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20. 1. 31. 16:47


지금부터 등장할 가족은 평범하지 않다. 평범하지 않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우리와 다르다는 건 아니다. 가족은 남들이 알 수 없는 강한 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족의 관계는 밖에서 보는 풍경과 안에서 보는 풍경이 다르다. 그 체감 또한 다르다.

 

 

 

길버트(조니뎁)는 가장이다.
엄마 같은 누나 에이미가 살림을 맡고, 길버트는 식비를 대려고 시간 외 근무를 할 뿐 아니라 지적장애인 18살의 남동생 어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감당 해야했다. 일터를 갈 때마다 데리고 다녔고 하루종일 쏘다니느라 엉망인 어니의 목욕도 매일같이 시켜야했다. 어니에게 길버트는 따뜻한 형이다. 아빠 같은 형이다. 길버트는 아빠의 자리를 책임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말이다.
10살에 죽을거라던 어니는 18살이 되었고 걸핏하면 높은 가스탱크에 올라 경찰차가 출동했다.
15살의 사춘기 소녀 여동생 엘렌도 있다. 형은 이미 오래 전 집을 나갔다.

길버트가 일하는 램슨 식료품점은 대형 푸드랜드로 인해 파리만 날리고 아버지가 지은 집은 낡고 낡아 손 볼 곳이 너무 많았다. 어머니가 앉아 있는 거실 소파 아래는 어머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낡아 아슬아슬했다. 임시방편으로 튼튼한 합판을 대놓았다.
17년 전 아버지가 한마디 없이 목을 매 자살을 했고 그 후 어머니는 충격으로 먹을 것을 달고 살았다.
그 후유증으로 초고도 비만이다. 7년간 집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고래 아줌마'라 부르며 창문으로 구경한다. 구경거리, 놀림거리의 대상이다.
길버트는 자신의 엄마를 부끄러워하는 것인지 구경하러 온 아이를 안아 자신의 엄마를 보여주기도 하고 엄마를 '뭍에 올라온 고래'라 표현했다. 붙박이장처럼 거실 소파에서 자고 먹으며 자신의 삶도 자식도 몸무게도 감당 못한 채 살아 있다. 자식들이 생계와 어니를 감당하고 사는 데도 말이다. 한 때는 미인에 쾌활했던 그녀가 아버지가 사라진 후 그 충격으로 서서히 망가져 간 것이다.

 

 

 길버트의 기억 속 아버지는 속마음을 알 수 없고 표현하지 않았으며 자식들의 어떤 행동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살아서도 이미 죽은 사람처럼. 그러다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길버트는 어른들의 무너짐으로 많은 것을 떠안았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가족이란 가까이 있고 싶은 반면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은가 하면. 예속 되고 싶은가 하면 독립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미움과 사랑이 동시에 왔다갔다 한다. 반대 감정이 양립하는 것이다. 관계가 주는 중압감이 크면 클수록 , 가족으로 인해 힘들거나 심적 부담이 크면 클수록 더 자주 ㅡ
어니가 살아있었으면 하다가 반면 그 반대이기도 하는 길버트의 마음이 그렇다. 눈을 뗄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어니에 대한 두 가지 감정이 추처럼 왔다갔다 한다. 엄마에 대한 마음 역시 그럴 것이다. 사랑과 미움, 부끄러운 반면 불쌍하기도 한.
에이미나 길버트의 표정에 지친 그늘이 질 법도 한데 삶이 버겁기도 할텐데 에이미,길버트, 엘렌 어느 누구 하나 엄마에게 불평하지 않고 내색하지 않고 엄마와 어니를 돌봤다. 정말 모두 착하다.

부모가 자식을 책임지는 것과 자식이 부모를 책임지는 무게는 다르다. 아니 다를 수 밖에 없다. 내리사랑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 같지만 그 반대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게가 있다.

그가 사는 작은 마을 엔도라를 벗어난 본 적이 없는 길버트, 어쩌면 가족한테 꽁꽁 묶여 자신을 위해 어떤 자유도 어떤 변화도 시도조차 해 볼 생각도 못했다. 매일 답답하고 지루한 날들의 연속이고 변화도 없는 마을과 길버트의 일상이 닮아 있다.

