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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5.28 딸을 위한 아버지의 뜨거운 도전 [사우스포]
  2. 2019.05.25 아름다운 무협액션 [일대종사]
  3. 2019.05.23 남한산성
  4. 2019.05.23 숨결이 바람될때  /폴 칼라니티
  5. 2019.05.22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한 감동적인 여정 [나의 마지막 수트]
  6. 2019.05.21 크리스틴 스튜어트
  7. 2019.05.19 고야의 유령 : 종교적 탄압과 정치적 탄압에 희생당한 여인
  8. 2019.05.17 옥토버 스카이 : 탄광촌에서 하늘로 쏘아올린 꿈
  9. 2019.05.17 카모메 식당 : 소울푸드인 그녀의 주먹밥
  10. 2019.05.01 스테이션 7 [러시아영화 -우주정거장 살류트 7호 구조임무를 다룬 실화]
  11. 2019.04.30 라이프 오브 파이 : 3D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 반전, 해석 /당신은 어떤 스토리가 더 마음에 드나요?
  12. 2019.04.30 영화 [1987]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진실은 가둘 수 없다.
  13. 2019.04.30 [세가지 색 : 레드] 이렌느 야곱이 매력적인 영화
  14. 2019.04.28 세가지 색 : 화이트 -평등이 테마인 영화
  15. 2019.04.28 세가지 색 : 블루 - 자유가 테마인 영화
  16. 2019.04.26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오스카를 향한 그의 도전,질주, 갈망,성공
  17. 2019.04.26 마이클 패스밴더(Michael Fassbender)
  18. 2019.04.26 폭스캐처 : 미국을 뒤흔든 실제 화학재벌의 존 듀폰의 사건
  19. 2019.04.18 135.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20. 2019.04.18 134. 죽은 시인의 사회 : 로빈 윌리엄스
  21. 2019.04.17 133.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22. 2019.04.17 132. 해바라기 : 김래원의 희망수첩
  23. 2019.04.16 131.카페 드 플로르
  24. 2019.04.13 130.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5. 2019.04.13 129.살인의 추억
  26. 2019.04.11 128.말모이 : 우리말 사전편찬을 위한 값진 걸음
  27. 2019.04.11 핵소고지 : 75명의 전우를 구한 의무병
  28. 2019.04.09 126.소년은 울지 않는다(Boys Don't Cry) : 실화라서 아프다.
  29. 2019.04.09 125. 욕망의 대지(The Burning Plain)
  30. 2019.04.09 <아메리칸 뷰티> 가족의 붕괴,중년 부부의 위기,청소년의 정체성을 다룬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9. 5. 28. 20:31

감독 안톤 후쿠아

영화 사우스포

사우스포란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왼손잡이 투수를 지칭하는 말로 유래되어 복싱에서는 왼손 펀치를 뜻한다.

주인공 빌리 호프(제이크 질렌할)은 라이트 헤비급 복싱 세계챔피언으로 무패 신화를 달리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이다.

아름다운 아내 모린 호프(레이첼 맥아덤스)와 사랑스러운 딸 레일라 호프(우나 로렌스)와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삶에 비극이 시작된 건 시비를 걸어오는 복서 때문이었다.

아내를 모욕하는 말에 끝내 폭발하고 만 것이,

한 순간의 실수로 아내를 잃게 되고, 그의 삶은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무시만 했더라면, 아내 모린의 말처럼 무시만 했더라면.

또 그렇게 믿었던 매니저와 친구들마저 모두 떠나버린다.

아내는 빌리에게 그의 주변에 그를 이용하려는 자들로 들끓고 있다는 걸 경고했었다. 아내 말만 좀 들었더라면, 모린은 그의 아내이기도 했지만 빌리 삶의 관찰자 역할도 했다.

''사람들은 당신을 거품에 빠지게 만들 거야. 그리곤 자기들 몫을 챙기겠지! 하지만 그 거품이 터지면 모두 바퀴벌레처럼 흩어져 버릴 거야.그러면 나와 레일라는 부스러기나 주어야 돼... 부스러기도 없겠지.''

 

모린은 빌리가 경기할 때마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지켰고, 그와 그의 주변인들을 관찰했을 것이다.

진심 어린 충고와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내 모린이었다.

빌리가 그 아내의 말에 귀 기울였다면 아내를 잃는 일도 자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를 이용하려는 바퀴벌레들도 치워버렸을 것이다.

그가 화려함을 잃자 바퀴벌레처럼 다 흩어졌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화려한 타이틀은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을 너무 하고 싶어 진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화려할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보다 가장 어려울 때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가장 진정한 친구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불빛에 온갖 나방들이 몰려들지만 어두운 자신에게 누가 머무를 것인가.

그가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ᆢ화려함에서 부족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항상 높은 곳에 있을 때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자책과 절망 속에서 모든 의욕이 말라버린 채 어둠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이제 하나뿐인 딸의 양육권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는 딸을 지키기 위해 불구덩이라 뛰어들어야 했다. 자신이 가진 것은 주먹뿐이다.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 했다.

절박한 그가 찾아간 곳은 다 무너져가는 동네 체육관이었다.

세계챔피언이었던 그가 아마추어 복서들을 가르치는 체육관을 찾아갔다는 건 그에게 딸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 체육관에는 은퇴한 복싱선수 틱(포레스트 휘태커)이 있었다.

분노로 가득한 빌리에게 틱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싸움법과 왼손잡이 펀치 '사우스포'를 가르친다.

오른손 훅이 주특기인 빌리에게 새로운 무기를 가르쳐준 것이다.

"껍질 속에 숨어있어. 너를 보호해, 그리고 기회가 오면 잡아!"

어쩌면 권투라는 것이 공격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주먹과 자신을 흔드는 주변의 비난과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자신이 잘하는 오른손 훅으로 세계챔피언이 된 빌리지만 그만큼 자신의 전술이 많은 선수들로부터 간파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강점이 다 노출되어 그들은 그걸 분석하고 빌리를 상대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등진 매니저가 상대 선수의 코치라면 누구보다 더 자신의 약점을 간파하고 있을 것이다.

상대에게 다 노출된 전술은 무기로서 약발이 약하다. 상대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한편, 그의 약점을 파고들 것이다.

 

선수로서 우승을 하는 것만큼 그 자리를 지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일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스포츠 세계일 것이다.

산은 올라가면 내려와야 한다.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삶이란 없다.

 

그렇기에 선수가 우승으로 승승장구하거나 화려한 무대에 오른 스타들이 성공하여 부를 가졌을 때 추락할 때를 대비하지 못하면 자신을 지켜내지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

화려함은 순간이다. 그 순간의 즐거움은 지속되지 않는다. 영원한 것은 없다.

 

선수들이 정상에서 추락하는 것을 받아들이거나 견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선수생활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본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삶이 통째로 좌절할 것이고 스스로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최고 정상에 오른 운동선수들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하는 것이 그런 이유이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상에 오른 화려한 명성을 지키고 은퇴를 하고 물러나는 것에 나름 공감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틱은 아내가 그렇게 원하던 진정한 코치였다.

살아있었다면 모린이 정말 좋아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지켜내지 않으면 세상 누구나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뼈저린 경험으로 그가 받아들인 삶이 아닌가

 

빌리가 돈도, 부도, 명성도, 바닥까지 추락하고 나서야 ,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다시 재기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딸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마음도 있겠지만 경험으로서 시련의 껍질을 깨고 나온 것이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듯이

그의 실패로 인해,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가족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임을 알고 피나는 노력을 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내려와 봐야 또 멀리서 봐야 자신의 삶을 관찰자로서 들여다볼 시야가 생기는 것 같다.

그는 자랑스러운 아빠로 거듭나기 위해 생애 가장 어려운 시합에 오르기로 결심했고 피나는 노력으로 죽어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승부를 펼치기 위해 링에 오른 것이다.

 

엄마를 잃은 레일라에게 아버지의 무너짐을 견뎌야 하는 것 또한 너무 버거운 무게인데 아버지와 같이 살 수 없다는 건 더욱 가혹한 형벌이었을 것이다.

보호소에서 레일라가 겪었을 그 슬픔과 절망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기에 레일라의 눈빛에 머무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어떤 것인지 감정이입이 되었다.

아빠의 경기를 눈뜨고 지켜봐야 했던 저 어린 가슴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나가는 듯했다.

긴장감 넘치는 경기와 레일라의 표정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내내 숨이 턱턱 막혀왔다.

링 위에서의 경기가 진행되는 순간, 긴장과 초조함으로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TV 화면으로 아빠의 경기를 지켜보는 레일라의 표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만약 나라면 가족으로서, 딸로서 아빠의 복싱경기를 볼 자신이 없다. 아빠가 시합에서 눈이 찢어지고 맞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엄두를 못 낼 것이다.

그래서인지 경기가 끝나고 아빠에게 온몸으로 달려들어 목을 끌어안은 채

''아빠가 걱정돼 죽는 줄 알았어! 무서웠다고, 정말 걱정 많이 했어!"라는 말에 소름이 돋을 만큼 레일라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posted by 해이든 2019. 5. 25. 00:20
감독  왕가위
''실력이란 두 가지다.

수평과 수직

지면 수평으로 쓰러지고

서 있는 자만 말할 자격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진화순의 마지막 제자로 불산무적 엽문이다.

왕가위 감독의 무협 액션이 어떨지 기대하면서 봤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왕가위감독만의 색채로 무술,사랑,인생이  입혀져 있었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가슴 안에 고이는 듯한 슬프고 쓸쓸한 선율, 무심한 듯 스치는 사랑, 홍콩 무림 고수들의 일대기를 아름답게 펼쳐 놓는다.


영춘권의 전설이고  예술의 경지에 오른 무인 엽문은 마흔 이전에 물려받은 재산으로 끼니걱정이 없었다.

인생에 사계절이 있다면 마흔 이전의 그의 삶은 봄이었다.

말이 적고,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그의 아내 장영성(송혜교)과 평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남방권법의 무림고수인 궁가는 대련을 통해 엽문과 무술을 겨루기 위한 도전장을 내민다.

남방과 북방의 무술을 하나로 합해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기위한 그의 마지막 대련이자 도전장이었다. 

하지만  때가 좋지 않다는 만류에도 그는 자신의 수제자이며 후계자인  마삼을 통해 마지막 남방 권법을 북방에 전수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삼은 엽문이 속한 북방도장을 찾아가 거칠게  위협을 가하고 온다. 

그때 궁가가 자신의 후계자인 마삼에게  이런 말을 한다.

''칼에 왜 칼집이 있는지 아는가?''

마삼은 ''칼의 참 뜻은 죽이는게 아닌 살리는데 있다.''고 대답한다. 

''네 칼은 날카로워. 칼집속에 잘 넣어두어라!'' 엄하게 꾸짖자 마삼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드디어 궁가와 엽문의 대련이 시작되고,궁가의 마지막 대결은 무술이 아닌 생각을 겨루자고 한다.

그리고 엽문의 대답을 들은 궁가는 ''생각에서 질 줄이야!'' 라고 아름다운 패배를 인정하고서 등불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건네고 물러난다.

궁가는 한번도 져 본적은 없지만 생각으로 지게된 것을 깔끔하게 인정한다. 

궁가가 무림고수의 자리를 넘기기위해 엽문과 대련하는 장면은 '이게 정말 진정한 무인의 모습이다'라는 생각에 머물게 했다.

궁가에게는 64수 절세 무공을 물려받은 외동딸 궁이가 있다. 

궁가는 자신의 딸이 의사가 되어 강호와는 무관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엽문에게 진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엽문과 금루에서 대련을 한다.

궁이와 엽문의 대결장면
궁가의 말처럼 궁이는 승부욕이 강했다.

궁가가 딸인 궁이에게 한 말이 있다.

''넌 눈에 승부만 있고 세상이 없어.사람은 멀리봐야해.산을 넘어야 시야가 넓어지지.남의 장점 못 봐주고. 나의 단점을 못보면 사람을 포용못해!''

이 영화에서 가장 명장면을 뽑자면 난 단연 엽문과 궁이가 무술를 겨루는 이 장면이다. 아름다웠다.

무술의 경지가 이런 거구나!

예술이란 무대위에서 가볍게 승천하는 한쌍의 나비춤을 보는 것 같았다.

양조위와 장쯔이

그리고 그들은 이 대련으로 교감하게 된다.서로 마음을 품었던 것이라 여긴다.


1938년 일본의 공격으로 불산이 함락되고 엽문의 집이 일본군의 거주지로 변해 버린다.

그의 봄은 한순간 차거운 겨울이 된다.


일본의 공격으로 가난을 처음 겪는 그에게

먹고 사는 일이 가장 높은 산이 된다. 무술도 가난앞에서 무기력했다. 

엽문은 대일항전시기에 두 딸을 잃고 가장 넘기 힘든 삶이 생활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다. 그는 모든걸 잃었다.돈도, 친구도 가족마저 잃었다. 

무술로도 넘을 수 없는 높은 산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돈을 벌기위해 홍콩에서 무술을 가르치게 된다.


한편 마삼은 일본에 투항하고 봉천협화회 회장이 되어 궁가를 찾아온다.

궁가는 친일파가 된 마삼에게 궁가의 것을 네게 물려줄 수 없다고 발을 들여놓지말라고 내치려고 하자 궁가와의 설전이 벌어진다.

그 끝에 궁가가 죽게 된다.

궁가는 복수하지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궁이는 복수를 하지않고는 행복해질수 없고, 궁가의 것을 뒤찾기위해 기회를 엿본다.

일본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마삼과 기차역앞에서 만나 대련을 하여 승리를 거두고, 궁가의 것을 되찾아온다.

궁이와 마심의 대결장면

궁이와 마삼의 대결장면도 이 영화에서 의미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궁이의 모습이 더욱 빛나보였던 장면이기도 했다.


10여년이 지나 홍콩에서 만난 궁이와 엽문,

궁이는 너무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엽문을 마음에 담은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라며, 하지만 거기까지다.


참 왕가위스럽다. 봄인가 싶으면 겨울이고, 겨울인가 싶으면 봄이지만 봄은 너무 짧아 꽃이 피지 않는다.

왕가위감독이 표현하는 사랑은 정열적인 꽃망울을 펴보인 적이 없다.

감추고, 담고, 묻는게 다이다.

우리 응어리는 바둑판처럼 놔두자는 궁이의 말에 엽문은 당신에게 응어리가 없다. 만약 있다면 짧은 인연이라고 말한다. 뭔가 사랑이 불탔으면 하고 바랬지만 이게 끝이다. 둘의 인연은.



궁가와 궁이는 한번도 진적이 없다.

졌다면 자신에게 진것이다. 방향을 바꿀줄 몰라서 계속 걸어간 것이다. 아버지인 궁가가 가지말라는 길을 말이다.

길은 사람이 걸어 생기는 것이다.

그녀는  궁가가 말한 3가지 수련의 단계 중 자신을 봤고, 천지를 봤다고 할 수 있지만 중생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나는 궁가가 살아있을 때 엽문과 대련하기전 만난 무림고수의 말이 젤 가슴에 와 닿았다.

''요리할 때  불의 때를 보지.

때가 안되면 최고의 맛이 안나고, 때가 지나면 몽땅 타버리지. 사람도 똑같아.

나쁜 짓은 쉽고, 좋은 일은 어렵지. 

억지로 익으면  버리거든!''


이 영화는 기억에 남는 명장면과 가슴을 두드리는 대사가 참 많았다.

궁이와 마삼이 기차역앞에서 무술을 겨루는 장면과 궁이와 엽문이 대련하는 장면은 무술이 아닌 예술적 행위같았다.

 화려한 무술과 함께 인생의 길을 안내하는 듯한 대사들과 양조위와 장쯔이의 연기조합 또한 좋았다.

송혜교가 양조위의 아내로 나오지만 왠지 영화속에서의 존재감이 없어보여 좀 아쉬웠다.

그리고 좀 난해하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일선천이다.

일선천과 궁이가 기차안에서 잠시 스치듯 만나는데그 다음 일선천이 궁이나 엽문과 전혀 연관성없이 혼자 뚝 떨어진 느낌으로 영화속에 들어있다. 

왜 영화속에 집어 넣었는지 잘 모르겠다. 일선천에 대한 부분이 영화속에서 배제하는 것이 더 매끄럽지 않았을까?

아마도 홍콩 무림고수를 다 표현하려는 욕심이 이런 연출을 만들어냈다거나 일선천에 대한 지나친 생략이 스토리를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게 만든 것 같다.

posted by 해이든 2019. 5. 23. 19:41

감독 김지용

 

남한산성

 

인조 14년 병자호란

청의 대군이 조선을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 대신들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청의 대군에게 남한산성마저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 이르고, 우리의 군사들은 추위와 굶주림,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겹게 버티어낸다.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더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남한산성 안에서 대신들과 인조(박해일)의 번민은 깊어만 간다.

그 중심에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예조판서'김상헌'(김윤석)의 의견은 첨예하게 맞선다.

 

인조 (박해일)

 

인조 : 나는 살고자한다. 그게 나의 뜻이다.

예조판서: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저의 뜻이옵니다. 치욕스럽게 삶을 구걸하지 마시옵소서.

인조 : 살고자하는데 왜 죽음을 입에 담는가?

예조판서는 항복은 아니된다고 답서를 보내지 말라고 하고, 이조판서는 칸의 대군으로 세상이 모두 불타고, 온 세상이 무너질 수 있으니 답서를 보내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아뢰고 있다.

이조판서 : 저들이 말하는 대의와 명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옵니까? 죽음은 견딜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삶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대의와 명분이 있는 것이 아니옵니까?

 

이조판서 최명길 (이병헌)

 

인조: 그럼 누가 답서를 쓰겠느냐, 두려우냐?척화를 하자니 칸의 손에 죽을까 두렵고, 오랑캐에게 살려달라고 답서를 쓰자니 만고의 역적이 될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냐?

답서를 쓰겠다는 신하가 나서지 않자 인조가 한 말이었지만, 정작 인조가 가장 무능한 존재였다.

두려워 아무 결정도 못하고 신하에게 떠넘기면서 신하의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조판서 최명길은 역적이 될 각오로 답서를 써 올 리고 살 길을 열게 만든다.

이조판서 : 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라 길이옵니다. 전하께서 밟고 걸어가셔야 할 길이옵니다.

적의 아가리속에서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무능한 왕에게 두 신하는 축복이었다.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 그 둘 모두 백성을 위하는 진정한 성인이었다.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예조판서는 치욕스럽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자는 것이다.죽을 때 죽더라도 싸우다 죽겠다는 대쪽 같은 충이요, 이조판서는 싸워야 한다면 꼭 이기는 싸움이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칸의 대군을 이기기엔 역부족이라 구걸을 해서라도 백성을 살려야 한다고.

강자가 약자에게 못할 짓이 없듯이, 약자도 강자에게 못할 짓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왕이 백성을 위해 그 수모를 감당해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백성없는 왕이 존재할 이유가 없기에 어쩌면 이조판서의 판단이 더 와 닿았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예조판서의 말에도 거부의사를 내놓을 수 없었다. 살기위해 부모를 사지로 내모는 것 또한 차마 자식으로서 백성으로서 감당하기 힘들지 않았겠는가.

백성에게 대의나 명분같은 것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단지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배를 곯지 않는 세상을 바랄 뿐이다.

예조판서는 어린 꼬마 여자아이와 백성들을 보며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예조판서: 백성을 위한 새로운 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

그대와 나 그리고 임금까지 없어져야 백성들이 원하는 새로운 세상이 올 것 같소.

 

예조판서와 이조판서

 

자신의 이익이 아닌 백성과 나라를 위한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참 괜찮은 영화였다. 참 많은 생각을 쏟아내게 했다.

가늠할 수 없는 두 신하의 애국심, 왕이 젤 비겁했다.

대장장이 고수의 연기도 빛이 났다.

박희순의 연기도, 꼬마 여자아이의 연기도 다 훌륭했다.

거창하게 멋을 내지 않고도 묵직한 감동을 자아냈다.

혀 끝이 칼날처럼 강했다. 혀 끝에 충과 애민이 담겨있었다

혀 끝으로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치열하게 의견대립하며 차가움과 뜨거움을 오가면서도 서로를 벌하지 마소서, 왕에게 서로를 버리지 말고 취하라고 청하는 모습은 지금 정치판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라 눈물겨웠다.

서로를 질타하지 않고 의견이 다를 뿐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인정해주고 있다.

뜻이 같지 않다 하여 배척하는 지금의 정치판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서로가 의견이 다른 것을 논쟁으로 점철시켜 나가는 진정한 정치인 것이다.

다른 것을 설득하거나 설득당하거나 중간지점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 진정한 논쟁일 것이다.

자신의 재산만 불리고 권력만 취하는 영의정 같은 정치인만 가득한 지금의 정치판,

명예로움이 무엇인지, 정의로움이 무엇인지 아는지 걱정이 앞설 뿐이다.

지금의 여당과 야당이 자신들의 기득권 싸움으로 한낱 길거리 정치로 전락시킨 것에 비하면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크다.

사익에 눈이 멀어 뻔히 보이는 수작질만 하는 몰지각한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영의정의 모습을 보고 있다.

국민들은 영화 한 편만으로도 영의정 같은 리더가 나라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을 슬퍼한다.

그가 충을 논하며 내뱉는 말이 거짓됨을 한눈에 파악하고 혐오했다.

우리는 보고 듣고 판단 한다. 그들이 뱉는 막말에 귀를 닫고 싶다.

