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6. 12. 15:08

감독 나딘 라바키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부모를 고소한 12살의 남자아이, 자인

부모에게 자신을 태어나게 한 죄를 묻는다. 

의사가 유치 정도로 열두 살 열세 살 정도라고 추정하는 자인(자인 알 라피아)은 부모가 출생신고서도 하지 않아 공식적으로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이다.

 

자인 알 라피아

 

가난보다 힘든 건 부모들이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삶이 지옥 같다는 것이다.

생계를 위해 어머니의 주도하에 어린 자인은 가짜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돌며 트라마돌을 구입해 마약을 만들어 불법 판매하고, 남들처럼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매일 거리로 나가 주스를 팔고 온갖 잔일들을 한다.

이런 삶 속에서도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자인, 특히 여동생 사하르(하이타 아이 잠)에게 늙은 슈퍼마켓 남자가 딴마음이 있다는 걸 알기에 걱정이 많다.

부모들은 아직 10살밖에 안된 사하르를 나이 많은 슈퍼마켓 남자에게 강제로 결혼을 시키려 한다.

어찌 10살에 결혼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팔려가는 것이다. 여동생을 데리고 가려는 아사드에게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지만 더 큰 문제는 부모가 자식을 그런 삶으로 밀어 넣는다는 것이다.

 

자인이 그토록이나 지켜주고 싶었던 여동생 '사하르'

조혼으로 고통받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게 부모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버겁다.

자인이 사하르의 피 묻은 팬티를 빨고 생리하는 것을 그토록 부모에게 들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모습이 이런 걸 예상한 거구나  이해됐고도 남았다.

자인은 사하르가 조혼으로 팔려가는 걸 안간힘 쓰며 막아내려고 악을 썼지만 부모와 슈퍼마켓 남자의 힘을 당하지 못했고, 부모에게 경멸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집을 떠난다.

 

여기저기 떠돌다 결국 놀이동산에서 일하던 외국인 여성 노동자 라힐(요르다 노스 시프로우)를 만나 그녀의 아이 요나스를 봐주며 생활한다. 불법체류자였던 그녀는 자신의 일하던 집의 남편의 아이를 가졌고 경찰한테 애를 뺏기고 추방될까 봐 아이를 숨겨서 키우고 있었다.

자인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일하러 나간 라힐이 돌아오지 않자 그녀를 찾아다닌다. 그녀는 불법체류자로 경찰에 잡히고 만 것이다. 이를 모르는 자인은 자신의 엄마보다 더 나쁜 엄마라 욕하게 된다. 낳아놓고 제대로 돌보지 않는 자신의 엄마나 자식을 버리는 엄마에게 12살의 아이는 경멸을 느낀다.

거리에 나앉은 라힐의 아들 '요나스'와 막막한 '자인'

자인은 라힐의 아들 요나스를 돌보기 위해 그동안 엄마 밑에서 배운 게 마약인지라 마약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자신의 몸 하나 고단할 나이이건만 요나스를 책임지는 모습에서 참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했다.

라힐이 사라지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 무일푼이 된 자인은 너무 막막하다.

결국 좋은 집으로 입양 보내주겠다던 아스프로에게 요나스를 보낸다.

아스프로는 자인도 스웨덴으로 보내주겠다고 신분이 확인될 만한 서류를 가져오라고 한다.

출생 서류를 가지러 집에 돌아갔다 결혼한 사하르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자인은 격분해 칼을 들고 사하르를 데려간 남편(?) 아사드를 찾아가 찌르고 경찰에 잡혀 5년형을 선고받고 소년교도소에 갇히게 된다.

자신의 부모를 고소해 법정에 나와 있는 '자인'

법정에서 판사에게 어떤 개새끼를 찔렀다고 말하는 당돌한 아이, 자인

여동생을 죽인 아사드, 그리고 자신의 손에 칼을 들게 만든 부모들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한 표정

판사가 남편 아사드에게 열한 살이 결혼할 나이인가를 묻자 "꽃이 피었으니까"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자 자인이 열 받아 뱉은 말은 "사하르가 감자냐, 아님 토마톤가, 꽃이 피게?"

사하르는 10살이다. 생리를 했다고 여자가 아니다. 아직 어린 여자 아이다. 그 어린아이가 결혼 후 2~3개월 만에 임신하였고, 하혈이 심해 병원문턱까지 갔지만 출생 서류가 없어 진료받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서류가 없었으니까

돈을 벌기위해 거리로 나온 자인과 어린 동생들

자식을 낳고도 출생신고도 안 한 부모, 서류도 없는 삶을 살다 병원문턱도 못 들어가고 죽어간 불쌍한 사하르

이제 10살의 아이에게 임신을 시키는 짐승 사하드, 자식을 팔아넘긴 부모 모두로 인해 정말 꽃이 피지 못한 것임을 왜 모르는 것인가. 이건 가난이 문제가 아니다.

자인이 말한 것처럼 정말 사는 게 개똥 같고, 지옥 같다. 자신의 낡고 해진 신발보다 더 더러웠다고 삶에 희망이 보이지 않음에 좌절한다. 애들을 낳아놓고 제대로 돌보지 않는 부모가 지긋지긋하다는데 부모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또 아이를 갖는다.

교도소로 자인을 면회 온 엄마 수아드(카우사르 알 하다드)가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다.

 

여동생 사하르가 죽고, 자신은 그 사하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을 찌르고 교도소에 들어와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돌려주는구

나'라고 아이를 가졌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딸이면 좋겠다고 태어나는 아이의 이름을 '사하르'라 부른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말로 하기 힘들다. 자인의 표정이 압도적으로 가슴을 짓누르게 박히는 장면이었다.

"엄마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다신 여기 오지 마세요. 엄만 감정이 없나 봐요."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도 키우지도 못하고 어린 딸을 팔아 죽음에 이르게 해 놓고, 자신이 무엇 때문에 감옥에 들어왔는데 또 아이를 가졌다는 엄마가 끔찍하다. 아니 자기와 같은 아이가 또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또 다른 사하르가 고통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암담했던 것이다.

가버나움은 나훔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역사적 지명을 말하는 것 같다.

폐허나 지옥 같은 자인의 세상.... 자인의 삶이 지옥이고, 자인의 마음이 폐허 같음을 말하듯

교도소에서 아동학대에 관한 프로그램을 본 자인은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라고 전화를 걸게 된다.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자인,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은데 희망이 없어 보인다.

 

 

판사 : 부모에게 원하는 게 있나요?
자인 : 엄마가 애를 그만 낳게 해 주세요. 뱃속의 아기도 나처럼 될 거예요.
자인 :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지긋지긋해요
엄마: 죽을힘을 다 해 사는데 왜 이렇게 비난하죠? 저 외엔 누구도 날 비난할 수 없어요
아빠 셀림(파디 유세프) : 저도 이렇게 나서 자랐을 뿐, 부모 잘 만났으면 이리 안 살았어요. 자식이 있으면 든든하다 했는데 등골만 휘었어요. 가정을 꾸린 게 후회가 돼요. 제 인생을 망쳤어요.

 

실제 인물들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자인 알 라피아'는 유엔 난민기구의 도움을 받아 노르웨이에 정착했고 14살에 처음으로 학교를 다니게 됐다.

요나스를 연기한 트레저와 가족들은 불법체류 중이던 레바논을 떠나 케냐로 돌아갔다.

이 영화가 실제 인물로 실제 상황을 다루었다는 게 더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