부잣집 딸 수진(손예진)이 나타난다.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힘든 것도 모르고 사랑에 자신을 내 맡기는 수진과 어릴 적 엄마에게 버림받고 누굴 책임지는 관계에 서툰 남자가 수진의 건망증을 계기로 인연이 시작된다.

 

거칠게 살아온 철수역을 맡은 정우성,
그저 포장마차에 아무렇게나 걸친 작업복마저 멋스러운 남자다.
소주 한 잔을 돌려 입안에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여자 손예진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안마시면?''
''그럼 평생 다시 볼 일 없는 거지. 뭐''
수진이 단번에 마셔버린 소주 한 잔으로 시작됐다.

 

그녀를 웃고 웃게 만드는 힘은 역시 사랑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그들을 또 끊임없이 울게 만든다.
자신을 버린 엄마로 인해 가슴 속 상처가 큰 철수에게 수진은 
"용서는 미움에게 방 한칸만 내 주면 되는 거래"

 그의 상처를 안으며  분노로 높게 쌓인 인간관계의 벽을 허물어 준다.

그녀의 말처럼 미워하고 증오하던 엄마에게 방 한칸을 내주고. 그녀와 꿈 같은 신혼생활을 해나간다.

 
그들의 사랑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그녀의 건망증이  불길하게 다가온다.
도시락은 밥만 두 개 싸주고, 매일가는 집조차 찾지못해 헤맨다.

 건망증은 점점 심각해지고 병원에 간 수진은 자신의 뇌가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7살에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는다.
''내머리속에 지우개가 있다고ᆢ 우리 헤어지자.''
시간이 지나면 가족,남편은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까지 잊어버리게 된다.

말하는 것, 전화받는 것까지

최근의 기억부터 사라져 갈 것이다.
곧 모든걸 잊어버리게 된다.

머릿속에 자신도 사랑하는 철수도 없어진다고 헤어지자는 그녀다.

하지만 철수는 그녀를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니 기억이고 니 마음이야.''
 
수진은 점점 자신을 몰라본다. 최근의 기억들이 사라지고 지워져간다.
잠시 돌아온 기억의 그녀는 철수에게 상처주고 아프게 하는 것이 슬프다.

 그래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철수라는 걸 알려주려고 한다.

비록 기억은 지워져 가지만 사랑은 기억하는 게 아니라 자신 안에 스며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하던 철수 또한  더 늦기전에 그녀에게 ''사랑해'' 라고 전한다. 
사랑하기에 뜨거울 나이,

 젊고 아름다운 사랑을 지우개가 지우는 그들의 인생이 슬퍼서 많이 울었던 영화다.

이제 진정한 사랑을 찾았는데, 이제 서로에게 채워줄 기억만 만들면 되는데

 그걸 허용하지 않는 운명이 슬프고 아프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17. 01:26

노예 12년


감독 스티븐 맥퀸

 

 

 
1840년 미국에서는 노예해방령에 의해 노예제도가 없어지자 흑인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팔아 넘기는 인신매매가 만연했다.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뉴욕에서 아내와 어린 두자녀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음악가였다.

그는 자유 흑인이다.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주와 노예주가 있는 주가 있었다. 
 
어느 날 2주간의 연주제의가 들어오고, 노섭은 그 제의를 받아들임으로써 인생이 뒤바뀌게 된다. 
그들은 흑인인 노섭을 노예상들에게 노예로 팔아 버리게 된다. 
그가 아무리 노예가 아니라고 해도 돌아오는 건 매질 밖에 없었다. 
그리고 노섭은 조지아주에서 도망친 노예신분인 '플랫'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지어지고, 솔로몬 노섭이 아닌 노예 '플랫'으로 험난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노섭은 노예상에 의해 농장을 소유한 첫번째 주인 윌리엄 포드에게 팔려가게 된다. 그러나 다행인지 포드는 인간애를 가진 주인으로 그의 재능과 지혜를 높이 사 그와 신뢰를 쌓아간다. 

그러나 이를 못 마땅히 여기는 자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티비츠이다. 

티비츠는 노섭이 인간이 아니라 노예로서 대접받아야 마땅하다 여겨 그를 괴롭히고 학대하기 시작한다. 
부당한 매질에 티비츠에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갈등은 고조된다. 
이에 티비츠는 모욕감에 복수를 하게 되고 노섭을 올가미로 묶어 나무에 매달아 버린다. 
농장주  포드에게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 자유흑인이라는 말을 해도 그 역시 노예는 그저 재산에 불과하다.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자신의 처지를 위해 그를 애드윈 앱스(마이클 패스벤더)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 두 번째 주인이 죽음이다. 완전 악랄하고 구제불능이며, 심각한 폭력성과 감정기복으로 노예들을 학대하는 농장주였다. 
매일같이 목화를 따는데 목표량을 수확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매질을 당해야 했고, 어린 여성노예 팻시를 성폭행했다.
그저 모든 노예들이 모진 학대에 견뎌야 하고, 버텨야 하는 죽음보다 못한 삶이었다. 

