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8. 6. 15:19

감독 이안

색, 계

욕망이란 뜨겁고 위험한 색, 色

신중하면서 , 그 잔인하고 차가운 경계, 戒

감정과 이성의 경계가 시간이 흐를수록 흔들리고 色으로 戒가 무너진다.

 

<색, 계>는 '탕웨이'와 '양조위'의 파격적인 노출 연기가 논란이 된 영화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제국주의적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1939년 중국 홍콩과 1941년 상하이를 배경으로 친일파로 살아가는 정보부 대장 '이'와 그에게 접근하여 그를 암살하려는 '왕치아즈'가 色으로 인해 戒가 무너지면서 극으로 치닫는 그들의 운명을 다룬 이야기이다.

 

1939년 홍콩,

홍콩대에 다니는 왕치아즈는 광위민에게 끌려 저항 연극을 하게 되고, 첫 연극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성황리에 끝나자 왕치아즈와 연극단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저항 연극의 성공에 힘입어 학생신분이었던 그들은 투쟁의 일환으로 그 범위를 넓혀 홍콩으로 온 친일파 관료 '이'를 암살하고자 계획한다.

 

그들은 홍콩 상인과 그의 아내 막부인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이'의 아내에게 접근한다.

왕치아즈에게 '이'의 존재는 이 때만 해도 그저 경계할 암살 대상일 뿐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다.

그저 신분위장한 막부인이란 연기에 집중하면 되었다.

 

친일파 관료였던 '이(양조위)'는 예리하고 치밀한 인물로 아무도 믿지 않았으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왕치아즈의 두려움 없는 눈빛에 서서히 호감을 드러냈다.

연극단원들은 그녀가 '이'와 성관계를 가질 것을 대비해 첫 경험이 없는 그녀에게, 성관계를 미리 연습하게 했고, 그녀와 관계를 가질 남자는 광위민이 아니고 유경험자인 연극단원과 가지게 된다. 왕치아즈는 광위민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왕 하는 거라면 호감을 가진 광위민이었으면 했지만 광위민은 나서지 않았다.

연극단원과 관계를 가지고 난 후 그녀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먹지도 않았다. 그녀를 그렇게 몰아넣은 단원들과 어색하고 껄끄러운 거리감이 생겼다.

그녀 혼자 이에게 접근해 연기를 하는 동안 연극단원들은 지켜만 봤다.

경계를 풀지 않는 '이'로 인해 뜻대로 일은 진행되지 않았고, 이가 다시 상해로 돌아가는 바람에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그녀는 망연자실한다.

대학생이었던 왕치아즈가 막부인으로 신분위장을 하는 순간 그녀는 色을 미끼로 유혹하여 그를 암살하려 했지만 '이'를 암살하기 위한 色은 시도도 못하고 같은 단원에 의해 처녀성만 상실했다. 연극단원들과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거기다 광위민과 연극단원들의 계획을 눈치챈 광위민의 선배가 찾아오고, 발각된 일로 인해 선배와 말다툼 끝에 단원들은 선배를 살해하게 된다.

상처와 좌절,수치심으로 얼룩진 그녀의 계획은 실패하고 왕치아즈는 그 길로 그곳을 떠나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난후 왕치아즈는 넋이 빠진 채 텅 비어 버린 것처럼 3년의 시간을 보냈다.

 

 

3년이 흐른 후, 때는 1941년 일제 강점기의 중국 상하이, 광위민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다시 만난 광위민의 제안으로 저항군의 협조 아래 3년 전에 실패한 정보부 대장 '이'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다시 세우게 된다.

이는 그동안 일본군의 감시견이 되어 반일인사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다 살해했고, 경비는 더 삼엄하여 접근조차 불가능한 위치에 올랐다.

왕치아즈는 어리석었던 3년전과는 다르게 밀수 장사를 하는 막부인으로 철저하게 신분을 위장해 '이'에게 다시 접근한다.