검은 속이 내장 빠져나오듯 비치는데도 국민을 위한다는 되지도 않은 소리들을 지껄이고 있다.

제발 말장난이나 막말을 그만하고 이조판서와 예조판서처럼 논쟁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막장 드라마, 막말 정치 말고 이들처럼 논쟁한다면 어찌 우리가 정치인들을 비난하겠는가

진정 이 낡은 정치가 다 사라져야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올 것 같다.

 

posted by 해이든 2019. 5. 23. 18:07
서른 여섯살에 그는 정상에 올랐다. 

대학원학생에서 신경외과 교수로 가는 여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열다섯달만 더 버티면 레지던트 생활도 끝나고  화려하게 신경외과교수로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36살의 나이에 폐암에 걸려 그동안 삶을 치열하게 살며 쌓아올린 것들이 다 부서져버린다. 

잠재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암이란 것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환자들이 견디고 버틴 삶을 따라가야 한다. 

죽음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고 그렇게 되뇌였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불안한 요소이다. 

설사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전까지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었기에 그는 항암치료를 받아가며 6년차 레지던트 수련의 생활을 이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7년차 생활을 수행하던 중 암이 폐에서 뇌까지 전이되어 호흡조차 힘들어지고 목에 삽관을 해야만 연명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자 그는 연명을 거부하고 자발적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소생치료거부의사를 하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참 힘들었다. 

"난 준비됐어" 라고 폴이 말하고 이제 생과 사로 갈라져 버릴 순간앞에서 그 어떤 말이 가장 적절한지 꺼낼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모르핀을 맞으며 생을 마무리할 남편을 자식을, 아버지를 보낼 준비는 이 가족들에게 되어있을까,

떠날 준비는 되었는데 과연 가족들은 보낼 준비가 된 것일까,

그의 주변으로 가족이 모여 들었고, 아직 죽음이 뭔지 모를 아이의 볼에 아빠의 볼에 갖다주는 아내, 그녀는 가슴이 미어져 그의 침대에 올라가 같이 함께 누웠다. 

마스크가 제거되고, 모니터가 치워지고 모르핀이 정맥주사를 통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어린 딸의 밤을 폴의 빰에 가져다 대준다. 그리고 그녀는 잠이 오는 아이와 숨이 지는 남편을 위해 딸이 잠들때 불러주는 노래를 조용히 불러주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너무 절절했다.

그는 의사로서, 또는 환자로서 죽음과 대면했고, 또 씨름하다가 죽음을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가족들에게서 육체를 거두어 갔다. 

이 책은 폴 칼라니티의 회고록이다.

그의 인생은 미완성일지라도, 또 그의 육체는 36살에서 멈추었지만 저 세상에서 그는 못다한 일들을 해 나갈 것만 같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의사였다. 환자를 살리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살아났다고 해도 결코 예전같지 않을 환자와 가족이 일상으로 적응할 수 있게 배려하고 마음까지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의사였다.
posted by 해이든 2019. 5. 22. 15:24
감독 파블로 솔라즈

삶의 끝 가장자리에서 자식들에게 남은 재산을 넘겨주고,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고집스런 손길로 손녀와 손자들을 꼬드겨 사진을 찍고 있는 아브라함,  

그저 주변인들에게 행복한 인상을 남겨놓고 싶은 그는 자신의 삶이 그런대로 마무리되어도 크게  후회가 남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서 고이 잠들어 있다 이제서야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수트'를 보는 순간,  그의 표정이 달라진다.

잊었었다. 아니 묻었었다. 

퍼렇게 멍든 과거를 잡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아 그는 애써 칼날을 갈지 않고 무뎌지게 두고 외면했던 것 같다.

폴란드 여행을 떠나려는 아브라함
그는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폴란드로 가는 긴 여정길에 오른다.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 곳, 폴란드로 가기 위해 그는 그동안 연락 한 번 주고받지 않았던, 생사도 알수 없는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비행기에 오른다.

다리도 성치 않은 아브라함에게는 이 여행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지만 죽기전에 꼭 지키고 싶은 그 약속, 

그것은 자신이 만든 마지막 수트를 친구에게 전하는 것이다. 

70년동안 지킬 수 없었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88세인 그가 폴란드로 가는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만난  따뜻한 사람들의 손길로 이 여정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유태인으로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부모와 여동생이 독일나치에 의해 학살되었다. 

그는 가까스로 도망쳤고, 그런 그를 구해주고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준 친구에게 잊지못할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생의 끝자락에서 용기를 내 고마움을 전하려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 약속한 수트를 전해주는 게 그의 삶에 있어 마지막 여정인줄도 모른다.

폴란드를 글로 적어서 보여주는 아브라함
그는 폴란드로 가기 위해 독일의 땅을 밟아야 되는 사실에 당황한다.

그는 매표소앞에서 독일땅을 밟지 않고 폴란드로 갈 수 없냐고 질문을 한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폴란드'가 금지어인냥  입으로 발설하지 않고 쪽지에 적어 펼쳐보이기까지 한다.

독일 땅을 밟을 수 없다고 폴란드행 기차표를 끊으려고 하지만 독일땅을 거치지않고 폴란드를 갈 수 없다는 조롱섞인 비웃음이 주위에서 흘러나온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독일 인류학자인 그녀가 다가와 말을 건다.

하지만 그녀가 독일인이라는 걸 안 아브라함은 그녀와 말도 하지 않으려고 멀리 떨어져 앉고 곁을 내주지 않는다. 

독일을 통하지 않고는 폴란드로 갈 수 없다는 걸 안 아브라함은 어쩔 수 없이 기차를 탄다. 

그리고 기차안에서 아까 그 독일 인류학자가 다가온다. 과거의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사죄를 구하고 아픔을 위로하는 그녀의 진정성에 아브라함은 그녀가 내미는 손길을 받는다.

엉뚱하게도 내가 기차에서 내렸을때 독일땅을 밟지 않게 해달라는  엉뚱한 제안을 하지만 그 마음이 그 아픔이 얼마나 깊은지 느껴지기에 웃을 수가 없었다.

독일땅을 밟지 않으려는 그의 발
그녀는 기차에서 내려 자신의 트렁크에서 옷을 다 끄집어내서 그가 땅을 밟지 않게 옷을 카페트처럼 깔아주었다. 

저런다고 밟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나 싶으면서도 그녀의 노력도 아브라함의 마음도 고스란히 전해져 오기에 그 일련의 행동들이 예술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나치에 의해 어떻게 죽었는지를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독일의 만행은 이제 입이 아플 정도라 그만 하고자 한다. 

독일 인류학자와 가까워진 아브라함
그는 묵고있던 호텔에서 소지품을 다 도둑맞고 빈털털이가 되기도 하고, 정신을 잃어 병원에 실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절단해야만 하는 다리이지만 얼마남지 않은 삶을 굳이 절단하지 않는 선택으로 마무리짓고, 간호사는 그의 약속이행을 위해 기꺼이  동행인이자 보호자가  되어 아브라함의 친구가 있는 주소지로 찾아간다.

70년이 지났다. 그는 막상 여기까지 왔지만 그가 죽었을까, 아니면 예전의 그자리가 없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돌아서고 싶어했다.

슈트를 전달하는 것보다 그 친구가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까 더 두려웠던 것이었을까.. 아니면너무 늦게 온 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을까,그의 초조함과 두려움이 이해되었다. 

나라도 만감이 교차할 것 같았다.

오고 보니 모든 것이 두려웠던 그때처럼 다가왔을 것이다.그의 표정이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모든 어제를.
마직막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여정
건물은 예전 그대로 존재했다.

기억을 따라 건물앞에서 문을 두드린다. 아무 인기척이 없다. 앞집에 벨을 누르고 물어봐도 모른다는 말이 들려온다.

실망하고 돌아서 나오며 익숙한 계단을 발견한다.

문앞에 쓰러진 자신을 안고 친구가 지하계단으로 데리고 내려가 자신을 숨겨주고 돌봐줬던 그 곳이었다. 

다리가 불편한 아브라함은 그 자리에 서 있고, 간호사가 그 계단을 내려가 확인하러 간다. 그 순간 아브라함 눈에 한 노인이 들어온다. 

앞에 보이는 창문안에 앉아있는 노인과 아브라함이 눈이 마주치고 두 사람의 눈시울은 이내 뜨거워진다. 

살아있다. 살아 있었다. 

노인은 이내 밖으로 나와 아브라함을 끌어안는다. 아무 말이 필요없이 그 둘은 깊은 포옹으로 70년의 세월을 어제처럼 끌어안았다.

그의 수트는 주인을 만났고, 아브라함은 약속을 지켰다. 

참 뜨겁고 저린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까칠하고 고집불통 같았던 노인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18살의 아브라함 청년이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 살아났다.
posted by 해이든 2019. 5. 21. 02:23


posted by 해이든 2019. 5. 19. 11:35
감독 밀로스 포만

고야의 유령

프란시스코 고야는 스페인 궁정화가로서 왕족, 귀족, 정치, 종교적 인물 등 다양한 상류계층의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렸고, 또 성직자들을 조롱하는 듯한 외설적인  종교화도 다루었고, 스페인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된  유화, 동판화, 석판화 등 다양한 주제를  작품으로 표현한 화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격동의시대를 산 증인으로서 이 영화에서 고야는 당시 스페인 역사의 관찰자나 기록자, 목격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궁중화가 고야(스텔란 스카스가드)의 모델이었던 이네스(나탈리 포트만)는 누명을 쓰고 종교재판소에 갇히게 된다. 고문을 당하자 허위자백을 하게 된다.

당시 스페인은 고압적인 교회와 무자비한 전제군주, 나태한 귀족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이단 종교에 대한 심판이 다시 시작되고 과거처럼 마녀사냥으로  단지 돼지고기를 안먹는다는 이유로 이교도로 몰려 이네스가 걸려든 것이다.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고야의 그림에 그려진 그대로 악마의 모습이다.

이네스의 아버지 토마스는 부유한 상인으로 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고야을 찾아와 종교재판소 로렌스 신부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프란시스코 고야 역을 맡은 스텔란 스카스가드


고야와 로렌스 신부(하비에르 바르뎀)를 집으로 초대한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고문에 의해 자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라진 심문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심문에 의하면 없는 사실도 불게 된다고 말하자 로렌스신부는 어이없는 강변을 늘어놓는다. 

신앙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그럴 수 없다고 한다.

토마스는 증명해보이겠다고 아들과 함께 신부를 밧줄에 묶어 종교재판소를 모독하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고문한다.

결국 고문에 못이겨 문서에 허위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토마스는 성당재건 비용을 종교재판소에 기부하며 로렌조신부를 돌려보낸다. 자신의 딸을 풀어달라고 말이다.

로렌조는 종교재판소에 그녀의 석방을 청하지만  심문에 의한 것이 부당하다는 걸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로렌조는 감옥에 있는 이네스를 찾아가 나체로 있는 그녀를 겁탈하고 종적을 감추어버린다.

딸을 풀어주지않자 토마스는 왕을 찾아가  아무리 신념이 강한 신부도 고문을 하면 허위 자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로렌조신부의 종교재판소를 모독하는 문서를 보여주며 딸을 석방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청한다.

이로 인해 종교재판소를 욕보인 로렌조의 지위를 박탈하고 고야가 그린 로렌스 초상화를 불태운다. 
종교재판소에 갇힌 이네스(나탈리 포트만)


스페인 국민들은 부패한 왕족과 타락한 교회로 고통받았고 국민들은 왕실을 혐오하고,종교재판소를 증오했다. 그래서 스페인계몽주의자들은 프랑스와 힘을 합쳐하루라도 빨리 억압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15년 후  유럽전반에 걸쳐 반교권주의가 확산되었고 스페인 계몽주의자들이 프랑스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프랑스혁명으로 격동의 시대를 맞이한다.

나폴레옹이 스페인 해방과 프랑스 혁명의 자유,평등,박애라는 혁명의 이상을 수호한다는 미명아래 스페인 시민을 무참히 학살한다.

스페인 국민들에게  나폴레옹의 군대 역시 침략자요 점령군에 불과했다.

마드리드 폭동은 프랑스 군대에 의한 유혈사태로 진압되었고 ,마드리드에서 일어났던 사태와 프랑스군대에 의해 자행된 잔인한 살육은 고야가 그린 그림에 묘사되어있다. 

그는 판화집을 통해 그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얼마나 참혹하고 어리석은 일이 벌여졌는지 기록자로서 화가의 자리를 지켰다.

그는 부르봉 왕조, 종교재판소, 프랑스군, 영국군 모두를 위해 일했던 화가이다. 


시대의 재앙인 나폴레옹은 친 형 죠셉을 스페인 왕좌에 앉혔다.

그들은 나폴레옹의 이름으로 인권선언 및 시민의 이름으로 스페인 종교재판소를 폐지하고, 종교재판소 죄수들을 다 풀어준다.

  
나폴레옹에 의해 폐지위기에 몰린 종교재판소


오랜 감옥생활로 생기를 다 잃어버린 이네스는 완전히 망가진 몰골로 가족들을 찾아가지만 가족은 다 죽고 집은 엉망이었다.

청력을 잃은 채 살아가는고야를  찾아간  이네스는 감옥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찾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청한다.


한편 로렌조는 나폴레옹 정권의 간부가 되어 계몽주의자로 스페인으로 돌아와 이성과 혁명을 통해 세상을 구원한다고 종교재판소를 기소한다.


고야는 이네스의 딸 알리시아를 찾기 위해 로렌조를 찾아가고 로렌조는 그녀가 정신이 이상하다고 정신병원에 보낸다.

로렌조는 알리시아를 수소문한다.

알리시아는 수녀원에 뛰쳐나가 거리의 여자가 되었다.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고야는 이네스와 똑같은 알리시아를 보고 이네스가 딸을 낳았다는 말이 사실인걸 알게  되고 로렌조를 찾아가 알리시아를 봤다고 이네스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한다.

고야는 정신병원에서 이네스를 데리고 나와 알리시아와 만나게 해주려고 한다.

로렌조는 알리시아가 자신의 야망실현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 마드리드 모든 창녀들을 잡아 미국의 노예로 보내버린다.

끝내 알리시아를 목전에 두고 알리시아는 노예로 잡혀가고 이네스와  만나지 못한다.

버려진 아이를 안은 이네스


개혁이  진통을 겪고 스페인 사람들은 페르난도 왕자가 프랑스에 볼모로 사로잡히게 되자 전국적으로 항의 시위에 돌입하게 됐고 조셉이 스페인의 군주로 오르자 스페인에서는 혁명이 일어난다. 

스페인군은 영국과 포르투칼군과 연합하여 프랑스에 대적한다.

사제들 또한 신을 믿지 않는 프랑스를 비난하며 시위전면에 참여한다.

영국군이 포르투갈에서 스페인 국경을 넘어 진격하고 있다. 스페인 국민들은 영국군과 동조하여 조셉 프랑스군을 물리친다. 

종교재판소와 페르난도 7세가 다시 힘을 얻어 반동정치를 시작하게 된다.


나폴레옹의 시대가 저물고 도망가던 로렌조는 스페인사람에게 잡혀 결국 사형에 처해진다.


돼지고기를 싫어한다는 이유하나로 한 여인의 인생을  20년동안 감옥에 가두고 생을 파괴한 종교재판소는  신을 빙자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사악한 집단이요 악마들이다.

개혁을 이유로 행한 정치적 탄압 역시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드러낸 괴물들로 선량한 백성을 지배하려는 침략자일뿐이다.


이교도를 배척하는 종교적  탄압도 나폴레옹으로 이성과 계몽으로 지배하던 시대의 정치적 탄압도 그릇만  권력을 옮겨담은 사악한 가해자일 뿐이다.

어느  누가 권력을 잡든 국민만 고달프다. 
posted by 해이든 2019. 5. 17. 23:14

애팔래치아산맥 부근의 작은 탄광마을!

1957년  냉전시대의 소련에서 최초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다.

마을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하늘을 가로지르는 위성의  모습을 바라본 호머(제이크 질렌할)는
로켓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친구들과 모여 로켓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호머는 꿈을 위해 아지트를 만들고 재료를 찿아다니며  여러가지 방법으로 로켓를 만드는 것을 연구하게 된다.
계속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들이 굉장히 열정적이다.

그리고 완성된 로켓으로 시험발사를 하게 되고, 마침내 로켓은 하늘을 높이 날아오르는데 성공한다.


당시 미스 라일리(로라 던) 선생님은 이들의 용기를 북돋아주며  열심히 노력해 과학박람회에 출전해 볼 것을 권유한다.

그렇게 시작된 도전은  마을에서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하고 여러사람의  도움과 응원으로 그들의 꿈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완고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존 히컴(크리스 쿠퍼)은 아들 호머의 꿈이 덧없는 몽상이라며 반대하면서 갈등이 깊어진다.

탄광마을에서  자식은 대를 이어 광부가 되어 생계를 이어갈 미래를 당연히 받아들여야 했다.

희망이 없었다.폐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매몰되는 것이 광부의 삶이었다.그렇다고 거기서 자라는 아이들까지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호머의 형은 미식축구선수가 되어 대학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호머도 그 방면으로 나아가길 바라지만 호머는 소질이 없었다.

로켓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지만 아버지의 사고방식으로 호머의 꿈이  이해받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어느 날 쏘아올린 떨어진 로켓을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근처에서 산불이 나고 방화범으로 호머가 지목되면서 더 이상 로켓을 만들수 없게 된다.


설상가상 탄광에서 사고가 나고 아버지가 다치게 되면서 호머는 다친 아버지로 인해 꿈을 접고 탄광촌으로 들어가 
생계를 책임져야 할 현실의 벽에 서게 된다. 호머는 학업을 중단하고 탄광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런 호머에게  미스 라일리 선생님는 포기하지 말고 꿈을 좇으라고 한다.
선생님의  격려로 호머는  탄광일을 그만두고 다시 꿈을 펼쳐보기로 한다.
호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로켓을 만들고  산불이 자신으로 일어난 것이 아님을 입증해낸다.
호머는 학교장의 지원으로 과학경진대회에 참가해 1등을 하고 대학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며 금의환향한다.

호머는 이제 지역 전체의 자랑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마지막 로켓을 발사하려는 순간 호머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꺼이 발사버튼을 아버지에게 건넨다.
고지식한 아버지도 아들의 꿈을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아들의 꿈을 헛된 것이라 현실에 안주하라는 아버지의 교육과 부딪혀 포기하고 탄광마을에 갇혀 있을 뻔 했던 호머의 재능과 열정을 알아봐 준 과학선생님의 격려로 인해 답답한 현실의 틀을 뚫고 꿈이 실현된 실화라는 것이 극적이다.

이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와 굉장히 비슷한 스토리이다. 보는 내내 빌리와 호머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게 됐다.
posted by 해이든 2019. 5. 17. 00:17

이 영화를 어떤 느낌이라고 설명해야 적절할까

한마디로 재미는 없다.그냥 잔잔하다.

그냥 작은 숲길을 산책하듯 걷는 느낌,

여유로운 걸음 폭으로 어제 지나간 길을 또 걷는 일상같다. 

핀란드는 숲이 있어 편안한 느낌이 들고  사람들의 움직임에도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한적한 마을의 여유로움과 평범함이 해가 뜨고 지는 단조로움처럼  진행되는 것 같지만 그 나름 움직이며 변화하고 있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똑같은 하루는 없다. 정지된 것도 없다. 흘러가고 있다. 삶이란 물결처럼.

똑같은 감정도 똑같은 시간도 없다. 다 다른 듯 닮아있고 닮은 듯 각자 다른 사연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게 아직도 많고 사람들은 다들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산다.

세상 어디에 있어도 슬픈 사람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외롭다. 

음식은 그런 사람들에게 단지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더불어 마음을 꺼내고 담아주는 예술이고 창작이다.

음식은 누구에게나 세상에서 가장 큰 치료제라고 본다. 

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지친 삶을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해낸다고 본다.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는 핀란드 어느 마을 길모퉁이에 작은 일식당을 차린 일본인 여성이다.

동네사람들은 동양여자가 차린 식당안을 기웃기웃 호기심을 가지지만 식당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한달내내 손님 한 명 없다.

하지만 사치에에게는 왠지 조급함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게를 지나가는 이들의 관심에 엷은 미소와 목례로 화답한다.


그녀는 여기서라면 모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이곳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레스토랑이 아닌 그저 근처를 지나가다가 가볍게 들릴 수 있는 동네식당을 차린 것이다. 누구든 뭔가 먹어야 살 수 있는 법이고 그녀에게 주먹밥은 소울푸드였다.


그래 주먹밥같은 영화다.

주먹밥을 대표메뉴로 손님을 기다리는 여성 사치에는 손님 하나 오지 않는 날에도  꿋꿋이 매일  음식준비를 한다.

그저 여유롭게 받아들이며 기다리는 여자,사치에

누군가 자신이 대접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이 좋은 그녀는 정성으로 음식을 담아낸다.

그녀는 세상 마지막 날에는 아주 좋은 재료를 사다가 사람을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음식으로 따뜻한 인연을 맺고, 배려를 식탁에 차려놓는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잘 살아간다는 건 그녀에게 그렇게 다른 삶이 어울려 맛있는 비빔밥이 되고 주먹밥이 되는 것이다..

주먹밥 하나로  따뜻한 인연을 채워가는 그녀로 인해 가게는 각자 아픈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성껏 차려진 음식으로 서로에게 따뜻한 배려와 위로를 건넨다.

크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말들을 끄집어 내고 서로 편안하게 고개 끄덕끄덕 하는 전개가 펼쳐진다.

