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6. 15. 23:52

감독 미아 한센 로브

영화 다가오는 것들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나탈리(이자벨 위페르)는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나름 안정적이고 평화로웠다.

혼자인 엄마가 수시로 자신을 불러대기는 했지만 자식들도 다 키워놨고, 교사로서의 지위도, 책도 출판할 정도로 입지가 다져진 중년 여성의 삶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작스럽게 25년을 함께 했는데 여자가 있다고 고백한다.

"왜 그걸 말해?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살 순 없었어?"

그랬다. 젊은 것도 아니고 중년 후반으로 가는 삶이다.

그냥 지금까지 몰랐던 채로 살아갈 수 없었던 거냐고 말하는 것이다.

뜨거운 감정으로 유지된 결혼생활도 아니고 한울타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며 늙어가는 것이 뭐 그리 어려웠던 걸까.

사랑이 무너진 게 아니라 신뢰가 무너졌다.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중년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

나탈리는 이 상황이 힘들지만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몰랐다면 좋았겠지만 알아버렸고 터져버린 일, 비참하고 초라하게 쓸어 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며 순응해나간다.

배신감에 떨며 울고 불고 난리 치지도 않고, 세상이 다 무너진 듯 삶을 잠수시키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다 독립하여 살아가고 있고, 남편이란 늙어가는 여유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걷어찬 남편에게 기대 같은 건 없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중에서 '이자벨 위페르'

철학교사로서 그녀는 항상 책 있는 삶을 살았다.

그 책으로 인해 그녀의 내공이 참 단단해져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아이들과 보낸 별장에 가 이것저것을 정리하다 감정이 넘쳐버린다.

아이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고, 자신의 손으로 일일이 가꾼 화초와 정원,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와 볼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남편은 "오면 되지?"라고 말을 참 쉽게 꺼내놓는다.

이혼으로 남이 되는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걸까, 신뢰와 과거가 다 무너졌다는 것을 인지 못하는 걸까, 너무 아무 일도 아닌 듯하는 남편에게 화가 난다.

뭐가 저리 간단한 건지, 그동안의 추억이 아무 것도 아닌건지 어이가 없다.

그저 둘만 헤어지는 간단한 것이 아닌 문제들, 그 동안 서로 일구어 온 모든 것들이 다 거짓말처럼 자신을 부정하는데 추억할 장소마저 자신에게 빼앗은 걸 전혀 인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잠시 머물 뿐이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제자 파비앵과 나탈리

나탈리의 애제자 파비앙이 자신의 사상에 맞설 만큼 성장해 혁명을 주장하며 나탈리에 사상에 반박하고 부정한다.

"응 나는 변했어. 급진성을 이야기하기엔 난 너무 늙었어. 게다가 다 해 본 것들이기도 하고."

그녀도 젊었을 때는 파비앙처럼 생동감 있게 급진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회의적이 되었다.

어쩌면 모든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서서히 인생 속에서 변모해가는 것이리라.

젊음에만 의존할 수 없는 현실에 맞서기보다 타협하면서 그게 더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삶이라 수용하는 것이리라.

나도 그렇다. 내 아이들과 젊은 애들에게 말한다.

젊지 않다. 너처럼 나도 한때는 뜨거웠었다. 넌 뜨거운 그때를 혁신적으로 사는 것이고, 난 뜨겁지 않은 지금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중년이 아니었듯이 많은 과정을 통과하며 성장하고 성숙해온 것이다.

자식들 역시 내가 거친 과정들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엄마가 거친 과정을 통과하고 있듯이 말이다.

 

출판사에서는 젊은 독자의 구미에 맞게 나탈리의 책 표지를 바꾸려 한다.

이제 구시대로 밀려나고 있다.

신세대와 구세대가 마찰 없이 사려면 서로를 인정하고 조율해나가는 것만 남는다.

그녀는 조금씩 자신에게 다가오는 변화를 서서히 수용하고 있다. 어찌 씁쓸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남편의 불륜으로 남은 삶을 흔들었지만 떠나보내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한 장면 - 친정엄마와 나탈리

나탈리는 늙고 외로운 엄마에게서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엄마도 예전엔 나와 같은 젊음이 있었다.

지금은 저리 힘없이 누워있지만 혼자 있는 게 외로워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부르지만 다가오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거울 앞에 서있는 두 모녀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시선을 잡아당긴다.

 

죽은 어머니가 남긴 검은 고양이

나탈리는 털 알레르기가 있다.

나이가 많아 남에게 주지도 못하는 고양이를 어쩔 수 없이 여행길에 데리고 간다.

늙어서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고양이는 여자로서 매력 없는 중년의 자신의 모습 같기도 하고 무기력하던 엄마이기도 하다.

어느 날 늙어 밖에 나가 쥐 한 마리 못 잡을 것 같은 고양이가 쥐를 잡아오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활력을 찾는다. 순리대로 나아가면 된다.

젊음을 생각하며 괴로워할 것도 없다.

친정엄마가 남기고 간 고양이와 함께 : 영화 <다가오는 것들>한 장면

 

"이런 생각을 해. 애들은 독립했고, 남편도, 엄마도 떠났지, 나는 자유를 되찾은 거야.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온전한 자유! 놀라운 일이야. 이건 낙원이잖아."

 

그녀가 철학교사로서의 균형 잡힌 삶을 살아낸 것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테라스에서 안경을 쓰고 책을 읽는 그녀의 모습은

지적이고 성숙하고 의연하고 여유롭게 보였다.

'지적으로 충만하게 살잖아. 그거면 족해. 행복해'

이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살면 된다.

균열이 간 삶에 얽매이지 않고 인연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일상의 중심잡기를 해나간다.

죽음으로서 끝나기 전까지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들이며 사는 게 어떤 건지를 의연한 나탈리로 인해 배웠던 영화였다.

참 많이 흔들리며 살았다. 조금의 균열에도 잠식당하고 슬픔으로 침몰했었다.

나 없는 삶을 살았다. 나 없는 자유로 구속했었다.

의연하지 못했던 내게 이 영화는 잔잔하지 않게 다가왔고 또 앞으로는 밖으로 뛰는 게 아니라 내 안으로 뛸 수 있게 해 준 영화였다.

앞으로 잘 살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