 

노섭은 버텨내야 한다. 그는 노예가 아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운명에 순응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현실에 저항할 수도 없었다. 버텨야 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가 있고, 솔로몬 노섭이라는 자유인으로 살아 돌아가야만 했다.
자유가 그에게는 남달랐다. 자유의 신분으로 살아오던 자신이 인신매매되어 자유를 억압당하고, 삶을 빼앗기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분노하고 바닥까지 절망했다.  이 부당한 현실에 자행되고 있는 인간이하의 삶은 반드시 뿌리 뽑혀야 될 죄악이었다. 자신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무리 소리쳐봐야 여기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저 노예제도가 허용된 이곳에서는 그저 흑인노예들은 가축만도 못한 존재였다. 

 

탈출하려고도 해 봤고, 백인 노동자에게 돈을 주고 편지를 보내려고도 했지만 배신당했다. 그리고 고발당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희망을 잡기 위해 그는 견뎌낸다. 
채찍으로 피범벅이 되도록 매질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아프다고 소리질러도 그들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노섭은 처음에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저항도 해보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순응할 수 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주인에게 잘 보여야 매질도 안당하고 기회도 생길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기회는 무산되고, 두려움은 이미 삶 전체에 스며들어 현실에 순응하고 좌절할 무렵 햇살 한줌이 스며든다. 

 

인종차별에 문제에 있다고 여기는 베스의 등장이다.
노섭은 캐나다 출신 백인 목수 베스와 건축 자재를 옮기며 건설작업을 하게 된다. 
베스에게 자신의 사연을 고백하고 자신의 고향에 편지를 보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베스(브래드 피트)는 선뜻 나서지 않고 주저한다. 
그러나 그는 흔들렸고 그의 요청에 답해준다. 편지는 전해지고 지역보안관이 노섭을 찾아오게 되고, 그의 신분을 확인하여 준다.
결국 그에게 자유가 넘어온다. 12년간의 노예 '플랫'을 벗어 던지고 솔로먼 노섭으로 가족의 품으로 안기게 된다. 
실존인물 솔로몬 노섭이 이야기이다. 그는 자유를 회복한 후 노예제도에 반대하며 노예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게된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15. 23:35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감독 데이비드 O. 러셀

 

2008년에 발간된 매슈 퀵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실버라이닝이란 구름의 가장자리에서 퍼져 나오는 빛을 뜻하는 것이고, 플레이북은 미식축구 등에서 쓰는 작전 노트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란 뜻은 아마도 희망을 위한 노트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처와 장애를 갖고 있다. 
밖을 향해 날카롭게 그어대거나 속으로 뭉개지거나 다들 조금씩 다른 형태로 표면화되거나 내면화될 뿐이다. 
 
한번의 사고로 삶을 바꾸어 놓는 사건이 생긴다. 
자신의 집 욕실에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샤워를 하며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결혼식 노래를 틀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심한 감정기복과 망상으로 충돌을 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결혼식 노래만 나오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탄처럼 터지고 만다. 

 

조울증. 감정조절 장애로 8개월만에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팻(브래들리 쿠퍼)는 아내 니키와 다시 좋은 관계를 만들어 보려고 하지만 아내 니키는 집을 팔고 떠났다. 

 

아내에게 150m접근 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이다. 병원에선 그에게 신경안정제를 계속 복용하라고 한다. 하지만 신경안정제는 자신의 정신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리므로 거부한다.
아내가 좋아하는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려고 아내가 가르치는 헤밍웨이 책도 열심히 읽는다. 
 
인생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햇살을 만들려고 그는 노력중이다. 

 

헤밍웨이 '무기여 잘있거라'를 읽고 결말이 불행한 것에 창문 밖으로 책을 집어 던지고 분노로 새벽에 부모님을 깨워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고, 결혼 비디오 테이프를 찾아달라고 새벽에 또 어김없이 부모님을 깨워 난리를 피운다.  
나름 애쓰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이웃들은 걸핏하면 신고를 하고, 경찰이 들어닥쳐 경고를 주고 간다. 

 

부정적인 마음은 독약과도 같아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보려고 하지만 아직 주위의 시선은 그를 경계한다.
 
우연히 친구 로니를 만나 로니집에 초대되어 간다. 그곳에서 로니는 아내 베로니카의 여동생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를 소개해 준다. 그녀 역시 분노장애가 있어 보인다.

 

최근에 남편을 잃고 직장내 모든 사람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그 이유로 그녀는 약을 먹는다. 하지만 감정조절이 억제가 잘 되지 않는다. 언니의 식사자리에서 짜증을 내고 나가버린다.

남편을 잃은 상실감으로 자고 일어나면 텅빈 기분을 느낀다.

남들이 원하는 걸 다해주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게 모른다는 티파니는 팻과 친구이기를 바란다. 

팻은 니키와 잘해보고 싶은 맘뿐이다.