작은 숲속에서 새소리를 듣고 그 지저귐이 위로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는 내 안에 존재한다. 숲속 벤치에 앉아 숨만 몰아쉬고 나와도 고민 주머니 덜어지고 비워진 가벼움을 선사받는 것처럼.

고민이 있을 때 굳이 말하지 앓아도 따뜻한 한 끼를 내주고,  옆에서 그저 묵묵이 같이 앉아 있어주고, 차한잔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느낌이 이 영화속에 있다.

그렇게  가볍게 낼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 한 조각을 섭취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식당이란 개념보다 집에 들린 지인들에게 그저 밥한끼 대접하는 사람같다.

첫손님으로 찾아온 토미는 일본만화 매니아로 독수리오형제의 주제가를 사치에에게 알려달라고 한다.

또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는 목표도 없이 여행을 떠나온 여성이다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펼쳐 손가락으로 찍은 곳이 핀란드라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사치에는 미도리를 자신의 집에서 묵게 해준다.


미도리는 카모메식당에서  메뉴개발도 같이 하며 식당을 돕게 된다.

더 맛있게 커피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손님의 손길도 있고, 

일본에서 핀란드로 오는 중에 항공사의 실수로 짐을 잃어버린 마사코(모타이 마사코) 또한  사치에의 배려로 옷을 빌려입고 여행을 즐기며 안정을 찾는다.

남편의 불륜으로 상처받은 여자 또한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의 도움으로 자신을 회복해간다.

매일같이 사람없는 식당을 밖에서 구경만 하던 이웃들도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장사가 잘 되려면 음식만 맛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기다림인 줄도 모르겠다.

내 작은 배려의 손길이, 내 정성이 전해지는 순간까지 기다려야 되는 일인 것 같다.

이방인으로 핀란드사람들과 이웃이 되는 과정속에 사치에의 기다림과 배려가 어느새 만석을 만들어 낸 것이다.  

거창하게  위로하고 나서지 않아도 묵묵히 그저 모여 따뜻한 밥 한끼하는 게 정이 붙고, 위안이 되고, 쉼이 되어간다.

영화에서 분주함이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보통사람들처럼 흐르는 것이다.


사치에의 작은 배려가 그녀의 단조로운 식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처럼 빨리빨리 무언가를 요구하고 결과가 나기를 재촉하는 것보다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아는 사치에의 모습이야말로 깊은 신뢰와 성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posted by 해이든 2019. 5. 1. 17:26

감독 클림 시펜코

러시아영화 스테이션 7

이 영화는 1985년 우주정거장인 살류트 7호 구조 임무를 맡았던 두 우주비행사의 도전을 다룬 러시아 영화로 실화를 각색하여 만들어졌다.

갑자기 러시아의 20톤에 달하는 살류트 7호가 제어력을 상실하게 된다.

러시아의 우주정거장이 제어가 안 되는 상황이 전 세계 뉴스로 보도된다.

소련의 죽은 우주 정거장이 언제까지 궤도에 있을지, 어디로 추락할지, 추락 지점이나 시기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인구가 많은 지역에 추락할 경우 큰 참사가 우려되는 가운데 소련이 자체적으로 해결에 들어간다.

무엇보다 원인 파악을 위해 직접 가야 하는 데 미국 나사가 챌린저호를 발사하는 것으로 인해 시간이 굉장히 촉박해진다.

하필이면 냉전 중에 러시아의 우주 프로그램의 핵심시설을 잃었고, 만약 미국이 러시아의 우주정거장을 가져갈 경우 러시아로서는 침입과 다름없으므로 그건 막아야 한다.

미국인들보다 먼저 정거장으로 가야 하고 아니면 우주정거장을 격추시키라고 말한다.

스베 틀리나 관제소 발레리는 격추하게 되면 현재 궤도를 돌고 있는 위성들이 파편으로 다 망가질 것이고 10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우주 프로그램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스베틀리나 관제소 발레리와 직원들

발레리에게 22일의 시간이 주어진다. 정거장을 수리 못한다면 바다에 추락시켜야 한다.

우주 프로그램과 인류를 구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다.

발레리는 우주정거장 수리를 위해 우주비행사 블라디미르와 빅토르(파벨 데레비앙코)로 특별구조팀을 긴급 투입시킨다.

빅토르의 아내는 지금 만삭으로 남편이 가는 것을 만류하고. 블라디미르의 아내 역시 남편이 가는 것에 반대하지만 가족을 뒤로하고 우주정거장을 향해 떠난다.

회전하는 우주정거장에 수동으로 도킹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인류가 달성한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고,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이며 우주 비행사들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것이 중론이다.

예상과는 달리 우주비행사 블라디미르와 빅토르는 두 번째로 우주정거장에 수동 도킹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우주정거장 살류트 7호

 

불가능할 것 같은 수동 도킹을 성공시키고 살류트 우주정거장에 들어가 보니 모든 것이 꽁꽁 얼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수리에 들어간다.

관제소는 음식과 산소 무게가 적어 실패할 경우 희생될 수밖에 없고, 얼 정도로 추운 곳에서 두 우주비행사가 버티는 건 너무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고 우주정거장을 바다에 버리고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이렇게 온 이상 포기할 수 없다던 블라디미르(블라디미르 브도비첸코프)로 인해 5일간의 말미를 준다. 6일째 답이 안 나오면 정거장을 버리고 지구로 귀환하기로 한다.

얼어있는 눈을 녹이자 물방울이 무중력에 의해 떠 있는 모습이 너무 예술이었다. 비눗방울 같았다.

얼어있는 우주정거장 내부

두 사람은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회로 점검하고 정거장 수리를 위해 물기를 닦아내고 말리고 생명유지장치 점검을 끝냈지만 우주선은 작동이 되지 않았다.

문제점을 찾기 위해 블라디미르가 정거장 밖으로 나간 사이 물 한 방울이 소 류즈호로 들어가 합선이 되면서 화재가 나고 빅토르가 화재로 인해 연기를 많이 마셔 상태가 악화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발레리는 고작 20톤짜리 고물 고치겠다고 동료들의 목숨을 담보로 얻는 것이 무엇인지 회의감이 들고 고뇌에 빠지게 된다.

더 이상 러시아는 최점단 기술을 미국에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격추시키기로 결정한다.

우주를 떠도는 우주정거장

폭발로 제어는 불가능하고 산소부족으로 한 명 밖에 구조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발레리는 블라디미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블라디미르는 아내 니나(마리야 미로노바)와 딸과 마지막 통신을 한다.

아내 니나는 "돌아와"라고 말하고,

빅토르는 혼자 살아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냐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자고 한다.

그리고 우주정거장 밖으로 이동해 정상 가동될 수 있게 있는 힘을 다 쏟아 해머로 내리쳐 끝내 해낸다.

불가능한 임무를 성공한 우주 비행사로 인해 우주정거장이 계속 작동할 수 있게 됨으로 영웅들의 도전이 빛을 발한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픽션이 가미되어 사실과 다른 각색된 부분이 있기는 하나 배우들의 연기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우주정거장에서의 보이는 물방울과 태양과 우주공간이 주는 환상적인 그림 또한 모두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를 향한 국가 간의 경쟁력을 엿볼 수 있었던 것으로 미국에 기술을 뺏기지 않으려는 물밑 신경전과 우주비행사가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들까지 긴장감 있게 잘 풀어낸 것 같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30. 19:52
라이프 오브 파이
감독 이안
 

 

3D영상에 감탄하느라 놀랐던 영화,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 멍했던 영화,
그리고 흐르게 두었다.
삶을 끊임없이 흘려보내다 보면 마치 내가 걸치고 있는 옷처럼 내 삶에 걸리게 된다.
 
항상 두려움을 가지고 살지만 내가 두려워한다는 걸 숨기고자 하는 의도는 수시로 현실을 찔러 댄다. 
느는 건 의심 밖에 없다고 말하는 삶도 있다. 
그러면서도 믿어야 산다고도 말하는 이도 있다. 
 
정답은 없다. 다 알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의심한다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믿음을 더 굳게 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믿고 싶은 것과 믿는 것을 혼동하며 살기도 하고, 자신을 내어 놓는데 인색하여 믿음마저 담지 못하는 삶도 있다. 
 
세상은 수많은 지식을 우리에게 담아주면서 정작 가슴안에 뭘 채울지 제대로 쥐어주지 않는다.
 
"당신은 어떤 스토리가 더 마음에 드나요?"
주인공 파이의 질문에 난 아직도 답을 못 정했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동물원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지로 결정했다. 
인도를 떠나는 게 파이를 비롯해 아버지에게도 힘들었을 일이다. 
가족은 동물들과 함께 캐나다로 가는 배에 탄다.
 
 
그러나 태풍이 배를 덮치고 가족들마저 삼켜 버린다. 겨우 구명보트에 오른 파이(수라즈 샤르마)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든 파이 앞에는 구명보트 위에 자신과 다리 다친 얼룩말,오랑우탄과 하이에나와 함께 바다위에 동동 떠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감정을 내놓기도 전에, 혼자 살아 남은 막막함을 소리 지르기도 전에, 배고픈 동물들과 달랑 보트라는 공간에 놓여 있게 된 것이다. 
하이에나는 얼룩말을 공격하고,파이를 지켜주려던 오랑우탄까지 공격 받는다. 
하이에나에게 화가 난 파이는 분노로 공격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보트 천 아래에서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튀어나와 하이에나를 죽이고 만다.
이 보트안에서도 약육강식의 사슬을 여실히 드러낸다.
 
 

 

보트 안에 호랑이와 파이만 남게 된다. 위협적인 존재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지켜내야 한다는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스며 들게 된다.
뱅갈 호랑이의 습격에 맞서 팽팽히 투쟁하고, 바다의 위협적인 생명체로부터의 습격에 맞서야 하고, 끊없이 이어지는 날씨의 습격에 파이는 필사적으로 맞선다. 
그리고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같이 생존하기 위한 타협점도 찾아가며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리처드 파커와 어느정도 거리도 가까워진다. 서로 같은 처지였던 그들 역시 생존을 위해 서로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걸 인지하게 된 것이다. 그런 힘든 여정 끝에 파이는 사람들에게 구해지고, 파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자연은 자신의 가족과 행복을 다 가져간 무서운 존재이다가도 자신에게 먹을 것과 살아가게 할 원천적인 것으로 고마움을 갖게도 한다.
 
소중한 걸 가르쳐주기 위해 다 빼앗아 가는 공포를 주고, 또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우리를 조련하는 것 같다. 
마치 '이게 인생이야'하고 말하는 신처럼 군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나에게,만질 수 있는 것만 느끼는 나에게 신은 항상 밖에 있었다.
사람들의 의심이 신을 만들고 자신의 가슴 안에 믿음을 담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가슴 안에 신을 만들어 품는 것이라고 말이다. 
누구나 생존에 순응한다.  살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며 삶을 배워간다. 
 
파이는 반전의 카드를 내 놓는다.
다리가 다친 얼룩말은 다리를 다친 불교신자였고,
하이에나는 비열한 주방장,
자신을 구하려던 오랑우탄은 파이의 엄마,
그리고 뱅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바로 파이 자신이다.
 
여러분이라면 구명보트에 탄 것이 동물이기를 바랍니까? 아님 사람들이기를 바랍니까?
 
"전 리처드 파커가 없었으면 아마 죽었을거예요."
 
인간은 나약한 동물이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강한 생존본능이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을 살아갈 수 있게 지탱해 주기도 한다. 
파이의 리처드 파커처럼 
우리를 죽게 하는 것은 물이나 자연재해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천막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뱅갈 호랑이는 결국 내 안에서 튀어나온 나의 또다른  자신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위기의 순간에도 날 구해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내 안에 답이 있다. 내 안에 믿음도, 의지도, 집념도, 신도 존재한다고
내가 하기에 따라 내 인생은 흘러갈 것이다. 이 영화는 그리 말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스토리를 갖고 싶냐고 묻는 것이다.

원작 소설 <파이 이야기>에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30. 19:49
1987년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6월 민주항쟁
그 6월이 되기까지 이어달리기를 하듯 우리나라 국민들은 독재세력이 만들어놓은 덫에 걸리지 않고 민주주의 빛을 보기 위해 몸부림 쳐야 했다. 
영화 1987
이 영화는 우리를 1987년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장준환 감독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1987년을 살았던 사람들이, 그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이  감동받기를 바랬다면 내게는 그 이상이었다.

 

1987년을 그대로 갖다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만큼 그때 그 시절이 영상에 잘 담겼고, 민주화를 갈망하던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과 행동으로 어느새 개입되어 들어갔다. 
그리고 명동성당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진실의 불길을 내 뿜어준 것에 대한 벅참이, 언론이 두려움없이 휘갈겨주는 붓질에, 공부보다 나라의 흥망성쇠에 청춘을 태우는 대학생들의 폭발적인 열망에 가슴이 뜨거웠다.
덮으려는 자들과 파헤치려는 자들의 치열한 움직임으로 민주화의 불씨가 타오르던 1987년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겨 있었다.

실제 사건, 실존 인물들을 기초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의 유머도 허용되지  않고, 묵직하게 한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 낸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1987년 1월  14일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서울대학생 박 종철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고문 중에 의식이 없자 남영동 고문실로 오연상 의사를 불러 목격자가 생기게 만든 게 문제의 시작일 수도 있다. 
이 때까지 이들은 별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7 남영동 고문실

 대공수사처의 박 처장(김윤식)의 주도하에  시신을 화장시켜 증거인멸을 하고자 했다. 경찰은 단순 쇼크사로 덮는다.

"조사관이 책상을 딱 치니 학생이 억하고 쓰러졌다."라고 박처장은 말한다. 정말 말이야 막걸리야!  

박처장을 역을 맡은 김윤식과 최 검사 역을 맡은 하정우의 연기는 추격자 이후 또 한 번의 연기대결을 펼친다. 둘의 대립으로 진실을 가두려는 자와 진실을 세상에 내놓으려는 자의 싸움이 된다.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서울지검 공안부장 최검사(하정우)는
"젊은 애가 심장 쇼크사로 죽은 게 말이 돼? 죽은지 8시간도 안됐고 죽은 아들을 아버지가 못봤어..서울대 다니는 아들을.." 부검하고 사인이 나와야 화장을 해야 되는 거라고 시신화장동의서에 날인을 거부하고 오히려 시신보존명령서를 작성하여 "시신에 손대면 죽는다."라고 기자에게 정보를 흘려 기사화 시킨다.   
1987 최검사 하정우

박종철의 장례식마저 언론과 외부인들을 따돌리고 진행된다.  차갑게 꽁꽁 언 강물에 뿌려진 아들의 유골가루가 얼음에 붙어 강물에 흘러가지 않자 아버지는 얼음물에 들어가 

 "왜...왜 가지 못하느냐? 가거라. 아버지는 할 말이 없대이.." 하며 오열한다. 유골가루를 손으로 쓸어 담아 강물에 놓아 주며 우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박종철열사 장례식 아버지의 울분

아일보 사회부장(고창석)은" 경찰이 고문치사로 대학생을 죽였는데 이깟 보도지침이 대수야!앞뒤 재지 말고 들이박아."라고 권력에 졸지 않는 언론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솔직히 박종철 고문사건이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진실이 세상밖에 나오게 된 것은 수많은 이들의 진실에 대한 힘을 믿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1987 동아일보 기자 이희준

전두환은 호헌선언으로 독재연장 하겠다는속셈을 드러내고,박처장과 전두환은 김대중 김영삼의 8.15 공동성명서를 작성했던 김정남을 잡아 김대중. 김영삼과 함께 간첩으로 묶어 제거하려는 계략을 꾸미고 있다.  

이 일로 여론이 들끓는 박종철 사건을 덮으려고 말이다.

진실은 이어달기를 하듯 마지막 주자에게 닿는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은 조작 은폐되었다고 발표한다. 

박종철열사의 노제

박종철 고문으로 인한 독재에 대한 분노가 함성으로 이어지고, 용기 있는 선택과 진실이 거대한 파도처럼 1987년 대학가를 울린다. 대학가는 일제히 시위에 들어가 호원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게 된다.

국적으로 4천만의 국민들이 단결하여 호원철폐,독재타도를 외치는 6월 민주항쟁을 불러 오게 만든다. 이에 전두환은 호헌을 철폐하고 직선제를 시행한다는 발표를 내 놓는다.  박종철, 이 한열열사의 죽음으로 대한민국의 독재의 끈을 끊어 놓을 수 있었다.

이는 부검의의 증언과 최검사의 강단있는 결정과 위협을 무릅쓰고 진실을 담아 준 기자와 보도지침 따위 무시하라는 동아일보 사회부장과 교도소에서 진실을 밖으로 퍼나르던 한병용 교도관과 접견기록부를 적어 진실을 가두지 않은 안계장과 수감 중에도 진실을 위해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이부영과 밖에서 열심히 쫓기면서도 진실을 세상에 내어 놓으려는 김정남과 명동성당 정의구현사제단의 용기가 바톤을 이어 받으며 진실을 알렸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피 끓는 대학생들의 외침이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1987년은 아팠고, 슬펐고, 또 뜨거웠다. 버스안에서, 사무실 창문 밖으로, 광장으로 우리는 태극기를 흔들고, 손수건을 흔들고, 클락션을 울리며 독재타도를 외쳤다.

진실을 퍼나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임도 너무 감동적이고, 배우들의 호흡마저 놓칠 수 없었던 긴장감으로 내게 꽤나 울림이 강한 영화였다. 순간 순간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관람했고,  참고 보기가 힘들었다.

또, 배우들의 감정선과 맞물려 울고 국민들의 저력을 보며 뜨거웠다.

한 명 한 명의 캐릭터들이 너무 강하고 연기파 배우들의 존재가 그 중심에 있었기에 1987년으로 들어갔다 올 수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내가,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가 어찌 뜨겁지 않았겠는가?
posted by 해이든 2019. 4. 30. 19:17

세가지 색 : 레드

개인적으로 세 가지 색 시리즈 중 레드가 가장 좋았다. 여주인공 이렌느 야곱이 가지고 있는 멋스러운 색채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패션모델로서의 표정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고, 판사와의 교감적인 부분도 삶의 정수 같았다.

 

스위스의 제네바 대학생이자 패션모델로 활동하던 발렌틴은 운전 중에 개를 치는 교통사고를 내게 된다.

개의 목에 달린 인식표의 주소지로 찾아가 개 주인에게 개가 다쳤는데 병원에 데리고 갈까요? 묻자 마음대로 하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왠지 삶에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노인 같았다.

발렌틴은 개를 치료하러 간 병원에서 개가 임신하고 있다는 걸 알고 치료 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발렌틴은 개를 산책시키던 중 사라져 버린 개를 여기저기 찾다가 개 주인을 찾아가게 된다.

다행히도 개가 그곳에 있는 걸 확인한다.

그리고 우연히 개 주인이 이웃집들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

무엇보다 그가 은퇴한 판사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놀라게 된다. 도청을 하던 노판사(장 루이 트린티냥)는 이렇게 말한다.

"법정에 있을 때보다 세상 일이 더 잘 보여. 적어도 여기엔 진실이 있지."

누구에게나 사생활을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아무리 진실이라고 해도 남의 삶을 도난할 자격이 그에게는 없다.

선과 악을 판단하며 심판하던 사람이 그것도 이웃의 삶을 법정이 아닌 곳에서 무슨 권리로 침해할 수 있단 말인가?

발렌틴은 모든 사실을 이웃에게 알리겠다고 하자 노판사는 도청하는 이웃집을 가르쳐주며 가서 도청당하는 사실을 알리라고 한다.

발렌틴은 아내 몰래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남편의 전화가 도청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위해 이웃집에 찾아갔지만 딸아이가 아빠 전화를 몰래 엿듣고 있는 걸 본 발렌틴은 집을 잘못 찾아왔다고 말하고 되돌아 나온다.

15살 때 자기 아버지가 계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자신의 동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행복해지기 위해 몰라도 되는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노판사는 도청을 알리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가정이 깨질까 봐, 부인이 모든 걸 알게 되거나 딸마저 아는 날엔 지옥이 찾아오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발렌틴은 딸이 알고 있다고 노인에게 전해준다.

삶은 혼돈 속에 있다. 법정이 아닌 곳에서 진실이나 거짓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아는 순간 아름다운 빛이 사라진다. 묻어야 하는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때 누군가의 삶은 지옥이 될 것이다. 도청이 죄가 아니라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더 두려움이라고 말하고 있는 판사를 그녀는 가엾이 여기며 역겹다고 말하고 나와버린다. 거짓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 진실이 더 더럽고 가식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각자의 삶의 문제이고 선택이다.

그 어떤 형태로든 삶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가치와 본질의 문제로 두어야 한다.

그게 어떤 대가를 치루든 그거 역시 그 사람의 몫이다. 남의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법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신문에 은퇴한 판사가 이웃을 도청했다는 기사가 난다.

그녀는 노판사를 찾아가 자신이 신고한 것이 아니라 부정하자 노판사는 자신이 했다고 한다. 이웃과 경찰에 편지를 써서 알렸고, 신문을 보고 발렌틴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고 말한다.

자신을 역겹다고 불쌍하다고 울면서 나가는 발렌틴으로 인해 심경의 변화가 온 것 같다.

도청 사실을 알게 된 이웃들은 그의 집으로 돌을 던졌고 유리창이 깨졌다. 도청에 분노한 이웃들의 행동이었다.

 

35년 전 그는 한 선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오판을 내렸던 것이다. 그는 유죄였다.

