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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6.21 언터처블: 1%의 우정
posted by 해이든 2019. 6. 21. 19:50

 

언터처블 1%의 우정

 

실화라서 좋은 영화, 만들어진 인생이 아니라 누군가의 진짜 인생, 진짜 감정이라 몰입이 더 되는 영화이다.

타인의 아픔을 보며 내 아픔의 크기를 알게 되고, 타인의 고통을 통해 내 행복의 가치를 재확인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최고의 샴페인을 만드는 회사 경영자인 ‘필립 포조 디 보고’의 이야기다.
그는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투병중이던 아내가 3년만에 죽으면서 암흑같은 인생을 살게 된다.


드리스 역할의 실제 주인공은 빈민촌 출신의 청년 애브델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장애를 다룬 영화가 유쾌하고 행복하기도 힘든데 그걸 해냈다.
절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남자의 만남으로 유쾌한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여기서 언터처블의 뜻은 과거 인도 계급제도에서 불가촉 천민의 의미를 가져온 것이라 한다.

고대 인도 카스트 제도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4계급으로 구분되는데 언터처블은 이 4계급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 즉 제 5의 계급을 의미한다.

카스트 제도 최하위 계급을 뜻하는 언터처블은 극 중 드리스가 처해있는 환경과 상황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 누구도 함부로 방해하거나 건드릴 수 없는 두 사람의 세상 1% 소중한 우정을 상징한다.

 

 

상위 1%인 귀족과 하위 1%의 무일푼이 우정을 나눈다.

기울어도 너무 기울어진 사이에 우정이 어떻게 존립할까?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작가의 머릿속 우정이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실화라는 것에 구미가 당겼다.

 

1%의 우정이라,

시소는 두 사람이 타야만 되는 놀이 기구이다. 제 역할을 하려면 혼자서는 영 재미가 없는 기구인데, 한 명이 올라가면 한 명이 바닥을 치고, 또 한 명이 바닥을 치면 한 명이 올라간다.

둘이 마주보기 위해서는 서로가 같이 무게와 균형을 잡아야 한다. 한 사람으로의 노력만으로는 균형을 잡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우정은 시소와 같은 도구로는, 상대의 배려 없이는 형성되기 어려운 관계라 본다.

 

아~ 필립이란 이 남자 전신 불구인데 너무 밝은 것 아냐?

필립 역을 맡은 프랑수아 클루제의 미소에 마음이 따뜻하다. 웃는 게 너무 천진난만한 아기 같기도 하고, 자상한 아빠의 미소 같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가 앉고 싶을 만큼 끌렸다.

정말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가 전신마비로 고통받는 환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그가 그리 밝게 웃었던 데에는 무일푼 백수 드리스(오마 사이)의 유쾌하고 자유분방이 한 몫을 했다.

 

 

 

6개월을 강도죄로 복역하고 나온 드리스는 생활보조금을 받기 위해 남자 간병인을 구하는 필립에게 면접을 보러 간 것이다.

세 번 거절하면 생활보조금을 못 받게 된다는 말에, 필립은 <못 받게 할 순 없지?> 라고 말하며 낼 서류를 받으러 오라고 한다.

그들의 시작은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간병인 모집에 지원하고 면접을 봤지만 필립은 무경험과 무경력인 드리스를 채용한다.

"저런 거친 애들은 연민 같은 게 없다."

필립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것에 연민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드리스의 모습에 끌렸다.

산만하고 폭력적이고 전과기록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송장 취급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필립의 마음이 움직였다.

드리스는 굽신거리지 않았고 당당하게 제 할 말 다하는 거침없는 성격의 청년이었다.

 

 

 

일단은 그가 상위 1%의 백만 장자이다 보니, 거짓 웃음이나 거짓 마음을 전하는 이들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그런 가식 없는 드리스가 필립은 맘에 들었다.

드리스의 자유분방하고 거친 말을 무게감없이 유쾌하게 받아들였고, 산송장 취급 안하고 자신을 대하는 드리스로 인해 필립은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잊고 사는 것 같거든. 이 산 송장한테 전화기까지 건네 줘. 날 보통 사람처럼 대한다니까”

 

"죽는 것도 팔 다리가 움직여야 죽지"라고 말하는 필립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다. 타인에 의지하지 않고는 죽는 것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그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건네지를 않나, 개도 아니고 사람을 뒤에 태울 수 없다고 자동차 앞좌석에 앉히지를 않나, 환자인 필립에게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려주고 답답한 마음을 해소해 주려 새벽 질주를 하는 등 삶에 스릴감을 누리게 해 준다. 전혀 환자 취급하지 않으니 그와 있으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던 것이다.

필립과 함께 오페라 관람을 보러 간 드리스는 오페라의 우스꽝스러움에 배를 잡고 껄껄 웃는다. 이런 것에 비싼 돈을 내고 보는 그들이 더 광대 같아 보였다. 다른 시선,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지만 서로 통하는 문이 마음이다.

나이 50에 비행 청소년처럼 소소한 일탈들을 안겨주는 드리스로 인해 필립은 자주 웃었다.행복해 보였다.

불편한 몸으로 돈이 있어도 온전히 자유를 느낄 수 없는 필립과 자유가 원없이 있음에도 스스로 방황하며 현실에 구속되어 버린 드리스는 서로를 통해 많은 것을 채우게 된다.

 

 

 

어느 새 가까워진 두 사람.

이 영화의 명장면은 필립의 생일파티 장면에서 들려주는 클래식과 팝의 어울림이다.

클래식을 듣는 필립과 힙합을 듣는 드리스,

힙합에 맞춰 춤추는 드리스와 필립을 위해 연주되는 클래식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가끔은 영화를 직접 봐야만 되는 종류의 것들이 있다.

표정에서 오는 감정들을 글로 쓰면 감정이 파괴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