 

 
팻이 운동을 할때면 티파니가 여기저기서 훅훅 들어오는 통에 성가시고 불편하다. 
그러다 저녁에 저녁식사를 하게 되면서 그녀가 해고된 일을 알게 된다. 티파니는 자신과 팻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서로의 상실감과 상처를 서로 보듬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티파니는 니키에게 편지를 전해주겠다고 제안을 해온다. 니키는 언니의 절친이라 자주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팻과는 달리 티파니는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의 아픔을 나누기를 바랬다. 첫 눈에 어쩌면 팻에게 관심이 있어보였다. 남자들이 자신을 걸레취급해도 자신을 사랑하는 티파니였다.
그러나 여러 남자들과 자는 그녀를 자신과 동급취급하는 게 옳지 않다고 우린 완전히 다르다로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화가 나 분노를 참지 못한 티파니는 "당신은 사람처럼 사는 걸 두려워해. 위선자에, 비겁자에, 거짓말쟁이라고"라 말하며 식당에서 그릇을 다 깨고 나가 버린다. 

 

미안하다고 튀쳐나와 그녀를 잡지만 화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와 그를 잡아 가려고 한다. 
얼이 빠진 팻의 표정을 보던 티파니는 결혼식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걸 알고 다가가 "고작 노래에요. 심호흡해요."라고 그를 진정시킨다.
 
 
팻은 니키에게 쓴 편지를 들고 티파니에 집에 가지만 그의 부모님이 오해하고 들여 보내주지 않는다. 전 회사 남자마저 찾아와 팻을 찾는다. 팻은 그 남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티파니는 날개 꺽인  새처럼 아프고 슬퍼서 방황했던 거예요. 부러진 날개가 다 붙어 가는데 당신때문에 덧난다구요. 똑똑하고 섬세한 여자니까 길거리 여자 취급하지 말아요"

어쩌면 팻도 티파니의 상처를 알고 있었지만 티파니에게 제대로 표현을 못했던 것이다. 티파니는 집안에서 다 듣고 있었다.

 
티파니는 팻에게 니키에게 편지를 전달해주는 조건으로 댄스대회의 파트너로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그리하여 티파니의 집에서 커플 댄스연습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어릴 적 형하고만 많은 시간을 가져서 그게 팻에게 악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미안해한다.그래서  이글스를 핑계로 팻을 귀찮게 하며 같이 경기를 보며 많은 시간을 가지고 싶어한다. 팻이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같이 경기를 보면 좋겠다. 아들이 같이 봐주어야 경기를 이길수 있다고 믿는다. 
 
형은 팻에게 넌 집을 잃고 아내도 잃고 직장도 잃었지만 난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하고 승진도 하였다로 비교하며 그를 자극한다. 자신을 챙피해 하는 마음을 그리 표현한 걸까?빨리 일어서라고 자극하는 것일까?  
"난 그저 형을 사랑해 "라고 말하며 형을 안아준다.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하지만 알고보면 사랑이 깔려 있다. 표현하는데 서툴고 삐닥하다고 해도 말이다. 가족은 참 따뜻한 품이다. 힘들 때 내주는 품은 팻을 더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고, 감동이 되고 믿음이 된다. 긍정적인 한 줄기 빛이 가족과 주위의 따뜻한 사랑으로 극복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니키에게 답장이 오고, 그는 누구보다 춤을 통해 자신을 변화하는 걸 보게 된다.
 
아버지가 이글스 경기에 식당에 쓸 돈 전부를 배팅해버리고 형과 경기에 다녀오라고 한다. 하지만 경기에서 형친구가 싸움이 붙고 결국 그는 형이 맞는 걸 보고 참을 수 없어 같이 싸움이 붙게 된다. 경기는 지고 아버지는 분노한다. 그리고 춤연습에 나타나지 않는 티파니는 팻에 집에 와서 한바탕 퍼붓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티파니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티파니를 만나 팻도 이상해져 싸우고, 경기도 졌다고 몰아 부치자 티파니는 조목조목 따진다. 자신하고 팻이 있을때마다 경기를 이겼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녀의 말을 인정하며 다음 이글스경기와 팻과 티파니의 댄스대회에서 5점이상 받는 것으로 거대한 배팅을 하게 된다. 팻과 어머니는 반대하지만 티파니와 아버지와 배팅을 하고 만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팻은 자신이 받은 니키의 편지가 가짜라는 걸 눈치채게 된다. 티파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않고 그는 계속 댄스연습에 집중한다. 
 
드디어 댄스대회가 열리고, 가족과 모두 대회장에 갔는데, 언니랑 니키가 같이 오는 걸 본 티파니는 당황하며 언니에게 화를 낸다. 실은 팻에게 거짓말한 것이 다 들통날 것이다. 

 

팻과 티파니의 댄스공연은 멋지게 마무리되고 5점을 넘겼고, 이글스 경기도 다 이기게 된다. 경연이 끝난 팻은 니키에게 다가가고, 티파니는 그 모습에 상처받고 나가버린다. 