3년 전에 막부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이'였다. 막부인은 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하자 이의 입에서 "당신이 와 준 게 선물이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녀에게 본능적으로 끌렸던 이의 경계는 쉽게 무너질 거라는 예상이 드는 대사였다.

 

 

그가 막부인을 밖으로 불러 가진 첫 정사신은 굉장히 거칠고 폭력적이었다. 그녀의 몸을 가지면서도 그녀의 진심을 뚫어지게 파고들며 그녀를 강압적으로 제압했다.

색으로 유혹하려던 막부인의 계획 안으로 이가 첫발을 내디뎠다. 경계가 일단은 풀렸다는 것에 그녀는 엷은 미소를 띤다.

막부인은 그의 집에 기거하고 이에게 더 깊숙이 접근해 들어갔다.

 

 

그는 뼛속까지 잔인한 사람이 아니다. 친일파로 살고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겁이 많고 여린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그의 외로움을 안 왕치아즈는 "많이 외로웠겠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그 덕분에 살아있지"라고 말한다.

그는 친일파로 사느라 모든 이의 표적의 대상이었고, 그로 인해 그는 누구보다 외롭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 내면의 공허감은 누구보다 깊었다.

그가 초조하고 불안한 자신의 내면을 숨기면 숨길수록 가슴의 공허가 깊고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낄 만큼 그녀를 통한 성적 탐닉으로 파고든다.

그녀의 말처럼 "그는 내가 매번 내가 피를 흘리고 고통의 비명을 질러야만 만족해요. 그때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죠."

두려움이 가득 찬 자리에 욕망이 들어가 그녀를 삼킴으로써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녀를 파고드는 깊이가 깊을수록 그의 공허는 컸을 것이다.

 

 

"날 안을 때마다 그는 마치 뱀처럼 내 안으로 파고들어요. 내 심장까지"

그녀가 진심인지를, 진짜 감정인지를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서로의 몸이 엉켜있는 침대에서 더 강렬하고 차갑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매섭게 그녀의 흔들리는 마음이나 눈빛,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간파하려 했다.

 

나는 그 둘의 정사를 결코 뜨겁게만 받아들일 수 없었고, 달콤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뜨거운 육체가 서로 엉키는 순간에도 매서운 눈빛이 서로의 심장을 치명적으로 파고들어 찔러대는 모습이었다. 지독한 공허를 성적 탐닉으로 보상받으려는 처절한 몸부림 같았다.

 

색으로 포섭하려던 戒는 잠식되어갔다. 이의 경계는 무너지고 막부인은 이제 연기가 아닌 실제로 진심에 가 닿게 된다. 이제 혼란스럽고 두려운 건 왕치아즈였다.

 

저항군은 빨리 이를 제거하지 않고 왕치아즈를 최대한 이용하여 그에게 빼앗긴 무기들을 찾아내려는 계획을 설계하고 무기 정보까지 얻어내려 했다.

하지만 광위민은 왕치아즈가 전문요원이 아니라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만류하지만 저항군 대장은 이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 왕치아즈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할 뿐 그녀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

하물며 저항군 대장은 그녀에게 조직, 지도자,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명심하라고 요구하며 "그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아"라고 말한다.

"뭐로 사로잡아요. 내 몸으로? 당신은 그를 몰라요.. 연기라면 그가 몇 수 위죠."

그녀는 조국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 따윈 모른다. 그녀는 처음 광위민에 대한 호감으로 암살 계획에 가담했고 지금 자신의 마음은 이로 인해 흔들리기에 두려웠다. 처음 그녀는 이 앞에서 두려움이 없었다. 이에 대한 감정이 없었기에

하지만 지금 이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심장까지 스며들었다.

연기에 있어서 막부 인보다 이가 한 수 위라는 걸. 가까이서 겪은 그녀만 알 수 있는 것. 연기는 통하지 않았기에. 막부인은 연기가 아닌 이에게 빠져든 진짜 욕망을 표출해야만 했다.