노판사는 독자적으로 그를 수사했다.

그리고 그를 찾아간 노판사는 그가 결혼해서 세 자녀와 손자 하나와 평화롭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실수가 그의 일생을 구한 것을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이 오만한 행위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그들 입장이었다면 똑같았을 거야. 입장이 같다면 내가 재판했던 이들도 모두 마찬가지지. 그들 입장이었다면 속이고 살인하고 그랬을 거야. 나는 다만 그들 입장이 아니었던 것일 뿐"

죄의식 없이 죄를 짓기도 하지만 상황에 밀려 죄를 범하기도 한다. 내게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은 것일 뿐 충분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그는 자신이 선과 악중에 어느 쪽일까? 묻는다.

그는 법적 도덕성에 대해 심한 회의를 느껴 1년 전에 조기 은퇴한 법관이었다.

발렌틴은 점점 노판사를 이해하게 된다.

노판사는 선한 발렌틴으로 인해 점차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회복하게 되고 발렌틴이 따뜻한 손길을 보듬는다.

 

법대생인 오귀스트라는 발렌틴의 이웃이었지만 서로를 알지 못한다.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오귀스트라는 노판사가 도청하는 이웃집 중 날씨정보 제공 서비스를 해주는 여인의 애인이었다.

이웃을 도청한 일로 법정에 갔을 때 노판사는 그 여인이 딴 남자가 생긴 걸 보게 된다.

어쩌면 사랑도 진실도 옮겨 다닌다. 고정화된 감정은 없다. 흐르게 되어있다. 삶처럼

멈춰있다고 생각이 들뿐 다 흐르고 있다.

진실이란 것도 선과 악이 누구의 기준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오귀스트라는 길을 걷다 들고 있던 책을 떨어 트리고 우연히 펼쳐진 페이지의 내용을 읽게 됐는데 그게 시험에 그대로 나오게 되고 합격을 한다.

우연인 것 같지만 운명인 줄도 모른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자 오귀스트는 벽을 타고 그녀의 방안을 보고 슬픔을 금할 수 없게 된다.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 모욕감과 함께 그의 상처는 너무 컸다.

 

오귀스트라는 그녀가 새로운 남자와 같이 카페에 있는 유리창을 두들기며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여자 친구가 뛰쳐나오자 몸을 숨긴다.

그리고 그는 소중한 개를 도로에 버리고 떠난다. 페리호를 탄다.

 

한편 발렌틴은 판사에게 패션쇼 초대장을 보낸다.

노판사에게는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잊지 못하지만 2년 연상이었고 다리 사이에 다른 남자가 있었다.

위고 험블링이라는 그 남자와 바람을 피웠고, 둘은 떠났다. 그때 받은 모멸감은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사고로 그녀가 죽은 후 사랑을 잊고 살았다. 그 이후 여자를 믿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운명의 장난인지 위고 험블링이 돌아와 자신에게 재판이 맡겨졌다. 안 맡으려고 했다.

생각 같아서 사형에 처하고 싶었다. 그는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은 공정했다.

그 일로 그는 조기 퇴직했다.

재판은 공정했지만 그의 마음은 무거웠던 것 같다. 다 허무한 일이다.

어쩌면 노판사와 오귀스트라가 같은 인물처럼 느껴질 만큼 상황이 닮았다.

믿음과 사랑을 상실한 노판사와 오귀스트라는 선한 발렌틴으로 인해 남은 인생에 사랑과 믿음을 새로 적어 내려갈 수 있는 밝은 에너지를 얻은 것 같다.

 

영국에 있는 애인을 만나기 위해 떠나려는 발렌틴에게 노판사는 페리호를 타고 갈 것을 권한다. 그러나 예상 밖의 폭풍우로 페리호는 전복되고

1,435명의 승선자 중 7명만이 극적으로 구조되는데 tv화면에 마지막으로 두 명의 스위스인 생존자로 오귀스트라의 보호를 받으며 구조되는 발렌틴의 모습이 보인다.

안도의 한숨과 기쁨의 표정이 가득 담긴 노판사의 얼굴이 화면이 담긴다.

이웃으로 살 때는 서로를 알지 못했는데 페리호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2명의 스위스인이다. 우연일까, 운명일까

우연한 만남들이 얼마나 의미가 큰 필연적 만남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감독은 우연적인 것들을 그저 우연으로 스치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심연에 흐르는 공통적인 것을 노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마지막 구조 장면에서 영화의 총집합이라는 느낌이 난다.

구조된 7명의 얼굴과 명단이 화면으로 보이는데 세 가지 색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다 구해진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28. 14:11

세가지 색 : 화이트

화이트는 평등을 테마로 다룬 소재이지만 솔직히 감독의 의도가 좀 억지스럽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사랑이란 그늘에 가려진 복수로서의 평등이 아니었을까.

폴란드인 이발사가 프랑스의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쫓겨난 입장에서 모든 것이 불평등하고 차별받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다.

 

 

폴란드인 이발사 카롤(즈비그니브 자마코브스키)은 프랑스인 도미니크(줄리 델피 )와 결혼해 프랑스에서 살고 있지만 아내에게 성적 만족을 주지 못해 이혼당하게 된다.

아내 때문에 재산까지 다 뺏기고 방화범이란 누명까지 쓴 채 한 푼도 없이 지하철 역에서 노숙을 한다.

솔직히 성적 만족을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판까지 가서 까발려지는 것도 치욕스러운데 그래도 같이 산 최소한의 정이 있건만 한 푼도 없이 내쫓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아내를 사랑하는 카롤은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만난 폴란드인 미콜라이에게 아내를 자랑하기 위해 지하도 위로 올라가 그녀의 창문을 가리킨다.

하지만 아내의 방 창문 실루엣으로 다른 남자를 끌어안는 장면을 보게 되고 공중전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는 자신과 다른 남자가 사랑을 나누며 내는 신음소리를 전화기로 들려주었다. 자신이 원하는 건 이런 것이라고 까롤이 못 채워주는 걸 드러내 보인다.

 

미콜라이는 까롤에게 자살을 원하는 어떤 남자를 대신 죽여주면 거액의 돈을 준다는 제안을 한다.

까롤은 폴란드로 떠나기로 하지만 돌아갈 돈이 없어서 비행기를 타는 대신 커다란 가방 속에 숨어 비행기 소화물 칸에 실리게 된다.

그렇게 국경을 넘지만 짐꾼들이 그 가방을 훔치는 바람에 카롤은 미콜라이와 헤이지고 하얀 눈으로 덮인 외진 곳에 버려진다. 까롤은 그 와중에도 주머니 속에 담긴 2프랑을 뺏기지 않으려고 지켜낸다.

그녀와 통화하고 남은 동전을 공중전화기가 집어삼키자 동전을 환불해달라고 고함을 질러 받아낸 2프랑이었다.

 

미련을 버리려고 동전을 강물에 버리려고 하는데 손바닥에 붇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를 닮은 하얀 조각상을 항시 곁에 두고 도미니크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도미니크를 만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어렵게 폴란드로 돌아온 까롤은 이발사와 보디가드로 일하며 열심히 돈을 번다.

미콜라이를 찾아간 까롤은 그때 자살을 원하는 사람이 아직도 죽기를 원하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돈이 필요했던 그는 총을 준비해 가지만 그때 죽기를 원한 사람이 미콜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첫 공포탄으로 그를 쏘고 아직도 죽고 싶으냐 묻자 미콜라이는 아니라고 하며 그에게 제시했던 돈을 전한다.

투자라고 생각하라고 그 돈을 받아 개발이 될 땅을 매입한다.

까롤은 공장이 들어설 농지에 대한 정보를 몰래 듣고 그 땅을 먼저 매입해 더 비싸게 되판다.

땅을 판 돈으로 무역회사를 차려 사업가로서 큰 부자가 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도미니크이다.

도미니크를 닮은 하얀 조각상을 바라보며 그녀에 대한 마음을 달래보고, 그녀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차가운 냉소만이 되돌아온다.

 

더 이상 애원하는 것을 하기 싫었던 그는 그녀를 폴란드로 오게 만들기 위해 전처에게 재산을 다 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가짜로 죽은 척 위장한다.

시체를 돈 주고 사서 관속에 시체와 함께 그동안 폴란드에서 유일하게 가져온 2프랑을 관속에 넣어버린다.

까롤의 가짜 장례식을 치르고 그 가짜 장례식에 도미니크가 찾아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몰래 망원경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가 묵는 호텔방에 먼저 가 그녀 앞에 나타나 그녀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성적 만족을 못 시켜주어 이혼까지 당했던 그는 도미니크를 만족시켜주고 다음날 아침 까롤은 사라지고 도미니크는 까롤의 살인범으로 몰려 감옥에 가게 된다.

프랑스에서 무능한 남자로 도미니끄에게 외면받았던 자신이었지만 지금은 막대한 재력과 성적 만족을 줄 수 있는 자신의 위치로 전환이 되었다.

프랑스 법정에서 당했던 차별이 아닌 자신의 나라 폴란드에서 그녀 역시 이방인으로서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좀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까롤은 감옥에 찾아가 멀리서 망원경으로 도미니크를 바라보고 도미니크는 수화로 출소해도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폴란드에서 까롤과 같이 살겠다고 한다.

까롤은 눈물을 흘리며 막을 내린다.

프랑스 법정에서 영화의 첫 화면에서 "폴란드인이라 차별하는 겁니까?' 하고 판사에게 외쳤던 부분이 있는 이유가 이래서일까?

 

서로가 일치하고 크기가 같은 사랑이란 건 없다. 사랑 앞에서 평등이라는 것 자체가 가능한 것인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은 프랑스 법정에서 너무 불공평하게 이혼을 당한 까롤을

힘없는 폴란드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차별을 표현해 내고,

성적 무능함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고, 자신을 방화범이라는 누명까지 씌우고, 카드마저 정지시켜 한 푼도 없이 거리로 내 몬 무정한 도미니크를 강대국 프랑스에 대입시킨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에 있어 위치로서 평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왠지 와 닿지 않는다.

개인 남녀의 사랑을 말이다. 자본이 갖는 위치와 사랑을 맞물려 생각하더라도 죽음을 가장해 도미니크를 감옥까지 보낸 것은 왠지 복수에 가깝지 않나 싶다.

폴란드와 프랑스라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불평등함으로 인해 이혼을 당한 것보다 도미니크 개인의 성적 취향을 채워주지 못한 한 남자의 부족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도미니크가 취한 행동도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다.

차별이라는 것은 힘 있는 자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다. 까롤은 거대한 재력가가 되어서야 자신을 보러 온 도미니크에게 맞서거나 부당함을 행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고, 프랑스가 아닌 자신의 무대에 세운 것이다.

어쨌든 둘의 관계는 역전된 것이다.

까롤이 재력을 갖춘 것은 도미니크와 평등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차별을 당한 만큼 차별당하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자신을 프랑스 법정에 세워 불리하게 만들었던 도미니크를 자신의 나라로 불러들여 자신을 죽인 살인범으로 똑같이 복수해줌으로써 평등을 지키기 않았나 하는 마음이 앞섰다.

이 정도면 서로 상처 주는 것은 공평해졌다. 너도 그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겠어. 이제 공평해졌지.

왠지 정신적 사랑보다 물질적, 환경적 대립에서 어느 정도 평행 선위에 올려놓으려고 한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폴란드로 그녀를 끌어들여 그녈 감옥에 보냄으로써 사랑의 위치를 바꾸어 생각하게 만든 의도가 아니었을까?

운명적으로 사랑을 느껴 국경을 초월하여 결혼했지만 그들의 이혼과 사랑은 첨부터 믿음과 사랑이 깊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posted by 해이든 2019. 4. 28. 11:22

영화 세가지 색 : 블루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세 가지 색은 3부작으로 프랑스 국기를 구성하는 블루, 화이트, 레드를 모티브로 블루는 자유를, 화이트는 평등을, 레드는 박애를 상징한다.

세 가지 색 : 블루는 거시적인 국가적 이념보다 개인적 삶의 자유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한다.

세 가지 색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의견이 만들어지고, 오묘한 색채적 감각과 신비한 감정들을 끄집어내는 매력이 있다.

자신의 아픔의 크기만큼 자신이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영화를 흡수할 수 있는 것 같다.

꼭 자유라는 프레임에 묶이지 않고 그저 여주인공의 시선과 슬픔에 다가가면 블루는 그저 차거운 색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치유의 색이라 여긴다.

교통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고 혼자만 살게 된 줄리(줄리엣 비노쉬)의 상실감은 세상과 자신을 차단시키기 시작한다.

5살난 딸과 남편을 잃은 그녀는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아니 흘릴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만 살아남은 건 행운이 아니라 고통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상실감으로 모든 감정이 갇혀버린 것이다.

 

남편과 아이의 흔적이 있는 곳에서 혼자 살아남아 살아낼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줄리는 그 집을 처분하라고 내어놓고 딸아이가 좋아하던 블루 상제리아만을 챙겨 그 집을 나온다.

그 집을 나오며 주먹을 움켜쥔 채 돌담장에 주먹을 그어가며 나오는 장면과 다 쏟아부은 가방에서 사탕 하나를 발견하고 울음 대신 사탕을 아작아작 씹어먹는 모습은 딸아이를 잃은 슬픔보다 자신이 살아남은 것에 더 분노를 흘려보내는 것 같아 아펐다.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고통이 이러한 것인가를 온몸으로 표현해 내는 느낌이었다.

"저만 살아남았어요. 추억도 소유도 원치 않아요. 친구도 사랑도 모든 게 덫일 뿐이에요."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게 군다. 그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애써 가려진 그녀의 표정 아래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심리적 아픔으로부터 그렇게나마 벗어나 보려고 몸짓이 가슴을 친다.

아이들이 살지 않는 자그마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지만 상젤리아만 걸어놓고 어떤 가구도 들이지 않는다.

몸은 살아있지만 그녀의 삶은 차사고가 난 날 이미 남편과 딸의 죽음과 같이 멈추어 섰다.

불량배들에게 맞아 구원의 손길을 원하는 사람도 외면하고, 창녀 루실을 아파트에서 내몰자고 사인해 달라는 이웃에게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한다.

하지만 루실은 줄리가 사인을 해주지 않아 아파트에서 쫓겨나지 않게 되었다고 감사의 꽃을 전하고, 고양이를 풀어 쥐새끼를 죽게 만든 죄책감으로 우는 그녀에게 다가와 자신이 그 쥐를 치워주겠다고 위로해준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감정과 철학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흐른다. 살아있는 한 내가 멈출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살아있기에 천천히 또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살아있는 이상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외면하고 정지시킨 순간에도 삶은 흐른다. 결국은 사람들로 인해 치유될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한 말이다.

 

어느 날, 창고에서 쥐가 새끼를 낳아놓은 것을 발견한다. 치우지 못하고 어미쥐가 밤새 내는 소리에 그녀는 괴로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줄리는 아랫집에서 고양이를 빌려와 창고 안에 넣어놓고 울면서 집을 빠져나간다.

새끼 잃은 엄마 쥐를 자신과 같이 여겼을까 고통스럽게 수영장 물속으로 들어간다.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음악소리와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은 오로지 고요한 물속이다.

물 밖으로 나오니 남편의 연주곡이 들리자 그녀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귀를 막고 있는다. 그녀가 울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수영장 물속에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가 비에 젖지 않는 것처럼 투명한 눈물로 가리고 있었다.

그녀의 상실감은 우리가 보이는 시선에 젖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 울 자격마저 앗아가 버린 상실감과 죄책감으로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거리의 악사는 남편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모두가 자신이 쌓는 담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아무리 과거의 기억을 차단하려고 해도 거리의 악사로 인해, 가는 병원으로 인해, TV 화면으로 자신의 삶이 자꾸 세상 밖으로 빠져나간다.

사고를 잊으려고 하는데 불현듯 찾아와 사고 현장에서 주운 십자 목걸이를 돌려주려고 온 청년도, 남편의 미완성작을 올리비에(베누아 레전드)가 완성하려고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남편의 미완성 작품도 영원히 미완성으로 쓰레기차에 구겨 넣어버렸다.

하지만 복사본을 해놓은 문서보관소 직원과 올리비에는 그걸 자신을 위해 세상에 내어놓으려고 한다.

남편에게 자신 말고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줄리는 남편의 애인을 만나러 가게 되고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다. 남편은 아이가 생긴 것도 모르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원하는 건 아니었지만 낳아서 키우고 싶다고 말하고 자신을 용서하라고 말한다.

어쩌면 줄리는 남편의 외도 사실로 죄책감을 덜어낸 것 같다.

남편의 집을 팔지 않고 그녀가 원하다면 그 집에서 살라고 하고 그녀를 받아들인다.

이 또한 그녀의 뱃속의 아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남편과 아이에게 가는 송곳같은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내지 않았을까.

 삶과 죽음은 이어져있는 것 같다.

줄리는 남편을 위해 작곡하던 협주곡을 완성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하고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고 올리비에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드디어 줄리는 눈물을 흘린다. 수영장을 찾지 않아도 슬픔은 슬픔대로 그 슬픔을 표현해 내는 것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는 과정과 음악을 완성하는 과정으로 줄리는 삶 속에서 감정을 정화시키고 치유해 갈 것이다. 

보통 영화에서 사용되는 페이드 아웃은 시간적 흐름의 변화를 위해 천천히 밝아지거나 천천히 어둡게 하는 하는 것으로 화면 전환을 위해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시 정지되었다 다시 작동한다는 것이다. 줄리의 내면에 초점을 두고 일단정지된 상태로 다시 그 시점을 비추어주는 암전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심리에 초점을 두고 감독은 암전과 함께 즈비그니에프 프라이즈너이 웅장한 음악이 압도적으로 검은 화면을 잠그는 대신 귀를 열게 한다.

감독은 줄리의 심리를 화면과 음악으로 상실감을 표현하고 암전 기법을 사용하여 그녀의 감정의 흐름을 어떻게든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영화 중간에 줄리가 찾아간 남편의 애인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법원이었다. 남편의 애인은 변호사였고, 그녀가 사건을 담당한 여인 도미니끄와 남편 카롤이 잠시 모습을 보였다. 화이트에서 이어질 두 주인공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26. 00:55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 소년의 삶

내가 기억하는 디카프리오의 영화는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출연했던 <이 소년의 삶>이었다.

엄마가 재혼하면서 의붓아버지인 로버트 드니로의 학대에 반항하는 아들 '토비'역을 열연했던 앳된 디카프리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이름이 너무 멋졌다.

항상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헷갈리게 말하게 되는 이름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이탈리아 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초상화를 보는 도중 태아가 발로 차는 태동을 느껴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도 <이 소년의 삶>을 통해 세계 비평협회의 최우수 조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1995년 조니 뎁과 함께 출연한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조니뎁의 정신박약아 동생 '어니 그레이프'이란 어려운 캐릭터를 소화하여 겨우 열아홉 살의 나이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다.

길버트 그레이프

1995년 <바스켓볼 다이어리>에 출연하여 방황하는 청소년을 연기하였고, <토탈 이클립스>에서 랭보를 연기하였다.

1996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하였고,

1997년 그를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은 전 세계 1위 흥행을 기록하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대표작이 된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11개 부문에서 수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세기의 명작이 탄생된다.

<타이타닉>으로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많은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된다.

[My Movie Story] - 50.타이타닉 : 1,500여 명의 사망자를 낳은 세계 최대의 비극의 침몰선

타이타닉

2002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 출연하여 윌리엄 역을 맡아 하이틴 스타의 면모를 벗어던져 버렸고,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오른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출연하여 6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 드라마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다.

이런 많은 작품이 흥행하고 그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후보에만 명단이 오르고 정작 그의 손에 오스카상이 쥐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불운이다.

2004년 <에비에이터>는 하워드 휴스의 전기 영화로 휴스역을 연기하고, 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2006년 스코세이지 감독의 <디파티드>에 출연하여 큰 호평을 받았으나 영화는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을 수상하지만 역시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는 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디파티드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출연 액션영화로 흥행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또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만다.

2008년 리들리 스콧감독의 <바디 오브 라이즈>에 출연하였고, 샘 멘데스 감독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출연하였다.

2010년 <셔터 아일랜드>로 좋은 평을 받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은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태프 부문 4관왕을 이루었다.

2012년 쿠엔틴 타란티노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인상적인 악역을 연기했다.

그러나 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예선 후보에 올랐지만 탈락하게 된다. 같이 출연했던 크리스토프 빌츠가 남우조연상에 수상하게 된다.

[My Movie Story] - 73. [장고 : 분노의 추적자] : 인종차별이 부른 분노의 끝은 복수

장고 : 분노의 추적자

2013년 <위대한 개츠비>에 캐리 멀리건과 출연하였고,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출연하여 정말 소름 돋는 연기를 선보인다.

그러나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 주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에 밀려 수상에 실패한다.

 

1974년생이었던 그는 막강한 할리우드 감독들과 수많은 작품들을 작업했다.

진정한 성인 연기자로 다양한 캐릭터들을 소화해 내며 할리우드의 흥행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오스카의 손길을 스쳐가기만 할 뿐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이제 아카데미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상이 돌아갈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의 아카데미 상을 위한 도전은 멈추지 않았고, 드디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제88회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오스카 무대에 오른 그는 흥행성과 작품성을 장악하며 할리우드 탑배우로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제73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수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고,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게 된다. 일동 기립 박수. 정말 힘든 여정이었다.

그는 환경운동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수상소감에도 빠질 수 없는 멘트로 흘러나왔다.