아버지는 팻에게 다가가 니키는 넌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지만 티파니는 널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잡으라고 한다. 진실된 사랑을 놓치지 말라고 한다. 아버지를 안아준 팻은 티파니를 쫓아간다. 그리고 편지가 가짜라는 걸 알았다. 미친넘을 도와주느라 미친 짓을 한 걸 알고 있다. 로맨틱하게 고백하고 싶어 말 안 했다고 하면서 첨 볼 때부터 사랑했다고 표현한다.

그들은 서로의 상처에  긍정적인 한 줄기 빛으로 작용했다. 

자신의  빛은 자신 안에 있다. 
누구나 장애를 가지고 산다. 
친구 로니도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나 삶이 아내가 숨이 막히다고 말한다. 그럴때마다 차고에 가서 헤비메탈을 부르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한다. 

 

팻과 티파니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럴때 주위의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빛을 찾아내야 하고,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해가야 한다. 사람에 대한 상처는 사람으로서의 관계에서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내숭없이 감정을 배출하는 직진녀 티파니와 눈치도 없고 답도 없는 남자 팻의 연애세포는 재생되어 달콤하게 막을 내린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15. 22:39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우린 "영화 어땠어?"라고 물어볼 때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슬픈 영화야, 재밌어. 완전 웃겨, 통쾌해..라고 감정에 호소해서 표현한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의 특유의 감성으로 대부분 슬픔이 절제되어 표현된 영화였다.

 

'아이를 통해 아버지가 성장하는 영화'다.
영화가 슬프다가 아니라 정말 진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눈물보다 가슴울림을 통해 정말 진하게 전달되어진다.
슬픈 걸 담백하게 담아도 이렇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에 아낌없이 극찬하고 싶은 영화이다.
보통 딸들이 엄마의 삶을 더 이해하듯이 아들과 아버지사이에 동질감 또한 그럴 것이다. 
뭔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다른 듯 닮아있는 것들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든다.

닮아가거나 동일선상에 세워놓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더러 본다. 

'아버지처럼은 살기 싫어'라 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 가려고 하지만 의외로 자신도 모르게 닮아간다.
아버지란 존재는 아들에게 거울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동경으로, 때로는 거부적인 반응으로 삶에 잔류한다.
 
권위적이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역시 아들에게 사회적 성공을 우선시하여 아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권위적인 아버지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받은 영향이 그대로 아들에게 답습된다.

 

자신이 6년동안 키운 아들 케이타(니노미야 케이타)가 병원에서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의 친아들이 자신보다 못한 환경에서 자라는 걸 보고 서로의 아들을 바꾸어 친아들 류세이(황 쇼겐)를 데리고 와 생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료타는 류세이에게 이 집의 규칙에 대해 설명해준다.
하지만 류세이는 6년동안 료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았다. 집안에서 규칙이라니 '왜?'라고 묻는다. 
당황한 료타는 "그냥 그런거야." 대답한다. 왜? 라는 질문에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케이타와는 달리 순종적이지 않은 것이다.
자신조차 왜? 라는 대답에 답해주지 못한 료타는 처음으로 자신을 돌아봤을 것이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케이타가 자신의 방식에  통제 당하느라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밖으로 내놓지 못해 자신이 만든 환경에서 순종적일수 밖에 없었다면 말이다. 
정반대의 아버지인 유다이(릴리 프랭키)가 료타에게 아들과도 시간을 좀 보내라고 이야기하자 료타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유다이가 아버지라는 것도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너무 책임감에 갇혀 희생한다는 생각만으로 부모가 되지는 않는다.
가족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 가족은 정작 소외되고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은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정체되어 있다. 
정작 아이들이 커가는 삶 속에 같이 존재하지 않고 삶의 가치만 주입시키고 강요하고  통제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아들의 시간은 자신없는 인생이 만들어지고, 자신없는 일상이 진행되어 흘러간다.
가족에게 이방인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놓는다고 가족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바뀌고 자신의 친아들과 시간을 가지면서 그들의 관계속에도 시간이나 대화가 부여되지 않으면,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유대감없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료타는 아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처음으로 아버지로서 노력이라는 것을 해 보았을 것이다.
 
알아주기만을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태도이다.
자신의 성장기에 겪은 것을 그대로 아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중심가의 최고급 아파트에 살며 아름다운 아내와 순탄한 삶을 살고 있고, 아들과의 시간을 매일 뒤로 미루는 아버지로  자리했던 자신이었다.

 

료타는 자신의 어린시절 모습과 비교하여 케이타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실수로 뒤바뀐 아이였다는 것을 알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친아들인 유세이와 생활하면서 아들과 친해지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아버지란 존재로서 말이다.