 

 

 

그런 마을 엔도라에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하던 베키(줄리엣 루이스)가 자동차 고장으로 이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된다. 베키는 길버트와는 다른 면을 가졌다. 엔도라를 벗어난 적이 없는 길버트와는 달리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자유로운 삶을 산다. 베키는 어니를 대하는 따뜻한 길버트에게 호감을 느낀다. 길버트도 그렇다. 하지만 길버트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베키가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다가간다.

길버트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 베키가 묻는다.
엘렌도 얼릉 컸으면 좋겠고, 어니도 멀쩡해줬으면 좋겠고, 어머니도 에어로빅 수업을 들었으면 하고, 새집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가족에게 삶의 코드가 맞추어지듯 원하는 게 다 이런 것이다. 너 자신을 위한 것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신을 감당하고 살아야 길버트도 자유로워질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로 들렸다. 달리 말하면 자기가 짊어진 무게를 내려놓고 싶은 갈망일 줄도. 엘렌이 얼릉 커 독립하고 어니가 멀쩡해져 돌봄이 필요없게 되고 엄마가 바깥 세상과 어울려야 부담없이 자신을 꿈꿀텐데. 가족이란 게 그렇다. 가족의 고통을 무시하고 외면할 수가 없다. 때론 외면할수록 가슴을 더 옥죄여 온다. 죄책감과 사랑은 다르지 않다. 가까이 있는 감정이다.

 

18살 생일 파티를 위해 더러운 어니를 씻겨야 했던 길버트는 목욕을 하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어니를 심하게 때리고 만다. 사고치는 어니로 힘들었던 그가 폭발한 것이다. 길버트는 그 길로 차를 몰고 집을 나가 버린다. 엔도라를 벗어나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멀리 못가 다시 어니를 찾아 돌아온다. 그는 가족이 밟혀 떠날 수 없는 존재다. 그런 심성을 지녔다. 착한 아들, 착한 형이다.
엄마는 길버트가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엄마 역시 자신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놀림감이 되고 싶지 않았다.괴물 보듯 쳐다보는 이웃의 시선에 상처받은 엄마의 표정에 길버트는 어떤 말도 못한다.

차를 고친 베키도 엔도라를 떠나고 18살 어니의 생일에 엄마는 갑자기 계단을 힘겹게 올라 2층 침대에 눕는다.그리고 아들 어니가 보고 싶다던 엄마는 어니가 2층에 올라왔을 때 이미 죽음으로 사라진 후다.
아들에게 사라지지 말라더니.

 

 

엄마의 죽음도 슬프지만 엄마의 시신을 옮기려면 크레인을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사람들이 몰려들거고 엄마는 구경거리가 될거다. 길버트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다. 엄마를 더 이상 놀림거리나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다.

엄마가 움직일 때마다 거실바닥이 흔들렸다. 엄마의 무게를 감당 못한 건 자식이 아닌 엄마 자신과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아버지와 아버지가 지은 집이었다. 아버지가 목을 맨 집, 여기저기 낡은 집, 붙박이처럼 엄마가 앉아 있던 집, 엄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집과 함께 침대에 고운 얼굴로 잠든 엄마를 놀릿감이 되지않게 이별식을 치른다.

집을 불태운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타는 집을 한없이 바라볼 뿐이다. 아, 삶이 무어라 말인가. 가슴이 아프다. 가족 이야기만 하면 가슴의 추가 흔들린다.
마음이 이쪽 끝에 가 있다가도 저쪽 끝에 가 매달린다.
가족의 구성원은 선택이 허용되지 않는 관계이다. 가족은 사랑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연으로 엮여 있다. 책임이나 사랑의 크기를 수치로 드러낼 수 없고 한쪽 끝에만 있을 수 없는 감정과 무게다.

 

 

 

일단은 작품 속에서 나와 배우들 이야기를 좀 하자면 어니 역을 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지적 장애를 가진 연기실력이 26년 전에 이 정도라면 그냥 타고난 연기꾼이다. 그런데 상복이 안 따라준 거네. 잘 모르는 사람은 그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서너 번 받은 줄 안다. 하지만 후보로만 오르고 상을 거머쥐지 못했다. 오죽하면 오스카가 버린 남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도 2015년에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길버트그레이프, 이 남자가 바로 조니 뎁이다. 와우?
캐리비안 해적의 잭 스패로우, 그 남자다.
젊을 때 무지 꽃미남이었네.
이런 모습을 보니 세월이 야속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