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4. 17. 16:51

감독 강석범

영화 해바라기

태식의 희망 수첩에 적힌 건 다 시시한 것들이었다.

호두과자 먹어보기, 공중목욕탕 가보기, 숨 막힐 때까지 여자랑 뽀뽀하기, 싸우지 않기, 담배 피우지 않기 등

 

오태식(김래원)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친개처럼 살았다. 닥치는 대로 피도 눈물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며 살았다.

싸움 끝에 덕자의 아들을 죽였다. 태식에겐 그저 죽은 이도 다친 이도 그저 동네 양아치 조직의 한 명이었을 뿐이다.

그로 인해 감옥에 들어간다.

 

덕자(김해숙)는 도대체 얼마나 잘못을 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냐고, 내 아들이 뭘 그리 잘못해서 죽였냐고 따지려고 면회를 갔다.

그런데 죄송하다고 그렇게 서럽게 우는 넘은 첨 봤다고 했다.

그래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렇지 나쁜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면회를 가다 보니 정이 들었고, 괜찮은 녀석이었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오면 같이 살자고 했다.

아들 하자고 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녀석을 아들처럼 품은 것이다.

 

오태식은 가석방되어 나와 조직에 몸 담지 않고 해바라기 식당을 하고 있는 덕자를 찾아간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수첩에 적인 희망들을 하나씩 주워 담으면서 뿌리내리고 싶었다.

그런 시시한 것들이 희망이라는 걸 알게 해 준 덕자로 인해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카센터에서 취직하여 일도 하고, 동네 양아치들을 폭력을 가해와도 온전히 몸으로 다 받아냈다.

단 한 대도 때리지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다. 울지 않는다.

그렇게 희망수첩에 적힌 것을 지켜나가며 덕자의 아들의 빈자리와 희주 오빠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주고 싶었다.

용서로 안아주시니 최선을 다해 그들의 가족과 함께 하고 싶었다.

 

자신의 오빠를 죽인 사람인 줄 알고도 희주(허이재)는 '이제부터 오빠라고 부를게' 하며 자신을 품어주었고,

자신의 귀한 아들을 죽게 만든 자신을 용서하고 아들로 사랑해준 덕자였다.

 

그의 삶에 공급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랑이었다. 그들로 인해 자신이 뿌리내릴 수 있는 품을 내어주었다.

10년간 감옥에서 눈물 흘리며 후회하며 다짐하고 다짐했다. 제대로 살아가겠다고 말이다.

사소한 것들이 희망이 된다는 것을, 가족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가족이라는 희망의 불씨를 꺼지지 않게 지켜내고 싶었다.

 

 

그러나 재개발로 인해 덕자가 운영하는 해바라기 식당을 매입하지 못한 조판수(김병옥)의 조직들은 덕자의 가게를 부수고 위협을 가해왔다.

덕자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죽은 아들의 일기를 복사해 그 넘에게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고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을 한다.

그냥 처음부터 조판수를 도발하지 말고 딸과 태식을 데리고 이사를 가면 좋았겠지만 그녀가 그리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죽은 아들과 식당을 차릴 그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지켜내고 싶었다.

돈 내놓으라고 엄마를 때리는 아들이었지만 그 아들과 준비하며 행복했던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다.

그런데 딸 희주가 조직들에게 당해 병원에 누워있는 걸 보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조판수는 김양기(김정태)를 시켜 자신의 비리가 적힌 아들의 일기장과 덕자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다.

오태식은 그렇게 조용히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조판수에게 손목 하나를 내주었다.

그저 멀리 떨어져 조용히 살아가겠다고 했는데 희주와 어머니를 저리 만들어야 했던가.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했던가

 

조판수 일당은 자신의 희망의 불씨를 지피게 놔두지 않았고, 결국 평생 지켜주고 싶은 가족이 생겼는데 그들로 인해 그마저 잃었다.

죄를 지었으면 죄를 받아야지 이젠 내가 돌려주려고 간다.

조판수 일당들이 나이트클럽 개업을 성대하게 치르고 있는 그곳으로 오태식이 나타난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시원했냐는 그의 절규가 10개 중의 9개를 다 주었고, 단 하나, 그들과 살고자 했다.

그 하나마저 허용해 줄 수 없었던 거냐고 외친다.

도움도 필요 없고, 그냥 내 버려 달라고, 그러면 되는 건데 꼭 다 삼켜야 했던 건지

다 가져가야 직성이 풀리는 욕심으로 인해 해바라기 희망씨앗이 다 타버렸다

태식은 그들의 하나도 다 태워버린다.  그들과 같이 희망의 불씨를 다 꺼버린다.

 

영화 속에서 경찰은 철저하게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그 조직의 하수인으로 숨어있었다.

그의 희망이 조직의 욕심으로 경찰의 방관으로 차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