자식이 바뀐  또다른 유다이 가족은 너무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다. 
전파상을 하고 있는 유다이는 료타보다 풍족한 환경은 아니지만 삶이 여유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중요시하는 순박한 아버지였다. 
서로의 다른 환경에서 키워진 아들을 바꾸어 키워가는 과정에서 료타는 진정한 아버지로 성장하게 만든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얼마나 강요하고, 부족했는지를 류세이와 유다이를 통해 가족이란 굴레와 가족의 진정함을 깨달아가게 된다.
 
 
6년간 부족함에서 키워낸 케이타에게 미안함을 느낀 료타는 아이를 찾아가지만 케이타는 료타를 보자마자 도망가 버린다. 
이런 케이타를 따라가면서 아들에게 미안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우린 정말 아버지가 된 료타를 안아주게 된다.
 
부족한 아버지가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전하는 장면은 잔잔하게 진한 슬픔을 자극한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진정 가슴으로 아버지로서 존중하는 것은 다르다.

 

'아버지는 다  같은 아버지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좋은 아버지가 되는 과정은 그저 한 공간에 담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장과 그들의 감정과 그들의 시선을 같이 해주는 것이다.

 

내 시선속에 아이들이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가치속에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버지가 되는 것이 연습된 학습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와 같이 나도 아버지로서 살아가면서 성장하기 위해 익혀야 하는 것이다. 

"아빠는 아빠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케이타에게 료타는 "많이 부족하긴 했어도 아빠였잖니!"자신의 부족함을 내어놓는다.
빌어야 할 잘못은 산더미 같다.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걸 다 털어놓고 케이타를 안아주는 료타는 진정 아버지로서 성장했다.
료타는 그동안 아이들의 시간을 공유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성장하는 시간에 자신의 성공을 위해 제대로 그 시간을  부여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이라고'
아이들에게 장난감으로 풍족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장난감을 같이 가지고 놀 아빠와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걸 아빠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다.
자식이 날 본보기로 성장해가고 있다면 어떠하겠는가? 날 닮은 자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삶에 멘토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15. 21:53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감독 존 포드 

리처드 루엘린의 소설  How Geem Was My Valley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하여 감독상, 남우조연상(도널드 크리스프), 미술상, 촬영상을 수상하였다.

영국 웨일스 지방에 있는 탄광마을을 배경으로 아버지 모건, 그리고 그의 아내, 그리고 6명의 아들과 한명이 딸이 있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늦둥이 휴를 통해  50년이 지난 과거의 생생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속으로 들어간다.
지나온 것은 추억으로 담겨 언제든 가져다 꺼내 올 만큼 마치 어제의 기억처럼  생생한다. 
교회의 종소리, 광부들의 퇴근길에 쏟아져 나오며 부르는 노랫소리,동네 사람들이 모여 흥에 겨워 즐기는 모습들.
탄광 마을 광부들의 얼굴은 웃음으로 빛이 났다.
 
아름다운 풍경에 탄광촌이 있고 탄광촌 먼지가 들어서기는 했지만 풍경이 무너질만큼은 아니었다.  휴를 통해 보는 광부인 아버지와 형들은 손톱밑에 석탄때가 끼어도  다들 광부로서 일하는 것에 만족해했다.

까만 석탄 얼룩은 물에 씻으면 되는 것이고, 지워지지 않는 건 광부로서의 자긍심이었다. 

은행이 없던 곳이라 그들은 그날 석탄을 캐고 벌어온 돈을 벽난로 뒤에 모아둔다. 
아버지는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고, 휴는 그때 사먹던 사탕의 달콤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계곡처럼 높은 곳에 탄광이 있고 ,그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마을이 쭉 나열되어 있다. 
광부들이 탄광촌에서 퇴근하며 줄지어 내려오는 길가를 따라 줄지어진 마을에는 아내와 딸,며느리들이 광부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그들을 마중나와 서 있는다. 
작고 소박하고 정감있는 마을이다. 늦둥이 휴를 제외하고는 아버와 형은 모두 탄광에서 일한다. 일이 끝나면  다같이 몸을 씻고 기도를 하고 음식을 먹는다. 
먹을 때는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음식 자체로 이미 이야기가 준비된 식탁이다.
 
탄광촌이 주는 위화감이 아닌 탄광촌으로 인해 마을은 공동체적인 삶이 만들어지고, 결속력이 다져진 하나의 큰 가족같았다.
모건의 가정은 아버지가 머리, 어머니가 심장이 되어 너무 평화롭고 화목했다. 
휴의 기억으로 탄광마을이라고 할 때만 해도 뭔가 어둡고 칙칙한 환경을 생각했지만 너무 평화로운 마을과 평범하지만 너무 행복한 가정을 보면서 가슴이 조금씩 미소가 지어지고 따뜻해졌다. 술과 음악으로 모건의 집에서 잔치가 열리고 모두 흥에 취해 있다.
 
