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10. 24. 21:16

2012 재난 영화

지질학자 헴슬리 박사는 지구 중심부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고, 대륙판의 이동으로 곧 지구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미국 대통령 토머스 윌슨에게 보고한다.

이에 윌슨은 비밀리에 G8 세계 각국 정상 회의를 열어 인류 생존에 대한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댐 건설로 위장해 40만 명이 탑승할 수 있는 '노아의 방주'가 중국에 건설하게 된다.

정부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국민에게 어떤 발표도, 예고도 하지 않는다. 국민이 알면 대혼란이 야기될 것이 뻔했다. 그러면 새로운 인류와 문명을 계획하고 생존전략을 세우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 멸망이란 대재앙은 국가기밀로 봉합됐다. 국가는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를 빼앗은 것이다.

정부가 알고 있었음에도, 과학자들이 미리 경고했음에도 알고 있는 자들은 자신들만의 생존을 마련했고 극비로 소수만을 살릴 탈출 계획을 세웠다.

국민 대다수는 아무것도 모른다. 죽으면서도 몰랐을 것이다. 40만 명을 태울 '노아의 방주'가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도 인류가 멸망한다는 것도 모른 채 사라질 터였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우리가 알아야 권리를 얼마나 강탈당하고 사는 것일까. 세상에는 나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자행되고 있을까?

국가는 한 사람을 더 살리는 일에 몰두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결국 살 수 있는 기회마저 소수의 몫으로 정해져 있다.

몇십 명을 더 살릴 수 있음에도 살릴 수 있는 자들이 살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 알려야 할 시간에도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만을 설계하고 자신의 입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지구의 멸망도 멸망이지만 국가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국민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씁쓸하다는 기분이 든다.  한 인간으로서 최후를 위한 기본적인 것까지 부여되지 않음에, 죽음의 순간까지도 작별인사를 건넬 수 있는 기회마저  권력을 가진자, 부를 지닌 자등 소수에만 제공된다는 사실에, 그 불평등이 지구가 망하는 순간에도 살아있다는 것이.

지진과 쓰나미로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노아의 방주'의 탑승 표를 산 부자들과 정보를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 빼고는 지구의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야 했다.

설사 정보를 알고 대처했더라도 돈이 없으면 탑승할 수 없는 '노아의 방주',

그것도 모자라 지구가 멸망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마저 빼앗겼다. 끝까지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설사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내 경제력으로는 '노아의 방주'에 탈 수 없다. 그러면 최소한 미국의 대통령처럼 작별 인사 정도 나눌 기회를 줄 지도자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미국 대통령은 '노아의 방주'에 타는 걸 거부하고 마지막 대통령으로서 지금 일어나는 재앙이 지구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발표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게 양심 한 자락을 내밀고 국민과 함께 그 재앙을 받아들였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국민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람들은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거나 용서를 구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일에 그 마지막 순간을 썼다.

모든 걸 내려놓고 마지막 자신이 몸담았던 자연 앞에서 숙연하게 맞이하기도 했다.

가슴 찢어주는 순간에도 가져갈 고마움을 챙겼다. 마지막 순간이기에 진심을 내놓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영화를 보면서 인류멸망이 공상이나 영화 속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 재앙일지도.

어떻게든 살려는 자, 죽음을 받아들이며 고요히 눈을 감는 자, 여러 가지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인간의 본성과 기회의 불평등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봤고, 또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가족 간의 따뜻한 연결고리를 느끼게도 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네가 있어 행복했다, 미안하다." 마지막 순간에 전하고 갈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고 본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작별 인사를 적어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지구가 멸망한다면 대혼란을 잠식시키기 위해 그들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가축이 탈 공간은 있어도 내가 노아의 방주에 탈 기회는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작별의 순간이나마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전화로 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가 할 때도 대통령이기보다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몰입했다. 헴슬리 박사의 아버지가 아들 헴슬리에게 전하는 작별 인사가 또 그렇게 슬프면서도 따뜻했다.

그들이 죽음 앞에서 다 내려놓고 편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따뜻한 마음을 다 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마음의 준비도 없이 죽는 건 너무 허망하고 아픈 일이다. 최소한 죽음을 받아들일 마음이 필요하다. 윌슨 대통령 같은 지도자, 정치인이 필요한 것이다.

최소한 마지막 가는 순간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사랑을 전달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