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8. 12. 13:54

감독 켄 로치

나, 다니엘 블레이크

 

목수로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일을 하지 말라는 의사 소견에 따라 질병 수당을 신청하고 심사를 받는다. 하지만 정부가 고용한 파견업체 의료전문가는 심장 말고는 다 멀쩡한 댄에게 심장과는 관계없는 전화 버튼은 누를 수 있느냐, 손발을 쓰는지 질문을 묻는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말도 안되는 행정 매뉴얼만을 따지며 팔, 다리 멀쩡한 것만 보고 취업 가능하다 판단하는지, 눈으로만 보고 어떻게 댄의 담당의사보다 더 잘 안다는 걸까.

어떻게 질병 수당을 신청함에 있어 의사 의견소견서가 첨부되지 않고,

이런 기본도 없는, 융통성도 없는 의료전문가의 견해만으로 심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걸까,

 

댄은 심사관으로부터 노동 가능상태로 질병수당 수령 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댄은 항고하려 하지만 심사관이 재심사한 후 다시 기각돼야 항고할 수 있다 한다.

수입도, 연금도 없고, 질병수당 심사도 탈락해 수당도 못 받는 상황에 놓인 댄은 항고까지의 기간이 얼마나 걸리지 기한이 없다.

구직 수당 하려고 관공서를 찾아간 댄에게 직원은 인터넷 신청이라고 말한다.

컴퓨터 근처도 안 가봐 못 할 것 같다고 하니 직원은 "디지털 시대잖아요"라 말한다.

그는 "난 연필 시대 사람이오. 그런 사람들 배려는 안 하나 "말하지만 모든 게 인터넷에 있다는 말만 반복한다.

댄이 인터넷을 할 줄 아든 모르든 그건 댄의 사정이지 우리가 알바 아니라는 태도였다.

그가 인터넷을 배워하느니 차라리 집을 한 채 지으라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직원은 그냥 무시할 뿐이다. 모르쇠다.

빠른 변화 속에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그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일러주는 서비스는 하나도 없고 최소한 인간으로서 존중도 없고, 어르신에 대한 기본예절도 없는 냉랭한 태도뿐이었다.

 

 

무조건 원칙만을 따지며 모르면 관두라는 식으로 밀어버리는 태세다. 구시대와 노동계층과 하층민, 노약자를 위한다는 국가의 복지가 과연 누구를 배려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 인터넷을 이용하여 구직수당 신청하는 댄은 계속 오류 나고, 멈추고, 또 오류 나고, 그러다 이용시간이 끝나 결국 신청하지 못한다.

다시 관공서에 가서 앤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등록은 하려 하자, 관공서 상사는 잘못된 선례를 남긴다고 앤이 댄을 도와주지 못하게 한다.

인터넷이 필수라고 하면서 못하는 어르신을 위한 시스템은 준비되어있지 않으면서 도와주지도 못하게 하는 건 무어라 말인가.

마치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황상태에 빠지게 만들 듯 지금 댄 역시 인터넷 사용법을 몰라 완전 바보가 된 듯하다.

끝내 오류로 인해 인터넷 신청을 못하고 돌아온다.

"진짜 못해 먹겠네."는 말이 절로 나왔고 인터넷 신청 때문에 며칠을 고생하다 옆집 총각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으로 구직 등록을 마친다.

옆집 총각이 질병 수당 항고 신청서 양식을 바로 그 자리에서 인쇄해 준다. 세상에 이렇게 간단하게 뽑아 줄 수도 있는 걸 기관에서 안 해주었다는 게 어이없었다.

"앞으로도 아저씨를 물 먹일걸요. 바닥 치게 하는 게 놈들 작전이죠. 우연이라는 건 없어요. 수당 포기자도 많아요"

 

"난 포기 안해 개처럼 물고 늘어져 주지 "

국가나 정부가 내세우는 복지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거였다. 스스로 보조금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 국가의 복지전략이라 말인가. 그래서 공무원들을 매뉴얼대로 원칙만 고수하게 만드는 것인가.

 

 

관공서는 구직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구직활동을 하고 증거도 모으라고 한다.

그가 발로 뛰면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직접 이력서를 내고 다녔다. 하지만 직원은 증명해보라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 이런 방법이 증거도 못된다는 걸 그가 구직활동을 했는지 직원이 무슨 수로 아냐고 말이다.

수령증이나 핸드폰 사진 없냐고.

이력서도 인터넷으로 작성하고 등록해야 하고

구직활동도 구직사이트 같은 곳에서 해야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아니면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고 보조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심장병 때문에 취직을 해서 일할 것도 아닌데 보조금을 받기 위해 구직활동이란 헛짓을 하느라 여러 사람의 시간을 잡아먹는 게 말이 되는 것일까.