탄광촌에 공고가 하나 붙는다. 
그것은 탄광회사가 임금을 삭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갈등의 시작임을 알린다.  
아버지는 삭감에도 불구하고 석탄값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라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에 서고 아들들은 탄광회사의 횡포라고 파업을 해야된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견해로 평화롭던 식탁이 썰렁해진다. 이 평화로운 마을이 조금씩 불협화음이 일고 화목한 가정에 균열이 생긴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의지에 반대하고 집을 나간다. 
그리고 노조가 만들어져 탄광은 장기파업에 들어간다. 처음보다 점점 마을은 어두워져 간다. 
사람들의 표정도 전만큼 밝지 않다.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파업에 반대했던 아버지를 적으로 간주하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굶주림에 인심은 사라져 가고, 마을에는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들 둘은 미국으로 직장을 찾아 떠나고,그리고 휴의 집안으로 돌을 던지는 마을사람들의 행동에 휴의 어머니는
휴의 도움으로 탄광집회에 참석해 연설을 한다. 자신의 남편은 회사의 편도 아니고 마을사람들을 배신한 적도 없다. 내 남편을 괴롭히는 자는 끝까지 쫓아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하고 그 얼음계곡을 내려오다 휴와 함께 얼음물에 빠지고 만다. 겨우 사람들의 의해 구해졌지만 휴는 동상이 심해 걸을 수 없을 줄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된다.  
어머니는 몇 주만에 일어나고 휴는 겨울 내내 누워 지내야 했다. 

 

목사는 그런 휴에게 의지가 있으면 걸을 수 있다고 희망을 던져주고 '보물섬'책을 선물해 준다.

파업이 끝나고 다시 복귀하지만 인원적 제한으로 복귀하지 못한 광부들이 일터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봄이 되고 들판이 꽃이 피자 목사는 휴를 업고 꽃밭에 간다. 목사의 도움으로 다시 걷게 된다. 
그리고 집을 나가던 아들들도 돌아오고 모건과 아내는 마을사람들을 불러 음식을 먹으며 다시 평화로움을 찾고 웃음을 찾는다.
 
광산에 사고가 나면 마을전체에 사이렌이  소리가 크게 울리게 되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탄광촌이 사고가 나 그만 결혼한 큰 아들이 사고로 죽게 된다. 
휴가 처음 결혼하려고 온 형수를 보고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보니 형수가 될 사람이었다. 형의 죽음과 함께 형수는 아기를 낳는다. 
형의 결혼식날 주례를 한 목사를 보고 자신의 누나가 목사에게 한눈에 반하고, 목사도 누나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 후 목사는 모건의 가족을 위해 많은 도움을 줬고, 휴에게도 목사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다. 
목사는 허울뿐인 사람이 아니고 광부들을 위해 같이 노조활동에 동참해주고 탄광에서 사고가 나면 젤 먼저 달려가주는 아주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람이었다. 
누나를 좋아하면서도 자신의 험난한 인생에 누나를 동행할 수 없었다. 그런 누나에게 탄광주 아들이 청혼을 해온다. 

 

 

딸이 돈 걱정없이 살 거라고 어머니는 좋아하고, 누나는 목사를 찾아가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라고 하지만 목사는 그녀를 험난한 자기 인생에 담지 못한다. 희생과 헌신으로 목사가 된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 누나를  고생시키는 걸 원하지 않았다. 사랑하지만 그녀를 잡지 못했다. 끝내 누나는 탄광주 아들과 결혼식을 올리고 떠난다. 

 
휴는 유일하게 모건의 집에서 학교를 다른 마을까지 걸어서 다니게 된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은 광부의 아들을 비하하고 더럽다는 등 모욕을 주고, 자신의 물건을 부수는 것으로 싸움이 붙고 엄청 맞고 들어온다. 
아버지는 그길로 휴를 동네 아저씨를 불러 싸움을 가르쳐 주게 한다. 
그는 그 이후 싸움을 잘하게 되고, 학교규칙을 어기고 싸우다 선생한테 걸려 죽을만큼 맞고 들어온다. 
형들은 학교에 찾아가겠다고 하지만 휴는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규칙을 어긴 것이라고, 형은 그런 동생이 기특하다. "니 인생이니까 니 결정에 따른다"고 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에게 권투를 가르쳐 준 눈이 안보이는 마을 아저씨는 선생을 찾아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싸움을 가르쳐 주는 시늉을 하며 두들겨 패준다.  

 졸업을 하고 아버지는 휴에게 의사나 변호사를 하라고 하지만 휴는 광부가 되겠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휴의 의사를 존중해준다. 

