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7. 8. 21:11

감독 비욘 룬게

 

더 와이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조셉 캐슬먼 (조나단 프라이스), 그의 아내 조안(글렌 클로즈)과 아들 데이빗(맥스 아이언스), 세 사람은 노벨상을 받기 위해 스웨덴으로 떠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조안과 그의 아들인 데이빗은 이 상황을 크게 즐기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조셉을 옆에서 챙기며 지켜보고 있는 조안의 표정도 그렇고, 아들 데이빗 또한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환한 미소를 걸쳐 놓지 못한다.

작가 지망생인 데이빗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남들 앞에서 시원찮게 소개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태도에 자존심이 상하고 못마땅한 감정을 감추지를 못한다.

노벨상을 받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은 아들에게 그저 따뜻한 한마디를 해주지 못하는 조셉, 자신의 기쁨에 아내나 아들의 감정은 뒷전이다.

아니면 원래 저런 사람인가.

노벨 수상자를 축하하는 사람들과 취재진들 틈바구니 속에서 온전하게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조셉뿐이었다. 아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조안의 표정에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허탈함이 눈에 들어왔다.

장막에 가린 빛이 서서히 고개를 내민다.
노벨 문학상에 숨겨진 진실이 조안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조셉의 전기를 쓰려는 기자의 추리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제 조안의 그 허탈하고 미묘했던 감정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조안이 손목시계를 풀고 그 시계를 들여다보며 과거로 들어간다.

조안은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녀의 글 재능을 알아봐 준 사람은 지금의 남편 조셉이었고, 당시 그는 그녀의 교수이자 유부남이었다. 제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가정도 있는 스승이ᆢ

조셉이 아끼는 재능있는 제자였던 조안이 여류작가와 나눈 대화에서 당시 여성작가가 세상에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는 현실을 보여줬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여성작가가 쓴 책은 그저 학교 졸업생 작품으로 책꽂이에 꽂혀 있을 거라고 했다. 작가라면 당연히 책을 써야 하지만 그녀는 쓰지 말라고 한다.  작가라면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읽혀야 하는 거라고, 하지만 세상은 여자가 쓴 책을 읽어 줄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결국 혼자 작가라 하는 세상에서 먼지 낀 채 살아갈 것이다.

그게 현실이었다. 여자의 재능을 재능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시대였다. 뭐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여성이 억압된 세상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도 여류작가란 말에 분노하고, 어떤 직업 앞에 '여'가 붙는 것에 종종 불합리하다고 외친다. 설사 '여'가 붙지 않아도 숨겨져 있다는 걸 감지하고 있음을.

남자들이 만들어진 세상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되는 생물체로 존재하기를 그렇게 제도화하고 사회적으로 인식화시킨 세상과 그런 세상에 남편의 이름으로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도 그건 오로지 조셉에 가는 빛만 있다.

노벨상을 축하받는 자리에서 조안을 무시하는 발언도 그녀를 화나게 했다.

조셉은 그녀에게 있는 재능이 자신에게 없다고 불평등하고 울부짖었지만 조안에겐 세상이 더 불공평했다. 그녀는 조셉의 대필작가로 살았던 것이다.

두 사람만 아는 비밀, 지금 노벨문학상은 조셉의 것이 아닌 조안의 것이었다. 조셉은 작가로 살려고 했지만 그의 글은 그녀의 재능에 비하면 출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그녀는 모자란 부분을 보완하다 결국 자신이 쓰고 조셉의 이름으로 책을 발간했다. 철저히 아이들을 속이고 세상까지 속이며 노벨 문학상까지 받게 되었다.

그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해하고도 남았다. 자신이 쓴 책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남편이 누리고 있는 저 옆자리에서 그저 내조나 한 여자로 서 있는 심정이.

거기다 남편은 사람들 앞에서 "제 아내는 글을 안 써서 다행이에요"라고 거짓도 모자라 수모를 안겨주고 있다.

세상은 몰라도 조셉은 조안에게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세상은 조셉에게 다 손뼉 치고 존경한다고 해도 조셉은 조안에게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이름뿐인 상이 아닌가. 그 내용은 모두 조안의 것이 아닌가. 그 축하는 오로지 그녀의 인생이고 그녀의 작품이 아닌가.

자신의 글임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서 있지 못하는 조안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조안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폭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업을 킹메이커라고 말할 때 조안의 표정을 보았는가!

[더 와이프]라는 영화에서 보여 준 '글렌 클로즈'의 표정 연기는 정말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다. 45년간의 연기 내공이 이 정도라는 걸 보여주고도 남았다.

이 영화는 14년간의 제작기간을 통해 탄생한 영화이다. 그리고 '글렌 클로즈'의 압도적 표정연기와 함께 젊은 조안을 연기한 배우 '애니 스타크'가 '글렌 클로즈'의 친딸이다.

모녀가 같은 배역으로 출연한 것이다. 그녀는 골드 글러브 수상소감으로 이 영화를 하는 내내 남편에게 헌신했으면서도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하는 엄마를 떠올렸다고 한다.

여성들이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요구당하며 살아왔는데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엄마의 말은 옳지 않다고, 자신의 성취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여자도 자신의 꿈을 좇아야 하며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혀 기립박수를 받았다.

노벨 문학상에 숨겨진 진실, 평생 남편의 성공을 위한 아내 조안의 헌신이었다. 조셉이 리무진 안에서 했던 행동에 너무 몰입해서 격분을 감출 수 없었다.

여든까지 남편을 위해 헌신했는데도 평생 이룬 게 없다고 말해야 하는 여자의 삶을, 그런 삶을 강요당하는 것도 부당한데, 그런 여성들의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는 남편들의 태도에 화가 나는 영화였고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