결국 댄은 제재 대상이라고 보조금이 끊기게 된다는 말만을 듣는다. 그는 그들이 만들어놓는 원칙과 통하지 않는 의사소통의 벽 앞에서 슬슬 한계를 느낀다.

그는 가스 전기요금 독촉에 주택 보조금도 부족한 상태다. 낡은 가구를 팔아 조금의 돈을 마련한다.

 

댄은 구직 수당을 받기 위한 행정절차가 어찌나 복잡한지 계속 제자리걸음에 미칠 노릇이었다.

나가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의지는 바닥을 쳤다. 너무 지쳐 그만하고 싶었다.

 

댄은 관공서 직원 앤에게 이제 구직수당 신청을 그만 하겠다고 구직수당 신청 명단에서 자신을 빼 달라고 한다. 항고 날짜나 다시 잡아 질병 수당을 다시 받아야겠다고.

관공서 직원은 재심사 결과가 언제 나올지, 항고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당마저 포기하는 건 위험하다고 만류해보지만 댄은 할 만큼 했다고 말한다. 결국 나가떨어진 셈이다. 정부가 보조금을 못 받게 연필 시대 사람을 복잡하고 어려운 행정절차로 인터넷을 모른다는 이유로 나가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동안 그들이 만들어놓은 원칙이 누구를 위한 원칙이었을까. 배부른 자들이 배고픈 자의 고통을 이해하기는 했을까, 아니 이해하고자 맘 자체가 애초에 없었고 도와줄 생각도 없었다. 굴복시키고 포기시킬 원칙뿐이고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봐야 돌아오는 건 수치심뿐이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관공서를 나온 댄은 더이상 직원들과 씨름하는 게 시간낭비이고,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관공서를 나와 관공서 벽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 전화의 구린 대기음도 바꿔라.'라고 쓴다.

그가 쓴 문구를 본 지나가던 행인들은 댄의 용기 있는 행동에 환호성을 지르며 호응하고 지지한다. 또 다른 행인은 그에게 영웅이라고 악수를 하고 자신의 옷을 벗어준다.

관공서 직원은 관공서 벽에 낙서한 그를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댄을 기물파손, 공공질서법 위반, 기물 파손 혐의로 잡아간다. 행인은 댄을 체포하는 경찰에게 저택 살면서 주택 보조금이나 깎는 장관이나 잡아가라고, 빌어먹을 민영화, 망할 보수당 놈들, 엘리트들이라 지들끼리 잘났지라고 분노를 표출한다.

경찰에게 체포된 댄은 훈방조치로 풀려나고, 댄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항고 날짜가 잡히고 댄은 케이티와 동행하여 재심사를 받기 위해 복지사를 만난다. 복지사는 질병수당 자격심사가 너무 허술하였고, 심사에 탈락한 것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며 이번에는 댄의 담담 의사의 보고서와 치료사의 소견도 첨부되었기에 분명 승소할 것이라고 말해준다. 댄은 집에서 심사관 앞에서 말할 것을 적어왔다고 말했다.

왜 자신의 인생이 아무것도 안 하고 형식이나 절차나 따지는 저들 손에 죽고 사는 게 얼마나 우습고 어이없는 일인지를 그는 분노했다.

긴장했는지 어지러웠던 댄은 세수하러 화장실로 갔다가 그만 지병이었던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끝내 항고심사도 받지 못하고 항고 때 읽으려고 연필로 쓴 글을 끝내 읽지도 못하고 댄은 가버렸다.

 

그는 가진 거 없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이웃을 도운 누구보다 부자였다. 댄은 관공서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한 미혼모인 케이티를 도와줬다. 고장 난 변기를 고쳐주고, 전기요금으로 쓰라고 얼마의 돈을 주고, 아이들을 돌봐주고 집안을 손 봐준다. 정부는 모든 부를 누리면서도 마음이 가난했지만 댄은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세상을 품을 만큼 따뜻했다.

이웃과 많은 것을 나눈 훌륭한 사람을 정부가 너무 빨리 죽음으로 이끌었다. 댄이 남긴 글을 케이티가 장례식장에서 읽게 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복지라는 가면을 쓰고 그들이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나라. 영국의 복지 시스템에는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결국 허울 좋은 복지에 인간은 없고 각종 냉소적이고 복잡하고 원칙을 고수하며 하층민과 노동층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삶의 사각시대로 내몰았다.

원칙이 사람보다 위에 있는 듯하고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