자신의 역할에 미치도록 빠져든 막부인, 그녀를 집어삼킬 듯 달려드는 이에게 연기는 실제처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내 반응이 가짜가 아니란 걸 알아요 이러다 사로 잡히는 건 내가 되고 말 거예요."

이미 戒를 계획했던 왕치아즈는 사라졌고, 막부인으로 色만 남아있다. 그녀에게도 色은 더 이상 미끼가 아닌 본능 그 자체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

"점점 두려워져요. 마침내 그가 내 심장에 들어오는 순간 내내 구경만 하고 있던 당신들이 뛰어 들어와서 그의 머리를 쏴버릴까 봐."

이제 두려움의 위치가 바뀌었다. 저항군의 압박은 강해지고 둘의 관계는 깊어져 이미 경계는 무너졌고, 그녀는 이제 뜨거운 욕망으로 심장까지 내려가 있는 이를 저항군이 죽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녀의 가슴에 그 뜨거운 불꽃의 감정이 들어와 버린 것을.

 

치명적일 정도로 뜨겁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육체적 교감을 나눈 이와 가까워질수록 두려움이 스며든다.

그들이 이를 암살하려는 시간을 지연시킬수록 그녀의 욕망이 그가 아닌 자신을 삼켜버릴 것이다.

두려움이 없던 치아즈는 없고 이에게 무너진 막부인만이 있었다.

 

이는 왕치아즈에게 6캐럿짜리 다이아반지를 선물해주고 저항군은 바로 그 순간 그를 암살할 계획을 가지고 , 다이아반지는 관심 없고 반지를 끼고 행복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이.

내적 갈등하는 왕치아즈.

저항군은 그녀를 그저 이용도구로만 여겼지만 이에게 왕치아즈는 특별한 존재였다.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이의 사랑 앞에 무너진다.

그와 관계가 깊어질수록 이에게 몸과 마음이 완전히 점령당했다.

이에게 특별한 건 왕치아즈이지, 다이아가 아니라는 사실, 자신이 지켜줄게라는 말에 그녀의 갈등은 멈추고 자신을 버리고 그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저항군의 암살 신호를 알리며 그에게 도망치라고 말한다.

이를 간파한 그는 총알같이 몸을 날리다시피 차에 올라타고 그곳을 빠져나간다

그가 몸을 날려 차 안까지 뛰어들 때까지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총알처럼 뛰어나가는 모습에서 그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그의 삶이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도망가지도 자결도 하지 않고 유유히 적진의 입으로 들어갔다. 연극단원과 같이 잡혀 죽음을 맞이한다.

연극단원들과 총살 직전에 선 그녀의 표정은 그를 죽이려 했던 동지들과 그곳에 같이 있다는 것에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의 부하는 이미 치아즈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이가 포섭되었을지도 몰랐다고 말한다. 부하들마저도 그를 의심하고 감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부하로부터도 감시의 대상으로 사는 이의 존재,

그녀를 비롯한 연극단원들에게 총살을 명령하고 이는 그녀가 머물렀던 침대에 앉아 쓸쓸하고 공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다. 영화는 끝이 났다.

암울하기만 했던 시대,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다.

암살을 위한 계획으로 무장한 머리가 욕망으로 심장이 뚫리면서 비극적인 운명 앞에 무릎 꿇는다.

이에게 적으로 다가간 왕치아즈는 냉철하고 투철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는 재혼하여 자신을 떠났고, 맘에 있던 광위민은 자신의 감정을 내놓지 않았고, 저항군은 그저 자신의 몸을 이용하는 도구로 사용할 뿐 자신을 아끼고 배려하지 않았다.

연극단원들은 3년 전과 똑같이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결국 피 흘리고 두려움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건 혼자이고 맘 하나 기댈 수 없이 외롭고 두렵기는 이와 다르지 않았다. 서로의 외로움을, 서로의 두려움을 안았고 누구보다 그들은 뜨겁게 심장까지 내놓듯 자신들을 욕망으로 채우고 또 누구보다 심장 가까이에 갔다.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