그리고 휴는 광부가 탄광촌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탄광회사는 더 싼 광부를 쓰기 위해 두 형을 해고한다.  두 형은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결혼하여 마을을 떠난 누나는 아프다고 마을 내 탄광주 저택으로 돌아와 기거한다. 
목사를 사랑했던 그녀는 행복하지 못했고, 이를 안 시댁에서는 그녀를 아들과 이혼을 시킬 생각이라고 그녀의 시중드는 사람들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마을은 온통 목사와 누나의 일로 수군거렸고, 교회에서 누나와 목사의 일로 집회까지 연다고 한다.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사람들로 모건 가정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목사는 오늘 마지막 기도라고 하며 자신을 비난할 수 있는 자 나서라고 하지만 다들 비겁하여 나서지도 못하면서 당신들의 가벼운 입과 마음의 빈약함은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왜 교회에 나오냐고 몰아 부친다. 
자신들이 천벌받은 것 같은 두려움에 정장을 걸치고 교회에 나와 있는 아주 비겁하고 나약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목사는 교회를  나가버리고, 휴는 자신의 누나를 위해 그가 보여준 진실에 고마워한다. 
그리고 갑자기 탄광에서 사고가 났다는 사이렌이 울린다. 
탄광이 무너진 것이다. 이 사고로 아버지 모건을 잃는다. 
 
휴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버지가 이끌었던 자신의 화목했던 가정, 아버지에게서 배운 철학과 가치는 항상 옳았고 지금도 옳으셨다고 믿는다. 
그게 자신들의 밑거름이 되어주었고 뿌리로 지탱해 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던 그 계곡은 항상 푸르렀다. 
가족이 주는 믿음과 소중함은 시간이 흘러도 가슴속에 뿌리처럼 남아 자신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형제들은 따스했고, 아버지가 만든 가치속에 엄마가 보살피는 가정은 항상 사랑으로 넘쳐났다.
 
작은 가정안에 인생이 다 있고, 마을 안에 사회가 다 들어 있다. 탄광촌을 배경으로 고용자와 노동자의 마찰과 갈등을 너무 깊게 다루지 않고, 영국사회가 갖는 계급의 문제를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지 않고, 모건 가족이 갖는 가족애, 사랑, 웃음, 끈끈한 감정들을 따뜻하게 그려내어 좋았다.
마을이라는 공동체속에서 갈등하고,균열을 보이고, 또는 적대시하다가도 진정한 따뜻함을 내놓으면 다시 화합되어 다시 노래 부르고 내 일처럼 나서줄때 삶이 그러하다.
가장 작은 것을 지켜야 큰 것을 지킬 수 있고, 세상의 작은 가치란 없다. 
 
모든 뿌리는 가정에 있다. 그 뿌리가 단단해야 사회가 탄탄해진다. 
그래서 그 뿌리가 단단해야 갈등이 있어도 또 쉽게 서로를 다치게 하더라도 다시 봉합할 조건이 만들어진다. 
왜 가정은 조건없는 사랑이고 조건없는 믿음이고 조건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만들어 진 모든 것이 사회로 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아가 추억하여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것이 된다. 가족은 언제 끄집어 내도 끈끈하게 나를 안아준다. 
나의 어린시절의 아버지, 어머니로 인해 아름다울 수 있는 인생이었다고 말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9. 3. 15. 11:55
캐스터 어웨이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캐스트 어웨이는 조난자란 뜻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여자친구 캘리(헬렌 헌트)와 함께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하고 페덱스의 직원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비행기를 타러가는 차안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한다. 
켈리는 자신의 사진에 달린 시계를 선물하고 척은 작은 상자를 선물하며 12월 31일에 같이 열어보자고 하면서  '금방 올게'라고 말하고 비행기를 탄다.
페덱스 전용비행기에 올랐는데, 착륙하기 직전 비행기는 사고가 나고 바다에 추락한다. 구명보트에 몸을 실은 척은 바다에 표류하다 섬에 떠밀러 간다.

 

눈을 뜬 척은 자신이 무인도에 떨어진 것을 알게 된다.
자신과 함께 떠내려 온 택배상자들을 주워 모으고, 무인도를 둘러본다. 
 

아무것도 없다. 완전한 고립이다. 야자수로 허기와 갈증을 채우고, 서서히 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슬픔 속에만 갇혀 있을 수 없었다.

 

 

해변에 자신이 타온 구명보트로 임시 거처를 만들고, 불을 지피기 위해 몇 번의 실패를 하다 불을 피웠다.

모든 것을 쉽게 쉽게 접해본 문명생활을 해 오던 척이 무인도에서 혼자 생존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동굴 같은 곳에서 비를 피하고 살아가게 된다. 모두 혼자의 노력으로 버티어야 하는 삶과 치과 가는 걸 피해왔던 탓으로 아픈 이의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한다. 

택배상자에서 얻은 스케이트날로 이를 빼고,그 충격으로 기절하기까지 한다. 아퍼도 홀로 감당해야 한다. 
무인도의 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서로 반짝이고 속삭이는데 섬에는 오직 자신 혼자였다. 척은 생존은 본능에 따라 개척하고 만들어갔지만 켈리와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은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택배상자에서 발견한 배구공을 얼굴을 그려놓고 친구로 의인화시킨다. 윌슨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아무도 없는 섬에서 같이 의지하고 대화하며 동료처럼 가족처럼 친구처럼 고독을 벗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한 몸처럼 이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있다. 윌슨은 고독이 만들어 낸 존재였다.

