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5. 31. 12:05

감독 토드 헤인즈

벨벳 골드마인

<벨벳 골드마인>은 '데이빗 보위'의 노래 중 하나이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벨벳 골드마인>은 1970년대 영국의 글램 록을 배경으로 록가수 '데이빗 보위'와 '이기 팝'을 각색하여 그려내고 있다.

1970년 초반 영국 런던을 비롯하여 유럽지역에서는 '매혹적인 록'을 의미하는 <글램 록>이 각광받던 시대였다.

글램 록은 음악계뿐 아니라 그들의 패션과 동성애적인 것까지 따라하는 젊은이들로 인해 유행을 불러오면서 영화에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게 된다.

변신의 아이콘이었던 영국 런던 출신 뮤지션 '데이빗 보위'와 '이기 팝' 등은 글램 록 아이콘으로 1970년 중후반까지 젊은 세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그 인기를 이어갔다.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멋쟁이들이 가득한 영국 런던에서 이 모든게 시작됐다.

글램 록 뮤지션이었던 '브라이언 슬레이드'(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아름다운 록스타로

제리 디바인과 계약을 하고, 진한 화장, 파격적인 의상, 노골적이고 동성애적인 느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가며 새로운 문화 트렌트를 이끌어낸 천재적 아티스트이다.

그는 우아했고 허구의 세계에서 어울릴 법한 스타로 자신의 음악이 소외된 자들에게 들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왜 화장을 하는거죠?'' 기자의 질문에

''락 앤 록은 매춘이기 때문이죠. 야하게 공연해야 됩니다.

음악은 가면이고 전 야한 옷을 입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죠.''

동성애적 느낌을 뿜어내는 그의 이미지, 예술적 감각의 뮤직비디오, 환상적인 연출, 라이브 공연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결국 스타일이 이긴다는 그의 말이 맞았다.

대중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으며 그는 슈퍼스타로서 유명세를 등에 업는다.

나는 '브라이언 슬레이드'를 연기한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만 눈에 들어왔다.

참 남자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는데 진짜 예뻤다.

기성세대들은 그가 동성애 밝힘증이나 사회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지만 젊은이들은 열광하며 춤추는 분위기였고 새로운 변화와 함께 글램 록 스타가 탄생되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빛났다

그의 음악과 아름다움이 매혹적인 록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예술가는 자기 삶으로도 미를 창조한다. 이에 대중들은 환호한다. 그는 가수이면서 예술가였다.

커트 와일드 역 '이완 맥그리거'

커트 와일드는 어릴 적 동성애적인 문제로 전기쇼크 치료를 받았다.

그는 전자기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상해진다. 그의 라이브 공연은 너무 노골적이고 적나라해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완 맥그리거'가 '이기 팝'이라는 가수를 연기한 것인데, 이 공연장면은 연기가 아닌 광기처럼 느껴졌다. 다들 미쳤구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커트 와일드(이완 맥그리거)의 이 공연을 보고 예리한 전율을 느끼며 그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두 아티스트의 결합은 브라이언의 음악적 교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커트 와일드와 결합하여 서로 예술적 교감을 나누며 공연을 한다.

그러다 점점 마약과 스캔들로 인해 타락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끝내는 마찰을 빚으며 결별에 이르게 된다.

브라이언의 아내 맨디(토니 콜렛) 또한 그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처만 입은 채 떠난다.

브라이언 슬레이드 역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월트투어 콘서트에서 가수 브라이언 슬래이드가 무대에서 피격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 피격은 속임수였다.

암살되는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재미를 위한 것이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너무 크게 벌려서 악의적인 쇼라 비난받는다.

그로 인해 월드 투어와 시상식이 취소되고 인기도 추락하게 된다.

거짓 속에서 헤매다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무대에서 사라지고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혔다.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서 스튜어트 역 '크리스찬 베일'

그리고 10년이 흐른 후, 뉴욕 헤럴드지의 아서 스튜어트(크리스천 베일)는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암살 자작극 10주년을 맞이하여 브라이언의 근황을 취재하라는 특집기사를 맡게 된다.

아서는 10년 전 글램 록 열성팬으로 우상이었던 그의 자작극 공연 현장에 있었다.

시간에 묻혀 우상이었던 브라이언 슬레이드를 잊고 있었는데 취재로 인해 과거에 자신을 열광시키던 감정과 그에게 이끌려 들어갔다.

아서는 사라진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만나며 무대 위 록가수가 아닌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지 못해 두려움 속에서 살다 사라졌다. 그의 매니저도, 전처도, 친구도 그와 연이 끊어졌다.

대중들은 한때 미친 듯이 열광한 것과는 다르게 거품 빠지듯 허무하게 빠져나갔다.

무대 위에 오른 스타의 인기는 한때 유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스타가 탄생하기까지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지만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

이름까지 바꾸고 종적을 감춘 브라이언이 다른 이름의 가수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아서는 알게 된다.