 

1993년 이 소년의 삶 / 토비아스 울프

1993년 길버트 그레이프 / 아니 그레이프

1995년 퀵 앤 데드 /피 헤롯 더 키드

1995년 바스켓볼 다이어리 /짐 캐럴

1995년 토탈 이클립스 /아르튀르 랭보

1996년 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

1996년 마빈의 방 /행크

1997년 타이타닉 /잭 도슨

1998년 아이언 마스크 /루이 14세/필립

2000년 비치 /리처드

2002년 갱스 오브 뉴욕/암스테르담 발론

2002년 캐치 미 이프 유 캔

2004년 에비에이터 /하워드 휴스

2006년 디파티드 /빌리 코스티건

2006년 블러드 다이아몬드 /대니 아처

2008년 바디 오브 라이즈 /로저 페리스

2008년 레볼루셔너리 로드 /프랭크 윌러

2010년 셔터 아일랜드

2010년 인셉션

2011년 J. 애드가/존 애드거 후버

2012년 장고 :분노의 추적자 /캘빈 j 캔디

2013년 위대한 개츠비

2013년 더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2015년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 /휴 글래스

2019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posted by 해이든 2019. 4. 26. 00:48

1977년생 독일에서 태어나 아일랜드에 자란 아일랜드 배우이다.

2006년 <300>에서 스텔리오스라는 전사 역을 맡으며 영화계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2008년에 그의 첫 주연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헝거>를 통해 무려 14kg나 체중을 감량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보비 샌즈의 마지막 저항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단식연기를 통해 목숨보다 자유가 더 중요 하다다는 가치를 보여준 작품으로 영화 <헝거>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아직도 인상적이다. 이는 스티븐 맥퀸 감독의 첫 데뷔작이기도 하다.

<헝거>의 한 장면

2009년 쿠엔틴 타란비노의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서 아치 히콕스 역으로 출연

<피시 탱크>에서는 모녀를 유혹하는 나쁜 남자 코너 역으로 출연

2011년 <제인 어어>에서 제인과 사랑하는 로체스터로  출연

2011년 <액스맨 :퍼스트 클래스>로 매그니토의 젊은 시절 '에릭 랜셔'역

<데인저러스 메소드>에 카를 융 역으로 출연,

 

<셰임>에 출연 섹스중독에 걸린 브랜든 설리반 역으로 페니스 노출하여 지금까지 많은 기사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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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셰임(Shame) : 관계결핍

이 영화를 근친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라는 장면들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러나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근친을 다루지 않았다고 했다. 영화를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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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셰임>에서 그는 성공한 여피족으로 섹스 중독으로 인한 누드와 성기노출로 파격 변신한다. 높은 성적 수위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화제에 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 해 개봉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많은 논란의 소지를 낳았다. 근친이라는 여론이 나오자 감독은 아니라고 부정했다.

<셰임>의 한장면

은밀하게 생활하는 그의 아파트에 여동생 씨씨가 침입함으로써 마찰이 생긴다.

캐리 멀리건이 '뉴욕뉴욕'을 부르는 장면은 영화의 팬으로 무척 쓸쓸한 잔상을 남겼다.

두 남매의 지독한 외로움에 가슴 먹먹하기도 했다. 여주와 남주의 공허한 현대인의 삶을 표현해내는 연기력도 상당히 뛰어났던 이 작품이다.

2013년 <카운슬러>와 같은 해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에 출연하여 아카데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노예 12년에는 노예를 학대하는 노예 주역을 맡아 자신의 연기에 대한 성벽을 완벽하게 지으면서 세계에 주목을 받게 된다

노예 12년: https://pointstory.tistory.com/94

 

98.노예 12년: 자유를 항한 여정

노예 12년 감독 스티븐 맥퀸 1840년 미국에서는 노예해방령에 의해 노예제도가 없어지자 흑인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팔아 넘기는 인신매매가 만연했다.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뉴욕에서 아내와 어린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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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2015년 <스티븐 잡스>에서 스티븐 잡스 역,

<맥베스>에 맥베스 역,

2016년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의 <파도가 지나간 자리>로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같이 호흡을 맞추며 실제 연인 사이에서 결혼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영화 내용은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톰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해 외딴섬의 등대지기로 와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 결혼하여 섬에서 산다.

하지만 유산으로 아이가 없는 그들에게 파도에 떠내려온 아이를 키우고 살게 되지만 아이의 친엄마의 등장으로 비극의 혼란을 겪게 되는 내용이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의 한장면

2017년 <송 투송> 멜로 로맨스로 쿡역,

<스노우맨>에서 해리 홀레 역을 맡아 열연.

매 작품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파 배우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26. 00:35

감독 배넷 밀러

폭스캐처

 

1996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실제 살인사건을 각색하여 만들어진 영화이다.

세계 최대 화학그룹인 듀폰사의 억만장자이자 미국 레슬링협회 후원자였던 존 듀폰(스티브 카렐)이 자신의 레슬링팀 폭스 캐처 소속 코치이자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인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를 총으로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레슬링 금메달 리스트인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와 미국의 레슬링계를 이끌었던 국민 영웅 데이브 슐츠형제가 미국 레슬링협회 폭스 캐처에 차례로 영입되면서 세 사람의 갈등은 시작된다.

미국 부호에 자선활동도 하는 그가 살인자가 된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살인이유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 여러 가지 추측만 난무할 뿐. 영화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적인 추측을 해 본 것이다.

존 듀폰은 마크 슐츠의 멘토이자 코치인 친형 데이브 슐츠를 함께 스카웃 하려고 했지만 형은 안정된 삶을 이유로 거절한다.

폭스캐처 마크 슐츠와 존 듀폰

존 듀폰은 레슬링 유망주였던 마크 슐츠를 폭스캐쳐에 입단시키고 엄청난 연봉과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마크는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형보다 존을 더 의지하고 존경하게 된다. 그러나 존 듀폰이 서서히 변해가면서 둘 사이에 분열이 생긴다.

 

국민영웅인 데이브 슐츠를 자신의 밑으로 두고 싶었던 그는 마크 슐츠를 못마땅해하고 얼마가 들든 상관없이 데이브를 영입하면서 마크와 존 듀폰 사이는 금이 간다.

마크는 형의 그늘에서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살았다. 존 듀폰을 만나기 전까지는 형제 사이에는 믿음이 있었다.

형 데이브는 마크를 포기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동생을 아꼈다.

존 듀폰이 형을 인정하고 자신을 밀어내자 마크는 흔들리지만 데이브 형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끌어안는다.

''넌 혼자가 아니야 난 네 형이고 너를 사랑한다 이렇게 무너지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마크는 형을 인정하고 관계가 다시 회복된다.

형 데이브 슐츠와 마크 슐츠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데 존 듀폰에게 무엇이 부족했을까

레슬링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어머니라는 장벽에 막혀 꿈을 펼치지 못했다.

마크 슐츠가 소속된 팀 폭스 캐처의 코치로써 그는 첫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의 쾌거를 달성한다.

 

어머니에게 가서 자신의 팀이 큰 업적을 이루어냈다고 트로피를 보이며 자랑을 하지만 어머니의 반응은 냉랭하다

그런 저급한 운동을 하면서 네가 저급해지는 꼴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존 듀폰은 어머니가 훈련장에 찾아왔을 때 실질적 코치인 데이브 슐츠를 앉혀놓고 본인이 코치 노릇을 한다.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 직접 시범을 보이며 기술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인정받고 싶은지 또 보여주고 싶은지를 느끼게 해 주는 장면이었다.

50 중반이 넘어서도 그는 어머니의 인정받기를 원했다.

듀폰은 어릴 때부터 대저택에서 부유한 삶을 살았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의 손에 외롭게 자랐다.

친구가 딱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운전수의 아들이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가 친구로 지내라고 돈을 쥐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존 듀폰과 데이브 슐츠

레슬링은 자신의 꿈이었지만 어머니에게 저급한 것으로 외면받았고, 레슬링 코치로 마크와 데이브를 영입해 금메달을 따 인정받고 싶은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아들의 모습을 외면하고 돌아서 나가자 꼭 자신이 부정당한 표정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관심과 애정에 굶주린 것 같았다.

어머니가 죽음으로 사라지자 그는 마구간에 가서 어머니가 아끼던 말들을 풀어준다. 그것은 어머니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갈증만큼 어머니에 대한 억압으로 갇혀있던 자신을 해방시켜주는 모습으로 비치어졌다. 말들을 더 이상 가두어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준다. 어쩌면 이제 자신도 어머니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는 데이브 슐츠가 국민적 영웅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자신도 미국적 영웅으로서 인정받고 싶어 한다.

레슬링으로 자신을 세상에 내놓고 영웅이 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그저 레슬링을 저급하게 생각했고 마크도 데이브도 자신을 아버지처럼 리더로서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을 존경하고 따르던 마크가 자신과 조금씩 틀어지면서 형 데이브에게 의존하고 따르는 것을 보고 질투와 함께 열등감이 피해의식으로 작용하게 된다.

올림픽대회에서 마크에게 다가갔을 때 데이브는 마크에게 가는 존 듀폰을 막아섰다.

올림픽 경기 코치인 데이브와 존 듀폰

정작 마크를 코치하고 이끄는 것은 데이브인데도 그는 경기장에 데이브와 같이 올라가 마크에게 수건으로 부채질을 해주고 땀을 닦아주는 모습은 마크를 위한 행동이 아닌 사람들에게 금메달 리스트를 키워내는데 자신의 존재가 있다는 영웅적 의식이 깔려있었다. 영웅을 만들어낸 진짜 영웅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가 내재된 것으로 보인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폭스 캐처 선수의 멘토이자 리더로, 코치로 존경과 인정을 받고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레슬링마저 자신이 아닌 데이브 슐츠가 실질적 리더로 존경받는다고 생각한 그는 데이브 슐츠의 그늘에 가려 밀려난 열등감으로 결국 살인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존 듀폰

어쩌면 돈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존 듀폰은 친구 하나 없는 관계 결핍과 어머니에 대한 애정결핍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아들로 상당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식을 응원하고 표현함에 있어 부모의 기준치가 아닌 자식의 기준치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멘토로 코치로서 금메달리스트를 만들어냈다는 국가적 영웅으로 자리 잡고 싶은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자 자신 안에 내재된 상실감을 끝내 채울 수 없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8. 23:18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 스포 주의 *

1958년 서독 노이슈타트에 15살이었던 마이클은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 버스에서 내렸다.

골목 어귀에서 토를 하고 앉아 있자 30대 중반의 여성 한나가 다가왔고, 토한 것을 물로 다 씻겨내고 마이클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마이클은 성홍열로 몇 달 침대 신세를 져야 했다.

 

마이클은 몸이 나아질 무렵 한나를 찾아가 고마움을 전하러 갔다.

석탄을 양동이에 담아가지고 올라오던 한나는 문 앞에 서 있는 마이클을 발견하고 밑에서 석탄 양동이를 두 개 가지고 올라오라고 한다.

석탄을 가지고 올라온 마이클의 얼굴이 석탄가루로 까맣자 한나는 씻으라고 목욕물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이내 한나도 알몸으로 마이클을 뒤에서 안았다.

"이러고 싶어서 온 거지?"

이게 두 사람의 시작이었다.

솔직히 이 시작이 싫었다. 35살이면 엄마뻘 되는 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마이클이 이제 15살이라는 나이 때문이었다.

한창 호기심이 있을 나이였다. 그 호기심을 그렇게 받아주는 것도 싫었다.

무엇보다 마이클은 그녀에게 반해 있었다.

수업시간에 읽은 희곡에 대해 이야기하다 한나가 관심을 보이자 책을 건넸고 한나는 "네가 읽어줘"라고 말한다.

'너 책 있는 거 잘하더라'란 칭찬에 좋았던 마이클은 한나에게 매일같이 책을 읽어주고 사랑도 나누었다.

'호머의 에딧 세이'를 읽어주자 슬퍼서인지 그녀는 울기까지 했다.

 

우표수집을 하던 마이클은 우표를 팔아 그녀와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된다.

난생처음 교회에서 가스펠을 들으며 감동스러워 우는 한나를 바라보던 마이클은 그녀에게 더 깊숙이 빠져든다.

식당에서 나란히 식사를 하고 마이클이 계산을 하러 가자 식당 여주인이 "엄마도 맛있게 먹었는지 모르겠구나?"묻는다.

돌아서 나온 마이클은 식당 여자가 보란 듯이 그녀의 입술에 키스한다.

엄마가 아니라 연인이라 말하고 싶은 마이클의 당당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버스 차장이었던 한나는 성실히 일을 잘해 사무직으로 승진한다.

그리고 그날은 마이클의 생일이었다. 친구들과의 파티를 뒤로 하고 그녀에게 왔지만 그녀는 신경질적이었다.

항상 이유도 없이 당하고 사과하는 것도 마이클이었다. 마이클은 그래도 그녀가 좋았다.

목욕시켜주고 이젠 친구들한테 가서 생일파티를 하라고 보내주었다.

돌아와 보니 그녀는 떠나고 없었다.

15살의 어린아이에게 사회의 편견은 두렵지 않았다.

'난 두렵지 않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고통이 커질수록 사랑은 깊어진다. 두려움은 사랑을 증폭시킬 뿐

사회적 편견도 망각하게 한다. 당신이 천사가 되어 행복한 일생을 살도록 하리라. 인간을 완벽하게 만드는 건 바로 사랑이니라."

첫사랑에 대한 상처는 너무 컸고 마이클은 그 상처로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녀는 꼬마를 사랑하긴 했을까?

책읽어주는 마이클

 8년 후 1966년 하이델베르크 법대에 다니고 있던 마이클은 실습차 법원 견학을 간 재판에서 가해자 신분으로 앉아 있는 한나 슈미츠를 만나게 된다. 그녀 나이 43살이었다.

1943년에 친위대에 자원하여 아우슈비츠 감시원으로 일했다는 것이다.

1944년 수감자들을 이동시키는 '죽음의 행군'을 맡아 다른 수용소로 이동하는 중 300명을 살해한 혐의로 피해자 유대인의 고소로 이루어진 재판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좁아서 사람들을 선별해 가스실로 보냈다는 겁니까?라고 묻는 판사에게

당당하게 "감시원에 지원한 게 잘못입니까? 되묻는다.

그녀는 수감자들을 감시하는 게 자신의 임무이고 그 의무에 충실했다고 판사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폭격을 맞고 마을 전체가 불이 났고 수감자를 가둔 교회에 불이 났다. 문을 열면 아수라장이 될 것이고 도망치게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문을 열지 않았고 수감자를 감시해야 하는 자신의 임무만을 강조하며 어떻게 질서를 유지하냐고 판사에게 조목조목 따졌다.

판사는 그녀에게 "불이 난 걸 알면서도 선택을 내린 거군요. 도망치게 놔두느니 죽도록 방치한 겁니다."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판이었다. 최소한 변명하고 반성하는 척이라도 해야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할 터인데 그녀는 그렇지 아니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자신의 죄를 줄이려고 형량을 줄이기 위해 모른다고 하는데도 한나만은 그저 감시원으로서 책임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살아남은 유대인 피해자의 진술이 시작되고 피해자는 한나가 처음엔 가장 인간적이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녔다고 말한다.

"약하고 어린 소녀들을 불러다 잘 돌봐주고 책을 읽게 하고 그러다 아우슈비츠로 보냈어요. 그게 친절인가요."

마이클은 객석에서 지켜보며 한나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 진술로 자신도 한나에게 책을 읽어 준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마이클은 괴로워한다.

그녀가 버스 차장에서 사무직으로 승진했는데 왜 기뻐하지 않았는지, 마이클에게 왜 책을 읽어 달라고 했는지, 왜 떠났는지, 그리고 감시원으로 지원했는지.. 거기에는 까막눈이었다는 한나의 자존심이 숨겨 있었다.

그래도 감시원으로서의 임무보다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문맹과는 상관이 없다. 글을 모른다고 대학살인 상황을 이해 못하거나 선과 악을 구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했다고 유죄는 아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한 8천 명 중에 19명만이 유죄판결을 받았고, 6명이 살인죄로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살인을 입증하려면 동기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법이다. 문제는 잘못의 유무가 아니라 적법성이다. 현재의 법이 아닌 당시의 법을 따라야 하고 그 법은 편협한 것이다.

마이클은 법대 교수에게 피고한테 유리한 중요한 정보이고,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해 그녀가 글을 모른다고 말하게 된다.

그런데 당사자 한나가 창피해서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사회는 우리 생각처럼 도덕심에 의해 돌아가지 않아. 법이 모든 걸 좌우하지. 법정에 진실을 밝힐 도덕적 의무가 있어. 중요한 건 우리의 감정이 아니야. 우리의 행동이지. 진실을 알면서도 나서질 않았다는 죄책감을 평생 지고 살아갈 텐가."

법대생이 되어 견학차 간 재판에서 8년 만에 자신의 삶을 가두어버린 첫사랑을 보게 되고 재판 과정에서 그녀가 글을 몰랐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 사실만 재판부에 알리면 되는데 한나도 마이클도 그걸 하지 못했다.

막상 한나를 만나려고 교도소 면회를 갔지만 그냥 만나지 않고 돌아서 나와 버린다.

마이클은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걸 선택한 것일까? 한나가 글을 모르고 있다는 걸 자신이 아는 걸 숨기려는 걸까?

 

문맹보다 그녀는 세상에 까막눈 같았다.

그녀를 제외한 5명은 그녀가 시켜서 했다고 그녀가 사인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필체가 맞는지 필체 확인을 하겠다고 펜과 종이를 갖다 주다 그렇게 당당했던 그녀가 초조하게 흔들렸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썼어요'라고 저항도 없이 자신이 사인했다고 말한다.

글을 모르는 게 답답한 것이 아니다. 글을 못 읽어 창피한 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법정에서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판단 못했을 리 없건만 그걸 숨기는 그녀의 행동 때문이다.

꺼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그게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줄 알면서도 글을 모르는 걸 말하지 않고 하지도 않은 죄를 시인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300명 살해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며 5명은 4년 3개월의 유죄를 받고, 그녀만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녀가 문맹이라는 걸 유일하게 알고 있는 마이클은 그대로 침묵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 죄책감으로 마이클은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했다.

아버지 장례식마저 그녀에 대한 기억으로 서독에 돌아올 수 없었을 만큼 그는 상처가 컸다.

책 읽어 녹음하는 마이클 

결혼생활은 순조롭지 못했다.

아내와 이혼 후 딸아이와 돌아온 마이클은 여기 오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로 인해 세상에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예전 방에서 오디세이 책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와 카세트를 보낸다.

 

한나는 교도소 내에서 책을 빌려 마이클이 녹음해 보낸 테이프로 차곡차곡 글을 배운다. 그리고 처음으로 꼬마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다.

'꼬마야 지난번 책 좋았어.'

글을 배워 매일같이 꼬마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마이클은 편지로 답장 한통을 보내지 않는다. 계속 테이프로 녹음해서 보낸다

책을 읽어주는 15살의 첫사랑 마이클이고 싶은 건지, 떠나간 상처에 대한 미움인지 알 길이 없다

글을 몰라 무지한 것보다 편견에 갇혀 있는 그녀였다. 그 정도로 창피했다면 창피함이 이 정도였다면 왜? 글을 배울 생각을 못한 걸까?

이 영화를 보며 여자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한나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직 책 읽어주는 남자 마이클로 아프고 화내고 있었다.

 

1988년 한나 슈미츠는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가석방을 남겨놓고 마이클과 대면하게 된다.

"내 생각은 중요치 않아, 내 기분은 중요치 않아, 죽은 사람은 죽은 거니까"

뭐 변한게 있냐는 마이클의 말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리고 글을 배운 게 달라진 것이라고 했다.

문맹은 한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문맹이 아니라 그걸 가두고 있는 그녀의 무지가 다른 사람의 인생엔 더 큰 영향을 미치게 했다.  그녀는 글을 깨우치고야 알게 된 것일까!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 많은 유대인 학살의 죄를 모두 안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과 마이클이 평생 마음을 닫게 한 세월을 안겨준 것이 말이다.

" 잘 가 꼬마야"

이게 마지막이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다. 한나로 인해 무겁고 답답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8. 23:13

감독 피터 위어(Peter Weir)

죽은 시인의 사회

 

대학입시교육이 학생들의 가슴에도 부모의 가슴에서도 마음을 빼내 버린 것 같다. 
스펙이 사람을 대변하는 카드가 되고, 오직 명문대를 향한 그들의 질주는 자신의 인생에서 즐거움을 빼내고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명문대를 나와도 그들의 질주는 끝나지가 않는다. 고학력, 넘치는 스펙을 가지고도 그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나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나서 답을 구하고자 할 때 영화 한편을 떠올렸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이다. 
 
영화의 배경은 1959년 미국의 명문 웰튼 아카데미다. 역사와  전통과 규율로 대학입시에만 전념하는 교육을 통해 명문대의 높은 합격률를 자랑한다.
자식에 대한 높은 교육열을 올리는 부모들의 희망이 된다. 그들은 그렇게 희생을 덮어서라도 자식들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새학기가 시작되어 이 학교를 졸업한 출신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이 새 영어교사로 부임되어 오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학생 토드 앤더슨(에단호크)도 이 학교로 새로 전학을 온다. 그는 닐 페리(로버트 숀 레오나드)와 기숙사 한 방에 배정된다.
대학입시를 위한 교사들과 학부모, 학생들의 표정에서 보이는 엄숙하고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는 분위기가 학교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부를 위해 과외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닐 페리의 아버지, 말대꾸도 거역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의 아버지는 닐이 의대를 가게 하는 게 목적이다. 과연 그 목표가 자신을 위한 목표이지 자식인 닐 페리의 목표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무장된 표정에 아무말도 할 수 없다. 존 키팅이 말한 지옥학교에서 살아남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만든다.