 

그는 윌슨에게 "시끄러워 죽겠네" 하면서 바다로 집어던져놓고 바로 후회하고 윌슨을 마치 사람이나 애인을 던진 것처럼 찾아해맨다. 척에게는 지금 기대고 자신을 버티게 하는 건 윌슨이었다. 

외로움은 어쩌면 인간의 가장 무서운 공포인 줄도 모른다.  

하루종일 한마디 말없이 그저 바다만 바라보는 것으로 그는 구조될 것 같지 않은 절망감으로 죽음을 준비하기도 했다.
섬에서 못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었다. 오로지  온전히 혼자여서 주어진 선택권은 언제 어디서 죽느냐였다
죽으려고 할 때 그는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살아있어야할 것만 같았다.비록 희망이 없더라고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살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동굴안에서 생활하는 척
그렇게 4년이 지나고 켈리의 사진을 보며 그리움으로 윌슨과 대화하며 적응하고 있을 때 파도에 밀려 알미늄 판자 하나가 떠내려 온다.
그는 그걸 이용해 뗏목을 만들어 섬을 빠져나갈 방법을 고안하고, 갖고 있는 택배상자에서 비디오 테이프와 나무껍질을 벗겨 줄을 엮어 뗏목을 만든다. 이 섬에서 사는 것보다 차라리 바다에서 헤매는 걸 선택하기로 한다.

그는 무인도에서  1,500일이나 되는 시간을 무인도에서 살다가 거친 파도를 헤치고 윌슨과 함께 빠져 나온다. 빠져나온 그 섬을 바라보며 척은 만감이 교차했다.

바다에 표류되어 태풍을 만나 뗏목의 날개로 사용했던 알미늄 판자도 날아가고, 윌슨이 바다에 떠내려 갈 때 척은 바다에 몸을 던져 윌을 구하기 위해 (구한다가 맞는걸까 하지만 영화를 보면 구한다가 맞다.)안간힘을 쓴다.
나는 윌이 살아있는 존재라고 착각까지 들었다. 뗏목이 떠내려가지 않게  줄을 잡고 윌슨을 구하려 하지만 뗏목줄을 놓치고 뗏목이 멀어지고 윌슨도 멀어진다. 결국 그는 뗏목줄을 잡고 멀어져 떠내려가는 윌슨에게 "미안해 미안해"라고 절규한다. 

그리고   뗏목에 오르고 나서도 혼자 한참을 소리내어 어린애 마냥 울었다. 그에게 있어 윌슨은 그저 배구공이 아니었다. 자신의 곁에서 같이 동고동락한  존재이며 친구였다. 같이 탈출해야 할 자신을 잃은 것처럼 울었다. 외로운 4년을 버티게 해 준 존재가 떠내려 간 것이다.

척은 홀로 바다를 표류하다 드디어 구출이 된다.
막상 살아서 돌아와 보니 켈리는 이미 딴 사람의 아내가 되어있다.  그리움이 없다. 미안함과 서운함, 외로움이 만감이 교차한다. 켈리로 4년을 버틴 삶이었다.
켈리만을 기다렸지만 켈리는 척이 죽은 줄 알고 잊어야만 했고, 척의 무덤과 관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척이 추락한 그 날부터 모든 일상이 멈춰버렸다고 한다. 실종 이후부터 바다를 헤매고 수색하고 다녔고, 주위에서는 잊으라고 했다.
 켈리는 막상 척을 마중하러 공항까지 왔지만 척의 앞에 나오지 못한다. 대신 남편이 와서 그녀가 혼란스럽고 얼이 빠졌다고만 전한다.
파도가 자신에게 희망처럼 돛을 갖다 주어 살아왔지만 척은 켈리를 다시 잃었다. 섬에서는 켈리가 항상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켈리가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살아돌아온 걸 축하해주는 파티에서 잔에 든 얼음물도 마셔보고, 그는 게요리와 너무 쉽게 켜지는 불을 보며 자신이 처절하게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들이 여기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간단하다. 
그는 편안한 침대에서 자지 못하고 바닥에서 잠을 자다 택시를 타고 켈리를 찾아간다.
늦는 일만큼 절대 허용하지 않는 그가  너무 늦어버린것이다. 
"금방 다녀온다고 했잖아"
"미안해"
"나도야. 난 당신이 살아 있을 줄 몰랐어. 당신은 내 유일한 사랑이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거야"
척은 "그 비행기를 타지 말았어야 했어. 그 차에서 내리지 말아야 했어."라고 후회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그녀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이제 척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한다.
바다에 떠내려운 택배를 4년만에 배달해준다.
'이 택배가 제 목숨을 살렸어요' 메모를 남긴다.
그의 말처럼 "계속 숨을 쉬어야 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테니까 "
 
어쩌면 인생자체가 표류이다. 파도에 밀려 어디로 흘러갈지, 파도가 무엇을 가져올지 알수가 없다. 한치 앞도 
손자에게 배구공을 선물하는 할아버지의 생일 축하 메시지처럼  이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세상이다. 또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만들어갈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