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7. 31. 15:58

감독 타마르 반 덴 도프

네덜란드 영화 : 블라인드

 

루벤(요런 셀데슬라흐츠)은 후천적으로 눈이 먼 젊고 잘생긴 청년으로 포효하는 동물처럼 고함을 지르고, 난폭한 행동을 한다.

다리가 불편했던 엄마는 아들에게 책 읽어주는 여자를 고용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려 애썼다.

하지만 루벤의 난폭한 행동에 모두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어느 날 얼굴을 비롯한 온몸에 흉터가 있는 30 후반의 여자가 이 집을 찾아온다.

그녀는 루벤이 던지는 물건을 손으로 받아내고 난폭한 행동을 제지했다.

루벤은 자신의 난폭한 행동을 완력으로 제압하는 마리(핼리너 레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책을 읽는 마리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호감을 가졌다.

마리는 그가 스스로 면도하고 목욕하게 훈련시켰다. 루벤은 고분고분하게 그녀를 따랐다.

몇 살이냐고 묻는 루벤의 질문에 마리는 21살이라고 거짓대답을 했다.

앞을 볼 수 없는 루벤에게 자신을 21살에, 빨간색 머리와 초록색 눈을 가졌다고 속였다.

루벤은 21살의 빨간머리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마리를 상상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루벤에게는 손이 눈 역할을 한다. 만지는 것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녀를 손으로 만진 루벤은 "너무 아름다워요, 그냥 만져보면 알아요, 얼음꽃 같다" 고 말한다.

그녀의 흉터는 나무 껍질 같은데 그런 자신을 아름답다, 얼음꽃 같다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

어려서 마리는 흉칙하다, 못 생겼다 학대받아온 상처가 깊다. 그래서 검은 천으로 거울을 가리고 자신의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했던 그녀였다.

어쩌면 그녀의 외모 때문에 앞을 볼 수 없는 루벤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루벤은 엄마에게 마리가 21살에 빨간머리냐고 묻자 루벤의 어머니는 그렇다고 그녀의 거짓말을 덮어둔다.

아들이 마리로 인해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 걸 보며 마리의 외모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들의 상상 속 그대로 놔둔다.

그건 마리를 위한 배려가 아니었다. 그녀가 아닌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그렇게라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 걸 바란 어미의 마음이었다.

 

루벤은 그녀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기를 권하고 그녀도 동의했다. 루벤은 마리로 인해 마음의 평화를 찾고 마리에 대한 사랑도 커졌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관계는 점점 깊어진다.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 챈 어머니는 걱정이 앞서고, 건강도 점점 나빠졌다.

마리 덕분에 루벤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녀가 책을 읽어주려고 온 사람인 걸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당신은 우리 루벤을 속여왔어요."라며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앞도 못 보는 여리고 섬세한 루벤을 속인 눈먼 사랑이라는 말을 한다.

루벤이 수술을 해서 시력이 돌아올 거라는 말을 전해 들은 마리는 불안해진다.

수술을 받기 위해 루벤이 병원에 입원하고 마리는 병원에 찾아가는데 어머니와 친분이 두터운 의사는 마리에게 나이가 너무 많아 루벤과 계속 관계 유지를 하기 힘든 나이가 아니냐고 충고한다.

그리고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쓰고 사람들 앞에 자기 얼굴 드러낼 용기도 없으면서 어떻게 루벤을 보려는 거냐, 자신을 보여줄 용기도 없으면서.

그녀의 흉터는 지울 수도 없앨 수도 없는 상처였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흉터보다 세상에, 아니 루벤에게 자신을 보여줄 용기도 없으면서 어찌 이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현실의 벽도 넘지 못하면서 루벤에게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해놓고 그녀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루벤이 수술을 끝나고 자신을 볼 수 있기 전에 마리는 한 장의 편지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건강이 좋지 않던 루벤의 어머니는 아들의 눈이 회복되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라는 유언과 마리가 남긴 편지 한 장을 의사에게 남기고 죽는다.

눈 수술을 받고 세상을 보게 된 루벤 앞의 현실은 엄마는 죽고 마리는 사라지고 없다. 시력을 회복하고도 행복하지 못했다.

 

의사는 루벤에게 아름다운 여자들이 모여있는 유흥가에 밀어 넣어준다.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마리를 잊을 수 있다 여긴 것이다

하지만 루벤은 마리를 잊지 못하고 삶에 정착하지 못한다. 마리 역시 앞을 볼 수 있는 루벤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루벤은 눈을 헝겊으로 가린 채 면도를 하고 정원에 앉아 손끝으로 마리의 사랑을 느끼려 애썼다.

 

어떤 것으로도 마리를 잊지 못한 루벤은 이스탄불을 향해 떠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 담아도 마음이 평안해지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고 루벤은 다시 돌아오고 시내 도서관에서 마리와 만나게 된다.

그녀의 첫 얼굴을 보고 루벤은 놀랬다. 그리고 눈을 감고 손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마리는 묻는다. "내가 아직도 예뻐? 보이는 대로 말해. 볼 수 있잖아?'' 하지만 루벤은 눈을 감고 그녀를 만진다.

그녀가 거짓으로 말한 21살의 빨간 머리에 초록색 눈을 가진 여자가 아니었다.

냄새로 그녀라는 걸 느꼈고 만지는 촉감으로 그녀를 기억하려 했다.

그런데 그녀는 동화는 동화일 뿐 시력을 되찾은 루벤이 같이 살자는 사랑을 믿지 못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루벤의 눈에 의지하려는 사랑까지 원하는 것일까. 첨부터 거짓된 출발을 한건 마리였다.

"내가 아직도 예뻐?"라는 질문이 먼저여야 했을까.

<미녀와 야수>에서 공주는 야수를 보고도 사랑했다. 야수는 자신의 왕자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공주는 야수를 사랑했다.

그녀는 진실하지 않았으면서 그래도 찾아와 같이 살자고 하는 루벤에게 눈에 보이는 사랑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인가.

진실한 사랑은 루벤의 입에서 나올 말이지 마리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녀는 루벤에게 거짓말에 대한 용서를 먼저 구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의사는 어머니가 남긴 마리의 편지 한 장을 루벤에게 건네고 루벤은 그 편지를 읽는다.

그녀는 루벤으로 인해 놀라운 사랑을 봤고. 가장 아름다운 건 손끝으로 본 세상이니 손끝, 귓가에 남은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진실한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마리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눈을 기피할 정도로 그녀의 외모로 인한 상처는 깊었다. 루벤으로 인해 사랑을 배웠고, 루벤의 순수한 사랑을 온몸으로 받았다.

하지만 그가 시력을 회복하고 그녀는 루벤의 시선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만 담아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손끝으로 느끼는 것만 사랑이 아니다.

마음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사랑은 그게 눈에 보이든 안보이든 아름다울 수 없다. 마리는 루벤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편견에 갇혀 루벤의 순수한 사랑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사람 같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만 얽매여 있는 건 루벤이 아니라 마리가 문제인 것 같다.

루벤은 눈이 안 보이는 거지만 그녀는 세상을 눈에 담으려 하지 않고, 마음 또한 닫혀있는 것이다. 루벤의 어머니가 말했듯이 그녀의 사랑은 눈먼 사랑이다.

그 눈먼 사랑으로 인해 루벤이 다시 시력을 잃게 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죽은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눈먼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아들의 선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