그는 화려한 조명을 떠나 살 수 없는 운명처럼 다시 인기에 매달려 노래하고, 또 대중은 자신들의 열광할 수 이미지를 쫒아 그가 예전의 브라이언 슬레이드인지 모르고 새롭게 만들어진 이미지에 환호하고 지지하고 있다.

어쩌면 대중들은 그저 자신들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스타의 이미지를 통해 자유를 누리는 것이지 스타란 개인적 인간에 대한 사랑이나 지지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이미지는 계속 변화해야 되고, 그저 한 개인에 지나지 않는 가수, 예술인들은 그들의 욕구를 채워줘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지쳐간다.

대중문화라는 것이 그저 유행만을 좇는 것으로 비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뼈가 있어 보이는 이유다.

그 열망이 식으면 유행도 사그라지고 자연히 멀어지고 잊힌다.

 

어쩌면 자작극을 벌여서라도 브라이언을 죽이고 새로운 이미지를 재탄생시켜 인기를 얻으려는 그의 연기가 아니었을까.

어차피 음악은 가면이고 이미지만 답인 양 유행만 좇는 대중들을 향해 쏘아 올린 비난은 아니었을까.

 

'생각보다는 이미지가 좋고,

주제보다는 상황이,

긴 것보다는 짧은 비행이,

전형보다는 예외가'

어쩌면 이 말속에 대중이 요구가 있는 것 같고, 그 유행을 만들어내야 하는 소속사나 매체들은 인간보다 스타를 계속 찍어내야 공장이고, 한 개인은 스타가 되는 꿈을 꾸는 순간 꿈은 사라지고 인기만을 쫒게 되는 축 쳐진 세계에 갇히게 된다.

아서는 우연히 커트 와일드를 만나게 된다.

"우린 세상을 바꾸려 했어. 그런데 우리 자신만 바뀌어버렸어."

어쩌면 화려함을 입는 순간, 인기에 얽매이는 순간, 그들이 꾸는 꿈에서 멀어지고, 대중이 원하는 것만 내주며 무대 위에 올라야 했을 것이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들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결국 세상에 의해 통제되는 삶을 살아가는 게 스타의 운명인 것 같다.

자신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또 꿈을 꾸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보다는 생각이나 가치를 담아내야 하고, 인기나 유행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대중들은 그저 유행에 따라 모방하고 열광하는 것일 뿐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19. 22:01

미스 리틀 선샤인


감독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대학 강사로 성공하려고 발버둥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한 남편 리차드(그렉 키니어),

이런 남편을 경멸하는 엄마 쉐릴(토니 콜렛), 헤로인 복용으로 양로원에서 쫓겨 난 할아버지(앨런 아킨),

투 조종사가 될때까지 9개월째 자신의 의사를 노트에 적어 전달하며 묵음 수행하는 아들 드웨인(폴 다노),

게이 애인한테 차인 후에 자살을 시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해 이 집에 얹혀 살게 되는 외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

마지막으로 7살짜리 막내 딸 올리브(아비게일 브레슬린)는 유난히 미인대회에 집착한다.

 
자신의 실패에만, 자신의 꿈에만, 자신의 걱정거리만,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불행으로 상처내느라

각자 자신의 무게만을 감당하기 바쁘다. 다 벽만 만들고 소리내지도 듣지도 않는 세상, 한 공간에 담겨도 고립된 삶과 다르지 않다.

봉고버스에 탄 가족들 표정
고물 봉고차 안의 가족의 모습

그러던 어느날, 올리브에게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리는 어린이 미인대회 '미스 리틀 선샤인'대회 출전 기회를 잡게 된다.

딸아이의 소원을 위해 온 가족이 낡은 고물 봉고차를 타고 1박 2일 동안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이 고물 봉고차는 이 가족을 암시해준다.

멈추고, 망가지고, 문짝도 떨어져 나가고,엉망진창인 고물차이다. 이 가족의 모습처럼  서로 의견이 충돌하고, 자살 시도하고, 마약 하고, 묵언으로 가족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엉망진창인 가족의 모습이다.

올리브의 꿈을 향해 온 가족이 다 한 곳을 보다보니 서로가 다 위로받고 싶고,상처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차가 굴러 가게, 힘을 낼 수 있게 ,아퍼도 일어설 수 있게, 많은 장애물을 견디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위로와 응원해 주어야 하는 가족으로 살아 남아야 한다. 

뒤에서 다같이 밀어야 가는 차, 온 가족의 힘으로, 도움으로 움직이는 차, 가족도 그렇다. 인생도 그렇다.

삶이란 여정속에서 어쩌면 삶은 어른이나 아이나, 늙거나 젊었거나, 책임이 크거나 적거나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픈 것 보다 가족이 더 아픈 것이 나와 상관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 아픔에 너무 거리를 두고 타인처럼 살아온 자신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가족은 내가 타인으로 취급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들이다. 그들과 떨어져서 내 행복을 꿈꿀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 소중함을 망각하고 산  자신들을 알아간 여정이었다고 본다.
 