 

'카르페 티엠'

 
# 존 키팅의 첫 수업
그는 앞문으로 휘파람을 불며 들어오더니 뒷문으로 나간다. 그리고 학생들을 따라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100여년 전 선배들의 단체 사진앞에서 '카르페 디엠'을 말한다.
라틴말로 표현하자면 '현재를 즐겨라. 
우리는 반드시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를 즐기라고 말이다.
우린 요즘 존 키팅의 외침 '카르페 디엠'을 삶에 받아들이며  소확행, 워라밸이라는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존 키팅은 자신을 캡틴이라 불러도 된다고 말한다. 내가 너희가 타고 갈 배를 운전할 테니 너희들은 즐겨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내 해석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캡틴이 티쳐보다는 자유로워 보인다.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 존 키팅의  수업
 
그는 서문에 있는 문장을 학생에게 읽게 한다. 그리고 '쓰레기'라고  책을 찢어 버리라 한다. 한 장이 아닌 서문 전체를 찢어 버리라고 한다.
아이들은 선뜻 찢지 못한다. 그동안의 교사들과 너무 다른 수업방식을 가진 존 키팅에 어리둥절 하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볍률, 경제, 기술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거야. 아름다움을 어디서 찾을까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그는 운율이나 운조가 아닌 말과 언어의 맛을 배우게 하고, 말과 언어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빼 주고 내면을 끄집어 내 주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교육으로 돌려 말하면 시를 낭송하고 감상하고 자신의 정서를 끌어내는 것은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도움이 안된다. 그 시가 가지고 있는 문법과 운율과 저자의 철학에만 초점을 맞춘 교육방식을 향해 저돌적인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 
시를 가슴에 담아야 하는데 우리는 머리에 담는다. 시속에 담긴 저자의 의도와 문법만을 배운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지, 인생을 위한 공부를 못한 거다. 그게 맞는건지 틀린건지도 재볼 여력도 없이 그저 달렸던 거다. 그러는 건지 알았다. 
분명히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만을 하는 요구하는 학교 측에서는 그의 존재는 이물질이라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 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고 하는 거야
책상위에 올라선 캡틴
# 수업시간
그는 교탁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묻는다. 내가 이 위에 올라 선 이유가 무엇이냐고?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땐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 봐라. 틀리고 바보같은 일일 지라도 시도를 해봐야 해.책을 읽을 때 저자의 생각만 고려하지 말고 너희들의 생각도 고려해 보도록 해."

 

한창 꿈꿀 아이들이 어른들이 짜놓은 틀에 박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을 조정해 나가지 못하는 삶이 보였기에 그는 자신이 선장이 되어 그 아이들의 시선을 가장자리에서 돌려놓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보는 각도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어른들의 벽이 높아도 시도해 보라고, 각자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끄집어 내고 찾아서 부딪히라고 말이다. 
잘못된 교육방식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줄 모른다. 
존키팅은 아이들과 야외 수업도 하고, 축구도 하면서 그들의 얼굴을 무표정에서 꿈많고 장난 많은 십대들의 표정으로 바꾸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도 존 키팅의수업을 웃으며 즐거워 했다.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존 키팅의 수업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신념의 독특함을 믿어야 한다.
 
# 수업 
존 키팅은 아이들에게 걸으라고 한다. 처음에는 각자 제멋대로 걷기 시작하던 아이들이 결국 서로 발을 맞추어 걸었다. 그리고 지켜보던 아이들은 아이들의 걸음걸이에 맞춰 박수까지 쳤다. 무엇을 가르치려고 이런 동작들을 하게 할까? 궁금해진다. 그는 일체감의 중요성을 보려주려고 한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관계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맞추어 가며 산다. 당연히 명문대를 가라는 부모말에 싫어도 따라가고, 누군가 공부를 하면 또 따라 간다. 
그런데 존 키팅은 그러지 말라는 것 같다. 획일화의 위험성을 가르쳐 주기 위한 수업이었다. 우린 인간은 개성이 있다. 자신만의 독특함이, 또는 자신만의 선택이 자신의 성공이든 실패를 가져올 것이다. 똑같은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상품이 아니다.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개성을 살리라는 것이다. 부모들이 찍어내는 의사말고 연극에 행복을 찾고 재능이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해 가고, 작가가 되고 싶으면 작가가 되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서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의 인생을선택하라는 그의 가르침이었다.
즉  걷고 싶은 대로 걸으라는 것이다. 전통에 맞설 수 있는 의지를 용기를 가져야만 자신의 삶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교장은 그의 비전통방식의 교육이 맘에 들지 않는다. 이 곳 교육과정은 정해져있고, 이미 훌륭하다는 것도 명문대 합격률로 증명되었는데 존 키팅이 그 방식을 흔들고 아이들을 흔든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목적은 사색하는 걸 가르치는 거라고 믿는다.
18살의 에단호크
전통에 도전하여 학교의 교육방식을 탈피하여 획일화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아이들을 사고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고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방식이라고 교장에게 말한다. 
전통적인 교육과 비전통적인 교육이 충돌한다. 
 
학생들의 사색을 가두어야 하는 교육과는 달리 존 커팅은 학생들의 사색을 끄집어 내는 탈교육을 시도한다. 
1950년대 남자 사립학교 웰튼을 배경으로 하여 입시 위주의 공부만을 위해 다른 모든 활동을 잠재워야 하는 시간싸움만 강조하는 삶에 가치는 없다. 그저 명문대를 향한 발걸음만 재촉한다. 선생도 부모도 학생도 말이다.
존 키팅의 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은 좀 더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한다. 
 
닐 페리는 하고 싶던 연극 무대에 서고,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강경하게 나온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던 닐 페리는 연극공연무대에 올라 멋진 무대를 만들어 내고 자신이 너무 잘한다는 걸 알게 되고 희열을 느낀다. 닐 페리는 아버지에게 사육되는 자식같았을 것이다.
 
벗어나지도 아버지를 설득할 수도 없다는 걸 인지한 건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부모가 바라는 것이 충돌하고, 자신은 거역할 수 없는 벽앞에서 자살을 선택해버리는 슬픈 상황. 
이 사건은 아버지의 반성도 교장의 반성도 학교의 잘못도 아닌 오직 존 키팅의 교육방식에 의해 벌어진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된다. 부모와 교장의 단합으로 학생들은 퇴학을 당하지 않아야 하고, 오로지 존 키팅을 내쫓게 된다.

 오 마이 캡틴!

개혁과 도전은 그렇게 존 키팅 한 사람을 처단하는 것으로 다시 전통적인 교육방식에 아이들의 양심도 꿈도 묶어 버렸다. 토드 앤더슨은 소심하고 용기가 부족했던 자신의 내면을 끄집어 내주고, 야성을 일깨워 준 캡틴을 희생양으로 몰아버린 상황에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마음이 아프다. 학생들은 문을 열고 나가는 존 키팅을 향해 책상에 올라서며 마이 캡틴을 외친다. 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책상에 올라서며 마이 캡틴을 부른다. 눈물 나는 장면이며,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하고, 억압된 내면을 끄집어 현재를 즐기게 하려는 그의 교육방식은 아이들을 대신해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가슴에는 그는 영원한 캡틴으로 남을 것이다. 참교육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으나, 우리는 아직도 애들을 틀에 끼어놓고 쪼이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캡틴 같은 스승들이 교실을 가득 채웠으면 한다. 

캡틴의 가르침대로 자기 걸음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기자.  불투명한 내일을 위해 투명한 오늘을 고통스럽게 가두지 말자.
 
18살이었던 에단 호크와 로빈 윌리엄스의  첫만남은 이렇게 이 영화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시작되었다. 
이 영화를 계기로 로빈 윌리엄스의 추천으로 에단호크는 에이전시 계약을 했다.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이 영화로  1990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는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7. 21:38

감독 소피아 코폴라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 온 샬롯(스칼렛 요한슨)과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에 온 영화배우 밥 해리스(빌 머레이)의 만남은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낯선 도쿄에서 소외된 무료함과 외로움에서 비롯됐다.

같은 호텔에 머무르고 있던 밥과 샬롯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호텔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낯선 도시에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외로운 모습을 서로 발견한 것이다. 

도쿄 시내를 구경하고 노래방도 가고,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게 꼭 일본이란 낯선 장소를 설정하지 않아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익숙한 곳이라 해도 혼자선 그저 외롭고 무료할 수밖에 없다.

 

 

샬롯은 철학 전공으로 졸업은 했지만  진로를 정하지 못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삶이 불투명하다.

"사는 게 힘들어요. 나이 들면 나아져요?" 중년의 밥에게 묻는다.

그는 "아니"라고 하더니 또다시 "아냐. 나아져."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샬롯의 눈에 밥은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젊은 날의 삶도, 중년의 삶에도 외로움은 물에 뜬 기름처럼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될수록 주변 상황에 덜 흔들리게 되지. 알면 괜찮아."

미래를 알 수 없어 불안하고 초조하겠지만 누구나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렇게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아가고, 자신과 주변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면 덜 흔들릴 것이다. 살다 보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슬슬 세상과 타협하게 살게 된다. 내가 덜 아픈 쪽으로, 내가 덜 피곤한 쪽으로, 두루두루 원만하게 그렇게 살아가는 법을 내게 던져주게 된다.

샬롯은 또 묻는다.

"결혼생활은 살수록 나아져요?"

이번엔 밥 해리스는 "쉽지 않아."라고 대답한다.

샬롯은 이제 결혼 2년 차다. 바쁜 남편으로 인해 소외된 듯 외롭고 공허하다.

앞으로  나아질 것인가 묻는 건 지금도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을 오래 한 밥도, 이제 시작한 그녀도 힘들고 외롭기는 마찬가지이다.

밥도 한때 좋았다. 아내와 항상 붙어 다녔지만 이제 아내에겐 자신보다 애들이 먼저인 게 현실이다.

"내가 설 자리가 없어."

결혼해서 아이들이 생기면 사는 건 훨씬 복잡해진다.

"제일 두려운 건 첫 애 태어날 때야. 그 순간 지금까지의 삶은 완전히 물 건너가는 거지."

이 때부터는 개인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더 가중한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보람이 되고, 기쁨이 되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살아본 자로서, 앞으로 많이 나아간 본 자로서 미래가 아주 많이 남은 샬롯에게 "희망을 가져"라고 말해준다.

둘은 낯선 일본 도쿄에서 같은 이방인이라는 것만으로 친근해졌다. 이질 감속에서 드는 동질적인 느낌은 나이차와는 상관이 없이 소외감과 외로움이란 신호를 느꼈을 뿐이다.

처음엔 타지에서 그저 고향사람 만나 반가운 것 같은 친밀도가 생기는 정도였다.

일본 광고를 찍기 위해 잠시 온 곳이지만 일본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않는 상황에 놓이면 같은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만 봐도 반가운 것이다.

다른 세대, 다른 환경, 다른 인생인데도, 오랜 산 밥도 이제 살아갈 샬롯도 같은 향기가 난다.

그저 카펫 색깔이나 묻는 아내, 아이들은 아빠가 보고싶지만 없어도 그리 불편할 것이 없는 존재라는 걸 안다.

아이들도 아빠인  밥도 다들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덜 흔들리며 사는 것이다.

잠들어 있는 남편 옆에서 잠 못 이룬 샬롯도 바쁜 남편으로 인해 호텔에서 혼자 붕 뜬 소외감이 드는 것도 아이가 생기면 옮겨갈 것이다. 덜 공허하기 위해서 적응할 것이다. 익수 해질 것이다.

 

이들은 육체적 공유가 아닌 정신적 공유를 하는 것이다.

영화의 원제는 Lost In Translation으로 통역과정에서 사라진 어떤 것을 의미한다.

꼭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다 전달되는 건 아니다.

아내와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이 전달하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고 상대의 의사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같다.

말의 의미를 해석해주거나 설명을 해주어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의견 충돌로 싸우다 보면 점점 그냥 내버려 두게 된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굳이 해명하고 설명하는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으랴,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그냥 수용하는 일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바람에 덜 흔들리기 위해 그냥 적당히 뭉개고 사는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해 전달되지 못하는 것 , 서로 다른 환경으로 이입되지 않는 감정들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통이 사라진 세상은 외로움만 더 크게 다가와 앉는다

나이차가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내면에 집중할 소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파스타가 먹기 싫다. 좀 다르게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 밥의 말에 그럼 '일본에 눌러앉아 살라'는 아내의 말에 통역기를 가동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따지고 들면 피곤해지는 건 본인이니 그냥 사라지게 놔두는 것이다.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건 외로워지는 것 같다. 공허한 메아리처럼

사랑할 때 온통 그 사람의 마음에 가 앉아 있으려고 하니  통역이 필요 없지만 왠지 결혼생활은 통역이 필요할 것 같다. 오래된 부부 사이에도 말이다. 그러니 샬롯이 앞으로 통역할 내용이 얼마나 많이 펼쳐지겠는가?

자기의 마음을 몰라주는 경우가 많아지면 통역을 해야하거나 그냥 그저 상황에 맞게 내려놔야 살아지는게 아닐까. 

밥의 '좀 다르게 살고 싶다'라는 말이 언저리를 돈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7. 16:51

감독 강석범

영화 해바라기

태식의 희망 수첩에 적힌 건 다 시시한 것들이었다.

호두과자 먹어보기, 공중목욕탕 가보기, 숨 막힐 때까지 여자랑 뽀뽀하기, 싸우지 않기, 담배 피우지 않기 등

 

오태식(김래원)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친개처럼 살았다. 닥치는 대로 피도 눈물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며 살았다.

싸움 끝에 덕자의 아들을 죽였다. 태식에겐 그저 죽은 이도 다친 이도 그저 동네 양아치 조직의 한 명이었을 뿐이다.

그로 인해 감옥에 들어간다.

 

덕자(김해숙)는 도대체 얼마나 잘못을 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냐고, 내 아들이 뭘 그리 잘못해서 죽였냐고 따지려고 면회를 갔다.

그런데 죄송하다고 그렇게 서럽게 우는 넘은 첨 봤다고 했다.

그래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렇지 나쁜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면회를 가다 보니 정이 들었고, 괜찮은 녀석이었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오면 같이 살자고 했다.

아들 하자고 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녀석을 아들처럼 품은 것이다.

 

오태식은 가석방되어 나와 조직에 몸 담지 않고 해바라기 식당을 하고 있는 덕자를 찾아간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수첩에 적인 희망들을 하나씩 주워 담으면서 뿌리내리고 싶었다.

그런 시시한 것들이 희망이라는 걸 알게 해 준 덕자로 인해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카센터에서 취직하여 일도 하고, 동네 양아치들을 폭력을 가해와도 온전히 몸으로 다 받아냈다.

단 한 대도 때리지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다. 울지 않는다.

그렇게 희망수첩에 적힌 것을 지켜나가며 덕자의 아들의 빈자리와 희주 오빠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주고 싶었다.

용서로 안아주시니 최선을 다해 그들의 가족과 함께 하고 싶었다.

 

자신의 오빠를 죽인 사람인 줄 알고도 희주(허이재)는 '이제부터 오빠라고 부를게' 하며 자신을 품어주었고,

자신의 귀한 아들을 죽게 만든 자신을 용서하고 아들로 사랑해준 덕자였다.

 

그의 삶에 공급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랑이었다. 그들로 인해 자신이 뿌리내릴 수 있는 품을 내어주었다.

10년간 감옥에서 눈물 흘리며 후회하며 다짐하고 다짐했다. 제대로 살아가겠다고 말이다.

사소한 것들이 희망이 된다는 것을, 가족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가족이라는 희망의 불씨를 꺼지지 않게 지켜내고 싶었다.

 

 

그러나 재개발로 인해 덕자가 운영하는 해바라기 식당을 매입하지 못한 조판수(김병옥)의 조직들은 덕자의 가게를 부수고 위협을 가해왔다.

덕자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죽은 아들의 일기를 복사해 그 넘에게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고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을 한다.

그냥 처음부터 조판수를 도발하지 말고 딸과 태식을 데리고 이사를 가면 좋았겠지만 그녀가 그리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죽은 아들과 식당을 차릴 그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지켜내고 싶었다.

돈 내놓으라고 엄마를 때리는 아들이었지만 그 아들과 준비하며 행복했던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다.

그런데 딸 희주가 조직들에게 당해 병원에 누워있는 걸 보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조판수는 김양기(김정태)를 시켜 자신의 비리가 적힌 아들의 일기장과 덕자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다.

오태식은 그렇게 조용히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조판수에게 손목 하나를 내주었다.

그저 멀리 떨어져 조용히 살아가겠다고 했는데 희주와 어머니를 저리 만들어야 했던가.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했던가

 

조판수 일당은 자신의 희망의 불씨를 지피게 놔두지 않았고, 결국 평생 지켜주고 싶은 가족이 생겼는데 그들로 인해 그마저 잃었다.

죄를 지었으면 죄를 받아야지 이젠 내가 돌려주려고 간다.

조판수 일당들이 나이트클럽 개업을 성대하게 치르고 있는 그곳으로 오태식이 나타난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시원했냐는 그의 절규가 10개 중의 9개를 다 주었고, 단 하나, 그들과 살고자 했다.

그 하나마저 허용해 줄 수 없었던 거냐고 외친다.

도움도 필요 없고, 그냥 내 버려 달라고, 그러면 되는 건데 꼭 다 삼켜야 했던 건지

다 가져가야 직성이 풀리는 욕심으로 인해 해바라기 희망씨앗이 다 타버렸다

태식은 그들의 하나도 다 태워버린다.  그들과 같이 희망의 불씨를 다 꺼버린다.

 

영화 속에서 경찰은 철저하게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그 조직의 하수인으로 숨어있었다.

그의 희망이 조직의 욕심으로 경찰의 방관으로 차단되었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6. 02:14

감독 장 마크 발레

재클린과 로랑,베로

 

1960년대 파리와 2000년대 현재 몬트리올

서로 다른 장소와 다른 시대를 단 하나의 노래로 연결하여 사랑을 완성해낸다.

한 번의 삶이 아닌 두 번의 삶을 통해서 용서되고, 치유되고, 파괴되었던 사랑이 결합된다.

영화는 두 시대를 화면 대비로 전생과 현재의 분위기를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두 생을 이어주는 '카페 드 플로르'라는 음악은 1960년대는 아코디언 버전으로, 2000년대는 일렉트로닉 버전으로 하여 다르게 들리게 만들었다.

 

 

1960년 파리, 다운증후군 아들 로랑(마린 게리어)과 싱글맘 재클린(바네사 파라디)

장애아를 낳은 후 남편은 시설에 보내자고 하고, 엄마인 재클린은 그럴 수 없다고 혼자서 아들을 키우게 된다.

25살까지밖에 살지못한다는 다운증후군 아들의 운명 앞에  재클린에게 목표가 생긴다.

아들의 장수, 아들이 25살이 아닌 오래 오래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녀의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다.

그녀는 자신의 방식대로 로랑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고 아이가 남에게 당하지 않게 말로 싸워 이기는 법을 가르치고 권투도 가르친다.

그녀의 삶은 오로지 로랑에게  쏠려 있다. 서로에게 서로가 다인 자클린과 로랑

로랑은 카페를 틀어달라고 한다. 아들 로랑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 '카페 드 플로르'

그녀는 미용실에서 일하며 아들이 학교에서 마칠 시간이면 항상 데리러 간다.

어느 날,로랑을 데리러 간 재클린은 로랑이 한 여자아이를 끌어안고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선생님들이 그 아이들을 떼 놓으려고 하면 할수록 고함을 지르고 더 딱 붙어있는 것이다.

당황스러운 재클린은 로랑에게 떨어지라고 해도, 힘으로 떼어내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로랑이 껴안고 있는 여자아이 베로도 함께 데리고 집으로 온다.

베로 역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베로를 데리러 온 부모님으로 인해 보내주어야 하는 상황에도 로랑과 베로는 헤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들은 그 이후로도 계속 그랬고, 한 번도 떨어져 자본적이 없는 로랑은 베로의 집에까지 가서 자게 된다.

재클린은 급기야 아들의 빰을 때려 떼어내야 했다.

재클린은 도둑이 들었다고 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카페 드 플로르'를 듣는 레코드판까지 다 부숴버린다.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베로를 사랑한다는 로랑은 재클린을 점점 지치게 하고 소외감, 배신감까지 들었다.

베로의 부모님은 베로를 특수학교에 보내기로 한다. 형편상 그럴 수 없었던 로랑은 이제 앞으로 베로를 자주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로랑이 없어졌다. 재클린은 사라진 아들을 찾아 정신없이 찾아 헤매고 학교에서 로랑을 발견한다.

로랑은 첨으로  오직 베로를 만나겠다는 의지 하나로 혼자 학교까지 찾아간 것이다.

재클린은 어쩔 수 없이 베로를 만나게 해 준다. 베로가 멀리 이사를 가 더 이상 매일같이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로랑은 베로에게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재클린은 말려도 안되는 로랑의 손발을 침대에  묶어버린다.

로랑은 계속 소리지르고 그녀는 마음마저 무너진다.

