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6. 16. 00:08

감독 마츠오카 조지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릴리 프랭키의 자전적 소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어쩌면 영화제목 도쿄타워보다 소설 제목이 이야기의 핵심을 잘 드러낸 것 같다. 엄마와 나의 이야기이고, 아버지의 존재는 때때로 스쳐지나가는 바람같았기 때문이다.

아들 역을 맡은 '오다기리 죠'와 엄마 역에 '키키 키린'의 조합이 너무 맘에 들었다. 젊은 엄마 역을 맡은 '우치다 야야코'가 키키 키린의 진짜 딸이라는 사실을 흥미로웠다.

도쿄의 중심, 일본의 중심에 있는 도쿄타워라기 보다 삶의 중심, 마음의 중심에 엄마가 있는 이야기였다.

자유로운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아들을 키워내고 이제 커서 엄마의 품을 떠난 아들을 뒷바라지 한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엄마를 찾아 만나다

자신보다 아들의 꿈을 위해 힘찬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아들 마사야는 매일같이 지각에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엄마가 준 돈으로 담배나 피고 엉망진창으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도 모자라 미술을 전공한다고 도쿄대학에 갔지만 고무줄처럼 늘어질대로 늘어져 타락해버린 자유에 몸을 맡긴다.

누구보다 빈둥거리며 4년동안 공부도 거의 안해 졸업을 못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엄마는 가게를 하면서 1년 더 힘낼테니 너도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하라고 당부한다.

그렇게 받은 졸업증서를 가게에 걸어놓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 자식을 위해 더 힘내본다는 엄마이건만

졸업후에도 취직도 못하고 도쿄에서 사채 빛만 늘어간다. 누구보다 자유롭기 없는 그의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일까,

아버지는 평생 무책임하게 혼자의 자유만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 핏줄일까, 마사야도 엄마의 삶이 눕는 것도 모르고 애쓰지 않았다. 열심히 자기 꿈을 그리지않았다.

도대체 도쿄에 왜 온것일까?

모두가 꿈을 꾸며 중심으로 몰려가지만 그 중심은 치열하지 않은 자에게 배려할 마음이 전혀 없다.

절실하지 않으면 아무런 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

아버지(고바야시 카오루)의 사진 속 도쿄타워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마사야의 도쿄타워는 완성되었다.

사회가 개인에게 거는 기대치가 도쿄타워만큼 높아졌기에 뛰지 않는 자에게 성공은 그저 사진속에 존재할 뿐이다.

도쿄가 마치 꿈과 미래로 가는 터널인냥 마사야도 그 터널을 통과하려 했지만 그 터널을 통과한 마사야는 쓰레기통같은 생활을 했다.

졸업후에도 취직을 못한 데다 긴장 풀어진 날들과 사채빚으로 인한 독촉뿐이었다.

엄마 키키 키린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엄마는 유쾌하게 성대는 살려야 해서 수술했지, 덕분에 목주름을 줄였다며 유쾌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일까?

마사야는 더 이상 엄마에게 빈대 붙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좀 더 치열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지독하게 게으름을 피웠던 그가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그리고 빚을 갚아가고 적자인생에서 겨우 본전을 찾는 삶을 산다.

마사야가 정신 차릴 때까지 엄마가 잘 버텨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사야는 자신이 빼 먹은 건 엄마의 돈이 아니라 엄마의 건강과 인생인 것 같아 미안함이 컸다.

마사야는 엄마에게 도쿄에 와서 같이 살자고 한다.

엄마는 가도 되려나, 그래도 될까? 아들에게 재차 묻는다.

엄마와 마사야의 도쿄생활

15살에 엄마 품을 떠나 15년만에 엄마와 같이 살게 된 마사야는 그동안 엄마가 준 거 다 갚을거라고 말한다.

엄마는 외로웠을 터이고, 힘들었을 터인데 항상 밝았다.

연금을 낼 형편도 못되어 받아먹을 연금도 없고, 아들 뒷바라지에 적금 하나 가지고 있는 게 없다.

그런데 엄마는 아들의 졸업증서를 꺼내 여기다 다 넣었다고 말한다. 아들의 인생에 아낌없이 다 부었다.

빈둥대지 않고 좀 더 열심히 살았더라면 엄마의 인생을 덜 힘들게 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마사야는 도쿄로 온 엄마와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엄마의 유쾌함과 긍정적인 모습은 마사야의 주위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음식에 매료된 친구들은 자주 모였고, 엄마와 친구들은 아주 가까워졌다.

한 끼 식사로 다 모여 앉아 시끌벅적하게 즐기는 것이 엄마의 행복이자 모두의 축복이었다.

엄마는 도쿄와서 아들과 맛난 거를 먹고 여기저기 구경다닌 그 1년 동안에 평생 받을 효를 다 받았다고 말한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엄마

재발한 암으로 인해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이 어렵게 되자 엄마는 항암치료를 받는다.

아프고 힘들면서도 그만둔다고 하지 않았고 살려고 버텼다.

하지만 2번째 항암치료로 엄마는 이미 쇠약해진 몸으로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했고, 끝내는 그만하자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더욱 고통스러워한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도쿄의 중심에 왔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맺은 인연이 엄마이고, 처음으로 사랑을 준 존재이고, 죽어서까지 자식을 포기하지 않을 존재다.

자식의 못난 구석까지 기쁘게 안아주는 엄마, 자식은 영원히 크지 않는 존재인 것 같다.

결국 엄마는 그렇게 아들의 곁을 떠났다. 너무 잘 버텨준 엄마였다.

아들을 따라 도쿄에 온 엄마는 도쿄타워 밑에서 잠들었다.

아들이 책을 내줘서 고맙다 했고, 아들이 일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적자인생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열심히 좀 하지' 좀 진작에 '열심히 좀 하지?'

엄마가 번 돈을 잘도 빼먹고 살았다.

엄마를 그리고 있는 아들 마사야

엄마의 장례식에 마사야는 엄마의 시신 앞에서 원고 마감 독촉을 받고 안쓰려다 자신이 일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던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열정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친구들이 북적북적 떠드는 가운데 엄마를 즐겁게 보내준다.

소중한 것을 잃는 아들이 보내는 평범하지만 가슴 아픈 메시지 이다.

어영부영 젊음을 낭비하고 빚에 쫓기는 삶을 살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나서야 그 존재의 크기를 감당하게 된다.

항상 존재할 것 같은 사람이 곁에서 사라졌다. 처음으로 어른이 되어 엄마의 손을 잡아 주었다.

엄마가 병으로 약해져서야 아들은 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엄마와 아들 마사야의 인생을 통해 굵직한 감정들이 소용돌이 친다.

소소한 이야기라 말해 놓았지만 결코 소소하지 않은 사랑을 가슴 깊이 걸어주고 간 엄마의 마지막 편지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죽으면 보라는 상자를 열어보니 한장의 사진이 눈에 담긴다. 아기인 마사야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 자신의 인생을 자식에게 다 바치고 간 엄마이다.

그리고 아들에게 남긴 편지 한통!

힘차게 자신만을 응원하던 엄마의 편지를 고등학교를 가기위해 엄마 품을 떠난 기차안에서 읽었었다.

이제는 엄마가 떠나면서 남긴 편지이다.

 

엄마는 행복하게 인생의 막을 내리니 아무것도 여한이 없다. 잘 있거라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