색맹이라 비행기 조정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드웨인은 차에서 뛰쳐 내린다. 

 "이혼, 파산, 자살, 다들 패배자인 이 가족에  끼고 싶지 않아"

어떻게 달래보라는 아버지 리차드의 말에 엄마는 말한다.

 "뭔 할말이 있어. 그냥 기다려주는 수밖에"   가족은 원래 그렇게 기다려준다. 

그리고 오빠에게 조용히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아무 말없이 위로해 주는 올리브처럼 유일하게 나의 절망과 나의 희망을 안아줄 품이었다.
가족의 크기가 다 담겨 있는 장면 같았다. 
 
패배자집단이라고 거기에 합류하기 싫다고 뛰어 내려도 그저 기다려 주는 것 밖에 할 게 없는 엄마라도 아들은 돌아간다.

진심이 아니었다고, 누구보다 안기고 싶은 가족의 품이라는 걸 안다.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힘들 때 자신을 담을 곳은 가족이 유일하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가족은 수식어가 아니다. 
가족은 목표나 꿈이 아니다. 가족은 존재 자체로 힘이 된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설득시켜야 하고, 강요 당해야 하고, 이해 받으려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곳,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 모습 그대로를 안아 줄 집단이고, 존재함으로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된다.

딸의 공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가족

 

빌어먹을 대회 '미스 리틀 선샤인'
보이는 것에 전부인냥 미쳐 있다. 어린 아이들이 화장을 떡칠하고,억지웃음으로 포장하며, 거기에 부모들은 열광하고, 평가받고, 점수 매기고,다들 미쳐있다. 이건 어른들 미인대회였다. 아이들의 동심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린이다워야 할 나이에  동심이 추락하고 있다.
미인대회를 개최한 사람들도, 점수를 매기는 사람들도, 부모들도 미쳤다. 
어린이 미인대회라는 것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삶을 상업적 용도로 타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대회에 어울리는 아이는 올리브 뿐이었다.
미인대회라는 이름하에 그들이 만든 건 어른들을 위한 스트립쇼와 다르지 않았다. 어린이들을 이용한 퇴폐적인 대회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환상적이야라고 말하는 사회자마저 변태 같았다. 속물덩어리들
"무대에 세우기 싫어"
"둘러보세요. 저런 놈들이 올리브를 평가하게 만들고 싶지 싫어요"
"원하는 대로 놔두자"

올리브 가족은 일제히 모두가 한마디를 던진다. 남이 내 가족을 평가하게 두고 싶지 않다. 

저런 미친 무대에 딸을 세우기 싫은 아빠, 동생을 저런 사람들에게 평가받게 하기 싫은 오빠, 딸이 집착하며 꿈꿨던 대회였기에 딸의 선택에 맡겨 두자는 엄마, 모두 가족으로서 갖을 수 있는 애정이고 보호이고, 선택이다.
올리브 역시 느낀다. 꼴등이라는 걸, 이런 무대에서 1등이 어렵다는 것을,

하지만 올리브는 이 대회를 위해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과 그리움을 담아 할아버지에게 바치기 위해 무대에서 열심히 춘다.

할아버지(알란 아킨)와 올리브가 열심히 준비한 미스 리틀 션샤인 대회의 마지막 무대를 통해 가족 모두가 변화하게 된다.

올리브 눈에도 이 무대가 개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걸까?  '니들에게 그럼 나도 보여줄게' 하면서 스트립쇼를 하는 올리브의 춤은 정말 통쾌했다.
올리브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가족의 마음은 하나로 통일된 사랑이었다.
아버지는 딸을 무대에서 끌어 내려는 사람들을 막아서며 딸과 같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가족들도 다같이 올라가 춤을 추며 난장판으로 바꾸어 놓는다. 어짜피 대회자체가 말도 안되는 난장판이었다.

딸을 응원하던 가족들의 따뜻함은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사랑이다.

가족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무대를 마치고 처벌을 기다리는 장면

다들 부족하면 어때. 좌절하면 어때, 치고 박고 막말을 하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걸 그들은 다 알고 있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가장 강하게 끌어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성장하게 되어 있다. 
이 영화는 우리의 아이가 내가 만들어놓은 덫에 걸리지 않고 살아가게 어른들이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가족은 유일한 존재들이다. 차가운 육신으로 떠나 간 할아버지도 손녀의 마지막 무대에서 살아서 가족들을 뭉치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올리브를 통해서 말이다.
 
외삼촌은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를 이야기하며 색맹으로 좌절했을 조카 드웨인에게 말한다. 
"인생의 막바지에 도달해서 뒤를 돌아보고는 이런 결론을 내렸어. 자신이 가장힘들었을 시기를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 했어.그게 자신을 만들었으니까."

가장 힘든 시기가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낼테니 이겨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