결국 베로에게 연락을 하여 로랑과 만나게 해 주고 베로와 아들 로랑을 자동차 뒷좌석에 태우고 자동차사고로 동반자살을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아들에게 너무 모든 것을 걸었던 재클린은 아들 로랑이 베로를 사랑하자 절망으로 바뀌어 동반자살을 선택한 것이 충격적이다.

아직 그러기엔 아이들은 너무 어린애였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세 사람의 삶을 끊어놨다.

앙트완, 카롤,로즈

 

2000년 몬트리올

재즈, 락 음악에 빠진 카롤(헬렌 플로렝)과 앙트완(케빈 파랑)은 서로 운명적으로 사랑한다. 카롤은 앙트완이 자신의 숙명이고 신이 맺어준 운명이라 여긴다.

서로에게 서로가 다인 카롤과 앙트완은 결혼을 하고, 딸 둘을 낳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그러나 로즈(에블린 브로처)를 사랑하게 된 앙트완은 카롤과 이혼하고 현재 로즈와 살고 있다.

카롤은 그가 기다리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딸은 시도때도 없이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 '카페 드 플로르'를 틀어 자신을 죄책감에 묶어 놓는다.

앙트완은 그 노랠 좋아하지만 아내 카롤에 대한 잔상으로 힘들어한다.

부모님마저 로즈와의 사랑을 비난하고 축복해주지 않는다.

카롤은 몽유병 증세까지 보이고 심한 악몽에 시달린다. 꿈엔 다운증후군 남자애가 자꾸 찾아온다는 것이다.

카롤은 영매를 찾아간다.

그리고 알게 된 자신의 전생은 앙트완이 로랑이고, 로즈가 베로이며, 자신이 로랑의 엄마 재클린이라는 것이다.

그들을 갈라놓기 위해 자신이 했던 짓까지.

세 사람이 다시 환생하여 지금의 세 사람이 다시 운명처럼 만난 것이다.

카롤은 앙트완을 찾아가 잘못했다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사랑을 내려놓는다.

진심으로 앙트완과 로즈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카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집착은 사랑을 불행하게 만드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파멸과 같다.

 

 

앙트완은 세계적인 D.J로 로랑이 듣던' 카페 드 플로르'를 일렉트로닉 버전으로 듣는다.

이 영화를 끝까지 봐야 두 번의 삶과 네 사람의 사랑과 하나의 연인이라는 포스터 속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음악적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길을 가다 잠시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음악, 듣고만 있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

마음을 정화되고 치유되는 음악, 심장박동처럼 쿵쾅쿵쾅 뛰는 리듬으로 생동감 있는 음악이 영화 속 이야기에 흘러 들어간다.

 

음악을 통해 두 번의 삶을 이어주고 사랑도 이어준다.

앙트완이 D.J 로서 꺼내놓은 음악적 요소가 영화의 스토리를 좀 더 생기 있게 만들어 놓는다.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삶 전체를 통해도 힘든 과정이라 두 번의 삶이 필요했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집착이 비극적 사랑으로 끝나 또 한 번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완성하게 되는 좀 몽환적인 스토리이다.

물론 나는 시대별로 나누어서 글을 써 내려갔지만 영화에서는 두 시대를 구분 없이 오가면서 보여주기 때문에 헷갈릴 수도 있다.

 

 

 

바네사 파라디, 케빈 파랑, 헬렌 플로렝, 에블린 브로처

 

posted by 해이든 2019. 4. 13. 14:59

감독 벤 스틸러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16년째 '라이브'지에서 사진관 리사로 일하고 있는 월터(벤 스틸러)는 출근하자마자 회사가 팔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대대적인 정리해고의 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해 본 것도 없고, 가본 곳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으로 오로지 상상으로만 꿈꾸는 사람이다.

상상 속에서만 용감한 히어로이고, 로맨틱한 사랑을 한다.

그런 그가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을 만나기 위해 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을 겪으면서 생애 최고의 순간들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숀은 회사가 망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간 고생한 보답이라며 월터에게 사진이 담겨있는 필름과 편지를 보낸다.

'25번 사진은 내 최고의 작품이야. 삶의 정수가 담겨있지'

'라이프'지 폐간을 앞두고 마지막호에 실린 표지 사진인 것이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라이프'지 모토가 새겨져 있는 지갑을 선물한다.

그런데 마지막 잡지에 사용될 25번째 필름만 사라지고 없다.

해고 위기에 처한 월터는 사라진 사진을 찾기 위해 숀 오코넬이 찍은 다른 사진 3장을 가지고 무작정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사진작가로 지구 곳곳을 다니는 숀을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월터

 

17km를 달리는 월터

 

화산 폭발을 경험하는 월터

만취한 상태로 헬기를 운행하는 헬기에 오르는가하면 그 헬기에서 바다로 뛰어들고, 아이슬란드 어선에 승선하고, 하루 만에 17km를 달리고,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을 경험하고, 자전거. 롱보드를 이용하여 이동하는 등 해 본 것도 없고, 가본 것도 없는 그의 일상이 스펙터클한 모험으로 가득했다.

끝내 숀을 만나지 못하고 해고된다.

집으로 돌아온 월터는 3장의 사진 중에 한 장만이 무엇을 찍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사진은 자신의 집에 있는 피아노 모서리 부분임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사진은 집에 온 숀의 카메라로 어머니가 직접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월터에게 그가 집에 왔었다고 말했지만 웥터가 상상 멍 때리기 하느라고 못 들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망연자실해 그가 준 지갑을 휴지통에 버린다.

어머니로 인해 숀이 눈표범사진을 찍으러 갔다는 걸 알게 되고 무법이 판치는 히말라야 산맥 중턱으로 다시 숀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

숀과 만난 월터, 그리고 유령표범을 만나게 된 두사람

노 샤크 최고봉을 등정하여 어렵게 그를 만나게 된 월터는 어이없는 사실에 망연자실한다.

사라진 사진이 그가 선물한 지갑 안에 들어있었다고 말한다. 그 지갑은 이미 휴지통에 버려진 후였다.

지갑은 그저 도구였다. 재미있으라고 장난친 거라고, 지갑은 그저 도구였다.

숀은 최고의 작품이었는데 지갑을 버려서 아쉽다고 말한다.

숀은 유령표범이 나타나자 사진을 찍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을 찍으려고 이 험한 산까지 온 것이 아니었나

숀은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라고 말한다.

숀이 찍은 최고의 작품

다행히도 휴지통에 버린 지갑을 챙겨놓은 어머니(셜리 맥클레인)로 인해 사라진 필름을 회사에 갖다 주고 정리 해고한 테드(아담 스콧)에게 재수 없게 굴지 말라고 하고 나온다.

회사가 열심히 일한 직원들을 정리해고 했지만 그들은 잡지를 만드느라 열심히 일했고 회사 모토를 믿었다. 그것만으로 그들은 그 순간 속에 머물며 그 순간을 열심히 살아낸 아름다운 자들이다. 열심히 산 그 모든 순간들이 아름다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정작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은 그저 자기일에 열심히 할 뿐 누구의 관심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라이브'지 표지에 실린 월터

월터가 달라졌다. 이제 정말 현실속 캐릭터가 되었다.

다른 직장을 찾기위해 이력서에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그가 경험한 일들을 적어 내리고, 그가 가본 곳을 적어 내린다.

맘에 두고 있는 셰릴(크리스틴 위그)에게도 상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셰릴과 나란히 시내를 걷다 마지막 '라이프' 잡지를 발견한다. 표지 사진은 바로 월터의 사진이었다.

'모든 직원에게 바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라이브지'를 위해 열심히 일한 월터의 모습이 숀이 말하는 아름다운 순간이었고, 그가 말한 최고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라이프'지의 모토가 새겨져 있는 지갑을 준 것은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는 숀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다.

숀은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월터가 라이브 지를 잘 이해한다고 했다. 월터만큼 자기 의도대로 사진의 의미를 살리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없었다고, 월터가 자신의 작품을 완성했다고 전했다.

숀의 눈에는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월터의 모습이 유령 표범처럼 아름다웠던 것이었다.

상상만 하고 있는 월터가 숀의 장난으로 인해 정말 멋진 경험과 최고의 순간들을 현실 속에서 만끽해가는 모습과 함께 그가 변화되어 가는 것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3. 01:19

감독 봉 준호

살인의 추억

시간이 흘러도 몰입도가 높고 배우진들의 연기가 남달랐던 봉 준호 감독의 범죄 스릴러물이고 블랙코미디이다.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중의 하나인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실제 있었던 연쇄살인사건이다.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일어난 여성 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부터 처음 발생하여 1991년 4월 3일이 지나서야 끝난 미해결 사건으로 2006년부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10차례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는데 그중 마지막 3번의 사건은 모방범죄였다.

DNA 감식체계 같은 것이나 머리카락 채취 같은 과학적 수사가 도입되지 않았던 때라 부실한 과학수사체계와 열악한 치안환경의 문제로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시골형사 송강호와 서울에서 내려온 김상경, 그리고 범인으로 몰렸던 세 명의 용의자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일단 송강호가 맡은 형사 박두만은 사람 인상만 보면 딱 알 수 있다고 촉을 중시하는 형사였다. 자신의 촉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자백하게 만드는 대책 없는 수사를 한다. 그와 같이 조용구(김뢰하)도 고문과 폭력을 행사하는 동료 형사이다.

살인의 추억은 두 형사의 감정적 변화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범인에 대한 추적, 당시 너무 미흡한 수사과정까지 리얼하게 드러나 있으며 , 용의자로 몰린 세 명의 캐릭터들도 생생하게 기억될 정도 인상 깊었다.

조연으로 가장 독보적이었던 백광 호역을 맡은 박노식은 첫 번째 용의자로 얼굴의 화상이 있고, 정신박약에 동네 바보였다.

"향숙이 향숙이 예뻤다."의 유행어를 남긴 대체 불가 연기를 보여주었다.

변태 역할을 맡은 조병순 역 (류태호), 그리고 심증은 있는데 물증을 없어 속 터지게 했던 박현규 역의 박해일, 송강호의 아내 역 곽설영(전미선)까지 캐릭터들이 생생히 살아있다.

만약 과학수사가 지금처럼 이루어졌다면 범인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범인은 누굴까? 박현규란 짐작만 가지고 살인은 영원히 미궁 속에 묻혀버린다.

두 형사에게 이런 끔찍한 사건은 처음이었다.

1986년 경기도 화성군. 여인이 무참하게 강간 살해당한 후 시체로 발견 , 연이은 비슷한 수법의 강간살인사건으로 언론과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고 연쇄살인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지역 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조용구(김뢰하), 그리고 서울에서 자원해 온 서태윤(김상경)이 배치된다.

직감, 미신, 고문 등 구시대적 수사를 대표하는 시골형사인 박두만과는 달리 서태윤은 사건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은 사사건건 맞지 않아 충돌한다.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피해 여성이 착용한 스타킹이나 브래지어를 이용해 결박하고 목을 조르고 팬티를 머리에 눈을 가린다.

 

여론은 들끓고, 사건은 계속 미궁 속에 빠지고 연쇄살인이 계속 일어나자 반장까지 교체된다.

폭력으로 자백을 받아내려던 두만은 자신의 방식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다.

수사과정에서 범인으로 몰았던 백광호가 범인이 아닌 살인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임을 알게 된 두 형사는 백광호를 찾아가지만 고문당했던 일로 인해 백광호는 도망가다 기차에 치여 숨지게 된다.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방송되는 날마다 여인들이 살해되었다는 것을 정황을 토대로 비 오는 날 <우울한 편지>를 틀어달라고 라디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낸 박현규의 신병을 확보한다.

세 번째 용의자 박현규는 여자들이 죽는 밤마다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우울한 편지>를 틀어달라고 한 매우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서태윤은 그를 범인으로 단정 지었지만 결정적 증거가 부족했다.

서태윤은 박현규를 미행하다 놓치고 또 한 건의 여학생이 살해당하자 완전히 이성을 잃고 박현규를 철길로 끌고 가 두들겨 패며 자백을 요구한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두만의 무식한 수사를 비웃으며  가장 냉철한 면을 보였지만 계속되는 연쇄살인으로 차분하고 이성적인 서태윤도 점점 감정적으로 변해간다. 박두만은 또 서태윤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변해간다.

박현규는 표정 변화 없이 서태윤을 조롱하고, 이성을 잃고 총으로 쏘려는 서태윤을 박두만이 말린다.

박두만은 박현규에게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말하며 범인이라는 촉을 못 느끼자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묻는다.

참 심경 복잡한 말이었다.

미국에서 온 유전자 감정 소견서는 박현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있고, 박현규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가진  태윤은 철길 터널 속으로 도망가는 그에게 총을 쏜다.

하지만 두만의 방해로 빗나가고 현규는 유유히 터널을 빠져나간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1. 14:58

감독 엄유나

영화 말모이

말모이란 영화를 통해 그들이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이토록 값진 걸음을 걸었는지는 알게 되었다.

한글의 소중함은 물론이요, 우리말 사전을 위해 조선어학회 선생님들의 희생과 그걸 막는 일본인의 탄압이 이 정도일 줄이야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더 큰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뜻 모아 마음 모아 말모이를 완성해가기까지의 투쟁을 담아낸 영화라 값지다.

 

말모이 뜻은 조선말 사전의 이름이며 39살의 나이로 사망한 주시경 선생 이후 중단되었던 우리말 사전을 마무리하기 위해

1929년부터 조선어학회에 의해 재개된 사전 편찬 작업이 전국의 사투리를 모아 공청회를 거치는 말모이 완수를 마지막 순서로 남겨놓았던 시기이다.

점점 극악해지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주축으로 해 말모이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극적이다.

말이 왜 민족의 정신인지, 사전을 만드는 것이 왜 나라를 지키는 일인지,

말살되어가는 한글을 지켜내고자 했던 그들의 항일투쟁은 우리에게 또 다른 독립운동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류정환의 아버지는 한 사랑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걸음이라고 조선사람 모두가 지식을 키우고 힘을 키우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아들에게 가르쳤던 분인데 그런 아버지가 친일파가 되었다. 류정환은 친일 하는 아버지에게 실망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조국에 돌아와 사전 편찬에 힘쓰고 있다.

그는 서울역에서 어떤 아이와 부딪혔고, 조선의 나라에서 조선의 아이임에도 일본말을 쓰고 조선말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조선어학회에서 잡지와 사전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는 곳에 그 뜻이 모이고, 그 뜻이 모이는 곳에 비로소 독립의 길이 있지 않겠냐''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은 동지들과 함께 말모이를 완성하기 위해 원고를 가방에 넣어 경성에 들어오게 된다.

한편 경성 극장에서 일하는 까막눈 김판수(유해진)는 극장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김판수의 아들은 경성제일중학교 학생으로 월사금을 내지 못해 매를 맞고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조선말로 인해 빰을 맞는다.

판수는 우편배달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고 글을 못 읽는 까막눈 판수는 우체부에게 읽어달라고 한다. 그것은 월사금 미납 통지서로 제적이나 차압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아들의 월사금을 구하기 위해 김판수는 후배들과 함께 경성역에서 조선어학회 류정환을 타깃으로 잡아 그의 가방을 훔친다.

가방을 잃어버린 류정환은 김판수를 쫒고 김판수가 떨어뜨린 월사금 미납 통지서를 들고 그의 집에 가 가방을 되찾아온다.

 

류정환은 책방 안 비밀장소에서 동지 선생님들과 함께 말을 모아 우리말 사전을 편찬 중이다.

직장을 잃은 판수는 조선어학회 조 선생(김홍파)의 소개로 조선어학회 심부름을 해주러 온다. 하지만 그가 소매치기란 걸 아는 류정환은 그가 반가울 수가 없다. 거기다 까막눈이라는 것까지.

다른 동지들의 환대로 한글을 한 달 안에 배우는 조건으로 김판수를 받아주게 된다.

 

조선어학회에서는 전국 사투리를 모아 사전을 만드는 작업이 난관에 부딪히자 김판수는 감옥에서 알고 지낸 전국 팔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투리를 수집하게 된다.

어느 날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어 신문과 잡지와 책방을 폐지하라는 공문이 내려온다.

류정환은 표준어 공청회를 해야 하는데 공문까지 받고 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 한글> 잡지에 전국 사투리를 모은다는 광고를 싣는다.

잡지는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나 일본의 탄압 아래 한 통의 편지도 오지 않고 동지 민우철(민지웅)의 배신으로 조선어학회 비밀창고의 모든 책과 원고들이 압수당하고 조 선생까지 잡혀가 고문으로 죽게 된다.

 

원고가 다 압수되어 좌절하고 있는데 조 선생의 아내가 자신의 집에 조선생의 만약을 대비해 필사해놓은 원고가 있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그리고 우체국 창고에 조선어학회 앞으로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사투리에 대한 정보와 격려의 후원금이 든 봉투까지 민족의 응원이 담겨있는 우편물을 입수하게 된다.

우편배달부가 조선총독부의 눈을 피해 없애지 못하고 몰래 보관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총독부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극장에서 몰래 공청회를 열어 표준어 사전을 만들어 간다.

이를 눈치챈 총독부가 들이닥치자 류정환은 원고를 지키려고 김판수와 극장을 빠져나가다 총에 맞아 쓰러진다.

류정환은 김판수에게 꼭 원고를 부산 인쇄소에 넘겨달라고 부탁하고 일본군을 유인하고,

김판수는 서울역에서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도망가다  원고를 건물 안 유리창으로 밀어 넣어 숨겨놓고 일본군의 총에 맞아 쓰러져 죽는다.

 

해방이 되어 류정환과 조선어학회 동지들은 그 원고를 어렵사리 찾아 <조선말 큰 사전>을 완성할 수 있었고 그중 한 권을 김판수의 아들과 딸에게 선물한다.

 

이 영화는 말을 모아 사전을 편찬하려는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공청회에 모인 수많은 선생님들과 이를 탄압하고 감시하는 일본군의 팽팽한 대립으로 긴장감은 고조에 달했다.

까막눈이었던 김판수가 한글을 배워가며 세상의 눈을 뜨고 글을 배워 익히고 간판을 읽을 수 있게 된 김판수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는 만큼  충만해 보였고 밤새 집에도 안 들어가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으며 아내를 생각하며 우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자식에게 엉성하게 적어놓은 편지 또한  눈물을 적시었다.

유해진의 코믹한 웃음과 눈물을 흘리게 하는 연기가 적재적소에 단비처럼 내렸다.

 

김판수의 아들이  어린 동생에게 한글을 쓰지 말라고 학교 가서 한글 쓰다 맞는다고 말하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라 아펐고,

소매치기로 만나 서로 불신하며 부딪히고 갈등을 겪으며 진정한 동지로 결실을 맺었고, 원고를 지키기 위해 그는 어린 자식들을 남기고 떠났다

그 열 사람의 발걸음이 모여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글을 접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자막을 보면서 영화로서가 아니라 실제 사건으로서 더 아프고 아픈 한 걸음이었다는 사실에 너무 뜨거운 눈물이 범람했다.

그리고 순희가 일제 이름이 아닌 엄마의 바람대로 아빠가 순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지은 순희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어 감사했다.

 

조선어학회는 13년간 시간에 걸쳐 전국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말모이 원고를 완성한다.

하지만 1942년 33명이 구속되고, 2명이 고문으로 사망하는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생한다.

해방 후 사라진 줄 알았던 말모이 원고가 서울역 창고에 발견됨으로써 <조선말 큰사전>이 탄생한다.

한국어는 현존하는 3천 개의 언어 중 고유의 사전을 가지고 있는 단 20여 개의 언어중 하나이며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 중 거의 유일하게 자국의 언어를 온전히 회복한 나라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1. 01:22

감독 멜 깁슨

핵소 고지

<핵소고지>는 멜 깁슨 감독의 수작이 아닐 수 없다.

 

데스몬드는 어느 날, 트럭에 깔려 다리를 다친 사람을 데리고 간 병원에서 간호사 도로시(테레사 팔머)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데스몬드 도스와 도로시

의무병으로 군대에 지원한 데스몬드는 도로시에게 청혼을 하고, 첫 휴가를 나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군에 입대한 데스몬드(앤드류 가필드)는 총기를 나누어 주는데 총기 소지를 거부한다.

총을 들 수 없다는 이유로 필수 훈련중 하나인 총기 훈련을 거부한 데스몬드 도스는 동료 병사와 군 전체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 거기다 토요일은 안식일이라 훈련에 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종교적 신념에서이다.

전쟁에 있어 군인에게 총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동료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총을 들지도 않은 동료에게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할 수 없음에 냉담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서 명령불복종에 해당하는 것이고, 총기 없이 전쟁터에 나간다는 것 자체를 수용할 수 없었던 군 상부는

그를 정신이상자로 의가사 제대시키려 했지만 마땅히 종교적 신념에 의거할 뿐 정신적인 문제는 아니라 승인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상관은 그가 소속된 부대원들에게 공동체적인 책임을 물어 가중한 훈련이 가하고 소속 부대 전우들에게까지 구타와 냉대를 받는다.

 

기본적인 소총훈련을 받지 않았기에 휴가를 줄 수 없고, 총기를 들라는 명령을  그는 끝내 수용하지 않자  군사법정에까지 서게 된다.

총기를 거부하는 데스몬드 도스

도로시는 당신의 신념과 종교적 신념을 헷갈리지 말라고 설득하려고 하자 신념을 저버리고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다는 강경함으로 그는 재판까지 간다.

'왜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른 군인들과 똑같이 전쟁에 분개하여 젊은이로서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은 죽이기 위한 지원이 아니라 살려내기 위한 군대 지원임을 밝혔다.

"온 세상이 산산조각나는 판에 저라도 그걸 조금이라도 다시 붙이려는 노력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의무병으로 복귀하여 총 한 자루 없이 핵소 고지 점령이라는 전투에 참여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오키나와 전투 중 핵소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투는 정말 리얼 너무 참담했다. 어떤 전투씬도 이렇게 리얼하지 않았다.

전투씬은 너무 끔찍하여 제대로 눈을 뜨고 보기가 힘들었다.

그는 신념으로 총을 들지 않고 전투에 참가하는 의무병으로 총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그의 역할을 해 나간다.

그는 핵소 고지에서 자신을 구타했던 전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전쟁 참전으로 동료들을 다 잃고 피폐해지고 난폭해진 아버지는 해가 뜬다는 이유로 때리고, 해가 진다는 이유로 때렸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를 괴롭히는 아버지 톰 도스(휴고 위빙)를 참아줄 수 없어 아버지가 들고 있는 총으로 아버지를 겨냥해 죽이려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아버지를 쏘았다고 말한다.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라고, 그래서 그 이후로 다시는 총을 들지 않겠다고 신과 약속했다고 한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총을 당장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는 끝까지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전우는 그에게 겉만 보고 너무 급하게 판단했다고 미안해한다.

부상병을 구해내는 데스몬드 도스

일본군의 습격으로 100명의 부하들이 핵소 고지에서 다 죽어가는데 미군 병력은 다 철수하고, 당장 지원병마저 막힌 상태가 된다.

그런데 누군가 살아남은 부상병을 밧줄에 묶어 고지밑으로 내리고 있다.

일본군은 지금 적군들을 일일이 수색하는 중이다.

병력이 다 철수한 곳에서 데스몬드 도스는 의무병으로 혼자서 전우를 구해 밧줄에 매달아 절벽 아래로 한 명씩 한 명씩 내려 살리고 있다

'제발 한명만 더, 제발 또 한 명만 더 한 명만 더 구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신께 기도 하며 적진 속에 살아있는 부상병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게 75명의 부상병들을 구해낸다.

부상병들이 속속 부대로 실려오는 것을 안 군인들은 크게 감동을 받는다.

총을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외면하고 겁쟁이라 냉대하였는데 그의 신념에 모두 숙연해진다.

밧줄로 묶어 절벽아래로 내려보내는 도스

그리고 캡틴 글로버(샘 워싱턴)는 그에게 다가와 그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저 비쩍 마른 모습만 봤지. 진짜 네 모습을 몰라봤다. 그 어떤 군인도 못할 일을 해 냈어.

평생 이렇게 사람을 잘못 본 적이 없다. 언젠가는 용서하길 바란다.

병사들은 너같은 믿음은 없지만 한 가지 믿음은 있지. 네 큰 믿음에 대한 믿음 , 네가 했던 일은 말 그래도 기적이었다. "

데스몬드의 대단한 믿음과  신념으로 죽어가는 전우들의 생명을 조각조각 붙여냈다.

 

실존 인물인 데스몬드는 핵소 고지에서 부상병 75명을 구출했다.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최초로 미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그는 향년 87세로 2006년 3월에 사망했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9. 22:11

감독 킴벌리 피어스

소년은 울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에 담기면 담길수록 많은 지식과 경험과 함께 공감대가 넓어진다.

다른 이의 슬픔에 쉽게 얹히고, 다른 이의 다른 모습에 또 하나의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경시하지 않는다.

외모보다 마음의 온도에 더 다가서게 된다.

살면서 나자신보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성장해 가는 것이 더 많았다.

 

나를 제외하고 나면 전부가 타인이다. 나를 대할 때와 타인을 대할 때의 온도는 다르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내가 뜨거워질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 뜨거움에는 설명도 해명도 필요치 않다. 같은 무늬로 사랑하지 말라고 누가 정해 놓은 것인가?

다른 무늬만 사랑이라고 묶어놓은 것은 또 누구의 상식인가?

상식을 논하는 사람치고 상식적인걸 본 적이 없다. 진실만 100% 먹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위선을 보지 못할 뿐이다.

 

그녀로 태어났지만 그로 살았다.

그게 자신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신의 장난처럼 겉은 여자로 만들어 놓고, 육체 안에는 남자를 심어준 것이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겉지인 육체가 아니라 속지인 정신이라는 것이고, 마음이라는 것이다.

실화라서 더 안타까운 삶이다. 그래서 가해자들이 미운 것이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존과 그 친구들'

티나 브랜든(힐러리 스웽크)은 그녀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그로 살아야 했다.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조차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점점 남자같아졌고, 여자에게 호감이 갔고, 여자에게 사랑을 느꼈다.

남자가 되어가면서 삶이 엉망이 되었다.

브랜든은 남자로 행사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남자였다. 그로 사는 걸 행복해했다. 티나 브랜든은 자신을 사랑했다.

단지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자신의 껍질을 바꾸고 싶어 했을 뿐이다.

하지만 성전환수술을 받기엔 금액이 너무 감당할 수 없었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라나에게 반한 티나 브랜든'

남장을 하고 우연히 들른 술집에서 캔디스(알리시아 고랜슨)를 만나 인연이 이어지고, 그녀의 집에서 머물며 그녀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브랜든은 남자로서 거친 그들의 생활에 가담했고, 안에 담겨있던 자신의 남성 본능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라나 티셀(클로에 세비니)을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해 버린다. 하지만 라나에게는 그녀를 좋아하던 남자 친구 존(피터 사스가드)이 있었다.

존은 탐(브렌단 섹스톤)과 나쁜 짓을 서슴없이 하고 다니는 거친 친구들이었다.

라나와 브랜든은 점점 서로에게 빠졌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티나 브랜든과 라나'

티나 브랜든은 절도혐의로 수배 중이었고, 경찰 단속으로 위조된 면허증을 제시한 것이 발각되어 유치장에 들어가게 된다.

그로 인해 그가 그녀라는 사실을 라나와 그 친구들이 알게 된다.

유치장에 면회 온 라나에게 자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여자라고 말한다.

"네가 누구든 난 상관없어. 내가 널 여기서 꺼내 줄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우리도 아름답게 살아야지."

라나는 그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사랑한 것이다. 티나는 자신이 여자인 것을 라나가 알고 이해해주자 이제야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라나만이 그도, 그녀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그냥 이렇게 두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주변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라나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모두 브랜든을 내치기만 했다.

그리고 존과 탐은 브랜든을 데리고 나가 그가 여자임을 모욕적으로 밝히고 짓밟았다. 하물며 성폭행하고 폭력까지 가했다.

존과 탐은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복수심에 캔디스에 집에 있는 티나를 살해하고 만다.

존과 주변인들의 편견과 혐오로 여자로도 남자로도 살아가기 힘들었을 티나 브랜든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삶을 더 진행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잔인한 현실이다.

누구로 인해 구분되어진 사랑인지 모르겠다.

무엇으로 구분짓는지 모를 세상이다.

남자, 여자 보다 인간과 짐승으로 구분지어야 할 세상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존은 브랜든 티나 살인죄로 유죄를 선고받고도 사형을 면하려고 항소했다는 사실이 짜증이 난다.

남의 목숨을 둘이나 앗아간 자가 본인은 무엇을 위해 더 살아보겠다고 용쓰고 있는 것인가?

겉모습으로 구분 짓는것이 아니라 인간적인가 비인간적인가로 갈라놓고 싶은 세상이다.

마음이 차가운가 따뜻한가로 온도를 측정해 갈라놓고 싶은 세상이다.

 

그는 고속도로를 타 본 적도 없고, 어디 멀리 가 본 적도 없고, 링컨을 벗어나 본 적도 없다.

더 살았다면 펼쳐 보았을 삶과 사랑이 안타까워 눈물이 난다.

존으로 인해 티나 브랜든(1972~1993년)이 살지 못한 삶이 너무 아프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가 아니라 소년은 울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그 세상을 살지 못하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9. 19:48

감독 길예르모 아리아가

영화 욕망의 대지

시간의 순서 없이 전개되는 것도 잠시, 흩어진 조각들이 조금씩 맞추어지면서 혼란스러웠던 생각은 뒤로 물러나고, 오로지 아픈 여주인공에게 손을 뻗는다.

보통의 영화들이 순서대로 흐르게 하거나 아니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반면 이 영화는 그런 걸 완전히 무시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나 조금만 조금만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뒤섞인 시간의 순서도 보이고, 내용과 사건도 조합해 볼 수 있다.

욕망의 대지 '지나와 닉'

미국 남서부 외딴곳에 위치한 트레일러가 불타 두 남녀가 죽었다.

두 남녀는 지나(킴 베이싱어)란 여자와 닉(조아큄 알메이다)이란 남자였다. 둘은 각자 가정이 있는 유부녀, 유부남으로 불륜관계였다.

마리아나 엄마인 지나(킴 베이싱어)는 남편을 두고 닉이란 남자를 사랑했다. 산티아고의 아버지 닉 역시 아내 몰래 지나를 사랑했다.

둘은 트레일러에서 뜨겁게 섹스를 나누고 있었고, 한 순간에 가스폭발로 관계 중인 채 불타버렸다. 불타 딱 붙어있는 시신을 칼로 떼어내야만 했다고 한다.

죽어서 그들의 사랑은 불륜으로 사람들의 경멸과 비도덕적인 재료로 상처만 남겼다.

불륜이었지만 그녀의 사랑 또한 너무 아펐다.

죄책감에 어떻게든 헤어져 보려고도 했지만 암으로 가슴을 도려내고, 여자로서 고개 숙인 그녀에게 닉은 정말 뜨거운 사랑을 보여줬다.

둘은 서로를 갈구했고, 자식과 남편에게 죄의식을 가지면서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서로를 향해 있었다. 사랑이었지만 죽어서 비난속에 떠나야만 했다. 그저 부도덕한 욕망 덩어리인 채로 외면받았다.

엄마의 잦은 외출로 세 명의 동생들을 돌보게 되는 마리아나(제니퍼 로렌스)는 어느 날 엄마의 통화를 엿듣고 엄마를 미행하게 된다.

엄마가 트레일러에서 다른 남자와 바람피우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엄마와 그 남자가 만나는 트레일러에 그저 경고 정도로  불을 지르지만 불은 순식간에 가스통에 옮겨 붙어 트레일러 전체가 폭발하고 만다.

엄마의 장례식 날, 엄마가 바람 피운 남자의 아들 산티아고를 알게 된다.

아빠를 잃은 산티아고는 아빠가 불륜을 저지른 여자에 대해 궁금해했고, 마리아나 역시 그런 산티아고의 만남으로 인해 엄마가 바람피운 남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하여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이 흘러간다.

산티아고는 마리아나는 불륜관계였던 아빠, 엄마로 인해 또 다른 욕망을 일으키고 같이 자게 된다.

그리고 마리아나의 아버지가 알게 되고, 산티아고의 엄마가 알게 되면서 가족들은 상처를 받고 그들은 집을 떠나오게 된다.

집을 나온 후 마리아나는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과 함께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딸아이를 낳은 후 아이와 산티아고를 두고 마리아나는 그곳을 떠나 버린다.

엄마를 불태워 죽인 딸이라는 죄의식으로 자신과 같은 딸을 낳고 싶지 않았고 자신을 닮을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욕망의 대지 '마리아나와 산티아고'

실비아(샤를리즈 테론)는 사랑도 없이 남자들과 섹스를 나눈다.

유부남과 잠자리를 하고, 손님과 하룻밤을 자는 등 의미 없는 섹스를 나눈다. 그녀의 표정엔 생기가 없다. 전혀 의욕이 없어 보이는 그녀!

자신의 허벅지를 자해하고, 벼랑 끝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절벽 끝으로 삶을 내몰고 있다. 이 여자의 상처가 무언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이나 자신을 바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인지.

그런 실비아 앞에 카를로스(호세 마리아 야즈픽)란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산티아고의 부탁으로 딸을 엄마와 만나게 해 주려고 왔다고 하면서 그녀를 '실비아'가 아닌 '마리아나' 부르는 것으로 순서 없이 진행된 흐름을 읽게 된다.

딸을 데리고 실비아 앞에 나타나지만 실비아는 딸을 보자마자 도망쳐 버린다.

상처 받은 딸과 함께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려고 짐을 싸고 실비아는 다시 그가 묵는 모텔로 와 딸을 만나려고 하지만 이미 외면당했던 딸은 엄마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

어렵사리 모텔 안으로 들어간 실비아는 딸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산티아고가 비행기 추락으로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딸과 함께 멕시코로 간다.

딸의 등장으로 우리는 실비아가 마리아나이고, 트레일러를 불태워 산티아고의 아빠와 자신의 엄마를 죽인 깊은 죄의식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닮을까 봐 무서워서 도망갔다며 자신의 딸에게 용서를 구하는 실비아는 의식을 잃고 병상에 누워있는 산티아고 앞에서 오랜 세월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부모의 죽음에 관한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고백과 사죄, 용서와 구원을 바라고 있다.

그녀의 삶은 엄마가 죽던 그날, 자신이 엄마를 죽였다는 죄의식과 함께 죽어버린 것이었다. 그녀가 왜 그렇게 도망갔는지, 왜 딸아이를 보며 도망쳤는지, 왜 돌아올 수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의 외도, 엄마의 죽음, 그리고 엄마가 바람피운 남자의 아들과의 사랑, 그리고 도피, 그리고 딸을 출산, 딸을 버려야만 했던 회한, 좌절 , 상처로 고통스러워했다.

욕망이 들끓는 대지를 태워버렸지만 엄마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마저 욕망의 대지위에 버렸다. 욕망으로 인해 자식과 아빠를 배신한 엄마에게 경고를 날리려 했지만 욕망만 태우려고 했지만 대지까지 태우고 말았다.

그 죽음에 오직 마리아나 혼자 감당해야 할 죄책감이고 통한이었고, 절망, 후회였다. 마리아나 혼자 그 많은 세월을 삶에서 죽은 시체처럼 떠돌아다녔던 것이다.

욕망의 대지 '실비아'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지만 그걸 첨에 인지를 못했다. 들쑥날쑥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 사람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영상을 따라갔다.

그저 다른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버지의 사고로 엄마를 만나러 간 딸로 인해 확연히 보여주게 된다.

대지위에 욕망을 욕되다 할 것인가? 어떤 형태로, 어떤 포장으로 감쌀지는 각자의 자유이지만 단면적인 것만을 스케치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랑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듯이, 욕망도 도덕적인 것만으로 재기에는 한계가 있다.

참고로 나는 욕망의 대지인 포스터보다 아래의 포스터가 더 맘에 든다. 영화를 너무 욕망에 치중하는 것보다  세 명의 여주인공들의 빛나는 연기로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는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버닝 플레인

posted by 해이든 2019. 4. 9. 16:46

감독 샘 멘데스

 

영화 아메리칸 뷰티

 

 

무기력한 삶에 놓여 있는 중년 남자 레스터 번햄(케빈 스페이시).

직장 내에서는 쓸모 가치가 없어진 퇴물 신세.
집에서는 무기력한 남편, 무기력한 아버지로 개무시 당하는 존재, 밖으로는 아내가 바라는 대로 가식적으로 행복한 척 처신하며 살아줄 뿐이었다.

레스터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 결혼도 일종의 쇼에요. 속은 맹탕인데 아닌 척 포장한 광고처럼"

그는 유일하게 샤워시 자위행위 할 때가 가장 최상의 기분이라고 말한다.

아내 캐롤린(아네트 버닝)은 물질만능주의로 이미 속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부동산 소개업자로 겉만 화려하게 치장해 남에게 잘 보이는 걸 의식하는 사람이다. 전시용 행복말이다.

 

아메리칸 뷰티 '아네트 베닝과 케빈 스페이시'

 

10대 딸인 제인(도라 버치)은 번듯한 아버지를 원하지만 팬티에 사정이나 하고 자신의 친구에게 눈독 들이는 변태 같은 아빠를 경멸한다.

엄마는 자신으로 인해 제인이 누리는 걸 감사하라고 강요하고, 가족 안에서의 진정한 대화란 존재하지 않았다. 경시와 소외, 무관심으로 한 식탁에 앉아서도 각자 자기중심적인 그림만 그린다. 부모란 존재들이 정신적으로 자신을 망쳐놓고 있다고 말한다.

레스터는 외동딸 제인의 친구 안젤라(미나 수바리)를 보는 순간 욕정에 사로 잡힌다.

무능하다고 낙인 찍힌 후로는 아내를 만지지도 않고 아내와 자는 침실에서마저 안젤라를 상상하며 자위를 한다. (완전 변태군)

제인과 안젤라와의 대화를 엿듣고 안젤라가 근육 있는 남자가 좋다는 말을 듣은 후 그는 근육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다.

제인의 친구인 안젤라는 자신의 성경험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끈적끈적하게 쳐다보는 제인의 아버지의 시선을 은근히 즐긴다.

제인은 안젤라에게 아버지를 이렇게 표현한다. "나한테는 없어졌으면 하는 아빠지만 너한테는 집적대는 남자 중의 한 명이지."
이 정도면 완전 막장집안의 막장드라마가 따로 없다.

제인의 옆집으로 해병대 출신 프랭크 피츠 대령(크리스 쿠퍼) 가족이 이사 온다.

동성애자를 경멸하는 대령에게는 기죽어 사는 아내와 말없이 비디오 찍는 걸 좋아하는 아들 릭키(웨스 벤틀리)가 있다.

릭키의 아버지는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고, 독재와 다름없는 자기중심적 인물로 아내와 아들을 일방적으로 복종하게 한다. 여기는 완전 일방적 통제와 독재가 이루어지는 집이군. 군대도 이보다는 낫겠다.

릭키는 창문으로 레스터와 제인의 모습을 도촬 한다.

릭키는 대마초를 밀매하여 큰 돈을 만지고 있는 고교생이고, 아버지를 속이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곳에서 레스터를 만나 대마초를 팔게 된다.

 

아메리칸 뷰티 '릭키,제인,안젤라'

 

 

개떡 같은 상관이 한 경멸을 참고 일하자니 넌더리가 난 레스터는 자신을 해고하려는 사장을 협박하여 목돈을 받아내고 회사를 때려치운다.

그리고 갖고 싶었던 스포츠카를 사고, 대마초를 사서 피던 젊은 날에 대한 회귀 감으로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를 시작한다.

무기력하게 축 쳐져있던 그의 삶이 안젤라에 대한 욕정과 릭키를 만나 대마초를 구입해 피면서 젊음을 향한 노를 저으며 사라졌던 열정과 자유를 추구해 나간다.

한편 아내는 부동산 대리인과 바람을 피우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사격장에 가서 사격을 하며 나름 활력을 찾아간다.

그러던 중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던 레스터에게 바람피우는 것을 딱 들키고 만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

한편 프랭크 대령은 대마초를 팔려고 레스터의 집에 간 릭키를 게이로 오해하고 릭키에게 나가라고 한다.

집을 나온 릭키는 제인에게 같이 떠나자고 한다. 제인과 릭키가 점점 가까워지자 제인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안젤라는 제인과 릭키사이를 탐탁해하지 않는다.

그러자 릭키는 안젤라에게 말한다. " 친구가 아니라 돋보이려고 이용했겠지. 넌 그저 그런 애야"
진정으로 제인을 생각하는 친구가 아니라 그저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들러리로.
안젤라는 자신이 이쁘고 특별하다고 인정받길 원한다. 평범한 것만큼 슬픈 게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다. 안젤라는 릭키의 말에 슬펐고, 그렇게 슬픔에 빠져있는 안젤라에게 레스터가 접근한다.

레스터는 안젤라에 대한 욕정으로 침대에 눕힌다. 안젤라가 "처음이에요."라고 말하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든다.

레스터는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딸의 인생이 궁금해지고 안젤라에게 제인이 행복하냐? 고 묻는다.

"무척 행복해요. 사랑에 빠졌거든요"

처음으로 행복한 아빠의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 총을 쏘았고 그는 총에 맞아 죽는다.

죽음 앞에서 아름답고 행복했던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죽음에 직면하면 살아왔던 인생이 영원히 머물고 그 모든 것이 아름답게 펼쳐진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엔 아름다움이 넘치는데 그 아름다움에 눈뜨고 살지 못한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벅찼을 감정도 다 잊고, 아내를 사랑하고 가슴 뛸 감정도 다 잊고, 그저 무기력하게 실패만 끌어안은 채 서로 무시하고 미워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린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착을 버려야 그 희열이 빗물처럼 흐르고 소박하게 살아온 모든 순간들이 아름다움이었음을, 죽음에 직면해서야 삶을 보게 된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상당히 불쾌했다. '참고 봐야 하나'할 정도로 말이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붕괴와 중년 남자의 위기, 청소년들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는 문제를 다루었다고 하지만

왠지 보는 내내 불편했다. 물론 영화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알고는 있다.

전부다 자신이 정상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가식적으로 살아간다.

가정의 붕괴는 그 가족의 위기만은 아니다. 부모로 인해 청소년들이 정신적으로 망가지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세상 밖으로 밀려날 때 이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가정은 사회로 가기위한 기본적인 또다른 사회이니깐.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릭키가 보여준 비디오테이프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테이프라고 제인에게 보여준 영상과  그걸 바라보는 릭키의 눈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비닐봉지를 보며 릭키가 가진 생각과 눈을 통해 세상에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표현해 주었다.그저 검은 봉지였는데 검은 봉지가 바람에 날리는 것이었는데 보는 사람이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으니 춤추는 삶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